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화 - 최초의 증기선
023화 - 최초의 증기선
염초 즉, 질산칼륨 6근(3.6kg)을 얻으려면 취토한 흙을 1t 이상 침출해야만 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흙에 곱게 태운 재를 섞어야 한다. 그것을 물에 녹여 걸러 내고, 이를 가마솥에 넣고 끓이고 거르기를 반복해서 얻어 낸 염초가 밥 한 공기 정도였다.
한 달에 염초 1만 근을 생산하려면 어림잡아 1,700t의 초토를 얻어야 하고, 그것을 물에 걸러 구워야만 했다. 실로 엄청난 양이다.
또, 그 많은 초토를 생산하기 위한 땅도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 그 일을 김천손이 해낸 것이다.
“천손, 그 많은 염초 밭을 어찌 다 만들었는가? 또, 염초를 구워내려면 일손도 엄청나게 들었을 터인데.”
“쉽지는 않은 일이긴 했습니다요. 언복의 도움이 컸습니다.”
“언복이?”
“네. 염초 구울 솥을 만들기 위해 언복에게 정읍전장을 구경시켜 주었는데. ‘이 많은 흙은 언제 다 나르냐며’ 신묘한 기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요.”
“오?”
“그것은 마치 좁다란 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요. 길 다란 거적에 증기기륜을 장착한 것이지요. 흙을 퍼담으면 저절로 침출장으로 날라 주니 일손을 크게 덜 수 있었습니다.”
언복이 일종의 컨베이어벨트를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오호라!”
“게다가. 종전에 매번 솥을 바꿔가며 염초를 구웠는데. 그것을 언복이 여러 개의 솥이 연결되도록 만들어주어서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요.”
“그렇지, 그래. 역시 언복의 재주와 총명함을 두 번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하하.”
“정말 그렇습다. 소인만 언복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옵니다.”
“그래?”
“김화토 염초장은 초토를 고를 때 그것의 맛을 보고 구분하였는데. 언복 덕분에 그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
“오!”
“언복이 소방목(蘇枋木) 가루와 감초(甘草)로 초토가 얼마나 익었는지 아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호오, 언복이 어찌 그것까지 알고 있단 말인가?”
“저도 잘은 모르오나 철물을 다룰 때도 그 시고 쓴 성질이 중요할 때가 있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번 소방목의 가루를 내고, 감초를 달이는 것이 번거로워 그것을 종이에 물들여 만들어주어 큰 일손을 덜었습니다.”
언복이 만든 것이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하하하. 대단하군그래.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그 많은 염초 밭은 어찌 일구었나?”
“정읍전장이 만들어진 곳이 농지로는 부적합한 땅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새로 만든 부지까지 합치면 30결 정도 됩니다.”
논 1결이면 80가마 정도의 쌀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이었다. 30결 이면 줄잡아 10만 평은 되는 넓은 크기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규모라면 관리도 그렇고 파수(把守, 보초)를 서는 것도 만만치 않을 터인데 ··· 관아에서도 딴지를 걸 수 있고······.”
“다행하게도 새로 오신 정읍 현감께서 장군의 뜻을 잘 이해하고 계셔서, 병졸을 파견해서 정읍전장을 지켜주십니다요.”
“이런, 고마운 일이······.”
“게다가 염초 밭을 늘리는 것도 현감의 도움이 컷습니다요. 주인 없는 땅을 쓰는 것도 묵인해주시고, 주인 있는 땅은 매입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지요. 하지만 선의만으로 그런 편의를 베풀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요.”
“그래? 그게······.”
“전장에서 나오는 닭알의 일부를 정읍 동헌으로 보내고. 또, 염초의 일부를 현감의 이름으로 나라에 바치기도 했습니다요. 그리고 정읍 대장간에서 현의 군 기물을 보수하는 것도 무상으로 하도록 조처했습니다.”
“아~ 천손 자네. 상단의 대방이 되더니 수완도 늘었나 보네그려. 하하하.”
“나리께서 큰일 하시는데 약간의 기름칠을 했을 뿐입니다요.”
“그래그래! 내 그리 아주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네.”
“소인을 함길도에서 빼내 오신 것도 큰일을 위해 융통성을 발휘하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
“그래서 저도 대의를 위해서 현실을 불평하기보다,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죠.”
