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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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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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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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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501,857

작성
22.10.0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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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 15. 사도

DUMMY

"... 지금까지 잘 지켜보다가, 지금 와서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박사의 하얀 가면이 아르의 굳은 결심을 바라보면서,


작은 새를 내려다보는 그윽한 천사처럼 메마름을 더했다.



"... 그게..."



아르는 박사의 메마른 물음을 듣고는,


바싹 여윈 작은 입술을 주저하듯이 우무 쭈물거리다가,



"저도... 사람을 구해보고 싶어서요. 항상 박사님이나 울란드의 도움이나 받기나 하고, 정작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잖아요."



부유선 나무 바닥을 향해 말했다.



"게다가... 다른 세계의 학생들은 지금과 같은 우리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 할거에요.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그저 지켜보기나 하는 우리를요..."



아르는 바닥을 향해 두리번거리던 시선을,


박사 너머 광활하게 솟아 있는 ‘서릿바람 새장’을 향해 들어 올렸다.


드르륵...! 쿵!


그러자, 이어지는 총소리와 폭음소리가 아르의 보랏빛을 타고, 대기를 진동키셨다.



"그래. 그렇군..."



박사는 자신의 허리만치 오는 아르의 단발머리 위에 손을 올려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넌 내게 남아 있는 양심과도 같은 존재. 네가 느끼는 건 결국, 내가 느끼는 ‘그것’과 비슷하겠지."



자상한 하얀색, 아르의 보랏빛을 둘러싼 메마름 속에 녹아 있는 한 줌의 애정은,


분명 아버지가 자식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감정이었지만,


박사의 하얀 가면은 여전히 기괴하기만 했다.



"아르, 네 심정은 알겠다만, ‘사도’로써 다녀오는 건 나 하나로 족하다. 그러니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하도록 하지."



박사의 ‘하얀 가면’이 가로로 쩌억- 갈라지며 ‘커다란 입’으로 변하자,


그의 등 뒤로 새하얗고 따스한 날개가 부유선 갑판을 절반이나 덮을 정도로 커다랗게 펼쳐졌다.



"아. 아니... 괜히 저 때문에...."



아르는 보랏빛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박사에게 두어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너는 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일 뿐이니, 미안해하거나 감사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는 어디까지나, 지켜보는 자들이니."



박사는 등에서 흉포하게 뻗어 나온 자비로운 날개 펄럭거려,


아르의 손을 뿌리치고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



승천자의 부유 기구 속, 어느 자그마한 신도의 방.


딱 1인용으로 만들어진 침대와 거실, 화장실과 부엌이,


오밀조밀 알차게 구성되어있는 이 장소에서,


미카엘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의자에 몸이 속박된 채, 눈이 테이프로 칭칭 감긴 승천자의 신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 흐흐... 차라...리 죽여라... 어린양이여..."



승천자의 신도는 마치 미카엘을 비웃는 듯하게, 입가에 고인 피를 되새김질했다.



"...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군... 벌써 3명째 이 지경이라니..."



이들이 광신도들인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미쳐 있는 존재라고,


미카엘은 승천자 신도의 목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었다.



"윽...! 흐... 흐흐흐..."

"... 죽고 싶지 않다면, 성계로 가는 엘리베이터의 비밀번호를 불어."



무려 3배나 달하게 약물을 투약했는데도, 정보를 바로바로 뱉어내지 않는다니...


이들의 신체 능력과 정신력은 그지 평범한 일반인 수준이었지만,


사로잡힌 믿음만큼은 그야말로 일반인 아늑히 넘어서는 ‘초인’들이라,


미카엘은 점차 바닥을 보이는 약물에 조바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흐...흐... 그... 그분을 실망하게 해선 안 돼... 나, 나는, 믿음으로 짜 오른 ‘날개’이니까..."



우직!


의자에 묶여 있던 신도가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씨X 또...! 젠장...."



입으로 무수한 피를 쏟아내면서 고개가 축 치는 승천자의 광신도,


미카엘은 광신도가 앉아 있던 의자를 다리로 뻥! 차며, 욕설을 뱉어냈다.



'무슨 돈 단지 보관하는 것 마냥, 꼭꼭 숨겨 놨네. 망할 새끼.'



