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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님의 서재입니다.

마도 명가의 소드 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수려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41
최근연재일 :
2021.07.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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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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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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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비극

DUMMY

생명의 숲 중심부.


아이리스가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태고부터 수호자로 숲을 지켜온 그녀에게 도망치라는 말은 덧없는 전언이었다.


더군다나 셰실리가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성지다.


성지에 이변이 발생했다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것이 아이리스에게 주어진 숙명.


목적지에 다다른 그녀가 본 중심부에서는 로벤과 함께 상대한 마족이 보여주었던 환상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중심부 이곳저곳에 생겨난 균열.


성지를 보호하기 위해 펼쳐져있는 헤일러의 환영 마법이 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균열에서는 마나가 넘실거리며 흩어진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파훼한 것은 아니다. 틀림없이 성지 내부에 문제가 발생했으리라.


아이리스의 판단은 민첩하게 이루어졌다.


셰실리의 경고. 성지에 발생한 문제. 도발하듯이 도망친 인간 흑마법사. 그 목적은···.


‘세계수!’


처음부터, 그 인간은 세계수를 노리고 중심부로 도망쳤다.


하지만 무슨 수로?


성지에는 헬라와 셰실리가 있다. 숲의 수호자가 무려 두 명이나 지키고 있다.


성지에 침입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추측도 무의미했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아이리스는 균열로 빈틈을 보이는 헤일러의 환영 마법 안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


흑마법은 어떤 마법과도 궤를 달리한다.


이제는 실전된 고대 마법, 신앙심이 필요한 신성 마법, 사대 원소를 골자로 사용하는 순수 마법, 피를 이용하는 혈마법, 마법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주술 마법까지.


이러한 다양한 마법 중에서도 흑마법은 특별했다.


그 기원부터가 마법사가 아니다.


온갖 생명체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태어난, 죄악을 형상화한 존재. 마족의 부산물이다.


생명이 숨을 쉬는 행위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더러운 마기를 내뿜고, 마기를 이용해 욕망을 채운다.


그러한 방법을 망라한 것이 바로 흑마법이다.


흑마법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파괴적인 성질을 지닌 마기를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생기기 전까지 흑마법은 오로지 마족의 전유물이었다.


그리고 헥사르는 흑마법에 관한 한 대륙에서 제일가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


어둠에서 태어난, 게헨나의 고위 마족들.


하나 마족은 그러한 존재만을 통칭하는 말이 아니다.


천계에서 추방당한 천사, 타락한 엘프나 수인 등의 이종족, 야망을 품은 인간들.


그 고위 마족과 계약하고, 게헨나의 마기에 점점 익숙해지면 생물로서의 격이 바뀐다.


뿌리는 달라도, 그들 역시 마족이라 불리는 존재가 된다.


살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고, 붉은 피를 검게 태우는 마기에 익숙해지는 것은 보통의 생물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즉, 태생부터 마족으로 태어난 존재보다 마족으로 변한 존재가 더욱 위험하다. 그 힘의 크기는 둘째 치더라도 증오심이나 욕망으로 어마어마한 재앙을 대륙에 부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끔찍한 발상을 헥사르에서는 계속해서 탐구하고, 또 실험했다.


어느 정도의 힘을 갖춰야 마기에 오염되어 죽지 않고 온전한 마족이 될 수 있는가.


마족으로 변한 인간도 다른 존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가.


에른 산맥의 패자로 군림하는 위험 종 몬스터 혹은 수백 년을 살아온 영물, 생명의 숲에 있다는 세계수까지도 마기에 타락할 수 있는가.


이 무시무시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헥사르의 무서운 점이었다.


음지에서 미친 계획을 실행해나가는 헥사르.


그 계획을 주도하는 흑마법사들은 전부가 마족과 이미 계약을 맺었거나 맺기 위해 고등한 수준의 흑마법을 익혔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생명의 숲에서 진행되는 일의 마무리만 성공적으로 된다면, 헥사르의 연구 과제를 하나 달성하는 것은 물론이요, 고위 귀족과의 계약으로 헥사르의 권좌까지 노려볼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하우레스의 죽음은 예상 밖이었다만, 여전히 계획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수의 오염.


대륙과 그 수명이 같다는 세계수가 마기에 오염된다면 과연 그 영향력은 어떠할까.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생명의 숲을 지탱하며, 중앙 대륙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계수.


고작 잎사귀 하나에도 범인이 상상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 세계수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생명의 숲 중심부에 도착한 남자는 손아귀에 있는 콩알만 한 크기의 검은색 씨앗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땅 한가운데에 심었다.


주변은 평범한 숲의 모습과 같았다. 세계수도 보이지 않았고, 성지를 지키는 엘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밤의 적막만이 감돌뿐이었다.


남자는 당연히 그 거슬리는 하이 엘프가 지키고 있다는 성지를 침입하려는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할 수도 없을 거고, 그럴 여유도 없다.