“오~ 자네 아주 맘에 드는 말만 골라 하는구먼, 하하.”
“소인이야······.”
“여튼, 이제 화약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네그려. 다 자네 덕분이네. 큰일 했네! 천손.”
“장군의 밝은 얼굴을 보니, 저의 마음이 봄날처럼 따뜻해집니다요.”
화약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적어도 이충무공의 누가 되지 않을 만큼, 그 행적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조선에 부족했던 것이 화약만이 아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천손!”
“네. 나리.”
“자네가 도와주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네.”
“말씀만 하십쇼.”
“자네도 알다시피, 조선에 구리는 물론이고 철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네, 오죽하면 총통을 만들기 위해 절간의 범종을 빼앗듯이 거둬들였겠는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역관들에게 줄을 놓아 명에서 가져올 수 있는지, 또 조선 땅의 광산들도 수배하여보겠습니다. 다만,”
“?”
“제가 알기로 명나라도 구리가 넉넉지 않아, 그것의 수출을 규제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 그렇지.”
“하오니, 제가 약간의 편법을 쓸 수 있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내 그 일에 대해선 묻지 않을 터이니, 자네가 잘 판단하여 처결하게.”
“감사합니다. 장군.”
천손이 쓴다는 편법이 역관을 매수하는 것인지, 밀무역인지 모르지만. 전쟁을 앞두고 정도만 걸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
물자와 재정을 확보하는 일과 더불어 실천한 일들이 속속 결과를 내고 있었다.
병선조선장인 나대용이 들뜬 얼굴로 날 찾았다. 최초의 증기선 쾌륜선(快輪船)이 진수되었고 시험 운항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장군, 준비가 완료 되었습니다. 납시지오.”
“그래, 어서 가세.”
쾌륜선의 시험 운행은 전라좌수영 전체가 들썩일 만한 일이었다.
수영 앞 바닷가에 있는 선소에 이르자. 쾌륜선은 선소를 빠져나와 바다 위에 떠 있었다.
크기는 판옥선보다 조금 컷고 선수는 첨저선처럼 뾰족했고, 배의 허리와 뒷부분은 판옥선을 빼닮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뒤쪽에 굴뚝이 솟아나 있었다.
또, 거북선처럼 개판하진 않았지만, 본래 판옥선의 격군이 있을 자리에 포구가 뚫어져 있었다. 적도 포수들은 화살과 총탄에서 보호되는 구조였다.
쾌륜선의 굴뚝에선 이미 회색빛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나서 꽤 많은 관내 백성들도 구경을 위해 모여들어 있었다.
“장군,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언복이 안 보이는구먼?”
“증기기륜의 기관을 살피고자 배에 타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
군관 나대용의 지시에 따라 깃발과 호각으로 쾌륜선에 신호를 보냈다.
- 치이익~
- 철썩, 철썩, 척 척 척, 척척척척
증기가 배출되는 소리와 함께 배의 외륜이 천천히 돌기 시작했고, 수차가 바닷물을 차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백성들과 군졸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 우와~
- 아따! 저것이 저절로 돌아가네.
- 고거이 참말로 신기하구먼.
- 그러게 말이여, 배에 달린 물레방아가 스스로 움직이는 구먼.
- 땔감을 때서 수차를 돌린다지 않는가.
- 아니, 장작불로 저 배가 나아간단 말이여?
- 아니 글쎄, 그렇다는구먼, 저 배 만든 조선장에게 들은 이야기니 틀림이 없을 것이네.
쾌륜선은 점점 속도를 높이더니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 바다에서 큰 반원을 그리며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나 군관, 성공이야. 성공. 하하하.”
“저도 감격스러운 마음입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게 꿈만 같네, 저걸 만들기 위해 자네와 언복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수고했네, 수고했어.”
“장군의 지원과 의지가 없었다면,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모두 장군의 공입니다.”
“아닐세 아니야. 자네와 언복 아니, 우리 조선 수군의 성취일세. 하하하.”
쾌륜선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구경꾼들도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 거참, 신통방통 하네 그려
- 그러게 허벌나게 빠르구먼.
- 저게 빠른건가?
- 허어! 순천사람이 배도 안 타 봤나?
- 내가 배탈 일이 무에 있나? 타박할 걸 타박하게.
