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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ROH 님의 서재입니다.

찰즈강 살인사건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DANROH
작품등록일 :
2018.04.09 12:23
최근연재일 :
2018.06.06 14:45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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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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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글자수 :
176,294

작성
18.05.1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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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38화 – 마지막 여행

DUMMY

자동차로 보스턴을 떠난 소영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고양감을 느낀다. 기쁘고 설레고 자신이 기특하다. 편도 1,600 킬로미터의 길. 보스턴에서 시카고까지의 거리이다. 이 길을 스스로 계획하여, 남의 도움이 없이 홀로 달린다는 생각은 그녀를 흥분하게 한다.


네비게이션은 마치 밑으로 살짝 늘어진 빨래줄 같이 좌우로 달리는 고속도로 90번을 추천한다. 그러나 그 루트는 지루한 여정이 될 것이다. 단조롭고 평탄한 미국 중부의 평원을 지나가는 길이다.


생애 최초의 모험이라면 길도 모험스러운 길이 좋다. 매사추세츠의 왼편에 붙은 뉴욕주에서 펜실베니아 쪽으로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5대호의 온타리오호와 이리호 사이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지나 캐나다로 들어가기로 한다. 이리호의 북쪽에 있는 캐나다 도로를 돌파하여 디트로이트에서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카고는 디토로이트에서 멀지 않다.


피곤하면 쉴 것이고, 잠이 오면 호텔에 들어가 잘 것이며, 배가 고프면 아무데서나 눈에 띠는 음식을 사 먹을 것이다.


첫날의 목적지를 온타리오 호수 아래에 있는 로체스터로 정한 소영은 뉴욕주를 서북 방향으로 가로 질러 올라간다. 뉴욕하면 뉴욕시의 평탄한 지형과 고층 건물 만을 연상하던 그녀는 뉴욕주 북부의 높은 산들을 보고 놀란다. 저 산들을 내가 넘어야 하는 것이다.


온타리오 호숫가의 아름다운 호텔에서 하루를 묶은 그녀는 서로 이동하여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캐나다로 입국하였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나이아가라를 벗어나서 3번 도로로 접어들자 사람과 차가 줄어든다.


서너 시간을 달리고 나서 그녀가 경험하게 된 것은 고독이었다. 아니 절대 고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야가 닿은 지평선의 끝까지 도로가 뻗어 있고 그 도로 안에는 차가 안 보인다. 그녀 혼자 달리는 것이다. 마치 버려진 아이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도로가 있고, 그 도로를 홀로 달리는 형국이다. 신기함은 고독으로 바뀌고, 고독은 공포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물이라도 튀어 나온다면? 이 도로가 내내 뻗어 나가고 자동차의 연료가 떨어진다면? 며칠 간 길을 걷던 괴한의 무리가 튀어 나온다면?


커민에 대한 생각, 골프채에 대한 생각, 로젠버그에 대한 생각.. 그녀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자연이 주는 공포에 쫓겨 싹 달아난 것을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고독과 두려움 속에서도 헛웃음을 지은 그녀는 3번 도로와 401번 도로가 교차하는 세인트 토마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눈에 띠는 대로 햄버거를 하나 사 먹었다.


텅빈 거리에 낯설은 간판들. 그것을 보는 고독. 소영은 엄마가 재혼하면서 갑자기 옮겨간 고베에서 보던 고독을 떠 올린다. 아스라히 멀리 있는 환영 같은 고독.


눈에 띠는 주유소에서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운 그녀가 허겁지겁 출발하려 하자 주유소의 사내가 차를 멈춘다. 그 때 그녀는 오줌을 지린다. 사내가 창문 밖에서 무어라고 하는데 소리는 안들린다. 소영은 그저 핸들을 꽉 쥐고 있고 의식은 가랭이 사이가 젖었다는 데 꽃혀 있다.


숨을 깊이 들였다 마시고 창문을 연다.

“아가씨, 잔돈 가지고 가야지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동전을 한웅큼 건넨다. 사내는 동양인은 아니다. 그런데 체격과 골상이 사사키 료타로와 흡사하다.


