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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님의 서재입니다.

마도 명가의 소드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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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41
최근연재일 :
2021.07.24 14:0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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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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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라고스 성국

DUMMY

‘신경 쓰이잖아···!’


비앙카는 굳게 닫힌 유리의 방문 앞에서 노크하려던 손을 머뭇거렸다.


유리의 애완식물 ‘렐’.


그 프렐리를 입학 전부터 매우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식물이라고 애지중지했던 유리의 모습을 잘 알고 있는 비앙카는 괜히 유리가 신경 쓰여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 전, 갑작스레 꽃잎이 시들어버린 렐.


에센의 봄은 이 이상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쾌청했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물은 꼬박꼬박 주면서 키웠던 프렐리다.


꽃입이 시들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유리가 ‘렐’이라 이름 붙인 프렐리는 슈라와 비앙카도 유리의 부탁을 받아 물을 몇 번 주면서 나름대로 애착을 가졌던 식물이었다.


물을 주면서 몰래 유리의 험담을 하면 꽃잎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드는 귀여운 모습부터,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창문을 열어주고 햇볕을 쬐게 해주면 스르르 늘어지는 모습까지.


식물이 아니라 마치 진짜 동물 같아서 비앙카도 렐을 좋아했었는데···.


병에 걸린 것처럼 시들어버린 꽃잎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수명이 다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이기면 괜히 찝찝해···.’


시험 기간이어도 매일 서로 인사는 주고받았고, 도서관에 가서 누가 더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나 기 싸움도 했었다.


하지만 렐이 시든 이후로 유리의 얼굴엔 근심이 늘어나더니 최근 들어서는 수업을 제외하면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있었다.


노크하려는 손의 반대편에는 유리가 좋아하는 베르네의 모둠 닭튀김이 들려져 있다.


끼니도 잘 챙겨 먹지 않는 유리를 위해 비앙카가 직접 상업 지구까지 가서 사 온 것이다.


‘하아···.’


맨날 핀잔을 주고,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도 유리를 나름 경쟁자로 인정하고 있던 비앙카였기에, 은근히 걱정되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태로 1학기가 끝나고, 수석을 따낸다고 할지라도 기쁘지 않을 터다.


이렇게 유리를 이기는 것은, 비앙카가 납득할 수 있는 승부가 아니므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유리의 방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벌컥!


비앙카는 손을 올린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예고 없이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오려는 유리와 비앙카의 눈이 마주친다.


“···뭐야 비앙카.”


유리의 안색은 강의 시간에 보았던 것보다 좋아져 있었다. 비앙카의 걱정이 기우였던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유리의 눈동자에는 다시 총기가 돌아와 있었다.


실내에 퍼져있던 튀김의 고소한 냄새에 유리의 시선이 비앙카가 들고 있는 베르네 닭튀김에 향한다.


비앙카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슈라 생각이 나서 사 왔는데, 슈라는 도서관에 가서 없지 뭐예요. 뭐, 미련한 유리 씨는 오늘 저녁도 안 먹었잖아요? 이거라도 드시라는 거죠.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냥, 정말로 슈라를 위해서 사 온 건데 그녀가 없어서 당신에게 드리는 거니까요.”


자기가 말해놓고도 횡설수설한 것 같아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얄미운 유리의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이 걸리기 시작했다.


“정말 솔직하지 못하기는···. 그래 그럼. 버리기도 아까우니까 내가 먹을게. ···비앙카. 너도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먹던가.”


······평소의 유리 씨와 똑같네요.


하고 생각한 비앙카가 열린 방문을 통해 유리의 방안을 살짝 훑어보았다.


미약한 달빛이 비치고 있는 창가엔 시들어서 생명이 다한 줄만 알았던 프렐리가 아름다운 꽃잎을 피워내고 있었다.


*


‘파올리오스 대주교가 왜 여기에?’


상상도 하지 못한 인물이 상상도 하지 못한 장소에 나타났다.


성신교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티아 아카데미에 성신교의 대주교가 행차하다니···?


‘잠깐만···.’


어차피 성국에서 나를 찾아온다는 사실은 에센에 오기 전 로도스에서 델런의 언질로 알고 있었던 터라, 크게 놀랍진 않았다.


찾아온 사람이 파올리오스라서 문제지.


하나 방금 세렌이 성국과 협의를 마쳤다고 했다.


···성국을 대표해 사티아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한 가장 적합한 인물은 분명 파올리오스가 맞긴 하다.


