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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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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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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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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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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 12. 지켜보는 자

DUMMY

"자넨 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지? ‘새장의 여명기 시절’보다는 나아진 것 같나?"

"... 아니... 잠시만요... 지금 방금 전설 속 소년이라고 하셨죠?"

"그렇다만?"

"그 소년이 저... 승천자들의 우두머리라고요?"



나루는 서릿바람 새장 출입구에 정박 되어있던, 승천자들의 ‘부유 기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람들은 승천자들을 꽤나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그들은 200년 이상 이어져 온 생각보다 ‘근본’ 있는 종교다. 물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근래에 와서지만..."

"... 박사님!"



박사가 장황하게 승천자의 역사를 읊어대고 있을 때,


나루는 그의 말을 끊으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아르가 갑판 위로 뛰어 올라와 박사에게 말했다.



"저 새장을 구해주시면 안 되나요?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푸른 하늘에 떠 있던 아르의 자수정 빛 눈동자가 박사를 곧장 향하면서, 깊은 진홍빛을 띠었다.



"흠..."



박사는 아르의 표정 뒤로 함께 올라온 호야와 스카일러를 바라보며, 하얀 가면을 몇 번 긁적였다.


그러자 박사가 안고 있던 라프도 박사의 행동을 흉내 내듯, 커다란 손톱으로 자신의 얼굴을 몇 번 긁적거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여자, 박사님만큼이나 냉혈한 같은데? 사람이 먹혀가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기나 하다니."



호야가 기다란 꼬리를 곤두세우면서, 고양잇과 동물의 가느다래진 동공으로 나루를 쏘아봤다.



"뭐, 맹세한 자라고 하니, 산전수전 다 겪어 그런 거겠지."



스카일러도 호야의 말을 거들어, 뾰족하고도 작은 주둥이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만한 새끼 여우처럼 밉살스럽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이런~ 박사님이나 저나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나루는 그런 그들의 언행을 뾰족한 이들의 미소로 가볍게 무시하고,



"박사님이 말씀하신 그 전설 속의 소년은 ‘태초의 새장’에서 실험당한 거 아니었나요? 뭔가...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얼른 대화 주제를 돌리는 동시에, 지금 여기서 가장 신경 쓰이는 아르의 생각을 읽었다.



'... 저 아이는 이런 나마저도 배려하고 있어... 대체, 어떻게 된 이타심인지...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다른 인간족 사이에서도 찾아보지 못한, 보라색 눈동자가 신비스러운 아르.


나루는 마음속으로 진한 보랏빛에게 사과하면서, 박사의 ‘하얀 가면’을 살폈다.



'‘맹세한 자’의 이름에 먹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전설 속 소년은 결국, ‘태초의 새장’에서 살덩어리의 실험체로 쓰인 게 아니었다니.


박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게 문맥상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황제님께 보고해야겠다고, 이미 머릿속에 정돈이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뒤집을 만한 정보가 갑자기 튀어나와,


나루는 전설 속에 무언가가 더 숨겨져 있다고, 머릿속에 정리한 이야기를 전부 갈아엎었다.



"좀 더 전설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시면..."

"박사님, 너무 정보를 흘리고 있는 거 아닌가요? 아무리 학생들을 위하는 것이라도 좀 도가 지나친 것 같은데 말이죠?"



호야와 스카일러 뒤로, 울란드의 그 커다란 덩치가 슬그머니 부유선 갑판으로 올라오며,


나루가 이어가려던 이야기의 흐름을 단번에 끊어 버렸다.



"맹세한 자, 더는 캐묻지 말았으면 좋겠군. 이 이상의 정보를 원하면, 너도 우리에게 그에 상응하는 ‘어떠한걸’ 주는 게 좋을 거다."



울란드는 호야와 스카일러를 지나쳐, 아르와 함께 박사 앞에 섰다.



"애들이 박사님께 싫은 소리 못하는 거 알잖수."

"그렇지."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거요?"



울란드의 말에, 박사의 ‘하얀 가면’이 아르를 향했다가, 품에 안고 있던 라프에게 옮겨졌다.



"아무래도 모험가 세력이 이번 천사 사태에 끼어들려는 모양이로군..."



박사의 ‘하얀 가면’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라프를 향해 말했다.


