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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ROH 님의 서재입니다.

찰즈강 살인사건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DANROH
작품등록일 :
2018.04.09 12:23
최근연재일 :
2018.06.06 14:45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26,135
추천수 :
425
글자수 :
176,294

작성
18.05.14 15:06
조회
499
추천
7
글자
8쪽

제32화 – 의붓아버지

DUMMY

“서울로 들어와라. 급히..”

사내의 말에 소영은 전화기를 벽에 던져 깨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엄마의 재혼 상대. 자신의 의붓아버지. 호적 상의 아버지.


한참 침묵을 지키다 짧게 대답한다.

“알겠어요.”


FBI 여자요원이 발레 스쿨에 나타났을 때 이미 사단은 난 것이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하늘에 나는 것은 언젠가는 떨어 지듯이, 세상에 벌어진 일은 언젠가는 끝이 온다.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간다. 눈 아래 펼쳐지는 찰즈강. 그 물결을 보면서 소영은 자신이 의붓아버지 김성구를 혐오하고 거부하게 된 첫 장면을 떠 올린다.


* * *


엄마가 재혼을 하게 되어 초등학교를 마치고 오사카로 옮겨가 국제학교를 들어가게 된 소영. 새아버지의 집은 넒은 정원에 나무가 그득한 저택이었다. 그 집의 명물은 목욕탕이라고 새아버지는 찾아 오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곤 했다.


욕조 뿐 아니라 바닥까지 편백나무로 만들어진 목욕탕은 열 사람도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것이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 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욕조에서 정원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토요일 오후였다. 소영과 엄마는 모처럼 같이 목욕을 하기로 하고 욕조 안에 들어 앉아 있었다. 새아버지는 아침 일찍 골프장에 간 터. 뜨거운 탕에 모녀가 늘어져 있는데 목욕탕의 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나체였다.


그 때의 시각적인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근육이 잘 발달된 몸에 거대한 남근. 그리고 등에 새겨진 용의 문신.


모녀가 순간적으로 말을 잊고 입을 벌리고 있는데 그가 넌지시 말을 건넨다.

“초경을 하기 전의 소녀는 애고, 애가 아빠와 목욕을 같이 하는 건 일본의 풍습야!”

워낙에 성격이 모질지 못하고, 아무데서나 교양을 찾는 엄마는 이렇다 말 한마디 못하고 사태를 받아 들이고 말았다.


탕에 들어 앉은 그는 소영의 몸을 눈으로 더듬었다. 그리고 탕 밖에서는 틈만나면 그의 손이 소영의 넓적다리에 얹혀져 있었다. 새로이 형성된 가족의 식사 때는 반드시 소영이 그의 옆에 앉게 되었고, 기회만 되면 그의 손은 소영의 다리 위에 얹혀져 있었다.


식탁을 뒤집어 엎고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은 충동을 겨우 삭히고 나면 소영을 업습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사태를 알면서도 감히 말을 못하고 모르는 척하는 엄마의 엉터리 교양 뒤에 숨겨진 비겁에 대한 경멸과 분노.


낯설고 말이 안통하는 일본에서 소영에게 나타난 구세주는 국제학교의 고교 2년생 테리 오카모토였다. 아버지가 미국 해군장교이고 엄마가 일본인인 테리는 학교 내의 발레부의 선배였다. 모범생도 아니고 불량배도 아닌 테리는 소영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때마다 오토바이로 기분을 풀어 주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나가 바닷가에서 잠시 쉬는 시간은 소영에게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테리와 나눈 첫 키스가 어쩌면 이 의미없고 시시껍절한 인생을 연명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는 모른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나타나겠지.


“얘가 네 애인이냐?”

어느날 오후 학교에서 귀가한 소영에게 새아버지가 말을 붙이다.

그 말과 함께 사진을 한장 내민다.


테리였다. 테리는 의자에 앉힌 채 밧줄로 묶여 있었다. 야구방망이를 든 주위의 사나이들. 그가 부리는 부하들이었다. 겁에 질린 테리의 얼굴에 창고의 틈으로 스며든 광선이 드려져 있다.


“얘를 안 만난다고 지금 약속해. 그럼 풀어 줄게.”

“약속할게요.”


* * *


그날로부터 며칠 되지 않아 소영은 여권을 챙겨 서울로 갔다.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은 도주였다.


주일대사를 끝으로 은퇴하여 집에 있던 외할아버지 권인호는 소영의 말을 끝까지 듣고 눈물을 흘릴 뿐이다.

“소영아, 미안하다. 이 할애비 때문에 네가 큰 수모를 당했구나. 이제는 나와 같이 지내자꾸나.”


그때부터 3년 간은 소영이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이었다. 한국전쟁에서 지휘관으로 싸웠던 그는 본인이 체험한 한국전쟁을 책으로 집필하고 있었다. 이 작업의 충실한 조수는 소영이었다. 다섯 권의 시리즈 [내가 싸운 한국전쟁]의 모든 원고를 읽으며 집필을 도운 소영.


이 일을 통하여 소영이 갖게 된 것은 남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리고 할아버지가 싸운 한국전쟁의 진실이었다.


할아버지 곁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소영이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선택한 대학이 보스턴대학이었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초빙연구원으로 가 있던 덕에 입학이 쉬었다. 그 즈음에 소영은 인간과 사회에 대하여 멀미가 날 정도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식물과 동물을 평생 공부하고 싶었다.


* * *


엄마와 새아버지가 서울로 생활을 옮기게 된 건 소영이가 보스턴으로 떠난 다음이었다. 새남편과 소영이 마주치지 않게 하는 것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 모른다. 외할아버지가 이미 병원에 장기 요양 중인 상태에서 소영이가 서울에 갈 이유는 없었다.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5년 사이에 소영이가 엄마를 본 것은 세 번, 그리고 새아버지를 본 것은 딱 한 번이었다. 그 한 번은 한국의 반도금융그룹이 보스턴대학에 500만 달러를 기부하는 기념식이었다.