그는 사티아의 대표로 나선 대마법사 세렌과 비교했을 때도 그리 꿀리지 않는 지위에다가 사티아가 위치한 가디우스 왕국을 총괄하는 대주교다.


파올리오스가 사전에 나를 만나기 위해 사티아로 발걸음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단, 헥사르 문제로 사티아에 남아있던 와중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겸사겸사 만나러 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치에 맞다.


“루이스 공자님. 반갑습니다. 파올리오스라고 합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로벤 루이스입니다.”


기숙사동에 따로 지어진 외부 손님용 별채에서 파올리오스와 내가 서로 인사했다.


“따로 볼일이 있어 사티아에 방문했었는데, 공자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실례가 된 건 아닐지···.”


“실례라니, 전혀 아닙니다.”


역시, 타이밍 좋게 아귀가 맞아떨어진 것뿐이었다.


파올리오스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꿰뚫는다.


“로벤 루이스 공자님께 초대를 드리고자 성국에서 루이스 공작가에 사절을 보냈을 텐데, 저 때문에 그들은 헛된 걸음을 하게 될 것 같군요.”


“성국에서 저에게 초대를 말입니까?”


“예. ‘그 현상’에서 공자님이 깨어나신 지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파올리오스는 담담하게 마나 간섭 현상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사이 같은 증상으로 기약 없는 잠에 든 다른 분들도 차례차례 눈을 뜨셨지요. 그야말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직이다. 빙빙 돌려 말하며 초대의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아···. 말이 딴 곳으로 샜군요.”


의도적으로 말을 길게 늘이고 있다. 마치 탐색하는 것처럼.


“아이슬레오가 공자님을 가장 처음 만나 뵙지 않았습니까?”


“예. 제가 깨어나고 찾아오신 분들 중에는 아이슬레오 대주교님도 있으셨습니다.”


“아마 그때 아이슬레오가 말씀드렸을지 모르겠는데, 교황청에도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무려 200년 만에 내린 신탁이지요.”


침을 꿀꺽 삼켰다.


성국을 찾아가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 아이슬레오가 나에게 남긴 말 때문이었다.


내가 눈을 뜨게 된 것과 교황이 받은 신탁이 무관하지 않다는 말.


“이제는 말씀드려야겠군요. 제가 아니더라도 성국의 사절이 공자님을 초대하며 직접 설명해줄 테니까요.”


조용히 파올리오스의 말을 경청한다.


“나를 대신하여 대리인을 보낼 것이다. 들어라 사랑하는 아이들아. 빛이 사그라들고 어둠이 드리울 때, 영원한 잠에 든 희망이 깨어나 도탄에 빠진 대륙을 구할지어다. 그 시작은 내 기적이 닿지 않는 그늘부터 이루어질지니, 너희들은 마땅히 나의 대리인을 도와 절망을 걷어내어라.”


···음.


신탁이 원래 그렇겠지만, 그 내용이 매우 두루뭉술하다.


아이리스와 셰실리의 말마따나 내가 예언의 용사고, 신탁에서 언급된 주신의 대리인이라면.


······내용은 얼추 끼워 맞출 순 있겠는데.


“저희는 이 ‘영원한 잠에 든 희망’을 바로 ‘그 현상’에 의해 잠에 든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신탁이 내려지기 전까지, 루이스 공자님을 포함해서 ‘그 현상’으로 잠에 드신 분들은 무슨 방법으로도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마나 간섭 현상으로 깨어나지 못한 다른 아이들은···.


나를 제외하고서도 마도 왕국의 후계자, 성녀 후보 등. 그 미래 유망한 아이들이었다.


“사실 루이스 공자님이 깨어났을 때도 성국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과연 정말로 ‘그 현상’에서 깨어난 공자님이 주신의 대리인이 맞는 건지. 아니면 다른 분이 대리인이신 건지.”


당장 성녀 후보가 마나 간섭 현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마당에 나를 주신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터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현상’에서 차례대로 깨어나신 분들 중 과연 누가 대리인이신지, 성국에서는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를 위해 공자님을 초대하는 겁니다.”


델런의 말대로 마나 간섭 현상에서 깨어난 사람들의 뒷조사를 하는 까닭을 알게 되었다. 성국에서는 누가 과연 주신의 대리인인지를 쫓고자 한 것이다.


”게다가 헥사르라는 불경한 무리가 대륙을 어지럽히기 위해 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조사하면 할수록, 성국은 경악했지요.”


