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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님의 서재입니다.

마도 명가의 소드 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수려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41
최근연재일 :
2021.07.24 14:0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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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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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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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비극

DUMMY

균열 속으로 들어온 아이리스가 처음 마주한 것은 새카맣게 오염된 성지였다.


‘이게 무슨···.’


“셰실리! 헬라!”


간절한 그녀의 외침은 주변에 퍼져있는 어둠에 먹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정령은···.’


성지를 지키는, 헬라와 계약한 정령들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살갗이 따끔거리는 마기와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것만 같은 기분만 느낄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미세하게 전해져 오는 세계수의 고동 소리.


그 소리를 이정표 삼아 어둠 속을 헤쳐나간다.


지독한 마기에 어떤 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녀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계약자를 지키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정령뿐.


스으윽―


발소리마저 끝이 없는 심연에 파묻힌다.


그 인간이 성지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아이리스는 믿고 싶지 않았다.


‘내 실책이야···.’


마족과의 일전을 치르고, 더 빠르게 놈을 쫓았어야 했다.


실제로는 환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와 바깥의 시차가 아이리스의 인지를 넘은 것이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성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전부였다.


두근― 두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밝은 귀를 가진 아이리스에게 들리는 세계수의 고동만이 그녀가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세계수만 오염이 되지 않았다면, 성지를 정상으로 돌릴 수 있어.’


생명의 숲, 그리고 성지는 세계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수에 담긴 마력을 이용해 성지를 재구성하는 일은 헤일러가 성지를 보호하기 위해 펼친 환영 마법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세계수만 멀쩡하다면 말이다.


‘다른 애들은?’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어둠을 나아간다. 정령의 보호에도 아이리스의 예민한 피부에는 조금씩 상처가 나기 시작한다. 농도 짙은 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아이리스는 그림자의 장막 속에서 오롯이 휘광을 내비치는 세계수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세계수를 쓰다듬었다.


역시, 마기는 단 한 톨도 침범하지 못했다.


기이한 조화였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성지에 마기가 그득하게 차오르고, 땅마저 더럽혀진 마당에 세계수는 멀쩡하다는 것은.


하지만 가슴은 계속 울렁인다. 불안한 마음은 쉬이 진정되질 않았다.


······세계수가 멀쩡한데 어째서?


줄기와 맞닿은 손끝에서 세계수의 의지가 전해져온다.


잔가지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세계수는 생명의 숲에 사는 생명들에게 떠받들어지는 신수(神樹)다.


아이리스, 헬라, 셰실리처럼 이 신수에 선택받은 일부의 생명은 세계수와 때때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잔가지에 맺힌 이파리가 부르르 떨린다. 아이리스의 손이 맞대어진 줄기 속에서 슬프게 맥박치는 떨림을 감지한다.


바람은 불지 않지만, 끝을 모르고 솟아있는 세계수의 가지가 일제히 파도친다.


그리고···.


또옥.


잎사귀에 아롱아롱 달려있던 물방울이 아이리스의 어깨에 떨어졌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세계수가 흘린 눈물이다.


아이리스는 천천히 신수가 안내하는 대로 밑동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녀는 발견할 수 있었다.


세계수에 조심스레 기대어져 있는 기다란 활과.


붉은 피로 쓰인 듯 어두운 땅바닥에 기괴한 문양을 그리고 조용히 마기를 빨아들이고 있는 마법진을.


*


200여 년 전, 주신의 빛이 대륙사에 다시없을 정도로 찬란히 온 대륙을 밝혀주던 때.


범람하던 마물과 인간의 탈을 쓴 괴물들로 혼란스러운 세상을 용사라 불린 인간이 정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계의 천사와 게헨나의 마족들 간에 발발했던 큰 전쟁에서 용사는 주신의 대리인이 아닌, 게헨나의 앞잡이가 되어 그 검을 천사와 대륙의 평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수많은 인간, 이종족을 향해 빼 들었다.


천마대전.


이제는 말소된 그 역사에서 인간은 내로라하는 영웅들을 잃었고.


엘프를 비롯한 이종족은 동료라고 믿었던 용사에게 종족의 수호자들을 잃었으며.


빛의 크기는 더없이 미약해져 주신은 잠에 들고, 천사의 목소리는 대륙에 닿지 않게 되었다.


이건, 용사에 대한 비화다.


인간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오랜 수명을 가진 종족의 경험 속에만 남아 있는.


*


“왜 왔지?”


“어머. 제가 여길 방문하는 데 이유가 따로 필요한가요? 그 누구든 언제든지 오고 싶다면 방문하라고 마왕성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건 당신인데요.”


