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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2 님의 서재입니다.

헬메이커 : 회귀 따윈 필요없이 다 때려부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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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2
작품등록일 :
2022.09.02 09:11
최근연재일 :
2022.09.2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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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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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뱀 마사지

DUMMY

“하하, 아우님.”


이제, 살인마의 살기가 죽었다. 백가의 사용인들의 가슴에 얹힌 바위덩어리도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이성일이 새로이 사람을 죽이지 않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가의 대공자인 백우성도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 미친놈이 이제 철이 좀 들은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진짜 철이 든 건 이성일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이다.

이성일을 마주할 때마다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고, 도련님 소리를 빼먹지 않고, 물으면 숨기는 것 없이 대답하고, 언제나 철저한 예의를 갖추어 대하기 시작했으니까.


예의 바른 사람 싫어하는 사람 없다. 심지어 이성일도 그런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한다. 알아서 몸을 낮추는데 왜 굳이 모가지를 비틀어야 할까. 살인은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알아서 넙죽 엎드리는데도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죽여버리면, 누가 그런 미친놈을 따르겠는가. 구밀복검.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칼을 세 개는 숨기고 있을 것이다.


“그, 이제 흑철광산으로 부임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물론, 살인마가 전직 살인마가 되었다고 껄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이성일의 경지가 폐해진 것도 아니고, 마음을 고쳐먹고 과거의 일을 반성한 것도 아니다. 그저 심경의 변화가 와 사람을 안 죽이고 있을 뿐이다.


다시 살인마로 돌아오는 데는 잠깐의 변덕이면 충분하다. 천검 백가의 사람들은 다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직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안장하기도 전이다. 영안실에 여전히 시체가 누워있는데, 어떻게 이성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이 계속 이렇게 고분고분 공손하기만 하다면야 이성일도 그들을 죽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그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저놈이 오늘 나를 죽일지, 내일 나를 죽일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빨리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살인귀를 보낼 수만 있다면 아까운 것이 없었다.


“가야지요. 헌데 형님. 제가 지리를 잘 몰라서 요즘 공부를 좀 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하하하하! 그럴 수 있지. 암!”


부장님이 개그를 치면 대리는 웃을 수밖에 없다. 백우성은 이성일이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한다는 듯 동감의 미소를 지었다.

속마음이야 어쨌든, 겉으로는 이성일에게 완벽히 동조했다. 그러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그는 정말 이 동생이 무서웠다.


“그래서 말인데 형님.”

“응?”

“길잡이가 될 사람이 한 명 정도 있으면 좋겠는데요.”


이성일이 부탁했다. 하지만 부탁이라는 것도 부탁하는 사람 나름이다.


백서준의 부탁 따위야 한 귀로 듣고 한 발로 짓밟아도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이성일의 부탁이다. 이런 부탁은 부탁이 아니라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 부탁에 백우성의 속도 답답해졌다. 역시, 이놈은 빨리 어디로든 보내버리는 게 상책이다. 오늘 아침으로 먹은 버섯 스튜가 속에서 얹힌 것 같았다.

이성일과 불편한 동거를 한다는 것은 소화불량과 어지럼증, 두통, 역류성 식도염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삶은 결코 편하지 않다. 백우성은 더는 이렇게 못 살았다.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으니, 이 역귀를 제 발로 가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는 그나마 나았다. 외할아버지라는 의지할 만한 구석이, 심리적인 위안이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천검 백가의 사용인들은 이제 몰골이 좀비와 비견할 정도로 비참해졌다.


아침이 오고 침대에서 일어나면, 그냥 그대로 눈을 꼭 감고 있고 싶었다.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다. 죽음은 그들 바로 옆에서 언제라도 목덜미를 잡아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니, 삶이 그저 비참했다. 혹여나 들을까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조용하고 으슥한 방에서 묵언으로 이성일을 욕하는 것이 이들이 저지르는 최대한의 반항이다.


쥐뿔도 의미가 없는 반항이고, 스트레스는 풀리기는커녕 더 쌓이기만 했다.

