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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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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3,827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2.08.2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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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 - 13. 맹세한 자

DUMMY

"그... 살덩어리를 포함해, 내가 암-바야드에 대해 아는 걸 전부 털어놨어. 이제... 나를 어쩔 셈이야?"



서지은을 포위했던 기다란 꼬챙이들이 어느덧 하나의 구체로 뭉쳐져, 긴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네 심박수를 측정 결과, 거짓말은 하지 않았군. 알겠다. 그럼..."



긴은 후드를 뒤집어써 황금빛 노을을 뒤로한 채,


서랍장 위에 놓아두었던 찻잔을 들고 방문을 열었다.



"음?!"

"라프... 너... 넌 누구? 라프..."



부유선 복도에 납작 엎드려, 문을 여는 긴에게 코를 벌름이고 있는 한 생명체.


긴은 자신과 에리아에게 들키지 않고 어떻게 이 생명체가 방문 앞까지 다가올 수 있었던 건지 의문을 드는 동시에,


이 생명체의 생김새를 집중해서 보았다.



'수인족은 아니다...'



수인족,


그들은 인간과 동물을 섞어둔 것 같은 생김새이긴 했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들은 동물보다도 ‘인간’에 더 가까운 존재들로,


그들은 그들 스스로 ‘동물’과 ‘그 동물의 생김새와 비슷한 본인’들을 각각 다른 개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개와 유사한 수인들은, 자신을 개와 별개의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알 수 있는 점은, 그들은 결국 하나의 형태.


즉, ‘인간과 비슷한 형태’들로 그들은 그들의 존재를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긴은 이런 근거로 파악했을 때, 이 생명체는 4개의 팔을 지닌 ‘인간과 동떨어진 형태’로써,


꼬리나 날개가 아닌, 특정 신체 부위가 하나 더 달린 이질적인 것으로,


‘수인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천사의 기술력으로 창조된 생명체는 아닌 것 같은데...'



가끔 이름 없는 새장에서는 '천사의 기술력'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발생한 괴생물체가 존재하기도 했다.


애초, 우리 ‘제국의 새장’의 ‘맹세한 자’들은 이런 이름 없는 새로운 새장을 발견할 시, 수색할 목적으로 인원을 뽑는대서 기원 한 것이다.


다만, 근래에 와서는 이름 없는 새장들을 대부분 파악해 군사조직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따금 새로운 새장이 떠오를 때가 있으면, ‘맹세한 자’들이 먼저 가서 확인해본다.


긴은 이름 없는 새장 속에서, 괴생물체를 몇 번 만나본 적 있었다.


그것들은 대부분 지성이 없었으며 생김새도 무척 다양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그것들은 ‘천사의 기술력’을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넌 누구냐?"



긴은, 이 어설프게 말을 할 수 있는 생명체에게 물었다.



"나... 나? 라프..."

"그래. 너 말이다."

"나, 나는.. 라프다. 라프... 내... 내가 먼저 물었는데... 너, 이상... 어디 아퍼? 라프..."



라프는 긴에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큼직한 손톱으로 그의 신발을 뚝뚝 건드렸다.



"흠흠... 실례, 나는 ‘맹세한 자’에 속한 ‘긴’이라는 남자다."



말을 더듬기에 지능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기주장이 확실한 이 라프는 생명체.


그로 판단했을 때, 말을 더듬는 것은 그저 언어가 익숙지 않기 때문인가?


긴은 라프가 툭툭 건드리는 신발을 뒤로 빼며,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기... 긴? 한 글자 이름... 신기한 이름. 라프..."



라프는 긴의 신발을 툭툭 건드리던 손톱을 치켜세워, 자신의 얼굴을 몇 번 긁적였다.



"... 라프?! 아르는? 이런 곳에 왜 혼자 있어?"



긴의 뒤에 있던 서지은이 깜짝 놀란 듯, 라프를 보며 말했다.



"아... 아르는, 박사와 약, 약물 제조... 기다려 했는데... 심심... 라프"



라프는 서지은과 대화하며 앞에 있던 긴에게 4개의 팔 중, 두 개의 팔을 뻗었다.



"...?!"



긴은, 점차 크기가 커지면서 자신에게 뻗어오는 라프의 팔에 당황했지만,


곧 라프의 커진 팔은, 긴의 옆구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번쩍 들어 ‘객실 문’ 옆으로 치웠다.



