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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님의 서재입니다.

마도 명가의 소드 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수려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41
최근연재일 :
2021.07.24 14:0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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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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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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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비극

DUMMY

“절 아십니까?”


“아뇨, 아뇨.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검사님! 여기···!”


연한 하늘빛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엘프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내가 마족 세 놈의 협공으로부터 구해주었던 엘프였다.


내 능력의 한계로 이 마을의 모든 엘프를 구할 순 없었지만, 최소한 다친 엘프라도 전부 치료해줘야 한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로벤의 이름에 반응을 보인 엘프를 잠시 의식 밖으로 밀어냈다.


일의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다가온 엘프는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동족분들이 많습니다. 부탁하신 대로 한 장소에 모아놓긴 했지만···.”


난 내 뒤를 불안하게 따라오고 있는 엘프들을 한 번 돌아보고, 행동을 서둘렀다.


“모두가 지치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성력은 사용할 때 몸의 기력을 사용한다. 마나가 바닥난 상황이어도 빛의 힘을 행사하는 것엔 문제가 없다. 다만, 지금처럼 몸을 혹사한 상태에서 성력을 사용하면 십중팔구로 정신을 놓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긴 했다.


‘넥타르는 엘프들을 위해 남긴 것이다.’


마족 놈을 한 마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타이밍을 재느라 생긴 어쩔 수 없는 엘프들의 희생이 있었다. 전적으로 내 힘이 미약했기에 생긴 불필요한 희생이다.


···이런 사고방식도 셰실리와 아이리스가 언급했던 ‘용사’와 닮아있는 건가.


흑마법에 오염되지 않은 공터로 향하는 짧은 순간에 어깨 위에서 셰스가 조용히 옹알거렸다.


-···진짜 첫인상과 다르게 왜 착한 거야.


그렇게 나에 대한 첫인상이 별로였나?


사실 나도 원래 이렇게 이타적이진 않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부탁이 있었다. 환상에서 마족이 꾸며낸 엘프들의 참혹한 시체를 보고 말없이 투명한 눈물을 흘린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면, 단 한 명의 죽음이라도 막아냈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분명 헥사르의 계획을 이 정도의 피해만으로 망친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생에 사막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더욱더.


하나 이것이 최선이었나?


그렇게 단언할 수 없었다.


어쩌면 비겁한 자기 합리화다.


의식에 희생당한 이들과, 마족에게 흡수당한 이들에게도 이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했다.


“으으읏···.”


공터에는 여러 엘프가 신음을 내고 있었다.


스친 상처에서 줄기줄기 흘러나오는 마기에 억지로 입술을 앙다물고 고통을 참는 엘프부터, 죽은 듯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엘프까지.


전부가 자신들의 터전을, 그리고 어린 엘프들을 지키기 위해 숲에 나타난 마족과 혈투를 벌인 흔적들이었다.


셰스가 자기 몸보다 커다란, 넥타르를 담은 유리병을 망토 속에서 꺼내주었다.


“저자는···?”


“인간?!”


“나스타카 님을 도와준 인간이에요. 저도 도움을 받았어요.”


예민한 청각에 엘프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전해졌다.


그들은 모두를 치료해준다는 내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정말 순진한 종족이다.


그 믿음에 보답해 줘야겠지.


느릿한 움직임을 보이는 심장의 박동에 맞춰 따스한 성력을 손에 끌어모았다. 성력은 손에 있는 넥타르와 반응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넥타르와 성력이 융합하고, 작은 유리병에서 연무가 새어 나왔다. 찬란한 보랏빛의 그 안개는 공터에 있는 엘프들과 나를 뒤따라온 지친 엘프들을 감쌌다.


마치 정령에게서 느낄 수 있는 포근함. 그 느낌에 엘프들은 신기해하며 허공을 맴도는 안개를 바라본다.


이 장소에 있는 모든 엘프에게 안개가 스며들었다.


상처가 아물고, 마기가 정화된다.


치유 마법과 성력, 그리고 넥타르의 조화였다.


“네메즈! 정신이 들어?”


네메즈?


어디서 들어본 익숙한 이름인데.


뒤에서 아까 내 이름에 반응한 엘프가 쥐죽은 듯 쓰러져 있는 엘프를 향해 뛰쳐나갔다.


흘끗 살펴본 그 엘프의 안색은 회복되어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네메즈라 불린 엘프는 아마 곧 정신을 차리지 싶다.


보랏빛 안개의 효능은 지대했다. 사자(死者)를 살릴 순 없어도, 숨이 붙어있기만 한다면 성력의 힘으로 마기를 몰아내고, 넥타르로 그 어떤 상처든 회복할 수 있다.


마족으로 인해 망가진 숲의 복구만 이루어진다면, 헥사르가 생명의 숲에서 벌인 의식의 수습도 어느 정도 끝낼 수 있으리라.


성지 방향으로 향한 흑마법사 놈을 잡아야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겠지만···.


“아···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할지. 어? 검사님?”


-야. 너 안색이 이상해.


“응?”


-세상에. 무슨 땀을 이렇게 흘려?


