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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ROH 님의 서재입니다.

찰즈강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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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ROH
작품등록일 :
2018.04.09 12:23
최근연재일 :
2018.06.06 14:45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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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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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글자수 :
176,294

작성
18.06.0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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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44화 – 김소영 살인 청부

DUMMY

세스나 사이테이션 무스탕 제트기는 가볍게 워싱턴 레이건 공항을 떠 올랐다. 조종석 뒤에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가죽 소파가 설치된 이 소형 여객기를 수배하느라고 사사키는 꽤 애를 먹었다.


함마가 실종되었다는 것이 경찰에 알려졌다는 전제 하에 움직여야 했다. 어쩌면 클럽 나트랑에서 그를 만났던 수사관들이 이미 함마의 죽음을 알지도 모른다.


가까스로 수배가 된 여객기는 워싱턴의 어느 법률회사의 전용 여객기였다. 그 회사가 실적이 좋지 않아 별로 이용이 안 되어, 조종사가 가끔 아르바이트로 승객을 실어 나른 다는 것.


불과 한시간 정도의 비행인데 조종사는 만 달러를 요구했다. 보통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요금의 수십 배이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백만 달러가 든 가방을 조종사가 공항에서 통과시켜 주는 조건이 붙은 까닭이다. 겉으로는 까칠해 보이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돈으로 안되는 일이 없다는 걸 사사키는 이미 몸으로 알고 있다.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며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데 탁자에 놓인 샴페인 잔이 엎어질 정도로 휘청한다. 소형 제트기는 마치 바람에 운명을 맡기고 있는 양 좌우 상하로 떨며 가까스로 솟아 오른다.


공포가 사사키의 전신을 휩쓴다. 소름이 돋고 귀가 먹먹하다. 그 때였다. 함마의 목을 전화줄로 조를 때 전해 오던 동물적 경련이 그의 손에서 재생된다. 함마가 무언가를 삼키는 듯 그의 목줄대가 축소와 확대를 반복하고, 그 잔잔한 근육의 움직임이 사사키의 손가락에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비행기는 아직도 경련을 지속하고 있다. 눈을 감은 머릿 속이 아련하다. 여기서 비행기가 떨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자신이 순식간에 숨이 끊어 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먼 어린 시절 읽은 동화처럼 스쳐간다.


그 동화 같은 환상 속에서 또 하나의 그림이 겹친다.


빛이 너무 밝아 모든 사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가 학교를 일찍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그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들어와서 엄마를 때리는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폐허 위에서 다시 부활하며 인기를 끌게 된 파친코. 조부가 전쟁 통에 사들인 역 부근의 땅에 허술한 건물들을 지어 파친코 팔러를 여러 개 운영을 하고, 거기서 모인 돈으로 고리대금업과 전당포를 경영하던 아버지는 그야말로 돈을 쓸어 모아 자루로 가지고 들어 오곤 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돈을 잘 주던 아버지가 엄마에게 이상한 짓을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된 것은 사사키가 철이 들어서였다.


그가 막연히 상상하던 장면이 눈 앞에서 벌어진 것이 바로 그 오월의 오후였다.


“너 또 그 놈과 붙어 먹었지?”

아버지는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엄마의 뺨을 후려갈긴다.

“그 조센진 새끼와 또 붙어 먹은 거 아냐?”


조센진이란 다나카 히로시, 아니 재일교포 김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사키 집안의 성공은 김씨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긴급한 때에는 돈을 빌려주고, 모자라는 지혜를 보태 준 사람. 그는 큰 인물이었다. 그런 김씨에 대하여 아버지는 일본인으로서 열등감을 마음 속에서 불태웠음이 분명하다. 그 열등감은 질투로 발전하고, 그 질투는 자기의 아내가 그를 연모한다는 망상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이 때 눈앞에서 놀라운 광경이 벌어진다. 코에서 진한 피를 흘리는 엄마를 아버지는 밀어 버린다.


