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 곤도 후미에 죽음
리차드의 연락을 받고 긴급히 출동한 고베경찰서의 스즈키형사와 그의 팀이 곤도 주택의 안팎을 훤하게 밝혀 놓고 조사를 하고 있다.
에리카와 리차드는 뒤 뜰에 서있다. 스즈키형사가 집을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외진 구석으로 가더니 쭈그리고 앉아 구토를 한다. 이윽고 두 요원에게 다가온 그가 입을 연다.
“교살이야.. 며칠 된 것 같아.”
리차드가 화분 스탠드 위에서 본 여자는 천정을 보는 자세로 욕조에 누워 있었다.
“욕조에 물이 차 있었지만 서서히 빠져 나갔는지.. 물은 없었고. 여자의 목에는 피멍이 있어. 누군가가 손으로 목을 조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다른 상처나 흔적은..?”
에리카가 묻는다.
“과학수사 본부에 조사를 부탁하겠지만.. 여자의 질 속에 남자의 분비물이 있는 것으로.. 우리 팀원은 보고 있어.”
“그렇다면 치정 살인?”
“그럴 수도 있고.. 어떤 다른 동기도 있을 수 있겠지요.”
“아까 낮에 FedEx에 가서 다나카 노리오라는 이름을 입수했는데.. 그를 아는가?”
리차드의 질문을 받은 스즈키형사는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하늘을 쳐다 본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하자구.”
“하나만요..”
에리카가 스즈키를 불러 세운다.
“목욕실에 전등과 환풍기가 켜져 있었다는 게..”
“우리도 그 점에 주목하고 있어요. 범인이 일부러 켜 놓았거나, 아니면 실수로 켜 놓고 갔거나.. 추가의 가능성으로는 또 다른 인물이 들어 와서 무언가를 하고 켜 놓고 갔을 수도..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고 볼 생각이에요.”
* * *
에리카가 고베 시내의 호텔에 체크인 하자 보스턴 오피스에서 영상통화가 요청이 온다. 보스턴 시간 오전 9시. 고베 시간 밤 10시.
영상통화가 시작되고 코토우스키가 말한다.
“중요한 발견이 있어. 3월 7일 오전 02시 24분 검은 밴 두 대가 리버 스트리트의 다리를 건너 캠브리지로 들어 오는 것이 CCTV 녹화에 잡혀 있어. 두 대의 차량 모두 뉴저지주 번호판이 붙어 있구.”
“만약 그 차가 커민의 시체를 유기하는 것과 관련이 된다면.. 커민이 살해된 것은 그 전 날, 즉 3월 6일로 봐야 되겠군요.”
“그렇지.. 심야에 뉴저지주에서 보스턴으로 차를 달려 온다면 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5시간 정도면 충분해.
“그렇다면 두 가지 추론이 가능..”
“그렇지! 우선 커민을 살해한 자가, 스스로 못하고 시체를 처리해 달라고 어떤 경로로 뉴저지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 둘째, 그 사람은 연락을 받고 즉시 차를 확보할 수 있었다.”
“뉴저지 차량을 누가 렌트했는지는 오늘 알 수 있겠군요.”
“음.. 어렵지 않을 거야.”
“제가 오늘 고베에 내려 왔는데.. 여기서도 큰 발견이 있어요. 우선, 어틀랜틱 시티에서 보낸 FedEx 우편물의 주요 수신자인 곤도 후미에라는 여자가 사체로 발견되었어요.”
“그래..? 야, 이거.. 뭔가 뿌리가 깊은 넝쿨 같은 느낌이 드네..”
“그래요. 또 하나는 다나카 히로시가 김광수라는 이름의 한국계 영주권자라는 것. 게다가 그 아들인 김성구의 일본 이름이 다나카 노리오예요. 그런데 다나카 노리오 앞으로 FedEx가 보내진 경우도 있어요.”
“보스턴을 떠나기 전에.. 어틀랜틱 시티에 있는 일본인들이 어쩌면 한국인이거나 한국인이 섞여 있다는 말을 내게 했지?”
“네..”
“뉴저지주에 있는 한국계 사람들과 고베의 Tanaka Holdings 관련자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제라고 바야 되겠는데.”