정태연의 숙박실이 있다는 성계.


그곳으로 가려면 환풍구가 아닌,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무조건 통해야 했으며,


신도를 통해 얻은 정보에 의하면 성계로 이어진 계단에는, 정예대원들이 3인 1조로 상시 보초를 서고 있다고 했다.


미카엘은 승천자의 정예병들이 과연 얼마나 강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가 겪은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그 정예병 중에서도 ‘천사보다 강한 괴물’이 없다고는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결국, 계단을 통해 성계를 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고, 관리가 뜸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성계로 가는 엘리베이터에는 비밀번호와 생체 인식이 걸린 데다가, 감시카메라가 상시 작동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성계에 잠입한다고 해도, 그곳에 ’정보‘가 있을지는 결국 내 운에 달렸다는 건가...? 후...'



확실히, 성계에는 정태연이 숨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보안을 철두철미하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라, 미카엘은 생각하고 싶었지만,


승천자 신도들의 상태를 보면, 솔직히 정태연을 보호한다 싶고, 충분히 그럴 것 같기도 했으니,


그곳에 정보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었다.



'한 명 더 잡아서, 주교의 위치를 알아봐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정면 돌파...?'



원래의 계획은 승천자의 주교 중 한 명을 납치해서 정보를 털어놓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광신도들은 주교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않은 관계로 점점 일이 곤란해지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그냥 성계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숨어 있다가,


누군가가 타려고 하면 그 사람을 낚아채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 마지막 놈에게 모든 약물을 투약해야겠어. 이대로 가면 아무런 정보도 얻지...'



미카엘은 피를 쏟아내며 죽어버린 광신도를 뒤로하고, 이 작은 방에서 나가려고 하던 찰나,


쿵!


승천자의 부유기구가 포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미카엘의 사방을 어느 때보다도 크게 뒤흔들었다.



'뭐야...? 우리 부유기구엔 이 정도의 고화력 무기는 실려 있지 않을 텐데...?'



우리 ‘칠성 모험가’는, 모험가의 대표 장길수가 속한 모험가로서,


타에 모범이 될 거라는 이유로 ‘미사일’과 같은 고화력 무기들은 싣고 다니지 않았다.


그건, 흔히 거대 새장들이 줄곧 하다던 표면상의 거짓말이 아니라,


실재로도 우리 ‘칠성 모험가’는 ‘우리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만 ‘최소한의 무기’를 사용할 거라는 말을 실천했으며,


이는 다른 모험가까지도 인정한 ‘양심’과도 같은 사항이었다.



'다른 모험가라도 온 건가? 아니면 벌써 ‘맹세한 자’들이?'



당연하지만, 새장 밖을 떠도는 건 우리 ‘필성 모험가’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이름의 모험가 무리도 있었다.


물론, ‘승천자의 부유 기구’ 베리어를 뚫을 정도의 고화력을 지닌 모험가라면 매우 한정적이라,


우리가 도움을 요청한 ‘그들이’ 벌써 이 장소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고,


그나마 지금 가능성 있는 것이 ‘맹세한 자’들일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엘리베이터 정면 돌파밖에 없겠어...'



만약, 맹세한 자들이 이곳에 도착한 거라면,


예상했던 대로 시간이 하루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으로써,


다급히 일을 마무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맹세한 자’들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막무가내라 정보가 소실될 위험도 있었지만,


정보를 빼가다 ‘맹세한 자’에게 들켰을 경우, 그들은 그 정보를 빼앗을 수도 있었다.


이는, 머릿속에 있는 정보까지도 포함해서였고,


아무리 같은 편이라도, 그런 것이었다...



'성계로 통하는 엘리베이터가 위치한 곳은 4층의 중심부, 현재 내가 있는 위치는 7층으로, 밑층으로 내려갈수록 경비가 삼엄해진다고 하니까...'



미카엘은 지금까지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나름의 지도를 그리며,


작은 방에서 나와 ‘승천자 부유 기구’의 레드 카펫이 깔린 복도로 발을 내디뎠다.



"... 형제여! 지금 우리 ‘부유 기구’에 사도분이 도착했다고 하네. 그러니 자네도 어서 그분을 저지하러... 흠? 형제는... 이 방의 주인이 아니네만..."



