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 병선조선장(兵船造船將)
018화 - 병선조선장(兵船造船將)
정읍에서 전라좌수영까지의 거리는 제법 긴 여정이었다. 같은 호남이었지만 고속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구불구불 돌아 족히 400리 길은 되었다.
담양, 곡성, 순천을 지나면서 지세와 풍물을 확인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담양은 역시 대나무의 고장이었고, 곡성을 지난 때는 그 길이 험해서 고생했다.
후일, 곡성의 유래가 고려 시대부터 길이 험하여 곡소리가 난 다 하여 곡성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순천에 도착하여서는 그곳도 전라좌수영의 관할이라 그곳에서 며칠 쉬어 가기로 하였다.
순천도호부사 권준도 이번에 새로 부임한 인물인지라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인물됨을 탐색할 기회가 생겼다.
그의 조상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집안의 가풍을 그대로 이어받은 인물이었다. 그가 나랏일을 걱정하며 운을 떼었다.
“좌수사 영감, 왜에서 사신을 보냈다는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네. 들었습니다. 짐작건대 작금의 인사이동이 왜의 사변을 대비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 영감도 그리 생각하십니까?”
“네. 왜국에서 보낸 국서가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건 왜국의 허세는 아닐는지요?”
일본은 미개한 나라로만 생각하는 시대의 인식으로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시대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했다.
“부사 영감. 자고로 우리 조선은 예로서 상하가 나뉘어서 백정조차 예를 알아 선비를 업수이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는······.”
“······.”
“그 문화가 미천하여 수백 년간 우리 조선을 상국으로 모시었으나, 대장경판본을 받아 가거나 교역이 필요할 때만 예를 갖추는 음흉한 족속입니다.”
“그러하지요.”
“그간 왜는 자국의 해적이 준동하는 것을 막지 못할 만큼 힘이 없었지만, 풍신수길(豊臣秀吉:히데요시)이란 자가 통일했다지 않습니까?”
“그 이야긴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미개한 나라가 대신들이 조정에 모여 통일을 했겠습니까?”
“아······.”
“칼로 피를 보지 않고는 통일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아, 그러고 보면 고려조 거란이나 몽골의 침략도······.”
“그렇지요. 그것은 예를 모르는 자가 힘을 얻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를 모르는 자가 힘을 얻었다라······.”
“힘으로 신분과 지위를 얻고 영토를 다투어 통일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여!”
“······.”
“미개한 나라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후일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과연, 좌수사 영감의 말씀이 이치가 통하는 말씀이옵니다. 듣기로, 작금에 왜를 통일한 자는 본디 종놈 출신이라고 하더이다.”
“그렇습니다. 왜의 풍속은 왕은 절간을 불상처럼, 있기는 하되 힘도 없고 하는 일도 없다고 합니다.”
“허어~ 거참~ 왜가 미개하다 생각했지만 그 정도 일 줄은······ 여튼, 좌수사 영감 말씀을 들으니 더욱 경계해야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마당에 방자한 국서를 보냈다는 것은 우리 조선을 떠보기 위한 교활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또, 국서를 핑계로 조선을 정탐하려는 의도가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영감의 고견을 들으니 눈이 밝아지는 기분입니다. 이런 분이 이곳 전라좌수사로 오시게 되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저 역시, 나랏일을 걱정하는 권부사가 순천부에 부임하시게 되어 큰 근심을 덜었습니다.”
“다만, 통신사를 보내지 않은 지도 200년이나 되어. 왜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 걱정이옵니다.”
“그 사정을 모르니 더욱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좌수사 영감을 보좌하여 축성은 물론 군기를 정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조정에서 통신사 보내는 것을 논의 중이라 하나······.”
“아, 그러게 말입니다. 그게 논의할 사안입니까? 왜가 공식적인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저들은 이미 정탐을 다 마쳤다는 뜻 아닙니까?”
“······.”
“그런데 우리 조정을 아직도 보낼지 말지를 가지고 입씨름만 한다는 것이······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저 또한 부사영감과 같은 심정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근심 하나를 덜었습니다.”
“근심을 덜다니요?”
“이렇게 이치가 통하고 사리에 밝은 분이 순천을 맡게 되신 것 말입니다. 순천이 어떤 곳입니까? 전라좌수영의 뒷배가 되어 주는 중요한 지역 아닙니까?”
“하하하. 저도 좌수사 영감을 상관으로 모시게 된 것이 천운이라 생각합니다.”
“천운까지야. 하하.”
“아닙니다. 제 동문 중 하나가 원균이란 자 휘하에 들어갔다가······.”
권준은 말꼬리를 흐리더니 다시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서로 의기가 맞은 것에 흥분해서 뒷담화를 꺼낸 것이 걱정된 모양이었다.
“좌수사 영감 용서하십시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원균이란 자를 겪은 바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경계해야 할 자임이 분명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후일, 차차 깊은 이야길 나눌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아직 원균이 하삼도(충청, 전라, 경상)로 부임했다는 소식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순천은 전라좌수영의 5관 5포 중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다. 크기뿐만 아니라 인적, 물적 자원 역시 가장 많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 제법 괜찮은 인물이 부임한 것이다.
마음속으로 더 나은 인물이 없다면, 후일 그를 중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순천에서 출발하여 여수 전라좌수영에 도착했다.