그제서야 소영은 자신의 상태를 곰곰히 생각한다. 예기치도 않던 살인. 그리고 도주. 그 길에서 겪는 절대 고독과 이물감.


사사키 료타로.

그 자와의 인연은 어떻게 정리될 것인가?


* * *


사사키가 캠브리지로 왔던 전 날 저녁.


커민과 소영은 저녁을 만들 재료를 사들고 소영의 집으로 왔다. 간단한 스파케티였지만 요리는 커민의 담당. 둘은 레드 와인 한병을 다 마시고 식탁 옆에서 섹스를 했다.


소영은 커민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사람은 사랑하는 데 커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소영에게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외할아버지는 그가 유일하게 인정하고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런 남자가 젊어서 나타난다면 사랑했을까? 가끔 생각해 보기는 한다.


커민은 소영을 사랑한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소유하고자 하고, 그 소유를 틈만 나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 한다.


소영을 그에게서 떠나려고 생각도 했지만, 의붓아버지 김성구를 생각해서 단념하고 만다. 김성구를 존경한다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다.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김성구에게 실패라는 걸 보이기가 싫다.


김성구에게 실패를 보이느니, 차라리 품위 없는 커민에게 때로는 가랭이를 벌리는 게 낫다. 무지한 놈의 아래에 들어가 사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야비한 놈의 아래에 들어가 사는 건 참을 수 없다.


얼마 전에는 김성구의 입에서 드디어 ‘결혼’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들었다. 그는 소영이 커민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아니, 정확히 말하여, 자신이 중국 정치국원 딩슈량과 사돈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반도금융그룹이 중국대화은행과 협력하여 아시아의 리딩 뱅크가 되고.. 장래에는 중국이 유럽까지 뻗어나가는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그의 야망이란다.


틈만 나면 자신의 몸을 훔쳐보던 그 야쿠자 새끼가 크기도 많이 컸다. 이게 세상이리라. 야쿠자 새끼가 금융그룹의 총수가 되고, 아내가 있는 놈이 동성연애자가 되어 하버드대 교수로 명함을 뿌리고 다니고.


이십대 후반이 되면서 소영이 깨달은 것은 자신 안에 폭력성이 쌓여간다는 것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발레를 계속하는 연유는 거기 있었다. 육체를 심하게 다루고 나면 폭력성을 덜 의식하게 된다. 몸뚱이를 움직여 땀을 흘리는 시간이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이자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 폭력성을 가장 자주 자극하는 것은 커민이었다. 특히 그 놈의 주둥아리. 알코올에 약한 그 놈은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가면 이미 낮은 언어의 수준이 한층 낮아진다.


혼자 만의 공상을 멈추었을 때, 커민은 싱크대에서 설거질을 하고 있다. 설거질 또한 그 놈의 취미이다. 제 몸은 잘 안 씻지만 그릇 씻기는 좋아한다.


싱크대의 수도를 잠시 잠그더니 뭐라고 말을 한다.

“뭐라구?”

“네 아버지가 북경에 와서 우리 아버지를 만났데..”

“그래.. 몰랐네.”


“근데 네 아버지가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커민은 김성구가 소영의 의붓아버지인 줄 모른다. 물론 소영이 알려 줄 필요도 없다.


“뭐라고 그랬는데?”

“너와 내가 결혼하기를 바란다고.”

“음..”


“뭐야? 너는 싫은 거야?”

“글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 말에 커민이 돌아선다. 얼굴이 벌겋다.

“생각해 보지 않았다니..? 네가 감히?”

“무슨 소리야?”


“너희 조선인들은 정말 주제를 몰라.”

“그 얘기 그만해라. 한두 번도 아니고..”

“너희 조선인들이 주제 파악을 못하니까 안타까워서 그래. 봐라. 지난 번의 사드 파동. 양키놈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것들이 까불다가 된 통 당한거 아냐. 지금도 중국 사람들이 여행을 안가니까, 나라가 거덜날까 봐 덜덜 떤다며.."