욕은 하는데 홧병으로 죽는 날만 가까워지는 것이다.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미궁에서 실력이 없는 것은 죄다.


“하하, 내가 형으로서 우리 아우님 부탁을 꼭 들어줘야지. 길잡이가 필요하다고? 걱정은 말라고. 이 형님이 적당한 사람을 하나 찾아 꼭 붙여줄 테니.”


백우성은 실력이 없는 죄인이었으므로 하라면 해야 했다. 대체 누굴 붙여줘야 할지, 지금 고민이 많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좀 정상적인 놈이었다면, 이 기회에 자신의 사람을 곁에 심어 밀정으로 써먹을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일에게 그런 장난질을 치다 걸리기라도 하면 후환이 무궁하다.


굳이 후환까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굳이 심복을 붙여주었다가 변덕으로 쳐죽이기라도 하면 충성심 높은 부하 하나만 사라지는 것이다. 그걸 본 다른 부하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애써 충성을 바쳐도 죽을 자리로 보내는 것으로 보답이 돌아온다면 수하들의 마음이 흉흉해질 수도 있었다. 결국은 아무나 찾아 보내기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우리 가문에서 가장 박학다식한 사람을 붙여주지. 기대해도 좋다고.”

“그거 기대가 되는군요.”


예의상 하는 말이다. 이성일은 기대도 실망도 없었다.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필수적이지는 않다. 어쨌거나 그와 같은 완력이 있다면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준비할 필요가 없다.


가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주먹으로 뚫어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게 안 되는 부분들이 분명 있고, 그게 골치가 아프기는 하다.

하지만 길잡이의 유무가 그렇게 중대차한 문제일 리가 없었다. 대충 흑철광산까지의 길을 아는 사람 하나만 붙여줘도 충분했다.


“동생. 당분간은 누가 문 밖에서 노크를 해도, 죽이지 말고 문을 열어주게.”


백우성이 당부를 남겼다. 그래버리면 그는 또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성일이 헛웃음을 지었다. 누굴 노크를 했다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로 본다. 하지만 다 자신이 자초한 이미지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형님. 제가 제 사람은 또 잘 챙깁니다.”

“하하, 그럼 아우님.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게.”


얼굴에 가식이 가득한 형제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 백우성은 이제 욕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 모든 게 쓸데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해탈하고야 말았다.


자신이 아무리 속으로 욕을 퍼부어도, 이성일에게 무슨 효과가 있는가? 저주인형은 기분이라도 나빠지게 한다. 속으로 하는 욕은 그 정도의 효과도 없다.

수명이 짧아지는 것은 백서준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제는 체감이 오기 시작했다. 화를 내기에도 지친 백우성은 이제 그러려니 했다.


“저, 실례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뱀 먹이를 주고 있던 이성일이 들어오라 말했다. 그는 굳이 문을 잠그지 않는다.


누군가 자기 방에 들어와서 물건을 뒤질 걱정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중요한 건 전부 결계공간에 있으니까.

옷장에 21세기의 옷, 티셔츠나 양말, 팬티 같은 것들을 넣어두기는 했는데, 그런 걸 훔쳐가는 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성일의 팬티를 훔쳐갈 놈은 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일월회에 강제입회될 것이다. 그런 깡이 있으면 살면서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실로 큰일을 할 사람이었다.


“대공자 님의 지시를 받고 찾아왔는데, 백서준 공자님이 맞으신... 가요?”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안쓰러울 정도로 떨고 있는 여인이 이성일을 칭칭 휘감고 있는 하얀 구렁이를 바라보았다.


요르닐의 첫 번째 형질. 크기조절이다. 개미처럼 작아질 수도 없고, 수천 킬로미터의 거대괴수가 될 수도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더 경지가 높아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경지만으로도 이미 강아지처럼 작아질 수 있고, 기와집만큼 커질 수도 있다. 이성일의 팔에 달라붙기 딱 좋은 크기로 있을 수도 있고, 지금처럼 몸통을 휘감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다.


