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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2 님의 서재입니다.

헬메이커 : 회귀 따윈 필요없이 다 때려부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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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2
작품등록일 :
2022.09.02 09:11
최근연재일 :
2022.09.25 22:05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3,991
추천수 :
50
글자수 :
199,433

작성
22.09.02 09:18
조회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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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7쪽

프롤로그

DUMMY

당신이 신이라도 좋고,

악마라도 좋습니다.

아니, 그저 한 명의 사람이라도 괜찮습니다.

부디 제 넋두리를 들어주세요.


“저는... 너무 많은 걸 바랐던 거죠...?”


이미 멀어버린 눈. 펄펄 끓는 몸. 어지럽지 않은 것이 비정상인 머리.

그리고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신음하며, 소년은 답을 구했다.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담배를 한 개비 물려다가, 멈추고는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이성일이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선은 지킨다.

이제 막 죽을 사람의 앞에서 담배를 피는 건 예의를 한참 벗어난 짓이니.


“그래, 너무 많은 걸 바랐지.”

“저는 말이에요, 늘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어요.”

“사랑을 받는 것보단 미움을 받는 게 쉬운 세상이니까. 그리고?”

“어머님들도 절 미워하지 않아주셨으면 했어요. 그래서 늘 착하게 굴었는데...”


아이가 흐느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살아오던 이 아이가, 언제나 자신의 탓을 하던 이 아이가, 살아남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궁은 검게 물들지 않고는 생존하기 어려운 곳이니까.


번쩍.


한 줄기 번개가 창문을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누군가가 이 빛에 비춰진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사내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한 소년과 똑 닮아 있었으니까.


이 둘은 형제도, 부자지간도, 사실 혈연관계도 아니지만, 세상은 넓고 닮은꼴로 생긴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성일이 이 아이에게 관심을 둔 것은 그런 연유다. 21세기의 유일한 생존자는 덮어쓸 가면이 필요했다.


“꼬마야, 너는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거란다.”


그러니 이 아이의 마지막을 지켜봐주는 것이다. 이성일이 툭 내뱉었다.


“너처럼 좋은 사람은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거든. 늘 그래. 좋은 사람은 항상 빨리 우리 곁을 떠나지. 나 같은 놈이나 이런 곳에서 죽지 않고 살아가는 거지.”


이 남자에게도 이루고자 했던 것이 있었으나, 결국은 처절하게 실패했을 뿐이다.

뒤늦게야 그는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뒤늦을 뿐이다.


독을 먹고 죽어가는 아이를 향해 이성일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묵념밖에 없었다. 그의 여덟 가지 형질은 하나같이 남을 치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꼬마야. 말했듯이, 나는 네가 죽으면 네 안으로 들어가 너로서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가요...”


소년은 그저 웃었다. 이미 그 눈빛은 삶을 반쯤 놓은 사람의 것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이는 실제로, 이미 한 번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으니까.


이성일이 담배를 물고, 불만 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기분만이라도 낸 채 침대에 걸터앉아 중얼거렸다.


담배를 피며 그가 태우는 것은 타르와 니코틴이 아니라 21세기의 향수다. 담배는 추억을 회상하는 도구일 뿐이니, 불을 붙이지 못해도 아쉬울 뿐 곤란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어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잘못한 일 하나 없이, 그저 이런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하는 아이. 그 어린 것은 이성일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툭. 이성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뱉었다.


“살아서는 이루지 못했지만, 죽은 다음에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해봐. 너는 이루지 못했던 것이라도, 나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목소리 님. 저는 착한 아이인가요?”

“너만큼 착한 사람은 예전에도 많이 없었지.”

“그런데 왜 저는 이렇게 아프고, 죽어가야 하나요?”


소년이 눈물을 흘렸고, 이성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곧 죽을 사람에게 현실을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미궁에서 사람의 목숨이란, 지구에서의 개미 목숨 같은 것이다. 누구라도 밟아 죽일 수 있고, 언제라도 밟혀죽을 수 있다. 사람 하나 죽는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생명의 소중함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은 가장 빨리 죽는다. 그리고 착한 사람도. 언제나 우리 곁을 빨리 떠나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곳은 정과 자비가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남을 해치지 못한다면 내일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곳. 이 미궁의 추악함을 비판할 자격은, 적어도 이성일에게는 없다. 그는 이 추악한 세상의 정점이니까.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도, 이렇게 아프게 죽었으면 좋겠어요.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아이는 눈을 감았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메마른 입술 사이로 물을 애타게 찾아보기에, 입 안으로 생수를 흘려넣어 주었지만 역시 허사였다.


“헉... 헉...”


삼다수보다 몇 배는 비싼 에비앙 생수조차 아이의 갈증을 조금 달래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성일이 머리 위에 얹어준 물수건을 치우고, 깨끗한 천을 하나 꺼내 머리 위에 덮어주었다.


그 심장이 이내 멎었다. 아이가 죽은 것을 보면서도 이성일은 감흥 없이 담담했다.


이제야 죽었나. 참으로 한 많은 삶이었겠구나. 이성일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미 그에게는 실체랄 것이 없었음으로, 사람의 형상이 곧 그림자로 녹아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살았어야지. 뭔가를 바꾸고 싶다면, 꾸역꾸역 살아서 뭐라도 했어야지. 미궁이란 곳은 살아만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는 곳이니까.”


소년의 그림자가 이성일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쭉 늘어나 소년을 감쌌다.

이미 죽은 심장이 박동하고, 눈동자가 어둠보다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생기가 사라진 눈에 흑광이 번뜩였다.


이제 이 몸은 원래 주인의 것이 아니라 이성일의 것이다.


“하지만 걱정 말아라. 네 몸이나마 영달을 누리게 해줄 테니까.”


소년은 그를 꿈 속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헛소리. 환청. 아니면 정신병을 의심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는 이성일이 계약을 제시하자 받아들였다.


네가 죽은 후에 네 몸을 가져가겠다. 그 대신 네가 바랐던 것을 이루어주겠다.

이성일은 아이와 그런 계약을 맺었다. 계약이라고 거창하게 말해도, 그냥 구두약속이다.


하지만 이성일은 약속을 휴지조각처럼 여기는 부류가 아니다.

그가 약속을 한 이상, 그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아이는 자신을 괴롭힌 모든 것들이 파멸하는 것을 바랐고, 이성일은 그 일에 대해서라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전문가다.


힐끔. 이성일의 시선이 문 밖을 향했다. 그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걸렸다.


인류사 최악의 살인마. 이성일이라는 살인 맛집이 개점하자마자,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 첫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저 손님은 이제, 다진고기다.


네가 직접 찾아온 이성일이다.

그 용기의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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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수신의 옆자리 22.09.09 109 1 13쪽
12 황홀한 지상 22.09.08 12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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