라프는 자신을 바라보는 박사의 기괴한 ‘하얀 가면’을,


연인을 어루만지듯 커다란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그건, ‘제국의 새장’을 경계하는 거겠죠. 다른 이들로서는, ‘제국의 새장’이 생체 무기를 차지하려는 것처럼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울란드도 박사처럼 라프를 잠시 바라보다가, 나루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팔짱을 꼈다.



"‘제국의 새장’은 안드레이 황자가 암살당했다는 좋은 명분이 있겠지만, 황제는 좀 더 큰 계획을 세우고 있겠지?"



울란드의 커다란 그림자가 팔짱을 껴서 그런지 더욱 가파르게, 나루 앞으로 드리웠다.



"흠~ 다 알고 있는 것 같이 말하네요?"



이들에게 떠도는 감정, 별로 좋지 않다.


나 때문인가?


아니, 이들은 처음부터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아르는 새장을 진짜로 걱정하고 있었지만,


스카일러나 호야나 울란드나,


전부 어딘가로 ‘감정의 시선’이 쏠려 있었다.


무엇 때문이지?


나루는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그 이유를 찾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연해요. 천사들은 분명 끔찍하지만, 그들이 가진 육체는 진짜 ‘신이 내려 준 것’ 만큼이나 강인하니까요. 써먹을 수 있다면, ‘제국의 새장’은 마다하지 않겠죠."



‘제국의 새장’이라는 말을 들은 그들의 ‘생각이나 감정의 요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건 자신에게 불만을 품는 건 아니었다.



"... 솔직하군. 아니면, 당연한 이야기라서 쉽게 인정하는 건가? 뭐, 그건 그렇고... 박사님은 정말 저 소년을 그저 지켜보실 거요?"



울란드가 소년을 언급할 때, 나루는 묘한 ‘감정의 역류’를 그에게서 느꼈다.


그렇단 말은 지금 이 불안한 감정이 그 전설 속 소년, ‘승천자의 교주, 정태연’ 때문이라는 건가?


나루는 울란드와 박사에게서 물러나 그들의 대화를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그 녀석한테 검은 가면의 손길이 닿았다는 게 확실해졌으니, 녀석은 우리 식구로 넣지 못하겠지. 아쉽지만 처분해야겠어."

"... 뭐, 박사님이 손 쓸 방법은 아예 없는 건가요? 그래도 공주님에게는 그 소년이 붙어 있는 게 좋을 텐데..."



박사와 대화하는 올란드의 감정이 위로 솟구치는 파도가 되어,


모래사장을 덮치면서 물보라를 일으켰다가, 다시 잔잔히 넓은 바다로 되돌아가며 진정되어져 갔다.



"미련은 틈을 남긴다. 내가 네게 경고해 준, 단점이지. 너도 나처럼 미련 때문에 ‘지켜보는 자’로서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박사는 울란드의 다시금 물보라가 일어나려는 감정을 ‘하얀 가면’으로 지그시 내려다보며, 단숨에 얼려버렸다.



"... 알겠수다... 그러면, 지금 당장 출발한 건가요?"

"아니, 조금 더 기다리도록 하지. 모험가가 기껏 목숨을 걸고 있는데, 여기서 끼어들면 괜히 민폐만 될 테니."



박사의 ‘하얀 가면’이, 아르의 ‘그 누구라도 반겨줄 수 있는 포근한 들판과도 같은 감정’을 바라봤다.



"아르. 내가 새장에 있는 사람들을 지금 당장 구해주지 못하더라도 참을 수 있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알겠어요..."



아르의 포근한 감정마저도, 박사는 알 수 없는 생각과 감정으로 겹겹이 감싸, 하얗게 바꿔 버렸다.



'... 생각보다 다들 박사님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르는 것 같은데...'



나루는 이제 이들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위해, 갑판 위 난간에 허리를 기댔다.


이들은 왠지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대화를 나눈 것 같아 조금 꺼림칙 했지만,


알 수 없는 정보라도 얻긴 했으니...



"그러면 방금의 대화는 기억 속에서 지우도록 하지."



나루는 순간적으로 닥쳐오는 박사의 하얗고 메마른 손을 피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



승천자의 ‘부유 기구’ 옥상에 펼쳐진 나무 갑판.



"아름다워요~"



그곳에서 승천자의 교주인 정태연은 손발이 족쇄에 채워진 채 무릎을 꿇고 있던,


‘서릿바람 새장’에서 붙잡은 ‘제국의 새장’ 포로들에게 두 팔을 펼쳐 들었다.



