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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ROH 님의 서재입니다.

찰즈강 살인사건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DANROH
작품등록일 :
2018.04.09 12:23
최근연재일 :
2018.06.06 14:45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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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71
추천수 :
425
글자수 :
176,294

작성
18.04.09 12:53
조회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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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8쪽

제1화 - 프롤로그

DUMMY

황금돔은 아침 햇살을 받아 붉은 구슬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보스톤을, 아니 미국의 민주주의를 상징한다는 매사추세츠 주청사의 황금돔.


거기서 뻗쳐 나가는 빛이 횃불이 되어 세계의 암흑을 거둔다고. 그래서 보스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city upon the hill이며, 황금돔에서 뻗어져 나가는 길이 Beacon Street이라고.


엄마가 틈만 나면 말해주던 것을 떠올리며 에리카는 작은 기관차처럼 숨을 내뿜으며 찰즈강가를 달린다.


찰즈강의 상류 쪽에서 조깅을 해 내려와 반환점으로 삼는 롱펠로우 브리지에서 잠시 스트레칭을 하며 강 건너 보스톤의 백베이를 보는 것이 에리카의 일상에서 보석같은 시간이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갈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착잡하다. 돌아가서 짐을 정리해야지. 찰즈강의 상류 쪽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에리카의 코에 익숙한 냄새가 들어온다. 짠 냄새와 비린 냄새와 구수한 냄새가 기묘한 배합. 페니스다! 그가 돌아온 것이다.


냄새에 이어 깊은 바리톤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헤이, 오랜만이야.”

“그렇네. 잘 지내요?”

“그저 그래. 그쪽은?”

“나도 그저 그래. 곧 여기를 떠나지만.”

“그래? 어디로?”

“샌프란시스코”

“거기도 보통 동네가 아니지.”

“맞아요. 잘 지내슈.”

“그쪽도!”


날로 기승을 부리는 IT 국제범죄. 이에 대처하는 프로젝트를 FBI가 주도하고, 하버드 및 MIT 연구자들이 참가하게 되어 FBI에서는 에리카가 파견된 것이었다. 관리는 보스톤 경찰이 맡게 되었다.


에리카가 숙소를 정한 곳은 보스톤에서 찰즈강 건너에 있는 캠브리지시. 숙소를 정한 후 처음으로 맞는 일요일 아침에 찰즈강을 따라 조깅에 나섰었다. 대학에서 육상선수였던 그녀에게 조깅은 취미이자 친구이자 인생의 조언가였다.


캠브리지의 남동쪽을 에워싸고 흘러 내려 대서양으로 들어가는 찰즈강. 강의 북쪽에는 하버드가 남쪽에는 MIT가 있고, 그 중간쯤의 웨스턴 애비뉴에 자리잡은 에리카의 아파트. 집에서 강가로 나가면 작은 공원에 홈리스의 천막들이 있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인적이 아직 드문 공원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에리카의 눈에 들어온 거대한 검은 물체. 코트인지 천막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물건으로 몸을 감싼 거구의 사내가 강기슭에 서 있었다.


에리카가 조깅 레인으로 들어서자 사내가 몸을 돌린다. 에리카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머리카락과 털로 덮인 사내의 얼굴에서 빛나던 이빨. 홈리스에게 어떻게 저런 빛나는 이빨이 가능한 지 순간적으로 의문을 떠올리고 있던 에리카의 시선을 사로잡은 두번째의 것. 사내의 하체에서 허옇게 빛을 발하는 페니스였다.


사내는 다가오는 젊은 여자에게 성기를 내보이며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일순 멍하니 바라보는 에리카에게 사내는 성기를 흔들기 시작했다.


FBI 수사원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조깅에 집중하기로 하고 에리카는 시선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시각적 충격에서 벗어난 에리카의 코를 엄습하던 후각의 충격.


바로 그 냄새였다. 삼개월 동안 보이지 않던 그 냄새의 소유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거의 삼개월 만에 우연히 만난 페니스와 짧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조깅을 계속하는 에리카의 머릿 속에 갑자기 영상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수없이 보았던 아버지의 성기. 눈 앞에서 확대되던 그 성기의 누런 피부. 그 기억은 다시 엄마의 허옇디 허연 피부로 이어진다.


열여섯이 지나면 아줌마가 되기 시작한다는 백인여자가 중년에 이르러 형성한 거대한 살집의 허연 피부에서 에리카는 허영과 타인에 대한 무신경을 느꼈다. 작고 누런 동양 남자와 허옇게 퍼진 백인 여자. 그리고 그 두 사람이 낳은 자신이라는 존재.


부모에 대한 갈등과 반항을 누르고 성장하던 에리카를 지탱시켜 준 것은 아시아계 친구들이었다. 버클리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공부하며, 언어에 재능이 있는 에리카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된 것은 부모의 이상한 결혼이 낳은 우연한 결과물이었다.


3월 초의 보스톤은 아직 봄기운이 없다. 하버드 브리지를 찍고 다시 강의 상류로 거슬로 달려가는 그녀의 입에서 습관적인 노래가 흘러나온다.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내 묘비에는 혼동이라고 새겨야 할 거야. 고교시절에 좋아하던 영국 록그룹 킹 크림슨의 노래 한 구절. 이 노래가 왜 그녀의 머리에 각인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마음이 복잡할 때 그 노래가 뜬금없이 입에서 나온다.


해가 부옇게 떠오르고, 강 건너 보스톤대학의 요트팀이 훈련을 시작한다. 다시 일상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 때 주머니에서 에리카의 전화가 진동한다. 액정을 본 에리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Double E. Call me. Urgent.