-기분 좋으세요?


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물었다. 이성일이 고개를 끄덕이고 덜덜 떠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형질의 도움이 없는 순수한 백서준의 신체능력은 요르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이렇게 뱀 마사지도 즐길 수 있고 말이다.


이성일의 원래 신체였다면, 뱀이 아무리 조여들어도 조금의 압박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마사지를 받는 느낌을 낼 수 있는 건 지금이 전부란 소리다.

지금이라도 형질의 도움을 받으면 요르닐을 찢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순수한 육신의 힘이 너무 약하면, 형질로 강화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 문제는 더 많은 살육으로 극복할 수밖에.

괜찮다. 세상은 넓고, 죽일 놈은 많다. 살면서 수두룩하게 보게 되는 것들이 그런 놈들이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데, 눈앞의 저 소녀는 아직은 죽일 놈이 아니었다.


어쩌면 앞으로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성일의 눈이 소녀의 머리 위에 난 한 쌍의 뿔을 훑었다. 사람을 보내달랬더니, 도깨비를 보냈다.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죽을 이유는 아니다.


“도깨비로군. 형님이 보낸 게 확실해. 우선 통성명부터 할까. 내 이름은, 뭐 잘 알고 있겠지만 백서준이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저는 설운이라고 합니다.”

“설운? 기억하지.”


이성일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짓했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쳐주고 싶어도, 지금은 뱀이 그의 몸을 칭칭 감아버린 뒤다.

그렇다고 마사지를 끝내고 싶지도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신체가 너무 강해지면 이런 자극과 기분은 느끼지도 못하게 된다.


“저기 잠시만 앉아 있어라.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지.”

“네에, 네...”


이성일을 바라본 소녀의 안색이 이상해졌다. 한 사람이 말하면 믿지 않을 수 있어도, 두 사람이 믿으면 의심하게 된다. 세 사람이 말하면 이제 의심의 여지도 없다.


하물며 천검 백가에 이성일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고작 세 사람이 전부일까. 아니, 반대로 이성일이 미치광이 살인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셋도 넘기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소녀도 이성일이 미친놈이라는 걸 믿었다. 다들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아주... 괴상했다!


알 것 다 아는 나이다. 여색에는 관심이 없던 백서준 공자가 이번에 새로운 여인을 들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인족 여인이 아마 눈앞의 저 뱀이리라.


참으로 참담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저 절규를 삼켰다. 자신이 이제부터 모셔야 할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니!


정조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흑단 같은 머릿결에, 흑요석 같은 눈망울. 이 도깨비는 나름대로 외모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외모는 있고 실력이나 권력이 없을 경우, 외모는 꼭 축복만은 아니다. 유튜브도 없는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즐길 만한 것이 몇 가지나 되겠는가.

여인은 음심이란 것에 민감했다. 젊은 남자들은 대체로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곤 했다. 그런데, 이성일은 아니다. 그 눈동자는 그저 고요했다.


이성일에게도 한때는 가슴 벅찬 사랑이 있었다. 즐거운 우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느 순간,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모든 평범한 즐거움이 그를 비켜가기 시작했다.

하나 세상의 이치가 참으로 공정해, 그는 그 대가로 지금의 힘을 얻었다. 몇 번을 선택하래도 예전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와 흘려보낸 옛 것에 다시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그만큼 뱀을 사랑한다는 거지!’


그러나 소녀가 이 사내의 인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사람이 살아온 역정의 반이라도, 차마 감이나 잡을 수 있겠는가?


덜덜덜. 몸이 저절로 떨리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자기 몸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도 싫었지만, 이런 남자는 정말로 처음이다. 문득, 이성일의 시선이 싸늘한 뱀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제정신이... 제정신이 아니야.’


옷을 벗고 받는 것도 아닌 건전한 마사지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그녀 자신이 더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사람은 원래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남들이 다 자기 보고 미쳤다고 해도 자기 자신은 끝까지 부인한다.


도꺠비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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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나찰 22.09.14 8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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