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화 - 테슬라
016화 - 테슬라
증기기관을 만들긴 했지만,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언복이 만든 것은 초기 모델에 가까웠고, 크기가 무척 컸다. 또 열효율이 낮았다.
대장간이야 사방이 야적장이고 땔감 천지이니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증기선에 사용하려면 크기와 열효율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아직 증기기관을 배에 이식하는 것은 무리였다. 앞으로도 상당한 연구와 기술적 과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초기 증기기관은 광산에서 물을 퍼 올리는 용도로 쓰였고 그 효율이 매우 낮았다.
제임스 와트가 유명해진 것은 그 효율을 3배 이상 끌어올렸기 때문이었고 그 구조 또한 알고 있었지만, 현재의 대장간 기술로 한계점이 많았다.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 배어령(輩御令)까지 만들어 낸 언복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 가만, 베어링을 만들 수 있다면······.’
그때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그래 맞아 테슬라 터빈은 지금 기술로도 할 수 있을 거야!“
테슬라 터빈은 공대 시절 3D 프린터로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다.
니콜라 테슬라가 경계층 효과에 착안해 만든 테슬라 터빈은 매우 심플한 구조였고, 일반적인 증기기관은 물론 증기터빈에 비해서도 더 높은 효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구조가 놀랄 만큼 단순했다.
원형 디스크에 증기, 물, 공기등 유체를 마찰시키면 디스크가 돌아가는 아주 단순한 원리였다.
게다가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원운동을 바꿀 필요 없이 축이 바로 돌아가는 구조였기에 현재 기술에 더 적합할 것 같았다.
당시 테슬라 터빈의 유체동력효율을 열효율로 추정하여 계산했을 때 30%가 넘은 것으로 기억했다.
제임스 와트가 만든 초기 증기기관의 열효율이 3%이고 이후 개발된 복합 증기기관의 열효율도 12%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명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용화되지 못한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테슬라 터빈은 회전수가 높을수록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35,000 RPM에서 60% 이상의 효율을 가질 수 있고, 50,000 RPM에 도달해야 64%의 효율이 나왔다.
* RPM (revolutions per minute) : 분당 회전수
문제는 그런 고속의 RPM을 유지하면 기계 장치가 금세 고장 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외연기관의 시대는 끝나버리고, 테슬라 터빈의 원리는 동력 장치보다는 물이나 기름을 퍼 올리는 펌프에서나 사용되어왔다.
왠지, 내가 생각해 내지 못한 그 단점을 언복이 해결할 수도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들었다.
테슬라가 처음 테슬라 터빈의 시제품을 만들었을 때, 디스크의 회전 속도가 10,000 RPM 이었다.
1초에 100번만 돌아가도 6,000 RPM이다. 현재 조선의 기술로는 그런 고 RPM을 견딜 소재와 부품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낮은 RPM으로 돌리더라도 지금의 증기기관보다는 좋지 않을까?’
전생의 기억을 총동원해서 주먹구구식으로 계산에 돌입했다.
테슬라 터빈이 낮은 RPM에서 열효율에 대해서 말이다.
그 결과. 1,500 RPM을 넘기면 10% 가까운 열효율을 가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것만 되면 제임스 와트가 만든 증기기관의 열효율 3%보다 높은 효율을 내면서, 상대적으로 부피는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700 RPM만 넘겨도 5%의 열효율을 달성하는 것이고, 이 정도면 충분히 함선의 엔진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 상상으로는 그것을 이미 다 만들어 놓은 것처럼 흥분되었다.
증기터빈을 장착한 거북선이 왜선들의 대열을 휘저어 놓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바로 정읍 대장간을 찾아갔다. 대장간에 가까이 다가서자 새로운 굴뚝이 보였다.
언복이 환한 얼굴로 달려 나왔고, 그 뒤를 다른 야시장들이 따라붙었다. 그 모습에 이제 언복에서 제법 리더다운 모습이 엿보였다.
“나리, 오셨습니까요.”
“자네, 보고파서 왔지. 하하.”