강한 오후의 햇살을 받은 다다미. 볏짚이 이룬 수 많은 결 위에 태양이 쏟아지고, 뒷머리를 바닥에 부딛히며 쓰러진 엄마의 코에서 터진 피가 다다미 위에 퍼져 진홍 빛으로 빛난다.


실신해 쓰러진 엄마의 옷을 찢어서 벗긴 아버지는 나신이 되어 그 가랭이 사이로 들어 간다.


그 이후, 사사키의 사춘기와 청년기는 황량한 것이었다. 스포츠카로 시속 240킬로 미터로 질주하던 고속도로. 닥치는 데로 범했던 웃음을 흘리는 계집들. 그리고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해결해 주었던 것이 형, 아니 김씨의 아들 김성구였다.


동부 해안을 따라 나는 소형 제트기는 안정을 찾고 있었다. 그 순간에 그에게 갑자기 평안이 찾아온다.


함마의 목을 졸랐던 순간의 죄책감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평안과 납득이 채우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 함마를 죽인 건 내가 아냐. 내 아버지라는 이름의 괴물이 죽인 거야.


이 갑작스러운 깨달음은 또 다른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았던, 그래서 그가 양심이라는 명분으로 애써 누르고 무시했던 생각.


김성구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그 열등감이 대물림이 아닌가 했던 자괴감. 조센진 다나카 히로시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던 아버지라는 사내와, 다시 조센진 다나카 노리오에 대한 열등감으로 시달려 왔던 그 아들.


김성구의 딸 김소영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 오랜동안 공상해 왔던 일을 해야 한다. 소영을 남자로서 정복해야 한다. 김성구의 딸 김소영의 몸에 내 몸을 깊이 박고 열등감에 뜨거워졌던 정액을 쏟아버려야 한다. 마구 함부로 범해서 대를 이은 열등감을 체액으로 모두 씻어 버려야 한다.


손에 들은 샴페인을 다 마셔 버린 사사키에게 새로운 힘이 솓는다. 제트기가 보스턴에 접근하고 있다는 안내가 나온다. 밖을 보니 대서양이 펼쳐지고, 그 푸른 물결이 해안을 애무하고 있다.


사사키는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이제 곧 찾아 죽일 소영을 생각하며 마스터베이션을 시작한다. 뜨거운 자위였다. 쏟아지는 정액. 진한 송진 냄새가 난다.


* * *


보스턴의 전통시장 퀸시 마켓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나폴리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대뜸 지하에 있는 사무실로 안내한다. 일명 싸-지 번햄. 2001년에 시작된 미육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선봉에 섰던 중사 번햄은 어깨에 수발의 관통상을 입고 전역하였다.


그가 지금 보스턴의 지하 세계에서는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것. 그를 소개한 뉴저지 폭력조직의 우두머리의 말이었다.


침침한 실내임에도 짙은 레이번 선글래스를 낀 번햄은 40대 후반의 중년으로 보임지만 아직도 단련된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다. 테이블에는 책이 놓여 있다. Poet라는 단어가 보이니 시집이다. 시를 읽는 암흑가의 지배자.


사사키가 이야기를 풀어 놓는 동안 그는 아무런 말이 없다. 간간히 앞에 놓인 홍차를 마실 뿐.


“그러니까 이 젊은 여자를 잡아 달라?”

“네.”

“당신 야쿠자야?”

“야쿠자 비슷한 생활은 했지만.. 조직에 있었던 거는 아니구요.”


“분명한 죄가 없는 평범한 사람을 잡는 거는 내 신조에도 어긋나고.. 재미도 없는데..”

“김소영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살인의 여파로 죄 없는 하버드 교수가 자살을 했고..”

“흠.. 그런데 당신과는 무슨 관계..?”

“나와 내 회사가 해오던 모든 비즈니스가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번햄은 아무 말이 없이 사사키가 내민 김소영의 사진을 자세히 본다.

“이 여자를 FBI가 추적하고 있다구?”

“네.”


“위치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FBI와 대치하는 상황은 내 비즈니스에 지장이 되는데..”

