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 10,000근
022화 - 10,000근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언복과 나대용, 이 두 사람은 제법 친해진 것 같았다. 둘은 현대말로 코드가 맞는 족속이었다.
본영과 관할 포구의 군기와 물자를 점검하는 한두 달 사이에 언복은 복합 테슬라 터빈인 증기기륜을 완성했다.
이제 그것으로 대장간과 목재소에 필요한 장비를 가동하면서, 동시에 소금을 굽는 것도 시험하고 있었다.
나대용은 앞으로 만들 증기선의 설계도를 들고 내게 찾아왔다.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도면의 곳곳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나 군관, 어찌 이런 생각을 다 했는가?”
“이 외륜이 밖에서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병선엔 큰 약점인 것 같았습니다. 만약 적의 화포가 외륜의 축을 직격하면 기동 불능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아무래도 병선엔 약점이 될 수 있겠구먼.”
“그래서 언복과 함께 수차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하려는 방법을 고심하다가, 바람개비를 떠올린 것입니다. 다만······.”
“?”
“이것을 쇠로 만들어야 해서 언복과 함께 이것저것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아무래도 물에 잠기는 부분이니...”
“그렇습니다. 바닷물에 부식되지 않도록 주석을 겉에 입히는 것과 청동과 황동을 쓰는 것까지 연구 중입니다.”
“대단하네! 대단해. 자네와 언복이 함께 하니. 마치······.”
“······?”
“세종대왕 시절 장영실과 신라 때 장보고가 만난 것 같으이. 하하하.”
언복과 나대용이 개발하는 스크루 프로펠러를 물을 밀어내는 기기란 뜻의 수추기(水推機)라 이름 지었다.
...
전라좌수영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본영의 판옥선을 4척 추가로 건조하고, 기존 판옥선의 보수도 마쳤다.
이로써 좌수영 전체에서 동원 가능한 판옥선이 21척이 되었다.
전라좌수군은 이제 제법 함대다운 모습을 갖춰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답답한 구석이 남아 있었으니, 그것은 해상에서 통신의 어려움이었다.
대열을 유지한 함대는 그나마 나았으나, 정찰을 보낸 포작선이나 탐망조와 통신은 정보 전달이 전혀 되지 못하였다.
그저, 정찰을 보낸 탐망선이 신기전을 쏘아 올리면. ‘뭔가 상황이 발생했다.’ 정도만 알 뿐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내 장수들 모아 회의를 했고, 새로이 방답으로 부임한 첨사 입부(立夫) 이순신을 전라좌수군 중위장(中衛將)으로 삼고 통신체계를 정돈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로 통신규식(通信規式)을 만들어 체계를 정돈하고 훈련을 통해 그 효용성을 검증해서 계속 보완해 나갔다.
통신규식에는 신기전을 쏘아 올리거나 연을 띄우는 방식으로 그 첩보의 대강을 알리고, 구체적인 정보는 청기, 홍기, 흑기의 개수 그리고 그 순서에 따른 정보를 미리 약속하도록 했다.
그리고 육안으로 그 정보를 전달할 해상 통신선에 각각 협선과 포작선을 배치하여 전방의 정보가 대장선으로 실시간 전달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했다.
통신규식을 정립하는 데 있어, 현대의 모스 부호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 규칙을 정할 수 있도록 입부 이순신에게 귀띔해 주었고, 영민한 그는 것을 활용하여 훌륭한 통신규약 집을 만들어 내었다.
이로써, 전방의 정찰선과 육상의 탐망조가 알리는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대장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신기전 1발은 적 발견, 2발은 교전 거리, 3발은 교전 중 혹은 긴급 상황을 뜻했고. 연을 띄우는 것은 그 색깔에 따라 안전 확보, 적선 없음, 주의 요망을 의미했다.
또, 청기와 홍기의 숫자와 배열에 따라 정보의 상세 내용을 전달했고, 흑기의 숫자에 따라 각각 300보부터 1200보 이상의 거리를 나타냈다.
