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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침의 서재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조선의 반격 - 증기와 대항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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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침
작품등록일 :
2024.07.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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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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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03화 – 76mm

DUMMY

003화 – 76mm




“장군, 장구운!”


“나, 난. 괜찮네. 어서 방패들 치우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게. 병사들 놀라게 하지 말고!”



피로감에 잠깐 아주 잠깐만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푸른 하늘을 좀 더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아스라한 기운과 내리쪼이는 햇살 사이로, 기억 속의 기억과 꿈속의 꿈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촛불은 흔들리고 있었고, 등롱이 돌아가는 속도만큼 한지에 그려진 말들도 빠르게 달렸다.


돌아가는 등롱 위에 기억들이 덧씌워진 것 같았다.


이윽고, 주마등은 점점 느리게 돌아가면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니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등 안에 그려진 자그마한 문이 시야를 가릴 만큼 다가왔다.


그리고 익숙한 가락이 들려왔다.



따라단 따라단 단 당 다단다단~



어깨춤이 나올 만한 흥겨운 가락이었지만, 왜인지 내 마음은 심연 아래로 침잠되어 있었다.


내 눈앞으로 커다란 문이 좌우로 갈라지고 있었다.


.

.

.


지하철 스크린도어였다.



군중들 틈에서 고립된 나는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 어쩌지?’


10대의 터널 빠져나오면서 우주와 바다, 드넓은 초원 같은 광활한 것들이 나를 사로잡았고, 자연스레 천문학이나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천체망원경을 만들겠다며 떡유리를 연마해 밀러(렌즈)를 깎았다.


* 떡유리 : 유리문 등을 만들 때 쓰는 기포 없는 유리 덩어리를 지칭하는 은어


휴대하기 좋고 넓은 시야를 가진 단초점 망원경을 만들고 싶었지만, 완벽한 포물면을 만들기엔 시간도 기술도 부족했다.


겨울방학 기간 안에 완성해야 했다. 그래서 구면으로도 성능을 기대할 수 있는 장초점을 선택했다.


그렇게, 초점거리 1,545mm의 6인치 반사망원경을 완성했다.


후일, 이때부터 어떤 초월적인 끈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자랑삼아 친구에게 망원경을 보여 주었다.


“와아, 뭐 이건 대포네 대포. 어디 좀 보자.”


그 녀석은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파인더를 건너편 아파트에 맞췄다.


“우와! 꼭대기 층에 걸린 신발 상표까지 다 보이네, 근데 거꾸로 뒤집혀 보이는 게 정상이냐?”


“반사 망원경이라 그래.”


“야! 이거 나 며칠 빌려주면 안 되겠냐?”


“안 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자식이 망원경으로 천체가 아닌 다른 걸 보려는 그 속내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공부로 밤을 새울 때. 목성의 4개 위성을 관측해서 타이탄의 공전주기를 직접 계산해 보기도 했고, 소행성을 발견해 내 이름을 붙이겠노라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3이 되었다.



“뭐! 천문학과?”


“사학과나 고고학과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선생님이나 교수가 되려는 거냐?”


“거기까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 것들이 재미가 있어서요.”


“하아~ ”



부모님은 물론이고 선생님과 친구들까지 ‘밥벌이와 먹고사니즘’을 들고나왔다.


궁색한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뭐 대단한 신념이나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기에······. 결국, 진로를 바꿔야만 했다.


그나마,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기계 공학과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덕심은 버릴 수 없었고 전쟁사 동아리에 가입했다.


재미있었다.


역덕과 밀덕에게 전쟁사만큼 흥미진진한 분야도 없었고.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보니 뭐랄까?


고증에 있어서 기계 공학과 천문학적 자문역 같은 위치가 되어 있었다. 특히, 고천문 자료를 통한 사료고증을 도울 수 있었다.


덕분에 사학, 고고학 교수들과 전공자 이상으로 친해질 수 있었고. 어쩌다 보니 논문을 준비하는 조교나 교수의 자문역이 되어 있었다.



“자네, 고고학이나 역사학과로 바꾸는 게 어떤가?”


“교수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기계공학의 재미도 버리기 어렵습니다. ”


“알겠네만······ 한 가지를 파야 뭐든 될 게 아닌가?”


“네. 저도 고민은 하지만. 뭐가 되거나 뭐를 꼭 하는 삶을 살고 싶진 않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그렇게 막연히 입대까지 미루면서 덕질에 몰두하던 어느 날, 재미있는 기록을 발견했다.


1577년. 학자이자 도사였던 격암(格庵) 남사고의 어떤 예언에 관한 내용이었다.


