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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조선의 반격 - 증기와 대항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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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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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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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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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화 - 격군(格軍)

DUMMY

005화 - 격군(格軍)



미래의 지식으로 일본을 무력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우선은 인간 이순신으로 성장해야만 했다.


...


부방(赴防) 길은 꽤나 고된 여행이었다. 임지인 함경도 삼수(三水)까지 굽이굽이 돌아 2천 리가 넘었고 길도 험했다.


흔히 험한 외지를 이르는 삼수갑산(三水甲山)의 바로 그 삼수였다.


2달 남짓 걸린 여정에서 절반은 사가나 주막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한번은 산길에서 노숙하는 일도 있었다.


산짐승을 경계하느라 모닥불을 피우고 잠이 들었는데, 난데없는 호랑이 울음소리에 모두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임지인 삼수에 도착했다.


신참례(新參禮, 신고식)나 고참 군관들의 텃세를 걱정했지만. 3천 리 변방으로 부방 온 동병상련이 있었는지, 제법 따뜻하게 맞아 주어 근심을 덜었다.


함경도는 모든 것이 거칠었다.


오랑캐뿐만이 아니었다. 옷깃을 파고들며 불어오는 삭풍(朔風)도, 그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사람들도 모두 거칠었다.


거친 환경과 부족한 자원으로 임무를 완수하려면, 결국 사람이 가진 힘을 끌어내야만 했다. 그런데 인구도 여진족에 비하면 그 수가 적었다.


...


한번은 권관과 갑사(甲士)들 사이에서 활 잘 쏘는 선사(善射)를 뽑기 위한 시합이 있었다.


뜻밖에도 내가 거수(居首, 1등)가 되었다. 이에 큰 항아리와 돗자리 여러 개와 좁쌀과 콩 1석, 귀리 5석, 누룩 20덩어리를 상으로 받았고.


받은 것 중 기물은 군영의 비품으로 쓰고 곡식과 누룩은 고생하는 북방 병사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작은 나눔이었지만 병사들은 무척 좋아했다.



“권관 나리가 용력(勇力)만큼 인심도 좋으시니, 소인들 복입니다요.”


“하하하. 복까지야.”


“아이고~ 나리, 오만가지 트집을 잡아 허구한 날 매타작을 벌이는 권관도 부지기수입니다요. 저흰 억울한 매만 맞지 않아도······.”


“그래, 내 자네들 고충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네.”



갑사와 병졸에게 단순히 계급과 권위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중과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두 번 생각하고, 세 번 움직였다.


진심을 전하고 진심을 끌어내기 위해선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어느새 부방을 떠나온 지 2년이 넘어갔고, 훈련원 봉사로 승차(陞差)하게 되었다.


부사와 판관이 와서 크게 전별연(餞別宴)을 벌여 날이 저물 때까지 술을 마셨다.


다음날은 첨사가 찾아와 작은 술자리를 열었고, 그다음 날은 갑사와 병졸들이 십시일반 술과 고기를 내어와 그간 쌓인 정을 확인했다.


때때로 ‘이놈의 회식 문화는 수백 년 이어 온 것이구나’라고 혼잣말을 하며 힘들어했지만.


홀대받으면서도 소임을 다하는 북방병사와 3천 리 타향으로 부방 온 군관 위무하는 풍속이라 외면하기 어려웠다.


이 또한, 지휘 통솔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니 견딜 만했다.


그렇게 3년의 긴 부방의 의무를 마쳤다. 말하자면, 군번이 꼬여 말뚝 복무를 한 셈이었다.


어느새 정든 얼굴들과 다시 볼 날을 기약하면서 도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훈련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훈련원은 조선 무관의 무예 훈련 및 병서(兵書)의 습독(習讀)을 관장하는 곳이어서 늦깎이 무관으로서 나쁜 보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양에서의 생활도 잠시뿐이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발령이 났다.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그 덕분인지 봉사가 된 지 1년 만에, 전라좌수영의 발포 만호로 임명되었다.


종8품에서 종4품으로 무려 8단계를 단번에 올라간 파격적인 승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때가 몇몇 사건으로 인해 병조와 조정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시점이었다.


발포 만호의 소임을 맡기 위해 남도의 땅끝으로 향했다.


수군과의 첫 인연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만호(萬戶)가 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만호는 1만 호를 통솔한다는 뜻이나, 실제론 각 도(道)의 진(鎭)에 배치한 종4품 무관직이었다.


이때부터는 군관이 아닌 장군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었고 대우도 달라졌다.


붉은색 철릭을 입은 내 모습이 제법 멋스럽다고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 철릭 (天翼) : 조선의 무관 복장


하지만 그런 기쁜 마음을 누릴 사이도 없이 또, 다른 슬픈 소식이 전해져 왔다. 형 이요신이 죽었다.


‘아, 이때부터 한 사람씩 떠나갔구나······.’


슬프고 슬펐다.