“맞아요.”
* * *
코토우스키와의 영상통화를 마치고 샤워를 한 에리카의 핸드폰이 울린다. 리차드가 호텔 바에 있는데 스즈키 형사와 한잔하고 있다고.
두 사람은 아예 위스키를 병째 놓고 마시고 있다. 병에는 響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아! 이게 요새 그렇게 인기라는 히비끼라는 위스키에요?”
“이거 찾는 일본인들이 회사에 항의를 할 정도에요. 200달러가 넘는 고급품인데 중국인들이 와서 싹슬이를 해 간다고.”
온더락으로 한 모금을 마신 에리카가 대화를 재촉한다.
“곤도 후미에는 누가 죽였을까요?”
스트레이트로 한잔을 넘긴 스즈키가 대답을 한다.
“사실 우리가 그 여자를 오래 전부터 추적해 왔어요. 공안 쪽 형사들에 의하면 곤도 후미에는 조총련과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어요.”
“그 여자도 일본에서 태어나거나 사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 인가요?”
“아녜요. 순수한 일본 혈통이에요.”
“그런데 왜 조총련과 밀접한 관계?”
“그 연결고리는 사사키라는 인물이에요.”
이 말을 듣는 에리카는 소름이 돋는 느낌이다.
“마이크 사사키?”
“그건 미국에서 쓰는 이름이고.. 일본명 사사키 료타로.”
“흠.. 두 사람은 어떤 관계지요?”
곤도는 사사키의 조카에요. 사사키 모친의 동생의 딸.”
“그렇군요. 그런 여자를 간첩 등을 다루는 공안이 왜 관심을 가졌나요.”
“만경봉호 알지요?”
“네.. 북한이 일본에 취항시키는 대형 선박..”
“그 배가 일본에 마지막으로 취항한 것이 2004년이에요. 그해 3월 오사카에 있는 2년제 초급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졸업기념 여행으로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에 갔다 왔어요.”
“혼자요?”
“아니 외삼촌인 사사키 료타로와 함께..”
“그때 사사키는 이미 북한과의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그 사업은 다나카 무역회사의 한 부분..”
“사사키도 일본인이지요?”
“네.. 그런 그가 어떻게 북한 관련 비즈니스를..”
“일본인 중에 북한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래도 어떤 계기가 있지 않을까..?”
“바로 그거에요. 그 계기가 다나카 노리오. 한국명 김성구.”
“뭐라구요? 그럼 사사키 료타로와 다나카 노리오는 도대체 어떤 관계에요?”
“오사카에 있는 최고 명문 고교의 선후배에요. 그리고 두 사람의 부친들은 와세다 대학 동기에요. 따라서 두 개의 연결고리가 있는 거지요.”
“그렇군요.”
“문제는 사사키는 다나카가 죽으라면 그 앞에서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충성심이 깊다는 것..”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슨 중국의 삼국시대도 아니고..”
“사사키는 오사카에 있는 명문대학을 나오고.. 광고회사 등에도 다녔는데.. 20대에 폭주족이었어요. 아버지가 돈이 많아 페라리 자동차를 사 주었는 데.. 밤이면 고속도로에서 200키로 이상을 달리곤 해서 경찰에 여러 번 입건되곤 했어요.”
“일본에 외제차 폭주족이 있다는 말은 미국에서 들은 것 같아요.”
“그렇다가.. 그 친구가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도로공사를 하던 인부를 치어 죽였어요.”
“감옥에 갔나요?”
“결국 안 갔어요.”
“어떻게..?”
“사사키를 구한 것은 다나카 노리오에요. 당시 경찰에서도 무지무지하게 분노했지만.. 상상도 못할 돈을 들여 피해자를 회유하고 최고 변호사를 동원하고.. 게다가 야쿠자를 동원해서 불리한 진술을 막고..”
“다나카 노리오라는 자가 대단한 인물이군요. 그저 다나카 창고회사의 간부인 줄만 알았는데..”
“오사카와 고베를 포함하는 관서지방에서 다나카가 동원하지 못할 정치가, 변호사, 야쿠자는 없다고 봐요.”
“도대체 다나카 노리오는 어디에 있어요?”
“서울에..”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