공터에 모인 엘프들의 상태가 호전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의 시야에 아지랑이가 번진다.


온몸에 힘이 풀린다.


이 느낌은···. 그래. 딱 나라다 늪지의 독물을 먹고 뻗을 때의 상황과 유사했다.


-야! 그러게 무리하지 말라니까···.


머리를 징징 울리는 셰스의 목소리가 멀어져간다.


‘무리하긴 했나?’


그와 함께 내 의식도 아득해졌다.


*


“카론. 사티아는 올해 졸업이 맞겠지?”


“예. 어머니.”


“어서 일을 마무리하고 오거라. 네 바람대로 사티아에 보내긴 했다만, 후계자 교육에 뒤처지는 모습이 심히 보기 좋지 않구나. 게다가 최근에 에센에서 일어난 불온한 사건까지···. 내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네게 소꿉놀이는 그만하라고 하고 싶구나.”


카론을 노려보는 여자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도대체 언제까지···.’


“내 말 듣고 있느냐?”


“물론입니다.”


“카론. 내 사랑스러운 아들아. 너의 태자 책봉이 확실하지 않다. 다 네가 마나 간섭 현상에 들고나서부터 읍소한 간신들 때문이지만, 그만큼 네 자리를 위협하는 다른 왕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고작 사티아에서 공부하는 것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날 때부터 모든 형제를 눈 아래로 둘 만큼 폭발적인 마법 재능을 타고난 카론은 왕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그 마탑의 탑주마저도 제자로 삼고 싶어 할 정도의 재능이었으니, 후계자 경쟁에서 얼마나 유리했는지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외가가 세가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놓고 튀는 행동은 하지 못했다. 다만, 왕실의 수석 마법사 루슬렉을 필두로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왕국의 고위 마법사들은 카론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폐하. 마도국의 왕위를 이를 후계자를 고려하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에 대한 재능입니다. 나날이 마법공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지금, 마도국이 마법을 선도하기 위해선 온 국민이 인정할 만한 강력한 통치자와 후계자가 필요한 법입니다. 폐하께서는 더할 나위 없으시나, 그 후계자 역시 그럴 거라는 보장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마도국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훌륭한 후계자를 공표하시는 것이···.


-수석 마법사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마땅한 후계자가 있소? 그 혜안을 빌려주시오.


-저는···.


후계자 선정을 위해 여러 가문의 물밑 암투가 이루어지고 있던 때에, 그 문제로 골치 아파하던 현왕에게 루슬렉이 한 조언은 마도 왕국의 판도가 바뀔 정도로 결정적이었다.


그 권력욕이 어마어마한 다른 가문들마저 인정할 정도로 특출 난 카론의 재능.


‘정작 나는 왕위에 미련이 없었지만···.’


뜻하지 않게 걸음마를 뗄 때부터 엄청난 질투의 대상이 된 카론은 온갖 암살 위험과 모함에 시달렸다.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마법을 처음 배운 날, 카론은 영혼이 전율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법이 선사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의 아름다움. 난해한 술식을 이해했을 때의 쾌감. 마나를 조작해 마법을 구현하는 모든 과정까지.


하루 만에 심장에 별을 만들고, 마법을 가르치는 스승의 마나까지 강탈할 정도의 친화력을 보였다.


그 헤일러의 환생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카론의 눈부신 재능 덕에 그의 어미와 외가는 카론에게 기대를 한껏 걸었다.


그대로 후계자 자리는 카론이 낙점하는 듯했으나···.


마나 간섭 현상.


악마가 카론의 재능을 시기한 것인지, 그 괴현상에 의해 무려 5년 동안 카론은 눈을 뜨지 못했다.


그사이 다른 가문의 노골적인 견제에 굳건했던 카론의 입지는 흔들렸고, 상냥했던 어미는 권력욕만이 남은 어리석은 여자로 변해있었다.


상념에 빠진 카론에게 여자가 다시 말을 내뱉었다.


“네가 사티아에 낭비한 시간이 무려 2년이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사티아를 졸업하는 것이 영광일 수는 있겠지만, 네 재능을 생각하면 사티아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굳이 사티아가 아니더라도 왕실에 훌륭한 스승들이 있지 않느냐? 네가 원한다면 루슬렉 경께서도 친히 도와주실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졸업을 해야겠느냐?”


사티아 아카데미를 한껏 무시하는 오만한 여자의 태도.


전적으로 카론의 책임이 컸다.


대마법사 헤일러의 재림이니, 대륙사에도 드문 마나 친화력을 타고났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주변에서 치켜세워주니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게 된 것이다.


당장 사티아에는 카론과 비견할만한 마나 친화력을 가진 마법사가 있었다.


대마법사인 학장과 세렌이 아닌, 그와 동년배인···.


“카론!”


“···졸업은 할 겁니다. 어머니. 그리고 제가 5년 동안 깨어나지 못했고, 2년 동안 사티아에서 시간을 낭비했다 한들, 다른 왕자들은 제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론은 제 어머니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제야 그녀와 카론 사이에 흘렀던 냉랭한 분위기가 풀렸다.