"천사들도, 사람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 명의 구원자라도 된 것처럼,


한 명의 선지자라도 된 것처럼,


정태연은 갑판 위에 모여 있던 포로들에게,


고귀하고도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 미친..."

"씨X"

"하..."



‘제국의 새장’의 포로들은 정태연의 온화한 미소를, 그저 한숨 소리를 뱉어내면서 슬금슬금 피했다.


그도 그럴 게 정태연의 양옆에는 키가 족히 3m가 넘어가는 조각상과도 비슷한 남자 두 명이 천사의 날개를 펄럭거리며 서 있었으니.


그 두 명의 천사는 보란 듯이 상의를 탈이 한 채, 극한으로 훈련된 ‘전사의 육체’를 드러내고,


‘머리’를 대신에 목 위로는 천사의 상징인 ‘동그란 고리, 할로’를 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사와 비슷한 저런 괴물까지... 저건 교주의 호위병이라도 되는 건가?"



‘제국의 새장’의 중대장 후유미는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 다른 두 천사를 경계하며,


옆에 있던 같은 부대원인 김미현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것 같은데요..."



김미현은 포로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정태연 양옆에 있던 천사를 흘끔 쳐다본 뒤 말했다.



"그런 거였으면 좋겠군. 천사보다 위험해 보이는 녀석이 여러 마리 있다는 건 정말 끔찍할 것 같으니까..."



명백히 다른 분위기를 뿜어대는 두 명의 천사.


단순히 폭식만을 즐기던 천사와는 다르게,


이들은 태어난 목적부터가 누군가를 심판할 것처럼 느껴진다고,


후유미는 아무리 ‘맹세한 자’라도 이 두 천사를 이길 수 있을지, 의심되었다.



"그러면... 저 두 천사 때문에 이곳에서 우리 힘으로만 벗어나지는 건 불가능하겠고... 고분고분 이들의 말을 들으며 기회를 엿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승천자들이 우리를 굳이 이곳까지 끌고 온 이유가 뭔지 뭐 들은 거라도 있나?"



후유미는 아까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로,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말했다.



"저도 뭐 들은 건 없지만... 포교... 아닐까요? 솔직히, 그 밖에 이야기는 상상하기도 싫네요. 막 신에게 제물을 받쳐야 한다고 우리를 바다에 던지던가, 심장을 꺼내던가... 으... 포교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흐흐..."



김미현은 허탈하게 웃으면서, 손에 찬 수갑을 덜덜 떨었다.


후유미는 그런 김미현의 수갑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면서 부르튼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안하게 됐어. 내가 통솔을 더 잘했더라면..."

"대장님도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니까... 사과는 그 망할 총사령관 놈이 해야겠죠."



김미현은 수갑을 찬 손을 미간에 가져다 댄 뒤,


쓱쓱 눈 밑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망할 자식... 단순히 지가 쫄아서 후퇴 명령을 하다니..."



김미현은 혼잣말로 허공을 항해 욕설을 내뱉었다.



"적어도 맹세한 자들이 오기까지 버틸 수 있었는데."



솔직히 그 정도의 화력이었더라면, 천사를 반나절 정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천사들이 예상보다 많이 밀려 들어오자,


총사령관은 뜬금없이 ‘중화기 무기’가 밀집되어 있던 전방지역의 병사들을 후퇴시키며,


자신이 위치한 ‘시청의 본부’를 지키라고 명령한 것이다.


처음에 이 명령을 들었을 때는 설마 ‘시청의 본부’가 날아다니는 천사들에게 뚫린 줄 알고 ‘중화기 무기’를 버리면서까지 급히 뒤로 후퇴했지만...


실상은 시청엔 천사들은 단 한 마리도 없었고, 총지휘자의 말로는 그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여 그런 거라고 했다.



"진짜... 그놈 때문에 허무하게 뒤지게 생겼네요. 흐흐..."



김미현의 고개가 땅으로 쳐지며, 분한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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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4 - 13. 지켜보는 자 22.09.24 49 0 13쪽
»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5 0 12쪽
56 4 - 11. 두려워하지 말라. 22.09.10 50 0 13쪽
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5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8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5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1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3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7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7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5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4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30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5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30 0 12쪽
35 3 - 4. 천사의 기술력 22.08.18 25 0 12쪽
34 3 - 3. 제국의 새장 22.08.17 24 0 13쪽
33 3 - 2. 제국의 새장 22.08.16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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