보스턴 경찰서 형사 마이크 커널리의 메시지. 이 놈이 떠나는 내게 무슨 메시지를..


커널리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에리카는 집 근처의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삼각 김밥이라도 사서 간단히 아침을 때울 요량이다. 세븐 일레븐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인 아주머니가 카운터를 보고 있다.


대만계의 이 여자는 에리카에게 관심이 많다. 아직 결혼을 안한 아들이 보스톤에서 치과의사를 하는데 한번 만나보라는 것. 에리카를 근처의 대학원생 정도로 아는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허술하게 아침을 때워서 어떻게?”

“괜찮아요. 점심에 잘 먹어요.. 그런데 강가를 뛰며 이상한 홈리스를 만났는데.. 겨우내 죽지 않은 걸 보니 웬지 마음이 놓여요.”


“혹시 닥터 일레븐 만난 거 아냐?”

“닥터 일레븐요? 무슨 세븐 일레븐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아냐. 그 사람이 하버드 역사학과 박사과정에 있었는데.. 대학원에 들어가 11년 공부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가 안되구.. 결국 지도교수 따귀를 때리고 그만 두었다는 거야. 이 동네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야.”


“그럼 여기도 가끔 오는 모양이지요?”

“가끔 와. 그 사람 거지나 홈리스 아냐. 부친이 위스콘신주에서 엄청난 농장을 가진 부자라고 그러더라고. 하지만 비행기 타고 농약 뿌리느니 여기서 인간을 연구하겠다나. 참 인생도 가지가지야.”


“아주머니한테 그래요?”

“그래! 가끔 와서 그렇게 말을 붙여요.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냄새만 안나면 좀 말을 섞어 보겠구먼..”

“뭐야 뭐야. 아주머니 그 사람 좋아하는 것 맞죠?”

“글세.. 잠자리에서 우리 남편보다 나을 지도 모르지.”

“뭐라구요?”


지난 삼개월간 편의점 주인 여자는 에리카 주변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존재였다. 이 쌀쌀하고 싸가지 없는 보스톤이라는 고장. 그 고장에서 박사가 되어 보겠다고 11년을 헤매며 청춘을 보낸 남자의 이야기가 어쩐지 이 보스톤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8년 간 FBI에서 일하며 에리카가 얻은 인간에 대한 결론은 태양 아래에 정상적인 인간은 한 명도 없다는 것. 모두 다 조금씩 이상하다. 하기는 ‘정상’이라는 말 그 자체가 어정쩡한 개념이지만.


뜬금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편의점을 나서는 에리카의 전화가 울린다.


“Hey you. 당장 와. 비상이야!”

평소에 유들거리는 커널리의 어조에 긴박함이 배어있다. 그리고 전화 저편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charles river map.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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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 INBEST
    작성일
    18.04.11 03:24
    No. 1

    노다니엘 님,

    바뿌신중에도, 웹소설까지 영역을 넓히는 능력이 대단 !!!!
    애독자로 등록하고 즐거운 여정을 함께 하겠슴다 ^^!!

    Epitaph / King Crimson - My old favorite song
    grotesque 한 자켓이 생각나고 ...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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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즈강 살인사건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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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마지막 화 – 남기고 간 말들 +5 18.06.06 500 8 3쪽
46 제46화 – 롱펠로우 브리지 18.06.06 434 6 9쪽
45 제45화 – 마지막 사과 18.06.06 409 7 6쪽
44 제44화 – 김소영 살인 청부 18.06.04 437 5 9쪽
43 제43화 – 보스턴을 향하는 추격자들 +1 18.05.27 461 7 10쪽
42 제42화 - 모택동 주석께 드리는 서한 +2 18.05.25 495 6 11쪽
41 제41화 – 소영 제거 지시 18.05.22 470 7 10쪽
40 제40화 – 미국 하원 의원회관 18.05.18 483 7 12쪽
39 제39화 – 시카고 플레이보이 빌딩 18.05.18 521 8 12쪽
38 제38화 – 마지막 여행 +1 18.05.17 489 8 12쪽
37 제37화 – 두 명의 장군 18.05.17 494 7 11쪽
36 제36화 – 사사키의 변신 18.05.16 480 7 12쪽
35 제35화 – FBI 확대 수사회의 18.05.16 482 7 12쪽
34 제34화 – 공범들 18.05.15 479 7 10쪽
33 제33화 – 버려진 시체 18.05.15 489 7 11쪽
32 제32화 – 의붓아버지 18.05.14 500 7 8쪽
31 제31화 – 정략결혼 18.05.13 479 7 7쪽
30 제30화 - 불법체류자들 18.05.12 488 8 7쪽
29 제29화 -반도금융그룹 회장 +1 18.05.10 532 7 8쪽
28 제28화 – 곤도 후미에 죽음 +1 18.05.09 515 8 8쪽
27 제27화 – 고베항 부두 18.05.08 515 7 9쪽
26 제26화 - 한국계 다나카 히로시 18.05.07 518 9 7쪽
25 제25화 - 잔인한 달의 카 섹스 18.05.05 518 9 8쪽
24 제24화 - 곱슬머리 사사키 18.05.05 517 10 9쪽
23 제23화 - CIA 스페셜 에이전트 18.05.04 543 10 7쪽
22 제22화 - Mr. S. 18.05.03 537 9 7쪽
21 제21화 - 비원의 추억 18.05.03 531 10 7쪽
20 제20화 - 소돔과 고모라에서 18.05.02 531 13 8쪽
19 제19화 - 어틀랜틱 시티 18.05.02 524 15 9쪽
18 제18화 - 스시 레스토랑 18.04.30 544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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