······정말로 성국은 헥사르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에센에서 일을 벌이기 전까지 녀석들은 서대륙의 모래사막이나 생명의 숲처럼 성국의 눈이 닿지 않는 장소에서 일을 꾸몄고, 아니면 유리의 고향에서 벌인 짓처럼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은밀하게 일을 처리했으니, 그럴 수 있다.


“성국에서는 일을 서두르려고 합니다. 헥사르라는 무리의 처단을 위해서, 그리고 대륙을 구할 주신의 대리인분께 힘이 되어주기 위해.”


“그럼 제가 그 후보군 중 한 명이라는 말이로군요.”


“그렇습니다. 공자님이 주신의 대리인일 가능성도 항상 열어두고 있습니다. 아이슬레오는 공자님이 대리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요.”


“···이번에 성국에서 용병단 류드에 의뢰한 일도 그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파올리오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찌 그 사실을···?”


“제 스승님께 들어서 아시겠지만, 저는 이번에 스승님의 부탁을 받아 잠시 바깥에 다녀왔습니다. 부탁을 처리하고 에센에 오기 전, 로도스에서 자신들을 류드 소속의 용병이라 하는 어떤 분들에게 전해 들었지요. 자신들이 해결한 의뢰와 마나 간섭 현상에서 깨어난 제가 무관하지 않다는 말을요. 다만, 성국에서 류드에게 어떤 것을 의뢰했는지는 모릅니다. 그것까진 말해주지 않았기에···.”


짚이는 게 없지 않은 듯 파올리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드 분들이라면 그 의뢰가 공자님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긴 합니다.”


“그 의뢰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주신의 대리인을 위한 성유물의 복구입니다.”


“···류드도 주신의 대리인이 마나 간섭 현상에서 깨어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겁니까?”


파올리오스가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부정했다.


“류드 분들에게 신탁의 내용까지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류드 분들이 워낙에 눈치가 빠른 편이라, 성국이 하는 일과 그들에게 부탁한 의뢰가 어느 정도 연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성국에서 마나 간섭 현상에 든 사람들의 조사를 용병 길드에 의뢰한 탓이리라. 그 과정에서 류드가 자신들이 성국에게 받은 의뢰가 용병 길드에 조사를 부탁한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고.


용병 길드 내에서 류드의 입지는 단연코 절대적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또 용병단 류드는 성국과도 깊은 신뢰관계를 구축한 상대였으니, 성국 측에서도 이해할 테고.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직접 공자님께 성국으로 초대를 드리고 싶군요.”


“···언제입니까?”


“신성절입니다. 주신의 대리인이 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성국에서는 성대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공자님도 만족하실 겁니다.”


마나 간섭 현상에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예사 인물이 아니다.


그들의 근황을 파악할 좋은 기회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주신의 가호가 그대 곁에 항상 함께하기를.”


파올리오스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처음처럼 탐색하려던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사람 좋은 할아버지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그럼, 신성절날 성국에서 뵙겠습니다.”


“예.”


난 별채 바깥에서 자신을 보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멀어지는 파올리오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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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론 그리고 비앙카 21.07.20 81 0 14쪽
69 론 그리고 비앙카 21.07.17 82 0 16쪽
68 벤델 루이스 21.07.15 86 0 13쪽
67 벤델 루이스 21.07.13 110 0 13쪽
66 벤델 루이스 21.07.12 91 0 12쪽
65 벤델 루이스 21.07.09 94 0 11쪽
64 벤델 루이스 21.07.08 99 0 12쪽
63 벤델 루이스 21.07.06 95 1 12쪽
62 1학기 시험 21.07.05 116 1 15쪽
61 1학기 시험 21.07.04 112 1 13쪽
60 1학기 시험 21.07.03 121 1 15쪽
59 1학기 시험 21.07.02 126 1 14쪽
58 1학기 시험 21.07.01 133 1 15쪽
57 1학기 시험 21.06.30 174 1 15쪽
» 그라고스 성국 21.06.29 161 1 12쪽
55 그라고스 성국 21.06.28 161 0 14쪽
54 그라고스 성국 21.06.27 171 1 12쪽
53 그라고스 성국 21.06.26 182 1 13쪽
52 복귀 21.06.25 200 1 14쪽
51 복귀 21.06.24 212 1 13쪽
50 비극 21.06.23 189 1 14쪽
49 비극 21.06.22 199 2 13쪽
48 비극 21.06.21 198 1 13쪽
47 비극 21.06.20 201 1 13쪽
46 격전 21.06.19 217 1 14쪽
45 격전 21.06.18 222 1 14쪽
44 격전 21.06.17 215 1 12쪽
43 격전 21.06.16 2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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