그가 한 행동은 그저 성지가 있으리라 추측되는 이 중심부에 씨앗을 심는 행위였다.


남자가 심은 씨앗의 이름은, 타락의 종자.


오래전에 그라고스 성국에서 사라진 성유물이다.


그 쓰임새는···.


쿠구구궁!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진동하고, 씨앗을 심은 곳을 중심으로 하우레스를 소환할 때와 같은 지독한 마기가 번져나간다.


남자는 속이 쓰린 미소를 지었다.


‘이걸 여기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쩔 수 없지. 로벤, 그리고 아이리스···. 내 계획을 망친 너희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원래라면 마족의 손을 빌렸을 테지만···.


남자는 하우레스가 죽으며 조각나기 시작한 자신의 별을 억지로 공전시켰다. 제어하기 힘든 마나는 주위에 퍼져있는 마기와 반응해 허공에 기괴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육체를 버리고, 영혼만을 이동하기 위한 변이 공간 마법이었다. 목적지는 남자의 혼을 담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 동대륙의 어느 거점이다.


이곳은 생명의 숲이다. 마나의 흐름이 거친 장소다. 게다가 자신이 심어둔 타락의 종자로 주변에서 마기가 미쳐 날뛰고 있다.


대규모 공간 마법을 펼치는 것은 자살과 다름없는 상황.


그런데도 남자는 마법을 멈추지 않는다.


“로벤! 아이리스! 그리고 성지에 꽁꽁 처박혀 있는 하이 엘프들까지! 모두 살아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끄읍, 읍, 으읍···.”


남자의 몸이 내부에서부터 흉측하게 부풀어 올랐다.


성난 마기는 남자에게서 발하는 마나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그것도 모자라 부풀어 올라 터지려 하는 남자의 몸까지 집어삼켰다.


콰드드득!


터지기 일보 직전의 신체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분해되고, 더러운 피와 육체는 씨앗이 심어진 땅에 스며든다.


숲을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마저 잡아먹는 새카만 심연의 구멍이 그곳에 뚫린다.


그 구멍은 셰실리와 헬라, 스티어와 아리아가 있는 성지까지 관통했다.


*


“헬라!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셰실리. 스티어와 아리아를 데리고 밖으로 도망쳐.”


헬라는 오랜 성지의 수호자였다.


성지를 보호하는 헤일러의 마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세계수를 지키는 숭고한 일을 맡고 있다는 사명감만으로 긴 시간을 성지에서 살아온, 고고한 하이 엘프였다.


생명의 숲에 이변이 발생했을 때도, 그녀는 성지에서 관망했다.


그 이변의 해결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계수와 성지의 수호였기에.


그렇다고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심한 것은 아니었다.


-로벤! 아이리스! 그리고 성지에 꽁꽁 처박혀 있는 하이 엘프들까지! 모두 살아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불쾌하고,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 그 더러운 발길로 성지의 입구까지 와서 정체불명의 씨앗을 땅속에 심었다.


그 후, 놈이 씨앗을 심은 장소에서 마기가 용솟음쳤고, 남자는 뜻 모를 대사를 내뱉으며 몸이 터져 죽었다.


······경계해야 마땅한 일이었으나, 헬라는 헤일러의 마법을 믿었다. 놈이 꾸민 게 무엇이든, 성지에 감히 영향을 줄 수 없을 거라 판단했다.


오산이었다. 용솟음친 마기는 헤일러의 마법을 뚫고 성지까지 침범했다.


그 인간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헬라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시야가 좁아진다.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분노, 두려움, 좌절감, 무력감, 외로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 울렁거린다.


‘···제어할 수 없어.’


이 무서운 감정에 잡아먹히기 전에 헬라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셰실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와 계약한 정령 모두에게 필사적으로 부탁했다.


-셰실리와 그 친구들을 지켜줘.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셰실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책이었다.


성지에 퍼져있는 정령들은 찾아주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헬라의 말동무가 되어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제 마음을 헤아려준 정령들은 헬라의 부탁을 충실히 이행한다.


헬라와 계약한 정령들이 셰실리와 스티어, 아이리스를 성지 밖으로 밀어냈다.


······성지의 관리자는 헬라였다. 그들은 이 추방을 거부할 수 없을 터다.


“헬라! 헬라! 갑자기 왜 그래요? 설명해 줘요!”


“헬라 님! 당최 무슨···?”


“미안···. 빨리 멀리 도망가···!”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과도 같은 시커먼 구멍이 헬라가 서 있는 장소를 관통한다.


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그녀의 몸을 뒤덮는다.


“꺄으으읏!”


‘세계수를 지켜야 해···!“


헬라는 이유 없는 증오심으로 불타오르는 감정의 격류에도 최대한 의식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필사적으로 구멍을 막기 위해 정령을 부리고, 마법을 펼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기는 계속해서 구멍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론 막을 수 없다···. 고 판단했다.