“그렇지 않아도 나리에게 연통을 넣으려고 했습니다요.”
“그러게, 굴뚝이 하나 더 늘었구먼.”
언복은 재촉하는 손짓을 하면 대장간 뒤뜰로 나를 인도했다.
“이것 보십시오. 일전에 나리께서 말씀드렸던 그······.”
“선반 말인가?”
“네, 네. 이것 보십시오. 여기에 쇳덩이를 물리고, 돌리는 것입니다요.”
과연 그곳엔 증기기관으로 돌아가는 공작 선반이 있었다. 한눈에 그것이 정밀 가공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눈금을 보면서, 이것을 돌리면 눈금만큼 연마되도록 했습니다요.”
“오~ 자네를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만 드는구먼. 어, 이거 ···.”
“아~ 일전에 나리가 말씀하신 부니아를 응용했습니다요. 두 눈금이 만나는 지점을 확인하면 정확한 치수로 모재를 깎아 낼 수 있습니다요.”
“그럼 부니아도 만들었단 말인가?”
부니아(部泥亞)는 버니어 캘리퍼스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만든 단어였다.
“그러면 입쇼. 부니아를 먼저 만들고 이것을 만들었습니다요. 200분의 1치까지 정확하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요.”
* 1치 : 약 3cm
적지 않게 놀랐고 또 그만큼 기뻤다. 200분의 1치면 약 0.15mm였다. 테슬라 터빈에서 증기를 유체로 할 때 가장 효율적인 디스크 간격이 0.4mm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언복! 자넨 정말 하늘이 내려준 재주를 가졌구먼.”
“아이고, 나으리 과찬이십니다요.”
“내, 새로운 동력기관이 있어 찾아왔네. 이 선반을 보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구먼······.”
“분부만 내려 주십쇼. 나리.”
언복에게 테슬라 터빈의 원리와 구조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경계층 효과에 대해서는 금세 이해하였고, 고속의 RPM을 견디기 위해 좀 더 튼튼한 배어령(輩御令)부터 만들겠다고 했다.
“나리, 그렇게 되면. 빠르게 돌긴 하지만 힘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럼, 톱니바퀴 상자를 만들어서 여러 개의 톱니를 맞물리면 필요한 힘을 얻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요.”
그는 고속의 회전자에서 높은 토크 값을 얻어 내기 위해 기어박스를 제작을 제안한 것이다.
“그렇지, 그래. 자넨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아서 드는구먼. 하하하.”
“그리고 이게 너무 빨리 돌아가는 게 문제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요?”
“그렇지 느리게 도는 만큼 땔감이 많이 들어갈 거야······.”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깝쇼?”
“어디, 이야기해 보게.”
“아, 근데 이거 이름이 뭡니까요?”
“하하. 지어야지. 일단 바퀴가 도는 것이니 기륜(機輪)이라고 하세.”
“아, 넵. 그럼 증기기륜이 되는 것이구만요.”
“그렇지, 그래.”
“아무튼, 증기기륜에서 빠져나오는 증기도 힘이 남아 있을 것 아닙니까요?”
“오! 그렇지.”
“회전 바퀴가 느리게 돌게 만들면 그만큼, 빠져나온 증기에 힘도 많이 남아 있을 것이고요.”
“아! 그렇지 그래.”
“그러니 증기기륜을 여러 개 연결하면, 기계에 무리가 가지 않는 회전수로 큰 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요.”
“오오오, 좋은 생각이긴 한데. 각각 다른 바퀴가 도는 걸, 어찌 한곳으로 모을 수 있겠나?”
“그야, 톱니바퀴 상자에 증기기륜 각각의 축을 연결하면. 톱니바퀴를 돌릴 힘 만큼만 증기의 힘이 쓰이고, 빠져나간 증기는 다른 기륜을 돌릴 거 아닙니까요?”
언복은 자신이 말한 것을 즉석에서 그려서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은 테슬라 터빈을 기반으로 한 복합 증기기관이었다.