'... ‘비켜’ 달라는 말을 아직 못 배운 건가?'



반응하지 못했다... 라긴 보다는,


왠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생명체’가 자신을 공격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긴은 박사를 상대할 때도 그렇고, ‘맹세한 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 왕의 천리안. 이 소녀는 뭐지?"



긴은 자신을 짐짝처럼 치우고 객실 안으로 들어간 라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서지은에게 물었다.



"라... 라프는... ‘박사의 자식’이라 하던 것 같던데... 아르는 그녀를 공주님이라 부르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긴 하지만, 그밖에 특이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어."



서지은은 긴의 물음에, 몸을 움찔 떨며 대답했다.



"공주...?"

"신수들의 공주라고, 아르가 내게 소개해 줬으니... 그런 거겠지?"



서지은은 라프를 안아 들었다.



"... 뭐, 라프가 공주든 아니든... 나는 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죄악도 조금은 씻어 내려가는 것 같거든. 정말... 순수한 아이야."



서지은의 황금이, 긴을 지나쳐 부유선의 복도에까지 삐져나와,


조금은 그 형태를 아름답게 휘어 뜨렷다.



----------



폐허가 된 도시.


이젠 어린이들의 숨만 붙어 있는, 죽어버린 놀이터.


덩굴로 둘러싸여 윤곽만이 남은, 큼직한 건물들.


형체라곤 갖은 흔적뿐인 세월의 잔상 속으로,


‘맹세한 자, 자리후’는 당당히 걸어 들어가,


쓰러져 있던 즈빌 앞에, 빨간 두 동공을 비췄다.



"즈빌 확보! 조사 내용과 현재 그의 모습이 일치한다는 게 확인되었다. 곧 데려갈 테니 기대하도록!"

"아니. 그렇게 멋대로 가면..."



자리후는 무전을 끊고, 입고 있던 도복의 품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펼쳤다.



즈빌.


추정 나이, 120세.


출신 새장, 불명.


붉은 머리칼, 마른 몸,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을 지닌 성인 남자.


그가 암-바야드의 용병으로 활동하기 전까지는,


한 이름 없는 해적 집단에 몸 담갔던 거로 파악되었음.


그 이름 없는 해적의 일원이었던 ‘르미릐’라는 자의 증언에 따르면,


1. 즈빌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2. 즈빌은 괴팍하고 충동적이면서도 음침할 정도로 계산적인,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3. 즈빌의 육체는 ‘천사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어떤 도구에 의해 개조되어, 나이를 먹지 않고 일반적인 신체 능력을 벗어나 있다.


4. 즈빌은 우리들의 선장을 그저 맛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다른 인원들이 보는 앞에서 머리를 뜯어 먹었다.



자리후는 수첩에서 ‘즈빌의 자료’를 훑어본 뒤,


이번에는 칙칙한 남빛의 수갑을 옆구리에서 꺼냈다.



"그럼, 함께 가지. 즈빌."



자리후는 복부가 뻥 뚫렸지만,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며 몸을 부르르 떨던,


의식 잃은 즈빌의 팔과 다리에 수갑을 채워 한쪽 어깨에 걸쳤다.



"... 으... 천사... 먹고 싶다..."



어깨에 걸쳐진 즈빌은 빨간 머리칼이 축 늘어져,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괴식이 선을 넘은 남자군!"



자리후는 그런 즈빌의 모습을 보며,


당당하고도 절도 있게,


폐허의 어둠 속으로 다시금 걸어 들어가려고 할 때.



"... 저기... 그 즈빌이란 남자, 제가 데려가면 안 될까요?"



차가운 달빛이 반사된 폐허 속.


볼이 바짝 여윈 메마른 몸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머리에 돋아난 염소 같은 뿔을 무겁게 흐느적대며 자리후에게 말을 걸었다.



"흠? 넌...! 내게 최면을 건 소녀로군!"



자리후는 저기 멀리, 폐허의 달빛이 되어있던 소녀에게 외쳤다.



"그건... 최면이 아닌, 행복한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는 ‘축복’ 같은 거랍니다."

"하하하, 미안하지만, 그건 네가 정의한 것일 뿐! 행복이라건 당사자가 그렇게 느끼지 못하면, 그게 어디가 행복이고 축복인 거겠나?"