적막하던 ‘부유 기구’의 복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끌벅적해진 가운데,


붉은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쓴 한 신도가 방에서 나오는 미카엘에게 다가가다, 어딘가가 수상하다는 듯이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아... 형제여, 나도 그 소식을 알리고 있는 거야."



미카엘은 그의 의심에 찬 목소리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승천자 신도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던 ‘믿음에 찬 말투’를 담담하게 따라 했다.



"그런 거였군...! 미안하네. 그럼, 힘내주시게나 형제여."



남자는 미카엘의 의연한 태도를 보자 의심을 풀며 기분 좋게 웃어 보인 뒤 다급히 어디론가 뛰어갔다.



'... 사도? 방금 ‘부유 기구’가 뒤흔들렸던 게 그것 때문인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사도’라고?


승천자가 이용하는 단어에 대한 분석은 이미 ‘대부분’ 파악했는데,


미카엘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정보가 있다고 하니,


자신의 능력이 그저 ‘이 정도라는 걸’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뛰세요. 형제님! 저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아아... 여기서 사도님을 뵐 줄이야...!"

"어서 사도를 막자고! 하하하"



승천자 신도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뱉어내면서, 기쁜 표정으로 복도를 부랴부랴 뛰어갔다.


미카엘은 다행히 아직은 ‘맹세한 자’들은 온 것 같지 않아 한시름 놓았지만,


그놈의 ‘사도’라는 것이 뭔지 몰라,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채로,


자신도 일단은 의심받지 않게 신도들이 걷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



"사도님...! 저희에게 날개를 달아주신 분... 저희의 꿈. 저희의 희망... 제발! 절 죽여주세요!"



박사는 하얀 가면을 갸우뚱거리며, 식칼을 겨눈 채 달려오는 승천자 신도들을 피해,


다시금 뻥 뚫린 ‘부유 기구’ 벽면을 통해 날아올랐다.



"아아! 어디 가시나요!!!"

"이리로 오셔서 저희를 죽여주세요!"

"흑흑... 사도님!"



박사가 하늘 날아오르는 것을 본 그들은, 오열까지 하면서 서로 부둥켜안고는,


뚫린 벽면으로 몸을 던지거나,


들고 있던 식칼로 서로를 찌르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훨씬 미친 것 같군. 울란드, 이들의 ‘부유 기구’ 스캔은 언제쯤 끝나지?"



박사는 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자그마한 무전기를 꺼내어,


얼굴 대신에 열려 있던 커다란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대충 20분 정도 더 남았수... 그런데, 박사님이 접근하지 못할 정도면 얼마나 미쳐 있는 거요?"

"자신을 죽여달라고 행복한 표정으로 달려오더군."

"... 그럼 그냥 죽이는 것도 괜찮지 않겠수?"

"가끔, 냉정한 내가 보기에도, 넌 무서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농담이에요. 농담... 뭐, 그래도 아르의 부탁을 들어주다니. 제가 다 고맙군요."

"... 이번 일은 나와 관련된 것도 있으니, 그런 거다."

"하하 그러시겠죠... 그럼, ‘부유 기구’ 스캔이 끝나는 대로 이쪽에서 연락을 드리죠."



박사는 들고 있던 무전기를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곤,


하늘로 조금 더 높이 솟아올라, 이번엔 ‘부유 기구’의 옥상으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곳엔 ‘제국의 새장’ 병사들의 시체가 한쪽 구석에 잔뜩 쌓아져 있었고,


그 잔해 위에는 ‘머리 없는 커다란 덩치의 시체’ 한 구가 앉은 채로 쇠꼬챙이에 고정돼 있었다.



"흠..."



박사의 커다란 입이 다시금 하얀 가면으로 돌아오며,


하늘에 둥둥 떠 있던 수많은 천사를 향해, 메마른 시선을 보냈다.



----------



미카엘은 신도들이 사도라는 것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생각보다 간단히 성계로 가는 비상계단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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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4 - 13. 지켜보는 자 22.09.24 49 0 13쪽
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4 0 12쪽
56 4 - 11. 두려워하지 말라. 22.09.10 49 0 13쪽
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5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8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0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7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4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29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3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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