“···안 그래 보였는데. 너도 이 자리에 욕심이 있었나?”


“제가요? 에이~ 설마요. 격 떨어지게 치고받고 싸우는 건 저기 아래에 있는 벌레들이나 하는 짓이죠.”


“그럼 무슨 일인가.”


시린 은발을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린 마족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다만, 입은 웃고 있으나 왕좌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최근에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던 떨거지들이 다시 시끄럽게 움직이던데. 당신 짓이죠?”


“지금까지 조용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 그리고 난 그들을 통제하지 않아. 그들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나완 상관없는 일이다.”


마족의 붉은 입술이 더욱 진한 호선을 그린다.


“로한.”


마왕의 몸이 움찔했다.


“···이 게헨나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 누구도 그의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죠. 근데···.”


남자라면 누구나 홀릴만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마족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나 마왕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 소문의 출처가 마왕성이라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맞나요?”


“···글쎄.”


“아니면 말구요~ 당신은 항상 볼때 마다 목석같아서 대화하는 재미가 없어요.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역시 생각을 읽을 수 없어.’


마왕에 대한 어떤 예의도 갖추지 않고 마족이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러스트.”


“너 따위가 날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마왕이 마족의 이름을 부르자 마족은 귀기 서린 얼굴로 돌아보았다. 게헨나를 지배하는 마왕에 대한 태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대적이었다.


둘 사이의 공간에 숨 막힐 듯이 짙은 마기가 피어오른다.


“로한을 찾고 있나. 하지만 불가능할 거다.”


“역시. 너였어.”


“아니, 그렇지 않아. 다만, 네가 원하는 일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


“···.”


마족이 입을 앙다물었다.


곧, 표독스러운 표정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마족은 생글 웃는 미소를 다시 머금고 휙 돌아섰다.


“그래요~ 거기서 언제까지 잘 먹고 잘사나 제가 평생 지켜보도록 할게요. 그럼 이만. 마왕님. 잘 있어요~”


끼이익.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지만, 알현실의 문이 닫힌다.


왕좌의 방을 빠져나온 마족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 석류처럼 붉은 눈동자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나와 시선이 마주쳐?


“···!”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과하게 마나를 사용한 상태에서 아직 통제하기 힘든 성력과 한 병 남은 넥타르로 엘프들을 치유한 후, 에센에서 마족의 심장을 흡수했을 때처럼 정신을 잃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젠장! 또 쓰러졌어?’


당시의 경험은 썩 좋은 경험이 아니었던지라 이번엔 그러지 않도록 정신줄을 꽉 붙들고 있었는데, 성력의 사용이 결정타였던 모양이다.


“일어나셨습니까?”


-오! 뭐야!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


셰스의 정겨운 목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옆에서 나스타카로 불리는, 내가 구해준 엘프가 말을 건넨다.


올려다본 하늘엔 달이 저물고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걸 보아하니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는 않은 것 같다.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까?”


“은인께서 쓰러지신 지 두 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두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무의식에 흐릿하게 남은 꿈의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저번에 쓰러졌을 때도, 분명 ‘러스트’, 그녀가 꿈에 나왔었다. 허리께까지 내려오는 은발과 유려하게 휘어진 뿔, 붉은 눈동자와 입술. 그녀는 분명 게헨나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마족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번에 꾼 꿈은 전생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 꿈이다.


나와 마주치고도 유일하게 싸우지 않은 마족, 러스트.


그리고 그녀와 대화한 그 남자.


분명 러스트는 그를 마왕이라고 불렀다.


전생의 내가 닿지 못한 존재···.


꿈의 내용대로라면, 러스트는 나를 찾고 있었다.


그 꿈의 마지막에서 그녀와 눈을 마주친 건···. 우연이었나?


또···. 그게 정말 꿈이었나?


“로벤 님!”


내가 눈을 뜬 장소는 아늑하게 꾸며진 나무 내부였다.


엘프는 수명이 다한 나무의 속을 파내 거기서 생활한다고 했는데, 정말이었다.


아직 아침이 찾아오기 전의 이른 시간임에도 내가 눈을 떴다는 사실이 밖에 전해졌는지, 넥타르와 성력으로 구해준 엘프 한 명이 찾아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공터에서 죽은 듯이 눈을 감고 누워 있던, 그 엘프였다.


이름이 분명 네메즈였던가···.


“네메즈 님?”


지금 생각났다.


유리의 성이 네메즈였는데.


그럼 이 엘프는 혹시···.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저희를 구하느라 힘을 다 쓰시고, 귀중한 약까지 양보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아마 다른 엘프들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유리를 떠올리게 하는 녹빛의 머리칼을 가진 네메즈가 말하자 옆에서 나스타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잠깐 사이에 마나는 어느 정도 차올라 있었다.