“제말 그만하자. 네가 중국인 대표도 아니고 내가 한국인 대표도 아니니까?”

“너희 아버지 말에 우리 아버지는 그만 웃고 말았다고 그러더라구. 하지만 할아버지가 아셨으면 제대로 말씀하셨을 거야”


“뭐라구?”

“우리 손자의 귀한 고추를 더럽고 천박한 조선의 여자에게 더럽힐 수는 없지.”


소영은 분노가 스멀 스멀 기어오르는 걸 느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커민은 주둥아리를 계속 놀린다.


"야..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뭐? 권인호가 군인의 표상이라구? 애국심과 용기와 군인 정신의 화신이라구? 참.. 놀고 들 있네. 우리 할아버지가 그 말을 들었으면 쑤시던 코를 멈추고 박장대소를 했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낙동강 전투에 내려 가서 조선반도의 통일을 눈 앞에 두고 있었어. 그런데 양키놈들이 인천에서 치고 들어 와 도로아미타불이 된 거 아냐?


너희들.. 대한민국이라고 우리가 만든 한자 네 자를 멋대로 붙여 놓고 거창한 쇼를 벌이고 있는데.. 지금 결국 미국의 속국 아니냐?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 중국의 속국으로 컴백하겠지만.."


피곤하다.

시답지않다.

그리고 이러한 말도 안되는 상황에 들어온 내가 싫다.

아니 이런 상황의 원인을 만든 엄마와 김성구가 싫다.


손에 든 와인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본다.

골프채가 눈에 들어온다. 라운딩을 같이 했던 커민이 픽업해서 가져다 놓은 것.

클럽 부분이 오렌지색 고무로 감겨있다.


뜬금없이 오렌지색 셔츠를 입고 춤을 추던 벤자민 로젠버그가 떠 오른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사이먼즈 카페에서의 파티.

음악이 슬로우 템포로 바뀌자 조명이 어두워진다.


그 때 다가 온 로젠버그. 그의 오렌지색 셔츠는 한층 사이키하게 보인다.

블루스를 추자고 다가온 그에게 몸을 맡기자 어느 새인가 그의 손이 소영의 가랭이 사이를 파고 들어온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그 시간..


갑자기 짜증과 분노가 뜨거운 에너지가 되어 치밀어 오른다.

김성구, 커민, 로젠버그, 사사키

내 주변의 이 벌레들.


골프채를 들고 커민을 보니 아직 설겆이가 끝나지 않았다.

설겆이가 예술에 버금가는 이 하찮은 놈.


그의 뒤로 다가가서 골프채를 든다.

순간적이지만 풀 스윙을 위해서는 충분히 테이크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친다.

냉철한 자신이 믿음직스럽다.


뒤로 충분히 젖힌 후에 풀스윙으로 휘둘러 클럽 헤드를 뒤통수에 내리 꽃는다. 명중이다.


귀에 들어온 소리는 여름에 엄마가 슈퍼에서 수박을 고르며 손으로 두드리던 소리.

골프채 자루의 진동은 팔로 그대로 전달되고, 팔꿈치가 얼얼하다.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은 튀어 오르는 피를 투과하는 싱크대의 형광빛. 선분홍이었다.


옆으로 쓰러지는 커민은 몸이 꺾이더니 소파세트 구석에 놓인 돌탁자에 옆 머리가 심하게 부딪힌다.


* * *


“아버지”

그에게 오랜만에 써보는 호칭이다. 위스키 병을 들고 한 모금 마신 후에 건 전화.

“오.. 소영아 웬일이냐. 전화를 다 하고.”

“미안해요.”

“뭐가?”


“그를 죽였어요.”

“죽이다니.. 누굴?”

“딩커민요.”

“어떻게?”


“골프채로 뒤통수를 때렸어요.”

“정말야?”


소영은 상황을 간단히 설명한다.

다 듣고 난 김성구의 어조는 의외로 차분하다.