<치우는 깃발이니 15년 후 대전쟁이 닥칠 징조다.>


‘가만 15년 이후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데?’


과연, 같은 해에 덴마크의 천문학자 튀고 브라헤가 대혜성을 관측하고 기록을 남긴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혹시, 실록에도?’


선조실록을 뒤졌으나 그런 내용은 없었고. 선조수정실록에서야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실록 태백산사고본 2책 11권 4장 첫 번째면 이었다. 선조 10년, 정축년 해월(亥月. 음력 10월) 초하루의 기사였다.


<요성(妖星)이 서방에 나타났는데, 광선의 끝이 수십 장(丈)이나 되어 혜성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여. 보는 이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겼다. 주상이 별의 변고에 대해 군신들을 불러 물었다······.>


무언가 이상한 기운 같은 것을 느꼈다.


인과적 관계가 없는 것을 끼워 맞추는 것이 비과학적인 태도인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떤 기운이 역사의 변곡점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일은 금세 잊혔고,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조선 수군의 전술을 연구하는 답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충무공 전적지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장군의 행적을 추적했다.


알면 알수록, 영웅 대신 聖(성인)자를 써서 성웅(聖雄)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고. 안타까운 마음은 커져만 갔다.


역사상 인류의 창의력이 폭발하는 시점은 전쟁이었다. 조선도 다르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이충무공 덕분에 조선은 최강의 군사 기술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후 구한말까지 그것을 계승 발전시키지도 못했고 규모를 늘리지도 못했다.


화기도감(火器都監)을 만들어 조총을 대량 생산하고, 최강의 조총 부대를 육성해낸 광해군마저 인조반정으로 쫓겨나 버렸으니 말이다.


인조가 왕이 된 후 조선은 임진왜란 이전으로 돌아가 버렸고.


스스로 신라 김(金) 씨의 후손이라고 믿는 후금(後金,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된다.



‘조선이 왜란을 계기로 발전한 군사 기술로 산업혁명을 이루었다면······.’


‘그때 조선이 변화하였다면 만주나 일본쯤은 우리 땅이 되었을지도······.’


역사 덕후로서 아니 한민족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개할 때마다, 그런 아쉬움과 몽상은 깊어졌다.


‘만약, 이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았더라면······.’


‘선조가 장군을 질투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어느덧 나는 밀덕, 역덕을 거쳐 이순신 추종자가 되어있었다.


그 이끌림 때문인지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군 OCS에 지원하고 있었고, 그땐 이미 바다와 해군에 대한 뽕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 OCS (Officer Candidate School) : 학사 장교 (학교)


그렇게 해군 장교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소위로 임관하였고 동해와 독도를 지키는 해군 제1함대에 배속되었다.


그땐, 군 뽕에 가득 차서 함장이 되어 바다에서 이충무공의 숨결을 느끼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천년에 함장이 되나?’


그런데도. 시간은 금세 흘러갔고, 어느새 대위로 진급하여 PKMR 참수리급 고속정의 정장이 되었다.


참수리 고속정은 승조원 23명의 가장 작은 전투함이었지만.


길이 44m, 만재 배수량 250t에 130mm 유도 로켓과 76mm 함포를 갖춘 제법 멋스러운 군함이었다.


참수리호 정장이 되어, 첫 항해를 나서는 순간엔 바다에 대한 로망과 군 뽕이 치사량에 가까울 만큼 차오르기도 했다.


빌딩 속에 갇힌 것 같은 대형 함정보다 5분 만에 출항할 수 있는 참수리급 고속정이 좋았다.


견시(見視)를 위해 함교에 올라서면, 바람과 파도를 뒤집어쓰는 그런 바다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또, 전시가 아닌 다음에는 해군에서 가장 실전적인 함정이 참수리 고속정이기도 했다.


함정을 정비하고 승조원들과 휴식을 취하던 어느 날이었다.



- 삐이, 삐이, 삐이


- 각부서 긴급 출항준비!

- 띠잉~ 띠잉~ 띠잉~



긴급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참수리 고속정에 ‘출항 15분 전’ 따위의 여유는 없었다.


“총원, 출항 준비”


- 총원! 배치붙어.

- 안전, 안전, 안전. 배치붙어!


기관에 시동을 걸고 갑판에선 바지선에 연결된 홋줄을 풀고 보슨 파이프 소리가 울렸다.


- 피휘이이 ~

- 출항 ~


참수리호는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출항 이후 무전으로 상황이 전파되었다.


일본 순찰선이 독도 인근 영해를 침범했고, 그에 따른 대응으로 가장 빠른 참수리가 선제적으로 출격한 것이었다.


‘해경이 있을 텐데······.’