카론의 재능에 모든 것을 기대고 있는 어미다. 그 외가도 카론에게 어떤 압박을 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마나 간섭 현상에서 눈을 떴을 때 고집을 부려 사티아에 갈 수 있었다.


눈엣가시였던 카론이 깨어나자마자 제 발로 사티아에 간다고 했을 때 좋아라하던 다른 가문들의 도움도 컸지만.


···그래도 자신의 어머니다. 자식 된 도리로 그녀가 원하는 역할 정도는 충분히 연기할 수 있다.


‘후계자 경쟁이라···.’


아무리 카론의 재능이 뛰어나도 다른 왕자들 역시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5년의 공백은 카론에게도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올해가 지나고, 사티아에서 졸업을 하게 되면 왕국에서의 숨 막히는 생활이 시작될 터다.


“이 어미가 네게 어울릴 만한 배필을 찾아보았느니라. 네가 졸업하고 왕국에서 활동할 때 큰 도움이 될 만한 가문으로 엄선했다.”


자신의 가문이 변변찮으니 카론에게 큰 힘이 되어줄 다른 가문을 찾는다. 이것마저도 카론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약혼자라.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는 카론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른다.


중앙에서 밀려난 변방의 이름 없는 가문. 그리고 자신의 재능으로 원치 않는 기대를 짊어지게 된 상황까지. 카론과 비슷한 처지인 그 마법사의 이름은.


-론. 비앙카에 대해서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사티아에서 유일하게 사귄 벗의 질문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잘 알지. 나와 다를 바 없는 처지인 그녀에 대해선 귀가 따갑도록 들었으니까.’


비앙카 가넷.


그녀의 이름은 왕실에까지 오르내렸다. 그럴 만도 하다. 자신이 마나 간섭 현상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마도 왕국의 기대주였으니.


어쩐지 카론은 오늘따라 사티아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


아이리스는 숲을 헤집는 다른 마족의 처리를 로벤에게 맡기고 성지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수백 년을 살아온 그녀에게 마치 현실과도 같은 환상을 펼친 고위 마족.


놈이 가진 막대한 마기와 힘은 아이리스로서도 쉬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자칫하면 환상에 속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뻔했다.


그 마족의 환상을 깨뜨리고, 말도 안 되는 신위를 펼친 마법사, 아니 마검사 로벤 루이스.


그의 움직임은 분명, 아이리스의 옛 친우와 닮아있었다.


‘···로한.’


로벤 루이스를 믿고 성지로 향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컸다.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인간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벤의 모습은 하이 엘프에게 전승되는 ‘용사’의 모습과 일치했다.


‘성지는 무사하겠지?’


도망친 인간의 몸에서는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끔찍한 냄새가 났다. 환상에서 벗어났을 때는 마족보다도 오히려 그 인간이 더 위험해 보였다.


광기가 집약된 눈빛으로 로벤을 뚫어지게 쳐다보곤 생명의 숲 중심부를 향해 도망치던 그 남자.


일을 벌여도 단단히 벌일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불길한 예감은.


스아아아아―


아이리스가 향하는 방향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세찬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들은 같은 종류의 정령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다.


방금 불어온 바람은, 누군가의 말을 전달하기 위한 정령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이리스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바로.


-도망치세요 아이리스 님.


불길한 예감이 실현된 듯한 셰실리의 경고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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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드러나는 어둠 21.07.24 91 0 14쪽
70 론 그리고 비앙카 21.07.20 81 0 14쪽
69 론 그리고 비앙카 21.07.17 81 0 16쪽
68 벤델 루이스 21.07.15 86 0 13쪽
67 벤델 루이스 21.07.13 109 0 13쪽
66 벤델 루이스 21.07.12 90 0 12쪽
65 벤델 루이스 21.07.09 93 0 11쪽
64 벤델 루이스 21.07.08 98 0 12쪽
63 벤델 루이스 21.07.06 94 1 12쪽
62 1학기 시험 21.07.05 115 1 15쪽
61 1학기 시험 21.07.04 111 1 13쪽
60 1학기 시험 21.07.03 121 1 15쪽
59 1학기 시험 21.07.02 125 1 14쪽
58 1학기 시험 21.07.01 133 1 15쪽
57 1학기 시험 21.06.30 173 1 15쪽
56 그라고스 성국 21.06.29 160 1 12쪽
55 그라고스 성국 21.06.28 160 0 14쪽
54 그라고스 성국 21.06.27 170 1 12쪽
53 그라고스 성국 21.06.26 181 1 13쪽
52 복귀 21.06.25 200 1 14쪽
51 복귀 21.06.24 211 1 13쪽
50 비극 21.06.23 189 1 14쪽
49 비극 21.06.22 198 2 13쪽
48 비극 21.06.21 198 1 13쪽
» 비극 21.06.20 201 1 13쪽
46 격전 21.06.19 217 1 14쪽
45 격전 21.06.18 221 1 14쪽
44 격전 21.06.17 215 1 12쪽
43 격전 21.06.16 2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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