10여 년 전 발포 만호로 재임할 때는 전라좌수영을 구경할 사이도 없이 1년 만에 파직되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좌수영 경내를 곳곳을 둘러보니, 과연 고려조부터 존재해 왔던 수군 기지다웠다.
크기가 크긴 않았지만, 둘레가 4천 척에 가까웠고 동서로 1200척, 남북으로 900척의 장방형의 성곽이 있었고. 성내에 민가도 2천여 호가 함께 있었다.
또, 성곽 곳곳에 1천여 개의 총혈과 6곳의 포루가 있어 이곳이 왜적에 대비한 수군 기지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쉬고, 다음날 동헌에 나가 입번(立番)한 상번군을 점고했다.
수군은 상번과 하번으로 나뉘어 2개월씩 입번하는 군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즉, 2달은 정규군으로 복무하고, 2달의 휴가를 받으면 하번군이 되었다. 하지만 말이 휴가이지 실상은 생업에 종사해야 했다.
이것이 너무 고되어 다들 수군을 피하였고, 성종 때 천역(賤役)으로 규정해서 강제적으로 수군에 종사하도록 했다.
말이 양민이지 수군은 칠반천역(七般賤役) 중 하나로 천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조선의 수군들은 목숨을 바쳐서 이 땅을 지켜 낸 것이었다.
좌수영 뜰에 상번군이 모두 모였다. 군적을 대조하면서 동시 그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남루한 행색과 어두운 혈색이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아, 수군 전력을 강화하려면. 이들의 건강부터 챙겨야겠구나······.’
정읍전장에 연통을 넣어 닭 200마리를 보내라고 했다. 좌수영 본영 군사들만이라도 먹여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들이 대우를 잘 받아야 다음번 차수인 하번군의 입번율이 높아질 것이고. 또, 속된말로 영양보충을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김천손에게 일러 정읍전장의 규모를 더 키우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찾아왔다. 나대용이었다.
그는 여느 무인과는 다른 느낌의 사람이었다. 그 눈빛과 말투에서 덕후 기질을 다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장군! 나대용 인사 올립니다.”
“오! 어서 오시게.”
“서찰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달음에 정읍으로 달려갔으나, 좌수사로 부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제 일처럼 기뻤습니다.”
“이런, 제가 급한 마음에 서찰부터 보냈다가 헛걸음하게 했습니다그려.”
“아닙니다. 오히려 잘된 일인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어째서?”
“좌수사 영감, 말씀 낮추시옵소서. 품계를 떠나 연배도 그렇고, 제 몸가짐이 더 어렵사옵니다.”
“아, 네······ 그리하겠네.”
“말씀 드립지요. 정읍 아전에게 좌수사 영감이 만든 대장간이 있다는 말을 서찰을 전해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정읍 대장간을 찾아가 언복이란 야장을 만났지요.”
“······.”
“또 그가 만든 증기기관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장군이 좌수사에 부임하신 것을 돌아보니, 제게 서찰을 보내신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오! 먼저 말씀해 보시게.”
“장군은 언복이 만든 증기기관을 적용할 새로운 군선을 제작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까?”
“하하하. 척하면 척이라더니. 그렇습니다. 나 군관”
“아, 저는 지금 휴직 중이라 관직이 없습니다.”
“내 자벽으로 자네를 군관으로 임명할 터이니 함께 일해 보지 않겠나?”
자벽(自辟)은 지방관이 자신이 쓸 관원을 직접 천거해 임명할 수 있는 제도였다.
“감사합니다. 장군. 제 뜻을 알아주는 분 아래 일하게 된다니 꿈만 같습니다.”
“내가 고마운 일이지, 자네가 군선에 관심이 많고 재주가 있다는 소문을 익히 듣고 있었네.”
나대용은 품 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어 펼쳐 보았다. 기대한 대로 거북선의 설계도였다.
“오! 이것은······.”
“귀선입니다. 본래 이 배를 만들 것을 건의 드리려 했었는데. 많이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고치다니?”
“정읍 대장간의 증기기관을 보고, 이 귀선에 정말 필요한 기기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
“그렇지않아도 귀선을 설계하면서 무게가 무거워 격군이 많이 필요한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
“만약 그······.”
“증기기륜이네.”
“네. 그 증기기륜을 귀선에 장착한다면, 천하에 둘도 없는 강력한 병선이 될 것입니다.”
“나 역시. 좀 더 개량하여 병선에 적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네, 그런데 배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니 자네를 찾은 것이고.”
“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
“천지신명이 이 나라 조선을 구하고자 장군을 내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하. 여튼, 귀선을 만들 생각을 어찌하게 되었나 궁금하네그려.”
“을묘왜변에 많은 친지를 잃었습니다. 또 왜가 손죽도를 침범했을 때. 왜구들이 우리 고깃배와 군선에 올라타서 칼질하는 모습을 직접 목도 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아······.”
“그 광경을 본 후로 왜인에게 복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훈련원 별시를 보아 무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
“훈련원 봉사를 거쳐 무관으로 지내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뭔가?”
“생업에 종사하다 가끔 군역을 지는 우리 군졸이 왜병을 직접 상대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방책을 고민했고,”
“음.”
“그러다 우연히 고려 시대 과선(戈船)과 검선(劍船) 그리고 태종 때 귀선(龜船)이 있었다는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낙향하여 귀선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음······ 나 군관!”
“네. 장군”
“자네를 좌수영 병선조선장(兵船造船將)으로 임명할 터이니 그 귀선을 만들어보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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