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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ROH 님의 서재입니다.

찰즈강 살인사건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DANROH
작품등록일 :
2018.04.09 12:23
최근연재일 :
2018.06.06 14:45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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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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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글자수 :
176,294

작성
18.05.25 10:28
조회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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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42화 - 모택동 주석께 드리는 서한

DUMMY

미 하원 레이번 빌딩 커피숖에서 만난 샌더슨 교수의 얼굴이 어둡다. 소영과 테리가 다소 긴장하는 가운데 교수가 상의 주머니에서 편지 봉투를 꺼낸다.


“한국전쟁에 관해서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어. 예일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지금까지 30년 이상 연방 공문서관에서 근무하는 캐더린이라는 여자인데.. 중국인민군의 딩웨이민이라는 사람에 관한 기록을 따로 뽑아서 리스트를 만들어 달라고 했거든.."


이 말을 하며 교수는 편지 봉투에서 문서를 꺼낸다. 흰색 종이 서너 장이 접혀 있다.


“이것은 딩웨이민이 대령으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한반도에서 귀환하기 직전에 모택동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신이야. 물론 복사본이지. 나도 읽어 보았는데..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야. 중국어가 영어로 번역된 것이니까 천천히 읽어 보도록 해요.”


소영이 접힌 종이를 펴려고 하는데 교수가 덧붙인다.


“지난 번에 소영이가 말한 것과 관련해서.. 딩커민이라는 젊은이가 왜 그렇게 모욕적인 말을 할 수 있었는가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되리라고 믿어. 혼자 조용히 읽어 보지. 테리는 나하고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샌더슨 부자가 자리를 뜬 후 소영은 커피숍의 창가 자리에서 종이를 펴든다.


* * *


수신: 모택동 주석

발신: 조선인민지원군 연락 무관 대령 딩웨이민

일자: 1953년 7월 20일


모택동 주석께


그간 건강하신지요? 주석의 신뢰로, 1950년 10월 19일에 조선반도에 발을 디딘 후, 위대한 중공군의 투쟁에 종지부를 찍는 53년 7월 20일에 이 글을 드립니다. 오늘, 조선반도 동부에 있는 철원군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의 빛나는 전투는 끝이 났습니다.


2년 10개월 간, 조선인민군의 활동을 감시하라는 주석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조선 반도의 방방곡곡을 발로 누비는 시간은, 조국에 기여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수시로 전황 보고를 올렸습니다만, 오늘은 이 전쟁을 눈으로 보고 발로 뛰며 느낀 소감들을 따로 사신(私信)의 형태로 올리고자 합니다.


주석께서 세계사에 길이 빛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해 나감에 있어, 조금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제가 주석으로부터 받은 신뢰에 대한 티클 만한 보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 인생의 원점은 주석의 뒤를 따라 370일 동안 9,600 킬로미터를 걸어 산시성에 자리를 잡은 장정(長征)이었습니다. 장정이 시작되던 1934년 겨울, 저는 32세의 젊은 장교였습니다.


먹을 음식이 없고, 신을 신발이 없는 상태에서 높은 산들을 뚫고 일년 이상을 걸으며, 우리 공산 홍군(紅軍)은 인류사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규범과 질서를 보였습니다. 농민으로부터 빼앗은 쌀 한 자루가 없었으며, 여성을 늘 최고로 대우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육체적인 고통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우리가 규율과 문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주석이 강조했던 하나의 목표였습니다. 즉, 우리는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여!’

(起来!不愿做奴隶的人们!).


우리의 ‘의용군 진행곡’의 이 첫 마디는, 우리의 병사들이 낯선 땅에서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조선의 전투에서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이 승리는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만난 남조선의 군대는 노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에도 노예였으며, 앞으로도 노예로 남을 것입니다.


주석께서 앞으로 위대한 중화문명을 건설함에 있어, 옆에 있는 반도의 노예들의 근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 이 글을 드리는 바입니다.


*

1950년 10월 19일, 우리 중국의 지원군이 조선반도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그 날은 1949년 10월 1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어렵사리 수립한 날부터 불과 일 년이 경과한 시점이었습니다.


아직 국가의 체계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의 군대를 파견한 이유는, 주석께서 표현하신 대로 항미원조(抗美援朝)였습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남조선군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장래에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이 아시아를 지배하는 것은, 중화문명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방해가 되서는 안된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였습니다.


역시 미제국주의자들은 방해물이 되었습니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터지고 불과 3개월도 안되어, 중공군과 조선인민군은 낙동강까지 진격하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 9월 15일에 미제국주의자들이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하면서, 전황이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 중공군은 총 7 차례에 걸쳐 대공세를 펼쳤습니다. 주석의 아드님이 미공군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것은 제1차 공세 때였습니다. 그러한 숭고한 희생에 힘입어, 중공군은 다시 1951년 정월에 서울을 탈환하고 남으로 밀고 내려갔습니다.


이때부터 미국 이외에 UN군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결국 1953년에 들어와, 중공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대타협의 결정을 내리고 휴전에 이르른 것입니다.


*


이 대목에서 주석께 꼭 강조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선반도의 사람들과 그 지도자들에 관한 것입니다.


조선반도의 사람들에게 애국심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곳에도 일부 유능하고 깨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애국심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것입니다. 자기의 몸을 던져 싸우는 애국심이 아니라, 말과 글로 경쟁하는 애국심입니다.


군대로 끌려 나온 젊은이들은 힘 없고 가난한 집의 아들들이었으며, 힘 있고 잘난 자들의 아들들은 대개 해외로 몸을 피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겁쟁이며, 기본적으로 남에게 의존하고 종속하는 노예들입니다.


