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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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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3,799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2.09.0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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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 - 4. 전설

DUMMY

"박사님이 그리 알고 있으라 했어요."

"어... 고맙다. 수고해"



연희는 마지막으로 들린 서진수 선배가 묵고 있던 손님용 방에서 나와,


부유선의 기다란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부유선의 기다란 복도.


하지만 왠지, 희망의 다리일 것만 같은 이 부유선의 복도는,


연희에게 있어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동아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 나도... 만약, 그 일이 없었더라면, 박사님을 따라갈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나는 분명 천사에게 옆구리와 다리가 뜯겨 죽어가던 중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한한 꿈속에 갇혀버렸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어느 따스한 물속에 담긴 채로 이 기다란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꿈이겠거니, 죽을 때 흔히 겪는다던 주마등이겠거니, 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깊은 잠에 빠지려고 했다...



'정신을 차렸군. 어지간하면, 그 정신을 붙들고 있는 편이 생존 확률도 높일 수 있다. 그러니, 잠이 오더라도 참아라.'



박사의 ‘하얀 가면’이 물속에 잠겨 있던 내게 말을 걸었다.


너무나 꿈같고 믿기 힘든 풍경이었지만,


결국에는 박사의 말 덕분에 나는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연희는 천사에게 뜯어먹혔던, 지금은 조금 욱신거릴 뿐인 옆구리로 손을 올렸다.



'... 그건 그렇고...'



연희는 욱신거리던 옆구리를 손으로 쓱쓱 문지르며,


부유선의 204호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학교 애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생존한 학생들 24명 중에서 박사님을 따라나선 학생은 고작 6명.


아무래도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 다른 새장으로 간다는 자체가 두려운 것도 있었겠지만,


박사님의 기괴한 ‘하얀 가면’도 한몫을 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만한 게, 박사님의 ‘하얀 가면’은 학교에서 천사들과 함께 등장한 ‘검은 가면’의 느낌과 매우 비슷했다.


그 부분은 자신과 의견을 함께하던 지환이도 서진수 선배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만에 하나... 제국의 새장에 잡혀서 무슨 실험이라도 당하고 있으면... 으... 젠장.'



연희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부비적댔다.



'... 아니야... 좋은 생각만 해야지. 분명 전부 무사할 거야... 이 세계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라고 로젤리나씨가 말해줬는걸...'



연희는 베개를 품에 안으며, 침대에 걸쳐 앉았다.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연희는 침대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있는, 화장대 위 커다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이 세계로 넘어온 후,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푸석푸석하게 마른 피부.


그래도... 김은지처럼 막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피부만큼은 탱탱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 있는 화장품은 한 번 바르면 다른 곳에 묻지 않는다고 했지? 게다가, 바른 느낌도 전혀 없다고 하던데...'



이 세계에 있는 화장품은 현지인인 자신이 봐도 꽤 신기할 정도라고, 로젤리나씨가 말해준 적 있었다.


뭐, 당시에는 ‘에이 그짓말~’라고 말하면서 가볍게 흘려 넘겼지만,


박사의 부유선을 탄 후 호야에게 물어본 결과, 진짜라고 했다.


다만... 아쉽게도, 호야도 로젤리나도 누구 하나 화장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


구경 한 번 못해보긴 했다...



'새장에서 잔뜩 사놓고, 학교로 돌아가면 애들한테 나눠 줘야지.'



학교로 돌아가는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날.


26명의 학생이 웃으면서 다시 모이는 그 날...


연희는 거울 속 또 다른 자신이 흐르는 눈물을 바라봤다.



----------



‘금빛 새장’ 출입구에 마련돼 있던 손님맞이용 특실.


휘황찬란한 금 조각상이 벽에 붙은 채,


이미 복도부터 매우 사치스럽게 빛나는 ‘금빛 새장’의 손님맞이용 특실은,


새장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아주 특별한 손님들을 받을 때나 쓰는 곳으로,


‘금빛 새장’의 대표는 이런 특실로 박사의 하얀 가면을 안내하며,


두 손을 싹싹 비비적대고 있었다.