“알았다. 사사키를 부를테니.. 나가지 말고.. 멀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 몇 시간 걸릴 거야.”


* * *


“휴..”

사시키가 사내들을 데리고 집안에 들어와서 낸 휘파람 소리였다. 천천히 치는 박수와 함께. 마치 멋진 재즈 쇼라도 보았듯이.

“브라보! 우리 소영이가 한 건 올렸네. I am so proud of you.”


이 말을 들으며 소영은 골프채를 다시 들어 그 놈의 대가리도 두들기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몸에 힘이 없다.


* * *


그 사사키는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사사키와의 인연이 그리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마음을 좀 가라 앉히고 텅빈 도로를 달린다. 오후 5시. 시카고까지 남은 거리 520 킬로 미터. 커피를 마시고 단번에 완주하기로 결심한다. 석양이 내리는 도로에는 아무도 없고 자연과 무관심과 고독 뿐이다.


테리 오카모토를 떠 올린다. 내일 나는 테리를 찾을 것이다. 사람을 죽인 자신이 자유를 구가하며 편히 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죄값을 치루게 될 것이다. 그 전에 그를 한번 보고 싶다. 그게 내 인생의 스토리가 아니겠는가?


라디오를 틀어 본다. 오래 된 노래 Me and Bobby McGee가 흐른다.


Freedom’s just another word for nothing left to lose

(자유란 더 이상 잃어버릴 게 없다는 것..)


마음에 드는 구절이다.

아니 바로 소영의 처지이다.

나는 드디어 자유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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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마지막 화 – 남기고 간 말들 +5 18.06.06 500 8 3쪽
46 제46화 – 롱펠로우 브리지 18.06.06 434 6 9쪽
45 제45화 – 마지막 사과 18.06.06 409 7 6쪽
44 제44화 – 김소영 살인 청부 18.06.04 437 5 9쪽
43 제43화 – 보스턴을 향하는 추격자들 +1 18.05.27 459 7 10쪽
42 제42화 - 모택동 주석께 드리는 서한 +2 18.05.25 495 6 11쪽
41 제41화 – 소영 제거 지시 18.05.22 469 7 10쪽
40 제40화 – 미국 하원 의원회관 18.05.18 483 7 12쪽
39 제39화 – 시카고 플레이보이 빌딩 18.05.18 521 8 12쪽
» 제38화 – 마지막 여행 +1 18.05.17 489 8 12쪽
37 제37화 – 두 명의 장군 18.05.17 493 7 11쪽
36 제36화 – 사사키의 변신 18.05.16 478 7 12쪽
35 제35화 – FBI 확대 수사회의 18.05.16 482 7 12쪽
34 제34화 – 공범들 18.05.15 479 7 10쪽
33 제33화 – 버려진 시체 18.05.15 489 7 11쪽
32 제32화 – 의붓아버지 18.05.14 500 7 8쪽
31 제31화 – 정략결혼 18.05.13 478 7 7쪽
30 제30화 - 불법체류자들 18.05.12 488 8 7쪽
29 제29화 -반도금융그룹 회장 +1 18.05.10 532 7 8쪽
28 제28화 – 곤도 후미에 죽음 +1 18.05.09 514 8 8쪽
27 제27화 – 고베항 부두 18.05.08 515 7 9쪽
26 제26화 - 한국계 다나카 히로시 18.05.07 518 9 7쪽
25 제25화 - 잔인한 달의 카 섹스 18.05.05 518 9 8쪽
24 제24화 - 곱슬머리 사사키 18.05.05 517 10 9쪽
23 제23화 - CIA 스페셜 에이전트 18.05.04 542 10 7쪽
22 제22화 - Mr. S. 18.05.03 535 9 7쪽
21 제21화 - 비원의 추억 18.05.03 531 10 7쪽
20 제20화 - 소돔과 고모라에서 18.05.02 530 13 8쪽
19 제19화 - 어틀랜틱 시티 18.05.02 523 15 9쪽
18 제18화 - 스시 레스토랑 18.04.30 542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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