남조선의 지도자들은 네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친일파와 친미파가 대부분으로서 경쟁하고 있으며, 친중파와 친러파는 앞으로 없어질 것입니다. 입으로는 자주와 독립을 외치지만, 미국과 일본을 종주국이자 문명의 모범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남조선의 정부, 군대, 경찰, 학계 등을 채울 것입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중국을 경계하거나 멸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 지원군이 조선반도에 들어갔을 즈음에, 병사들은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병사들이 헝겊으로 된 신발을 신은 덕에, 가죽 신발을 신은 미국의 오랑캐보다 기민하게 움직인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우수한 무기들을 갖춘 남조선의 병사들은 우리가 나타나면 도망가기에 바빠습니다. 이러한 비겁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의 장군이라는 자들은 중공군이 ‘그림자 없는 유령’이라거나 ‘마귀의 소리를 낸다’는 등, 터무니없는 변명을 갖다 대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비겁과 무능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민방위군 사건입니다. 우리 지원군의 3차 공세로 서울을 빼앗긴 이승만 정권은 부랴부랴 국민방위군이라는 것을 편성했습니다. 총을 만져보지도 못한 젊은이 50만 명을 모아 군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군대에 가보지도 못한 이승만이, 군대에 가보지도 못한 씨름꾼을 사령관으로 앉혀서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 몬 것입니다.


이 오합지졸들은 무기가 없을 뿐 아니라 입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정부의 간부들이 전쟁 중에 예산을 빼돌려 착복했기 때문입니다. 매우 추웠던 1951년의 1월초부터 2월말의 두 달 사이에 12만 명이 이상이 굶어 죽거나 얼어죽는 인류사에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습니다.


포로로 잡힌 자들에 의하면 그 엄동설한에 두 명에 가마니 한장이 침구로 제공되었다는 것입니다. 포로들의 몸에는 이가 너무 많아, 그들을 발가벗겨 빗자루로 이를 쓸어내는 진풍경도 연출되었습니다.


이 ‘거지들의 행진’의 실태가 들러나자, 이승만은 자신이 임명한 지도자 5명을 들판에서 총살로 처형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처음부터 도망간 지도자였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대통령이라는 자는 적군이 서울에 오기도 전에 대구까지 내뺏다가 민심이 두려워 대전으로 올라가 국민에게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외국의 침략이 있었을 때 통치자가 제일 먼저 도망간 것은 이미 이씨 조선의 인조나 선조가 예를 보여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석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조선인들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책임지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북조선은 중국의 노예가 될 것이고, 남조선은 미국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조선인들은 중국에 대하여 두가지 상반된 생각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과 중국인들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대개는 중국인이 더럽다거나 시끄럽다거나 하는 무시로 표출됩니다. 또 하나는 중국이 자신들의 문명의 원천이며, 따라서 중국을 상전으로 모시고, 중국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모화사상(慕華思想)입니다.


앞으로 오성기를 휘두르는 중국인은 세계의 중심적 문명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무시하고 오만하게 구는 미국의 오랑캐들은 자만과 동물적 문명으로 인하여 피폐하고, 결국 중국에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입니다.


중국이 다시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조선반도는 늘 문젯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중국인이 조선전쟁에서 간파한 조선인의 본질을 잊지 않고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의 척박한 땅에서

웨이민 올림


* * *


이 글을 다 읽은 소영은 충격에 넋을 잃고 창 밖을 본다. 미의회 의사당 사이에 만들어진 화초밭에 수 많은 꽃이 만발해 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틈만 나면 커민이 쏟아 내던 악담. 그 악담들이 바로 이 글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자랐다던 커민. 결국 그의 머리에 들은 생각과 말들은 이 글을 쓴 딩웨이민이 주입시켰던 것이다.


* * *


소영은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난다. 어디론가 정처없이 걷고 싶다. 의사당 건물을 빠져 나올 때 테리가 급히 따라 붙는다.


“소영아. 지금 돌아다니면 안 돼.”

“다 싫어. 그냥 걷고 싶어.”

테리가 따라 붙어 손에 있는 종이를 읽으며 따라 온다.


긴 사각형의 호수를 지나니 멀리 링컨 기념탑이 보인다. 아련히 보이는 뾰족한 탑까지 수 킬로미터는 될 듯하다. 그냥 걷고 싶다. 끝 없이 펼쳐진 잔디밭. 파란 하늘. 소영은 오랜 만에 해방감을 맛본다.

국민방위군.jpg

WashingtonDCMallAerialNavyPhoto_crop.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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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 by******..
    작성일
    18.05.25 13:01
    No. 1

    작가는 많은 지식을 공유하신 분이시네요 존경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 wu******
    작성일
    18.05.26 12:31
    No. 2

    잘보고 있습니다. 마무리 잘 하시길.
    길게 쓴 댓글이 날아가 버렸는데요. 한국전쟁시기에 남군 북군을 똑같이 언급해 버리면 당시 상황에서 동떨어진다고 봅니다. 마오군은 남쪽에 대해서는 경멸해도 북에 대해서는 한꺼번에 언급할 수 없을 겁니다. 조선의용군의 활약도 있고 한국전쟁기 이들의 활동도 있어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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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43화 – 보스턴을 향하는 추격자들 +1 18.05.27 459 7 10쪽
» 제42화 - 모택동 주석께 드리는 서한 +2 18.05.25 495 6 11쪽
41 제41화 – 소영 제거 지시 18.05.22 469 7 10쪽
40 제40화 – 미국 하원 의원회관 18.05.18 483 7 12쪽
39 제39화 – 시카고 플레이보이 빌딩 18.05.18 521 8 12쪽
38 제38화 – 마지막 여행 +1 18.05.17 488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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