장인이 연구원으로 있었으며 딸이 재학하는 대학에 반도금융그룹이 아무런 조건없이 500만 달러를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소영이는 딱히 기뻐할 이유도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기부금 전달식에 참여하기 위해 온 김성구와 소영은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강가를 잠시 산보했다. 그와 얼굴을 맞대는 것은 거의 8년 만이었다. 50대로 접어드는 그는 이제는 꽤 젠틀하고 품위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소영아. 미안하다. 내가 어린 네게 큰 상처를 주었구나. 용서해다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소영의 귀에는 들어왔지만 가슴으로 받아 들여지지는 않았다. 얼떨떨하고 기이한.. 마치 숲속을 거닐다 우연히 들은 이름 모를 새의 날개소리 같았다.


“건강히 지내세요. 그리고 엄마를 잘 부탁해요.”

한참을 걷다가 소영이 간신히 뱉은 말이었다.


* * *


새아버지 김성구가 다시 보스턴에 나타난 것은 반년 후였다. 엄마의 부탁도 있고 하여 그와의 만남을 거부하기 어려웠다. 소영도 이제 20대 후반의 성인. 게다가 새아버지의 도움으로 편하게 유학생활을 하며, 시민권을 따서 미국에 정착할 수 있게 된 터이다.


“소영아, 이 아버지 좀 한번 도와줘.”

갑자기 아버지를 꺼내는 그. 게다가 자신이 아닌 존재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그의 모습이 기이하다.

“제가 어떻게요?”


“내가 오랫동안 키워 온 꿈이 중국금융시장에 진출하는 거야. 일본이나 한국은 규제가 심하고 사업을 크게 할 수 없어.”

“그런데요."


"내가 협력하고자 하는 은행이 중국의 대화은행이라는 곳인데.. 이 은행에 중요한 어드바이스를 하는 사람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로젠버그라는 교수야. 게다가 그 교수의 지도를 받기 위해 커민이라는 젊은이가 대화은행에서 유학생으로 와 있거든..”


“그래서요..”

“이 두 사람과 내가 좀 친해져야 겠는데.. 나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서울에서 할 일도 많고 하니.. 네가 좀 친분을 가지면 어떨까 하고..”

“글세요.. 뭐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게다가 말이야.. 지난번 기부금 전달식에서 알게 되었는데 로젠버그교수의 부인이 너의 과 교수더라고.. 너를 잘 안다던데..?”

“제니 로젠버그?”

“맞아. 그 여자교수.”


제니는 소영이 믿고 따르는 교수의 한 사람이다. 미국 시골 출신으로 식물에 의식이 있다고 믿는 여자.

“알겠어요.”

“그럼 네 연락처를 그들에게 알려 줄게..”


* * *


일 년전의 그 일.. 그리고 그때부터 일어난 소용돌이..

소파로 돌아와 구겨진 인형같이 주저앉은 소영.

한 참 후에 그녀는 어떤 결론에 이른다.

여기를 떠나자. 그리고 그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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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마지막 화 – 남기고 간 말들 +5 18.06.06 500 8 3쪽
46 제46화 – 롱펠로우 브리지 18.06.06 433 6 9쪽
45 제45화 – 마지막 사과 18.06.06 408 7 6쪽
44 제44화 – 김소영 살인 청부 18.06.04 436 5 9쪽
43 제43화 – 보스턴을 향하는 추격자들 +1 18.05.27 459 7 10쪽
42 제42화 - 모택동 주석께 드리는 서한 +2 18.05.25 494 6 11쪽
41 제41화 – 소영 제거 지시 18.05.22 468 7 10쪽
40 제40화 – 미국 하원 의원회관 18.05.18 482 7 12쪽
39 제39화 – 시카고 플레이보이 빌딩 18.05.18 520 8 12쪽
38 제38화 – 마지막 여행 +1 18.05.17 488 8 12쪽
37 제37화 – 두 명의 장군 18.05.17 493 7 11쪽
36 제36화 – 사사키의 변신 18.05.16 478 7 12쪽
35 제35화 – FBI 확대 수사회의 18.05.16 482 7 12쪽
34 제34화 – 공범들 18.05.15 478 7 10쪽
33 제33화 – 버려진 시체 18.05.15 488 7 11쪽
» 제32화 – 의붓아버지 18.05.14 500 7 8쪽
31 제31화 – 정략결혼 18.05.13 478 7 7쪽
30 제30화 - 불법체류자들 18.05.12 487 8 7쪽
29 제29화 -반도금융그룹 회장 +1 18.05.10 531 7 8쪽
28 제28화 – 곤도 후미에 죽음 +1 18.05.09 514 8 8쪽
27 제27화 – 고베항 부두 18.05.08 514 7 9쪽
26 제26화 - 한국계 다나카 히로시 18.05.07 517 9 7쪽
25 제25화 - 잔인한 달의 카 섹스 18.05.05 517 9 8쪽
24 제24화 - 곱슬머리 사사키 18.05.05 516 10 9쪽
23 제23화 - CIA 스페셜 에이전트 18.05.04 542 10 7쪽
22 제22화 - Mr. S. 18.05.03 535 9 7쪽
21 제21화 - 비원의 추억 18.05.03 531 10 7쪽
20 제20화 - 소돔과 고모라에서 18.05.02 530 13 8쪽
19 제19화 - 어틀랜틱 시티 18.05.02 523 15 9쪽
18 제18화 - 스시 레스토랑 18.04.30 542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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