"이 특실에 ‘제국의 새장’ 분들이 와계십니다요. 헤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나으리."



‘금빛 새장’의 대표는 꾸벅 고개까지 숙이며, 박사에게 인사했다.


박사는 그런 대표에게 슬쩍 하얀 가면을 돌렸다가, 안내한 특실로 들어갔다.



"아! 드디어 오셨군."



그러자 특실 안, 황금빛 소파에 앉아 있던,


단정한 제복 차림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사를 맞이했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



덩달아 옆에 있던, ‘뾰족한 이들이’ 인상적인 한 여자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 손을 하늘로 치켜세워 기지개를 켰다.



"‘제국의 새장’의 위대하신 황제님께서 박사가 ‘맹세한 자’에 들어오신다고 하여 매우 기뻐..."

"형식적인 인사는 그만두지. 그보다 그쪽에서 예고했던 조건을 어서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박사는 그 두 명 앞으로 걸어가, 하얀 가면을 까닥 옆으로 틀었다.



"그... 그쪽이라니! 감히 무엄하게..."



제복을 입은 남자는 박사의 무례한 태도에 당황하면서도,


박사의 이질적인 하얀 가면을 당당히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이려고 할 때.



"형씨~"



옆에 있던 여자가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들며 말을 가로막았다.



"어서 조건이나 말해줍시다. 황제님께서도 빠를수록 좋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런 건 ‘이런 상황’도 흘려넘겨 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남자는 여자의 말에 조금 고민하다가,



"그래... 그러셨지."



이내, 입맛을 다시면서 씁쓸하게 이성을 되찾았다.



"그럼, 조건은 ‘라프’다."

"흠...?"

"박사, 당신만 그 ‘전설’을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제국의 새장’의 황제님 또한 그 전설의 알고 있으시다."



남자의 말에, 박사는 하얀 가면을 몇 번 긁적이다가,


쭈욱- 남자의 머리로 그 새하얀 손을 뻗었다.



"?!"



순식간이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무엇이 일어난 지,


두 눈을 몇 번 깜빡이고서야 알아차렸다.



"... 무슨 짓이야?"



뒤로 밀쳐진 자신.


그리고, 박사를 가로막고 있던 ‘맹세한 자, 나루’.


그녀는 박사를 향해, 그녀의 전용 ‘천사의 기술력’인 ‘뾰족한 단도’를 겨누고 있었다.



"... 내가 긴에게 듣기론 당신은 꽤 이성적인 데다가, 가족까지 딸린 아버지라는 것 같던데, 정말 우리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야?"



남자는 뒤로 밀쳐져 벽에 부딪힌 머리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나루의 말과 행동을 주시했다.


‘맹세한 자, 나루’ 그녀의 특기는 빠르고 은밀한 기동력을 통한 정보 수집.


그리고 대상을 심문하지 않고도 심리적 수단을 이용해 진실을 털어놓게 만드는,


‘맹세한 자’ 중에서도 ‘얼굴 없는 자’라는 호칭이 붙은, 적진 한가운데서 활약하던 암살자로,


만약 박사가 또다시 자신을 공격해온다면 지금 믿을 건 ‘맹세한 자, 나루’ 밖에 없다고,


남자의 생존본능이 절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흠... ‘제국의 새장’의 황제가 내게서 라프를 뺏어가려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너희들은 검은 가면에 이어, 나까지 상대해야 할 거다."



남자가 듣기론, 박사의 목소리에서는 감정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박사의 그 이질적인 협박은,


등골을 서늘하게 지필 정도로 뼛속 깊이 ‘진심’을 다하는 것 같았다.



"... 그래... 당신의 반응을 보니, 진짜 그 전설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루는 박사에게 겨누고 있던 뾰족한 단도를 슬며시 뒤로 뺐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전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로, 조건을 수정하도록 하죠... 물론, 이러한 사항은 제 독자적인 결정인 아닌, 황제님의 권한 아래 있는 겁니다."