‘차라리 내가···!’


세계수를 더럽히기 위해 쏟아지는 마기를 헬라가 억지로 끌어당기고, 제 몸으로 흡수했다.


성지가 점차 오염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세계수에는 티끌만큼의 마기도 닿지 않았다.


오로지, 헬라에게 모든 마기가 빨려 들어간다.


헬라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밝은 초록색으로 따스한 숲의 느낌을 주었던 깔끔한 단발은 먹물을 머금은 것처럼 검게 변한다.


눈동자는 탁해지고, 음습한 감정이 담긴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는 불길한 회색빛으로 물든다.


그 과정이 성지에서 쫓겨나는 셰실리의 두 눈에 똑똑히 담겼다.


“헬라!”


셰실리의 비명이 성지에 메아리쳤다. 그 소리는 헬라의 귀에 닿지 못했다.


구멍의 크기가 점차 작아진다.


셰실리는 구멍을 보지 못했다.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헬라의 모습만이 그녀의 뇌리 깊숙한 곳에 각인 되었다.


곧이어 주변의 풍경이 변화한다.


성지의 입구, 숲의 중심부였다.


“헬라···.”


지고한 성지의 수호자.


헬라는 갑작스레 성지에 들이닥친 마기에 중독되었다.


세계수를 보호하기 위해 더러운 마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셰실이와 스티어, 아리아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성지 밖으로 내쫓았다.


‘헬라를 구해야 해.’


헬라의 부탁으로 강제력을 행사한 정령의 힘에 휩쓸려 아리아와 스티어는 성지에서 쫓겨나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헬라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이 자신뿐이어서.


성지의 상황과는 반대로 숲의 중심부는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리스 님에게도 경고해야 해!’


성지에는 현재 마기가 미쳐 날뛰고 있다.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그전까지는 아이리스라 할지라도 성지에 함부로 들어갔다간 위험할 터다.


‘로벤 님···!’


혜성처럼 나타나 자신을 치유해주고 아이리스와 함께 그 입에 담기도 두려운 마족을 상대하러 떠난, 인간 마검사.


그분이라면, 어쩌면 성지를 정상화하고 헬라를 되돌릴 방법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셰실리는 스티어와 아리아를 마법으로 부축하고 정령에게 혹여나 성지에 돌아올 아이리스를 위해 메시지를 부탁했다.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로벤이 남긴 마나의 향을 쫓았다.


마족과의 전투에서 시간을 끌어주었던 정령은 이번에도 묵묵히 그녀의 명령을 수행했다.


쩌저저적!


셰실리가 떠난 중심부에는 균열이 생겼다. 균열에서부터 마나가 새기 시작했다.


이윽고, 균열은 걷잡을 수 없게 번져 나갔다.


*


용사, 로한.


그는 이백 년 전, 위대한 여정으로 대륙의 위기를 종식시키고 천마대전에 참전한 뒤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모습을 감춘 뒤로, 용사의 전설을 노래한 시나 이야기는 전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심지어는 그 이름마저도.


타락의 종자.


이제는 기억하는 자가 아무도 없는 로한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다.


그리고 타락의 종자는 이름처럼 존재를 타락시키고, 오염시킨다.


용사라는 역할을 저버리고, 마왕이 되어버린 로한 그 자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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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론 그리고 비앙카 21.07.20 81 0 14쪽
69 론 그리고 비앙카 21.07.17 82 0 16쪽
68 벤델 루이스 21.07.15 86 0 13쪽
67 벤델 루이스 21.07.13 110 0 13쪽
66 벤델 루이스 21.07.12 91 0 12쪽
65 벤델 루이스 21.07.09 94 0 11쪽
64 벤델 루이스 21.07.08 99 0 12쪽
63 벤델 루이스 21.07.06 95 1 12쪽
62 1학기 시험 21.07.05 116 1 15쪽
61 1학기 시험 21.07.04 112 1 13쪽
60 1학기 시험 21.07.03 121 1 15쪽
59 1학기 시험 21.07.02 126 1 14쪽
58 1학기 시험 21.07.01 134 1 15쪽
57 1학기 시험 21.06.30 174 1 15쪽
56 그라고스 성국 21.06.29 161 1 12쪽
55 그라고스 성국 21.06.28 161 0 14쪽
54 그라고스 성국 21.06.27 171 1 12쪽
53 그라고스 성국 21.06.26 182 1 13쪽
52 복귀 21.06.25 200 1 14쪽
51 복귀 21.06.24 212 1 13쪽
50 비극 21.06.23 190 1 14쪽
49 비극 21.06.22 199 2 13쪽
» 비극 21.06.21 199 1 13쪽
47 비극 21.06.20 201 1 13쪽
46 격전 21.06.19 217 1 14쪽
45 격전 21.06.18 222 1 14쪽
44 격전 21.06.17 215 1 12쪽
43 격전 21.06.16 2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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