참수리는 41노트(76km/h)의 속도로 바다 가르듯 나아갔다.


1시간 남짓 항해 끝에 독도 동남쪽 해역에 가까워졌다. 선내 방송 마이크를 잡았다.



“정장이다. 현 위치에서 들어라, 곧 독도 경비 지원을 위한 해역에 도착한다. 일본 순찰선을 밀어내는 차단 기동을 수행할 예정이다. 작전에 앞서 함대구호를 발사한다.”


수병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상황이 전개되기 전에 준비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1함대!”


- 사수하자, 동해 바다.


“1함대에~”


- 사수하자, 동해 바다아~!



우리 해경 경비정이 보였다. 일본 순찰선을 퇴거시키기 위해 기적을 울리며 차단 기동 중이었다.


예사롭지가 않았다. 한 척이 아니었다. 우리 영해를 침범한 일본 순찰선은 세 척이었다.


해경의 차단 기동에도 일본 순찰선은 물러나지 않고 독도 인근 해역을 빙빙 돌고 있었다.


마치 약을 올리는 듯했다.


대형 군함으로 대응할 시 자칫 우발적인 상황을 대비해 참수리 고속정 편대를 출동시킨 것이라 짐작했다.


이에, 우리 참수리 고속정 편대가 나섰다. 전화수의 간결한 목소리와 수병의 복명복창 소리가 선내에 울려 퍼졌다.



- 실전!

- 현시간 상황부로 실전!


삐잉, 삐잉, 삐잉, 삐잉.


- 총원, 전투배치.

- 총원, 전투배치이~


- 선봉함대!

- 1함대~


- 사수하자!

- 동해바다 ~



군함이 출동했음에도 일본의 순찰선은 물러나지 않고, 우리의 차단 기동에 물대포를 쏘기까지 했다.


‘이, 미친것들이.’


쉴 틈 없이 울리는 무전음 사이로 편대장 정발 소령의 짜증스럽고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통신 절차마저도 생략했다.



치지지직!



“이찬 대위! ”


“네! 편대장님.”


“저 새끼들! 그냥 쏴 버려”


“네? 편대장님 교전수칙상······.”


“저 왜놈 새끼들이 우리가 못 쏜다는 걸 아니까 저러는 거 아냐? 그냥 쏴!”


“편대장님 상부 명령은······.”


“아 몰라! 저 새끼들······ 이 대위!”


“네. 편대장님.”


“C4I에 기록으로 남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명령이다. 징계든 영창이든 내가 간다. 쏴 버려!”



말로는 그를 말리고 있었지만, 편대장 정발 소령의 명령에 내심 기뻤다.


상부 꼰대들도 속으론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나 역시 징계를 면하긴 어렵겠지만, 마이크를 잡고 명령을 내렸다.


나는 한 발 더 나갔다. 경고 사격보다 수준 높은 대응으로 실질적인 위협이 되어야 저들이 물러날 것 같았다.


76mm 함포 사격을 명령했다.



“표적, 일 순찰선 선미······.”


...


“76포. 조준 좋으면, 쏘기 시작!”


마이크를 잡고 있던 사격통제관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조준 좋으면 쏘기 시작!


- 5,

- 4,

- 3,

- 2,

- 1.

- 파이어!



쾅, 쾅, 쾅, 쾅!




...



* * *


* 천체망원경 일화는 작가의 실제 경험입니다. 혹여 배율이나 관련 고증을 지적하시는 분이 있을 듯하여 남깁니다.


* 1545년은 이충무공이 탄생한 해입니다.


* C4I : 통합전장관리체계 –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intelligence


.

03-PKMR.jpg

PKMR 참수리 고속정


.

03_KP-76L.jpg

KP-76L 76mm 함포 사격장면 - 동급의 이탈리아 오토멜라라 함포보다 우수한 성능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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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10화 – 또, 억까(抑苛) 당했다 NEW +4 11시간 전 127 10 11쪽
9 009화 - 음영대(陰影隊) +4 24.07.08 215 9 11쪽
8 008화 - 마니응개(亇尼應介) 24.07.07 260 10 13쪽
7 007화 - 피험지로(避险之路) 24.07.06 314 13 12쪽
6 006화 - 어그로(御居路) 24.07.05 347 14 14쪽
5 005화 - 격군(格軍) +2 24.07.04 392 9 13쪽
4 004화 – VHF 156.8 +4 24.07.04 458 12 15쪽
» 003화 – 76mm 24.07.03 499 14 13쪽
2 002화 - 수조규식(水操規式) +2 24.07.03 648 13 16쪽
1 001화 – 프롤로그, 증귀선(蒸龜船) +6 24.07.03 683 2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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