그리고 시야(視野)와 시계(視界)가 확보되지 않았을 때, 해상 통신선의 간격을 좁혀 통신을 유지하는 규칙도 꼼꼼히 작성했다.
야간에는 신기전과 횃불의 조합으로 부족하나마 통신 소요를 보강했다.
그렇게 하나씩 군정을 정비하는 가운데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점점 증기기관을 활용하는 일이 많아지니, 머지않아 연료의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석유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 석탄의 양도 매우 제한적이어서 연료로 쓸 수가 없었다.
장작불로 충분한 화력을 낼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그 부피도 클 뿐더러 좋은 나무는 병선을 건조하는 하기에도 부족한 현실이었다.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언복이 찾아왔다.
그는 신기할 정도로 나의 고민보다 생각이 앞서 있곤 했기에 언복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쁜 마음부터 들었다.
“나리~”
“어, 그래.”
“나리, 이것 좀 봐 주십시오.”
“그래그래, 이번엔 또 뭘 가져왔는가? 하하하.”
언복은 마치 수수 팥단지 떡처럼 생긴 것들을 바닥에 우르르 떨궈 놓고 있었다.
“이게 뭔가? 경단처럼 생겼는데 먹거리 같지는 않고?”
“목재소에서 나온 톱밥과 쌀겨 그리고 짚을 썰어 송진으로 뭉쳐 굳힌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료인가?”
“네, 증기기륜 용 땔감입니다. 냄새는 조금 나지만 화력은 장작불보다 좋습니다요.”
“그래그래, 그렇지 않아도 고민이었는데. 버릴 것 다시 쓰는 것이니······.”
“쇤네도 톱밥을 버리는 게 아까워 생각한 것입니다요. 하하.”
“좋구만, 좋아.”
“근데 나리······.”
“어, 그래그래 얼른 말해 보게.”
“만들긴 했사오나 송진을 채취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옵니다. 전분으로도 가능하오나 왠지 먹거리를 연료로 쓰는 것이 께름칙하고······.”
“음, 무슨 말인지 알겠네. 걱정하지 말게 각 고을에 연통을 넣어 송진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요. 그럼 저도 이걸 만들 틀을 만들어야겠습니다요.”
“틀?”
“경단처럼 모양이 나온 게 소량이라 사람 손으로 빗어서 그 모양이 된 것입니다요. 엄청난 양을 사람 손을 빌려 만들 순 없는 노릇이니, 이걸 만들 틀과 기계를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요.”
“그렇지, 그래. 좋은 생각이구먼.”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언복은 생각의 고리가 잘 연결된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언복과 나대용은 이미 현대식 사고를 하고 있었다.
“아! 그건 그렇고 언복. 수추기(스크류)는 어찌 되어 가는지 궁금하네그려.”
“나대용 군관과 함께 여러 가지를 시험 중입니다. 한데 두 가지 어려움이 있어서 조금 시일이 걸릴 것 같습니다요.”
“그래 그 어려움이 무엇인가?”
“먼저 형상이 복잡하고 오묘해서 우리가 가진 재주로 만들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요.”
“······.”
“놋쇠나 구리로 만들면 모양을 잡기는 쉬우나 금세 휘어져 버릴 것 같고, 철로 만들자니 모양 잡기는 것과 녹을 방지하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음······ 그리고?”
“아직 그 모양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요.”
“어떤 모양이 물을 밀어내는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긴 합니다만, 배의 크기나 무게에 비추어 추수기의 형상은 어찌할지, 또 크기는 어느 정도여야 할지, 고민거리가 많습니다요.”
“그렇겠지.”
“수추기의 날개는 얼마나 비틀려야 할지도 결정을 못 하고 있습니다요. 작게 미리 만들어 보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그랬다. 언복이 총명하긴 하였지만, 유체역학과 수학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그러니 경험적 지식만을 가지고 스크루 프로펠러를 설계하기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겠네그려, 만들기도 어려운데 형상을 결정하지 못하니. 자네 고심이 컸을 것 같구먼. 일단 그 형상을 결정하는 것은 나도 같이 고민해 봄세.”
그렇게 해서 한동안은 전생의 기억과 씨름해야 했다.