“납치가 어렵다면.. 처치해 주십시오.”

“처치..? 이렇게 순진하게 생긴 젊은 여자를 왜?”


사사키가 대답을 못하고 앞에 놓인 냉수를 마신다.


“입을 막아야 되는 모양이지?”

“네.”

“법정에 세우는 걸 막는 일이라면 준비할 시간 여유도 있고.. 노출 포인트가 많으니 어렵지 않지만.. 그 이전의 FBI 수사 단계에서는 쉽지가 않은데..”


이 대목에서 번햄이 일을 맡을 의향이 있다고 판단한 사사키가 가지고 온 백을 연다.


“백만 달러입니다. 꼭 처치해 주십시오. 믿고 부탁하겠습니다. 그리고 FBI에 자수한 초기 단계에 처치해 주신다면 백만 달러 더 드리겠습니다.”

“그래..?”

“네.”


“이 젊은 여자가, 그래 봐야 대학원생인데.. 무얼 그리 많이 알기에.. 이렇게까지.. 내가 좀 납득을 하면 일하기가 더 쉬운데..”

“그 아이의 진술에 따라 한국이나 일본에서까지 수사가 확대되고.. 많은 것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번햄이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 문다. 담배에서 피어 오르는 파란 연기가 천정에 매달린 샹들리에로 올라가는 것을 두 사내가 예술 작품 보 듯이 한동안 쳐다본다.


“오케이. 세 개만 내. 기소 이전의 단계에서 없애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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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마지막 화 – 남기고 간 말들 +5 18.06.06 500 8 3쪽
46 제46화 – 롱펠로우 브리지 18.06.06 434 6 9쪽
45 제45화 – 마지막 사과 18.06.06 409 7 6쪽
» 제44화 – 김소영 살인 청부 18.06.04 438 5 9쪽
43 제43화 – 보스턴을 향하는 추격자들 +1 18.05.27 462 7 10쪽
42 제42화 - 모택동 주석께 드리는 서한 +2 18.05.25 495 6 11쪽
41 제41화 – 소영 제거 지시 18.05.22 470 7 10쪽
40 제40화 – 미국 하원 의원회관 18.05.18 483 7 12쪽
39 제39화 – 시카고 플레이보이 빌딩 18.05.18 521 8 12쪽
38 제38화 – 마지막 여행 +1 18.05.17 489 8 12쪽
37 제37화 – 두 명의 장군 18.05.17 494 7 11쪽
36 제36화 – 사사키의 변신 18.05.16 480 7 12쪽
35 제35화 – FBI 확대 수사회의 18.05.16 482 7 12쪽
34 제34화 – 공범들 18.05.15 479 7 10쪽
33 제33화 – 버려진 시체 18.05.15 489 7 11쪽
32 제32화 – 의붓아버지 18.05.14 500 7 8쪽
31 제31화 – 정략결혼 18.05.13 479 7 7쪽
30 제30화 - 불법체류자들 18.05.12 488 8 7쪽
29 제29화 -반도금융그룹 회장 +1 18.05.10 532 7 8쪽
28 제28화 – 곤도 후미에 죽음 +1 18.05.09 515 8 8쪽
27 제27화 – 고베항 부두 18.05.08 515 7 9쪽
26 제26화 - 한국계 다나카 히로시 18.05.07 518 9 7쪽
25 제25화 - 잔인한 달의 카 섹스 18.05.05 518 9 8쪽
24 제24화 - 곱슬머리 사사키 18.05.05 517 10 9쪽
23 제23화 - CIA 스페셜 에이전트 18.05.04 543 10 7쪽
22 제22화 - Mr. S. 18.05.03 537 9 7쪽
21 제21화 - 비원의 추억 18.05.03 531 10 7쪽
20 제20화 - 소돔과 고모라에서 18.05.02 531 13 8쪽
19 제19화 - 어틀랜틱 시티 18.05.02 524 15 9쪽
18 제18화 - 스시 레스토랑 18.04.30 544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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