3형제 중 두 형이 모두 세상을 달리한 것이다.


어머님의 슬픔은 헤아릴 길이 없었고, 위로할 방법도 없었다. 이제 내가 장남의 역할까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슬픈 기색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군무에 매진했고, 몸과 마음을 쉬지 않은 것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성곽을 보수하고, 함선의 점검하는 것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전과 병선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조선의 수군은 천역(賤役)으로 대대로 세습된 경우가 많았고, 노비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수군의 전문성이 확보되었다는 걸 후일 깨달았다.


만호란 지위를 내려놓고. 오랜 기간 수군으로 신역(身役)에 종사한 고참 수군들을 늘 곁에 두었고, 그들에게 작은 것 하나까지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바람과 물길, 날씨와 조류 등 바다의 형세를 배웠고. 그것은 인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겸손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때때로 나이 많은 수군 병졸들의 경험과 지혜에 놀라곤 했다.



“자네는 어찌 그리도 날씨를 잘 맞히는 것인가?”


“만호 나리. 쇤네, 그저 짐작할 뿐이옵니다.”


“그 짐작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구먼.”


“무릇 달도 차면 기울고, 꽃도 피면 지는 것이 만물의 이치이듯. 하늘도 다르지 않사옵니다.”


“호오~”


“날이 맑고 가문 것이 오래가면 비가 오기 마련이지요.”


“...”


“그런 즈음 바람에 코끝이 촉촉해지고, 새가 낮게 날고, 개미가 둥지를 옮기면 어김없이 비가 옵니다.”


“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물길과 바람은 어찌 그리도 잘 아는가?”


“물길이야 세 시진(6시간)마다 바뀌는 것을 할아버지에 할아버지 때부터 알고 있었고. 바람도 꽃이 피고 지고, 이슬과 서리가 내리는 것에 맞추어 바뀌는 일이 많습니다요.”



변화무쌍한 날씨와 거친 바다였다.


제갈공명처럼 동남풍을 불어오게 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예측하는 것이 필요했다.


군관에게 일러 선임 수군들의 경험담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그것을 정리하도록 지시했다.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철저한 준비가 없이는 결코 이 바다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군기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노를 젓는 격군(格軍)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격군의 체력을 배려한 함선의 운용이 중요했다. 그들이 힘을 내고 전투력을 보전하기 위해 보급의 중요성도 새삼 깨달았다.


판옥선은 대략의 27m의 길이로 참수리보다 짧았지만, 폭이 상당히 넓어 참수리급과 비교해 조금 더 큰 체급의 배였다.


발포의 판옥선과 병선을 모두 이끌고 기동 훈련을 했다.


수전이야말로 ‘손발이 맞아야’만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배는 가만히 두어도 흘러가고, 멈추고 싶은 위치에 멈추기도 쉽지 않았다.


해상 기동 훈련을 하면서 전생의 기억이 속속 되살아나곤 했다.


‘아~ 느려도 너무 느리다.’


판옥선의 속도는 아무리 격군을 독려해도 5노트(시속 9km)를 넘기 힘들었다. 또, 그렇게 격군을 몰아붙이면 한 식경(30분)도 버티기 힘들었다.


판옥선의 적정 속도는 3노트(시속 5.5km)로 현대 군함의 10분의 1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41노트의 참수리 고속정에 대한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정말 미칠 만큼 느리게 느껴졌다.


영화 속에서 보던 판옥선의 속도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런 속도로 적선을 충돌해서 부수는 건 불가능해. 역시 문헌을 오독해서 생긴 오해가 틀림없어.’


그렇지만,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판옥선의 전술 기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다.


결국, 그런 느린 움직임 속에서 적장과의 치열한 수싸움이 전술의 핵심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즈음, 미래의 지식으로 더 빠른 군선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증기기관은 이 시대의 기술로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판옥선 2척에 사후선 2척이 고작인 발포 만호 직책으로는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도 없었고.


또, 언제 다른 곳을 발령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만 머릿속으로 그것을 실행할 계획과 지식을 정리할 뿐이었다.


그렇게 군무에 정신이 없는 사이에 분한 일이 생겼다.


발포진의 검열을 위해 군기경차관이 발포로 왔다. 그런데 하필, 서익이란 자였고 그가 날 음해했다.



일전에 내가 훈련원 봉사로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서익은 병조 정랑이었다.



“이 봉사, 그러니까아~ 이렇게 저렇게 이쁘게 꾸며 주면 좋겠네. 그려~ 허허허.”


“정랑 어른. 무릇 공문이란 것이 더하지도 빼지도 않는 것이거늘. 어찌 이쁘게 만든단 말입니까?”


“아니, 이 봉사. 여기 한 줄만 바꾸면 되지 않나? 허허. 이 사람 내 자네 성의는 잊지 않음세.”


서익이 자기 친족 중 하나의 서열을 바꾸어 참군(參軍)으로 승진시킬 수 있도록 서류를 꾸며 달라는 말이었다.