배의 흘수, 배수량, 동력원의 힘, 스크루의 크기와 비틀림 각도, 회전수, 공동화 현상을 고려한 날개의 개수 ··· 얼핏 쉽고 간단한 개념 같았지만.
이런 것들을 결정하여 설계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이것만을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언복과 나대용에게 유체역학의 개념과 간단한 수학을 가르쳤다.
또, 그것을 효과적으로 알려 주고 실질적인 데이트를 얻을 수 있는 선박시험 수조를 만들도록 했다. 말하자면 모형 배를 먼저 만들어서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모형 배에서 스크루나 왜륜이 돌아가게 하는 것은 언복이 기막힌 생각을 해내었다.
활을 모형 배에 장착하고 활시위를 걸어 놓으면 그 장력을 기어에 전달해서 모형 배를 움직이도록 했다.
현대의 고무동력기 모형의 선박 버전인 셈이었다.
게다가 언복에게 더 놀라웠던 것은 활시위에 연결된 기어가 내는 토크 값 측정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기어 축에 연결된 도르래에 연결된 추를 감아올리는 힘으로 그것을 측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주먹구구식이긴 하지만 그 원리와 데이터 추출 방법은 현대의 선박 설계과정과 못지않았다.
그것은 단지 스크루의 형상만이 아니라 증기기관의 출력과 그에 상응하는 기관 크기, 연료의 효율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스크루 프로펠러 방식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었고, 언복이 밤낮으로 연구에 매진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스크루 시스템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첫 증기선은 나대용이 처음 설계한 후미식 외륜선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조선 최초의 아니 세계최초의 증기선엔 쾌륜선(快輪船)이란 이름을 붙였다. 빠른 바퀴를 가진 배란 뜻이었다.
쾌륜선의 진수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김천손이 전갈을 보내왔다. 정읍전장에서 생산한 화약을 운송하기 위해 병력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위험물이고 군사 물자이기에 호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견한 호송대와 김천손이 수레 행렬을 이끌고 좌수영 영내로 들어왔다.
“나리,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아이고, 천손 정말 오랜만이구먼. 자네는 무탈한가?”
“소인이야 나리의 배려로 탈이 날 겨를이 없습니다요. 하하.”
“그래, 이게 다 화약인가?”
“아, 화약으로 합약 하면 위험할 것 같아서 염초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정읍전장에서 나온 달걀도 있습니다.”
“그래, 그래 염초는 얼마나 되는가?”
“하하, 나리께서 무척 기다리셨나 봅니다.”
“수군에게 화약은 쌀이나 다름없으니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1천 근이 조금 넘습니다요.”
“오오오, 그렇다면······.”
“화약으로 만들면 1,500근은 될 겁니다요.”
“1,500근?!”
“그렇습니다.”
1,500근이면 약 1t에 해당하는 무게였다. 이 정도면 가장 큰 천자총통은 850회, 황자총통은 8,500회 발사할 수 있는 양이었다.
“첫 소출이 이 정도라면 앞으로는······?”
“염초밭의 구획을 나누어 다달이 나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렇지, 그래!”
“올해는 매월 1,000근이 되겠지만, 후년부터는 매달 10,000근씩 생산하는 걸 목표로 염초밭을 늘리고 있습니다요.”
“이······ 일만 근 ???!!!”
“다다익선 아니겠습니까? 나리가 기뻐하시니 저도 마음이 좋습니다요. 하하하.”
“아아······. 이렇게 좋을 수가 없구먼, 춤이라도 추고 싶네그려.”
10,000근이란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탄핵 되어 원균에게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인수인계할 당시, 수년간 비축한 화약이 4,000근에 불과했다.
그것도 취토군(取土軍)을 운영하면서 조선 수군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모진 고난 끝에 비축한 물량이었다.
1만 근의 염초를 화약으로 만들면 1만 5천 근은 족히 될 것이다.
1년만 비축하여도 당시 조선 수군 전체가 보유한 양의 45배가 넘는 화약을 비축하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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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토군(取土軍) : 염초 만들 흙을 구하는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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