- 하긴, 허허허. 내 설명해 줌세. 자네 여기서 조운선이 한양까지 가는 건 알 거 아닌가?
- 그렇지.
- 순천에서 출발한 조운선이 한양까지 가는데 20일이 더 걸린다네.
- 누가 그럴 알고 싶다고 했나? 저 배가 빠른 것인지 묻지 않나?
- 허어~ 이 사람 급하기는 그니까 우리 좌수사 영감이 만든 저 배가, 조운선의 몇 곱절은 빠르단 이야기를 하는 걸세.
- 그럼, 이제 저 배가 조운선이 되는 건가?
- 허어~ 이 사람 아둔하기는······. 조운선이야 세곡을 나르는 거니 천천히 간들 무슨 탈이 있겠나?
- 이놈아 모를 수도 있지! 아둔하다니.
- 허허, 내 답답해서 말이 헛나왔네! 그려. 내 다시 설명함세.
- 어디, 한번 떠들어 보시게.
- 여기가 어딘가? 바로 전라좌수영 아닌가? 그리고 빠른 배가 어디에 필요하겠나? 병선 아닌가 병선!!!
- 그렇구먼, 왜놈이 쳐들어온다고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데 잘되었구먼. 좌수사 영감 덕에 순천은 괜찮겠구먼. 허허허.
한눈에 보기에도 쾌륜선은 이름대로 시원하게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나 군관. 속도는 얼마나 되는가?”
“장군, 잠시만.”
군관 나대용은 군졸들에게 바가지로 만든 간이 물시계를 측정한 값을 묻고는 즉석에서 속도를 계산하고 있었다.
“장군. 판옥선의 네 곱절은 되는 것 같습니다.”
“대성공이군. 수고했네! 나 군관.”
“다만, 지금은 물자를 가득 실은 것은 아니온지라, 수군을 태우고 총통을 모두 실으면 세 배쯤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게 어디인가, 격군도 없이 스스로 배가 움직이는데 3배의 속도가 나는 것 아닌가? 하하하.”
쾌륜선의 시험 운항을 조방장 정걸도 함께 참관하고 있었다.
정걸은 나보다 31살이나 많았고, 을묘왜변 때도 공이 높았고. 전라좌수사를 역임한 선배 중의 선배 같은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조선 수군의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어서 특별히 주청하여 그를 조방장(군사참모)로 모셨다.
그런 정걸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좌수사 영감, 정말 신묘합니다. 격군 없이도 저리도 빠르다니.”
“네. 저도 만족스럽습니다. 야장 언복과 나대용 군관이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리 빠른 배가 생겼으니······.”
“조방장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무릇 수군의 진법에 있어서. 물길과 바람 그리고 배의 속도가 중요한 법인데······.”
“?”
“저리 빠른 배가 생겼으니, 새로운 진법과 전술을 창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조방장께서 경험이 많으시니, 군관 나대용의 보좌를 받아 새로운 진법을 연구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군! 명 받들겠습니다.”
소란한 구경꾼들의 모습 사이로, 쾌륜선의 갑판 위가 분주해졌다. 화포 발사 시험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나 군관 화포는 어떤 것을 준비했는가?”
“배의 흔들림이나 충격을 알아보기 위해 천자와 지자총통으로 준비했습니다.”
이윽고 화포 발사 준비가 끝이 나고, 군관 나대용이 발사 신호를 보냈다.
- 쾅! 콰쾅! 쾅 쾅 쾅 쾅!
맹렬한 폭음에 구경꾼들은 술렁거렸지만, 병졸들은 마치 전투에서 적선을 부순 것처럼 환호성을 올렸다.
그렇게 몇 차례 화포를 발사하고는 다시 쾌륜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포의 반동에 배와 기관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바다를 한 바퀴 돈 쾌륜선 위에서 누군가 푸른색 깃발을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장군, 감축드립니다. 배의 모든 기관과 구조에 이상이 없다는 신호입니다.”
“나 군관! 정말 수고했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장군.”
최초의, 아니.
세계최초의 증기선, 쾌륜선이 조선의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다도해의 멋스러운 풍광 위에 회색빛 연기를 내뿜으며 떠 있는 쾌륜선(快輪船)은 조선을 지킬 수호신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 * *
* 소방목(蘇枋木)과 감초(甘草)는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나오는 약재와 염료로 실제 pH를 측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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