“그리되면 밀려난 사람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또 그것은 거짓을 공문에 쓰는 일이온데. 나라의 녹을 먹는 자로서 그리는 못합니다.”


“어허이~ 이 사람아!”


“네에! 정랑 어른.”


“거, 한 줄 쓰는 게 뭐 어렵다고.”


“정랑 어른은 그 한 줄이 뭐라고, 병조의 기강을 욕되게 하시는 겁니까!” “뭐, 뭐, 이 이놈이!”



병조 정랑이면, 병조에서는 가장 끗발 좋은 보직이었다. 병조 전체의 인사를 좌우할 수 있는 자리로 좌랑보다 한 품계 높았다.


얼마 전 조정에서는 이조 좌랑 자리를 놓고, 동인과 서인으로 파벌이 갈리는 일이 있었던 만큼.


각 조의 판서는 정치적인 자리였고, 실무에서는 정랑과 좌랑이 실세 중의 실세였다. 품계는 낮았지만, 권한과 힘은 차관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병조 정랑에게 한낱 훈련원 봉사가 개기(開起)고 있었으니, 서익은 길길이 날뛰고 호통을 치며 윽박질렀다.


하지만, 나는 눈 한 번 껌벅이지 않았다.


서익이 목소리를 높인 덕분에 주변에선 좋은 볼거리라는 듯, 이목을 끌게 되었고. 명분이 없는 서익은 더는 일을 키우지 못했다.


그리고 기억에 잊혔지만, 소인배 서익은 앙심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군기경차관이 된 그 인간은 내가 군 기물을 전혀 보수하지 않았다는 허위 보고서를 조정에 올렸다.


그 결과,


나는 발포 만호가 된 지 1년 만에 파직당했다.


‘아, 아직 원균 얼굴도 모르는데 ······.’


첫 번째 파직이었다.


낙담할 부인과 어머니를 생각하면 참담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옳은 일은 한 것이기에 부끄러움은 없었다.


성심(誠心)이 이끄는 대로 살고 그 결과로 생긴 일에는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억울한 일이 밝혀질 것을 기대해서, 요원(遙遠)한 일에 부질없는 힘을 쓰는 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나라에 쓰임이 필요할 때를 위해서 병서를 읽고 수련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발포 만호에서 파직된 지 4개월 만에 도성의 훈련원 봉사로 다시 임용되었다.


여단장에서 소대장급으로 떨어진 것이긴 했지만, 다시 나랏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후일 누군가 전해 준 말로는, 그 당시 이순신이란 이름이 병조는 물론 조정 전체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상관의 명을 듣지 않는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한 자.’


그리고


‘대쪽 같은 선비이면서 용력을 갖춘 인재’란 인물평이 양립했었고. 나를 음해하는 세력만큼,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도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좋은 게 좋은 것’이란 말로 눙치고, 뭉개고, 적당히 봐주고, 알아서 해 먹는 관료사회에선 이순신이란 이름을 대놓고 두둔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종4품 만호까지 올랐다가 파직되고, 8 품계 강등된 종8품 훈련원 봉사로 봉직하게 되었다.


‘장군은 시작부터 롤러코스터를 타는 인생이었구나.’


훈련원에서 두 번째 봉사 생활이 익숙해지던 어느 날, 동료 봉사 하나가 헐레벌떡 관청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 봉사, 이 봉사.”


“난리라도 난 건가? 왜 이리 호들갑인가?”


“맞는구먼, 난리가 낮네.”


“?”


“야인 니탕개가 난을 일으켰다네.”



...



* * *



* 야인(野人) : 여진족


* 군기경차관(軍器敬差官) : 지방에 파견되어 군기를 점검하는 검열관.


* 개기(開起)는 ‘개기다’란 뜻으로 만든 말입니다.


* 삭풍(朔風) : 겨울철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섭고 차가운 바람.


* 갑사(甲士) : 갑옷을 입은 병사를 뜻하나, 조선의 정예 직업군인을 갑사로 불렀다. 현대로 치면 부사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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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10화 – 또, 억까(抑苛) 당했다 NEW +4 10시간 전 123 10 11쪽
9 009화 - 음영대(陰影隊) +4 24.07.08 213 9 11쪽
8 008화 - 마니응개(亇尼應介) 24.07.07 258 10 13쪽
7 007화 - 피험지로(避险之路) 24.07.06 312 13 12쪽
6 006화 - 어그로(御居路) 24.07.05 345 14 14쪽
» 005화 - 격군(格軍) +2 24.07.04 391 9 13쪽
4 004화 – VHF 156.8 +4 24.07.04 455 12 15쪽
3 003화 – 76mm 24.07.03 497 14 13쪽
2 002화 - 수조규식(水操規式) +2 24.07.03 645 13 16쪽
1 001화 – 프롤로그, 증귀선(蒸龜船) +6 24.07.03 680 2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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