아직 온몸이 욱신거리는 근육통은 남아 있지만, 이 정도는 오히려 기분 좋은 정도였다.


손을 한번 쥐었다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더 누워있지 왜 또 일어나?


“맞습니다. 은인께서는 조금 쉬실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여기에 아이리스 님이 방문하셨습니까?”


“···마을에는 로벤 님을 제외하면 아무도 오지 않으셨습니다.”


조금은 원망스러운 어투로 네메즈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하이 엘프가 구해주러 올 거라고 믿으며 마족과 항전했지만, 내가 마을에 침입한 마족 여섯을 벨 때까지 하이 엘프는 구하러 오지 않았으니까.


만약 내가 오지 않았다면, 마족에게 꼼짝없이 이 마을의 모든 엘프가 당했으리라.


또, 넥타르와 성력의 힘이 없었다면 사상자는 지금보다 더 많았을 테고.


셰실리와 아이리스에겐 올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사정을 설명하면 이들은 머리로는 이해해줄 터다. 다만 속으론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마족에 희생당한 엘프가 있었기에.


어쩌면 엘프들은 평화에 익숙해져있어 숲을 지키기 위한 하이 엘프의 헌신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주제 넘는 생각을 했다.


악마의 저주에 걸리고서도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 셰실리의 경우를 생각하면···. 네메즈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었으니까.


“저는 아이리스 님을 도우러 가봐야 합니다. 아직 생명의 숲에 발생한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감추고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진다.


동시에 익숙한 마나가 느껴졌다.


“셰실리 님!”


“저 인간들은?”


엘프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는 바깥의 상황을 파악했다.


셰실리와 스티어, 아리아가 마을에 방문한 모양이었다.


‘···이상한데.’


성지에 남은 그들이다.


아이리스는 헥사르의 흑마법사를 쫓아 숲의 중심부로 향했고.


셰실리와 스티어, 아리아가 이 마을에 방문할 이유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곧장 나를 찾아온 셰실리에게 들을 수 있었다.


“로벤 님···. 큰일 났습니다.”


“아. 안 그래도 지금 아이리스 님을 도우러 성지에 가려던 참인데···.”


“성지가···. 그리고 헬라가···.”


말을 꺼내는 셰실리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난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


성지에서 발생한 일을 셰실리에게 전해들은 순간, 머릿속으로 불길한 상상이 떠오른다.


헬라의 변화는 틀림없이 마족화의 전조다.


순혈 마족이 아닌 존재를 게헨나에서 수도 없이 보고, 베었던 나였기에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성지로 향한 아이리스도 어쩌면?


몸 상태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방금까지 내가 누워있었던, 이름 모를 들꽃으로 꾸며진 침상 위에 놓인 암영검을 꼬나 쥐었다.


“당장 성지로 가야 합니다!”


“로벤 님만 괜찮으시다면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뜬금없는 네메즈의 선언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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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드러나는 어둠 21.07.24 91 0 14쪽
70 론 그리고 비앙카 21.07.20 81 0 14쪽
69 론 그리고 비앙카 21.07.17 81 0 16쪽
68 벤델 루이스 21.07.15 86 0 13쪽
67 벤델 루이스 21.07.13 110 0 13쪽
66 벤델 루이스 21.07.12 90 0 12쪽
65 벤델 루이스 21.07.09 93 0 11쪽
64 벤델 루이스 21.07.08 98 0 12쪽
63 벤델 루이스 21.07.06 94 1 12쪽
62 1학기 시험 21.07.05 115 1 15쪽
61 1학기 시험 21.07.04 111 1 13쪽
60 1학기 시험 21.07.03 121 1 15쪽
59 1학기 시험 21.07.02 125 1 14쪽
58 1학기 시험 21.07.01 133 1 15쪽
57 1학기 시험 21.06.30 173 1 15쪽
56 그라고스 성국 21.06.29 160 1 12쪽
55 그라고스 성국 21.06.28 160 0 14쪽
54 그라고스 성국 21.06.27 170 1 12쪽
53 그라고스 성국 21.06.26 181 1 13쪽
52 복귀 21.06.25 200 1 14쪽
51 복귀 21.06.24 211 1 13쪽
50 비극 21.06.23 189 1 14쪽
» 비극 21.06.22 199 2 13쪽
48 비극 21.06.21 198 1 13쪽
47 비극 21.06.20 201 1 13쪽
46 격전 21.06.19 217 1 14쪽
45 격전 21.06.18 221 1 14쪽
44 격전 21.06.17 215 1 12쪽
43 격전 21.06.16 2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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