자리후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즈빌을, 이제 터만이 남은 폐허의 벽에 바짝 붙여 눕혀 두었다.



"... 그럼 당신은, 연인을 만나 행복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소녀는 두 손을 모아, 누군가에게 기도했다.



"내 여인은 죽었다. 그녀와의 추억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으로 변했지. 나는 그렇게, 그녀와 맹세했으니!"



자리후는 팔에 핏발이 설 정도로 주먹을 쥐어, 배꼽 밑에 가지런히 모았다.


그러자 자리후가 입고 있던 검은 도복이 점차 부풀어 올라, 실 뜯기는 소리를 내뱉으니.


그의 몸에서 빨간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녀, 너는 왜 즈빌을 원하는 거지?"

"그는 제 구원자의 대리인 같은 분이니깐요."

"구원자라면... 암-바야드를 말하는 건가?"

"제게 시련을 주신 ‘위대한 자’, 그로 인해 저는 새롭게 태어났답니다."

"그래... 알겠다. 그렇다면 내가 그 시련을 끝내주도록 하지!"



자리후에게 피어난 빨간 연기는 거치지 않고 차분하게 살랑이면서,


그를 물방울 모양으로 둘러싸았다.



"아... 정말이지, 다정하신 분이로군요."



꿈뻑꿈뻑.


두 손을 포갠 소녀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나와 볼을 타고, 밑으로,


소녀의 하얀 원피스에 검은 생채기를 내며, 밑으로.


밑으로, 떨어지며 검은 웅덩이를 고이게 해, 자리후의 바로 앞까지 퍼져나갔다.



"하지만... 저는, 그저 미련한 어린양. 천사는, 날개를 먹어 하늘을 날아갈 뿐이랍니다."



소녀의 거대한 검은 웅덩이 위로,



"빠르게 끝내주지!"



자리후의 붉은 점이 길게- 이어져 한 획을 그었다.


한 획은, 여운을 남기는 듯한 붉은 실오라기처럼,


검은 웅덩이에서 뻗어 나오는 무수한 손들을 제치며, 자리후와 소녀를 이었다.



"..."



찰나였다.


밤이슬이, 채 떨어지기도 전이었다.


하얀 마침표를 향해 뻗어갔던 붉은 그을림.


그리고 그런 그을림을 뒤쫓던 검은 손들.


자리후는 소녀의 머리를 바닥에 살며시 내려두었다.



"미안하군! 나는 즈빌을 반드시 데려가야 한다. 네 시체는, 이곳에 올 내 동료들이 회수할 것이다."



폐허의 부서져 가는 어둠이,


자리후의 붉은색과 어우러져 찬란하게 빛났다.



----------



"라프? 어딨어?"



박슬혁은 아르에게서 부탁받은 라프를 찾아, 부유선의 기다란 복도를 돌아다녔다.


박사의 부유선 복도는 커다란 십자가 형태로 단순한 구조였지만,


그래도 갑판으로부터 지하 5층까지 나 있는 ‘생각보다 많은 층수’와,


그 층수 사이사이에 배겨 있는 무수한 방들은,


박슬혁을 부유선에서 헤매게 하기 충분했다.



"라프...?"



설마, 밖에 나간 건 아니겠지?


박슬혁은 물씬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박사의 부유선은 아직, 하울링 새장에 정박한 상태.


그 호기심 넘치는 아이라면, 왠지 밖에 나갈 수도 있을 거라고,


만약 그런 거라면, 아르가 나에게 실망하는 건 아닌지....


박슬혁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 음?"



그렇게 박슬혁이, 지하 3층에서 2층으로 올라와, 복도의 기다란 공간에 들어섰을 때,


손님용 대기실에 들어가려는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슬혁은 처음 보는 누군가가 부담스럽고 무서워, 몸을 획- 뒤로 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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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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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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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1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3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7 0 13쪽
» 3 - 13. 맹세한 자 22.08.27 41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7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5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4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30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5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30 0 12쪽
35 3 - 4. 천사의 기술력 22.08.18 25 0 12쪽
34 3 - 3. 제국의 새장 22.08.17 24 0 13쪽
33 3 - 2. 제국의 새장 22.08.16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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