역사상 개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동력기관이었다. 실제 역사는 이것이 개발되기 전에 내연기관으로 넘어간 것이다.
‘아~ 이 친구는 다빈치가 아니라 에디슨급이구나······ 이런 인재를 천민으로 썩혔으니. 조선이······.’
“아, 언복 자네는 정말······.”
“나리,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요?”
“아니네! 아니야. 자네는 정말 장영실 대감이 환생한 게 맞나 보네그려.”
언복은 자신을 장영실에 비유할 때마다 환한 얼굴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자네는 공자님이 ‘스스로 배워 나간다.’라고 평한 자유(子游) 같구먼.”
“아이고, 뭔지는 모르지만 황송합니다요. 제가 평생 들은 칭찬보다, 나리께 들은 칭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요.”
“자네를 알아보지 못하고, 길을 열어주지 못한 세상이 어두운 것이지. 자네······.”
“네. 나으리”
“훗날 자네의 재주가 나라를 구하고, 그 공덕으로 자네 후손이 복을 누릴 것이네.”
“나리의 뜻을 받들어 소임을 다하겠사옵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자신감이 샘솟았다.
다가올 전란을 극복하는 것, 그 이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왕 증기 선반이 완성된 마당에 그에게 볼트와 너트의 개념을 알려 주었다.
언복은 설명을 듣자마자, 신이 나서 선반으로 달려가 즉석에서 볼트와 너트를 깎아서 가져왔다. 볼트에 너트를 돌려 끼우고는 자못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으리~ 정말, 정말······.”
“왜 그러나?”
언복은 즉석에서 깎아만 든 볼트와 너트를 양손에 쥐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이것만 있으면 못 만들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 여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싶습다요.”
“그리 좋은가?”
“그러면 입쇼. 그동안 한번 만들어 놓은 걸 뜯으려면 몇 날 며칠을 고민해야 했습니다요. 이제 이것만 있으면······. 나으리, 근데 이것의 이름이 무엇입니까요?”
“아, 나사네. 나사. 암나사, 수나사.”
“아~ 일께 들어가는 게. 하하하.”
구체적인 성과가 조금씩 보이긴 했지만, 시간은 부족했고 마음은 조급했다.
“사또오~”
이방이었다.
“어, 그래.”
“일전에 말씀하신 나대용이란 군관을 찾았사옵니다.”
“오! 그래. 나주목에 살던가? 서찰은 전했는가? 직접 전달했나? 혹 답장을 받았는가?”
조급한 마음에 쉴 새 없이 이방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아, 네. 사또. 서찰을 받은 자리에서 읽고 그 자리에서 답장을 써주었다 하옵니다. 여기...”
이방이 건넨 간찰(簡札)을 빼앗듯이 받아 들었다. 봉함처(封緘處)에 근돈(謹頓)이라 쓴 것에서 그가 단순한 무인이 아닌 예를 아는 선비라 느꼈다.
봉함을 뜯었다.
즉석에서 쓴 답장임에도 불구하고 서두와 후문(候問), 자서(自叙)로 이어지는 서찰의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 * *
······
한 번도 뵌 적은 없사오나 나리의 서찰을 받고 마치 옛 스승의 안부를 들은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창천의 하늘 아래 저의 뜻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지난날의 고단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필설로는 쓰지 못할 하고픈 말이 너무 많습니다.
주변이 정리되는 데로 한달음에 달려가겠습니다.
나대용 올림.
* * * * *
* 봉함처(封緘處) : 조선 시대 편지의 봉투 봉함의 접히는 부분.
* 후문(候問) :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것.
* 자서(自叙) : 자신의 안부를 밝히는 것.
* 근돈(謹頓) : 삼가 경의를 표한다는 뜻으로 편지나 봉송의 봉한 자리에 쓰는 말.
* 테슬라 터빈 관련한 유튜브 영상을 한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복합 테슬라 터빈은 상상의 산물입니다.
공학적 고증을 지적하는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터빈 블레이드의 마하수 같은) 소설적 허용으로 너그러이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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