"... 일부로 자극적인 조건을 먼저 내밀고, 순환시킨 척하는 건가? 심리전에 상당히 능숙하군."

"... 들켰나요?"



나루는 뾰족한 단검을 박사에게서 완전히 거둬들였다.


남자는 뜬금없이 풀려가는 이 상황에, 뭐가 어찌 된 건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죄송하네요. 황제님께서, 어떻게든 ‘조건’을 받아내라 하셨기에 조금 과격한 방법을 택한 건데, 설마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일 줄은 생각도 못 했군요."



‘맹세한 자, 나루’의 사과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



어둑한 공간 속,


밝은 기포가 올라오던 커다란 실험관으로 ‘검은 가면’ 하나가 걸어왔다.



"아리야가 애타게 찾건 아모네는 며칠 전, 꽤 부자인 부부에게 입양되었더군요."



검은 가면의 말을 들은 커다란 실험관 속 아리야의 입에서,


보글보글,


목소리를 머금은 것 같은 기포가 일렁였다.


검은 가면은 아리야가 담긴 커다란 실험관에,


창백한 손바닥을 펼쳐 조심스럽게 올렸다.


삐릭-


그러자, 실험관 유리에 몇 가지 파형들이 떠오르며 길게- 이어졌다.



"호오... 뇌파와 심박수가 전보다 훨씬 진정되어져 가네요.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이란 건가요~?"



‘검은 가면’은 실험관 유리에 실시간으로 기록되던,


들쭉날쭉한 파형들을 보며 즐거운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이런 아리야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옛 전설’이 떠올라, 기분이 한껏 들뜬답니다."



‘검은 가면’은 커다란 실험관에 담긴,


삐쩍 마른 소년 아리야를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옛 전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사람들을 심판하고, 대가로 천사는 사람들에게 날개를 선물해 줬다는, 참으로 ‘신화’ 같은 이야기이지요."



‘검은 가면’의 들뜬 목소리가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하늘로 지저귀는 작은 새처럼, 날개를 펼쳤다.



"왜 이런 신화 같은 이야기에 아리야가 떠올랐냐 하면, 바로 신화 속 주인공이 한 소년과 소녀였다는 겁니다."



하지만 곧, ‘검은 가면’은 들어 올리고 있던 두 팔을 슬며시 내리며 뒷짐을 졌다.



"... 전설 속에서는, 한 인간의 무리가 그 무엇보다도 ‘거대한 새장’을 발견해 그곳에 들어가게 된답니다. 그러니 그 ‘거대한 새장’을 다스리던 공주... 한 소녀가 무척이나 분노하면서 그들을 쫓아내지만... 그들은 ‘거대한 새장’에 ‘생전 처음 보는 자원’과 수많은 ‘천사의 기술력’이 묻혀 있다는 걸 깨닫고는,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거대한 새장’에 자리 잡게 되죠."



뒷짐을 진 ‘검은 가면’은 아리야로부터 뒤돌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둠을 향해 쓸쓸히 혼잣말했다.



"그래요... 전설은 거기서 시작되었답니다. 거대한 새장에 모인 사람 중에는, 부모를 따라온 한 소년도 있었죠. 소년은 다른 욕심 많은 인간과 다르게, 너무 순수했습니다."



검은 가면이, 실험관 속 아리야로부터 몇 발짝 멀어졌다.



"아리야, 저는 그 순수함을 지켜내고 싶답니다. 그러니, 그 날개를 부디 받아주시면 좋겠군요. 하하하"



암-바야드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면서,


검은 공간 속으로 녹아들었다.



----------



황금향이 가득한 ‘금빛 새장’의 특실.



"그러니까 그 전설 속 ‘거대한 새장’이 ‘태초의 새장’이란 거군요?"



나루는 황금빛 소파를 두고도 여전히 자리에 일어서 있던 박사에게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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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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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4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7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4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2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1 0 13쪽
»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0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6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4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3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29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8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29 0 12쪽
35 3 - 4. 천사의 기술력 22.08.18 24 0 12쪽
34 3 - 3. 제국의 새장 22.08.17 2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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