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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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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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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2.08.2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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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 11. 세력

DUMMY

"... 그건... 좀 뜬금없네요..."



우르드니아 공화국의 대표뿐만이 아닌,


개벽의 날개도, 장길수도,


‘제국의 새장’의 황제를 보며, 인상을 썼다.



"최근 얻은 정보에 따르면, 암-바야드는 모습을 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하더군. 고로, 그 녀석이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황제는 원탁에 띄엄띄엄 앉아 있던, 각 대표의 얼굴들을 한 번씩 훑었다.



"어... 그건, 좀 말이 안 되는 게, 암-바야드는 최근까지 제국의 새장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저희는 조금이라도 자리를 비면 바로 알려지는 몸들인데요?"



‘우르드니아 공화국’의 대표는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다른 대표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암-바야드는 ‘다른 사람의 몸’을 흡수해서 그 몸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이상, 나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준 것 같군. 그러니 이 회의에서 그만 퇴장하도록 하지. 만약, 우리 제국의 새장과 손을 잡고 싶거든,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이 암-바야드가 아니란 것을 ‘증명’해줘야 할 거야."



‘제국의 새장’의 황제는 원탁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원탁을 등진 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빛이라고는 달빛뿐인, 고요하고도 잠잠한 밤하늘은,


하울링 새장에 덩그러니 정박 돼 있던 박사의 부유선을 더욱 음침하게 만들고 있으니,



"암-바야드가 제국의 새장에 잠입해, 안드레이 황자를 흡수했다라..."



그런 부유선의 갑판 위에 서 있던 박사는 ‘변하는 자, 긴’이 내민 검은색 USB를 받아 들었다.



"그 USB 안에 당시의 상황이 녹화된 영상 파일이 있습니다. 말로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게 이해가 빠를 겁니다."



밤하늘과 어울리게, 컴컴해진 후드 속에서 긴은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안 봐도, 암-바야드의 능력은 진작 알고 있었다. 녀석은 ‘살덩어리’를 이용해 흡수한 사람의 몸을 부릴 수 있을뿐더러, 육체를 마음대로 변형할 수도 있지."



박사는 긴에게서 받은 USB를 하얀 가면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곧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잘 알고 계시군요."

"뭐, 그건 그렇고, 고작 이 USB를 전하기 위해 이곳까지 발을 들인 건 아닐 텐데..."

"네. 지금부터가 본론입니다."



긴은 박사에게, 금박무늬가 장식된 다소 사치스러운 편지 한 통을 건넸다.



"황제님께서 박사님을 ‘맹세한 자’의 일원으로 초청했습니다."

"나를? 흠... 내가 암-바야드에 대해 알고 있긴 하다만, 그거만으로 황제의 신용을 샀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박사님의 활약은 백은 새장의 아담에게서 익히 들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확실히... 제 ‘에리아’가 박사님을 두려워하고 있군요."



긴은 자신의 등 뒤에 숨어 있던 동그란 구체를 손으로 감싸, 조심스럽게 보듬었다.



"제 에리아는 지성이 있는 천사의 기술력. 지금까지 숱한 적들을 물리쳐 왔지만 이렇게 두려움에 떤 적은 없었는데..."



어린아이를 달래는 아버지처럼, 자상하고 인자하게 에리아라는 구체의 상태를 살핀 긴은,


박사를 향해 후드 속 어둠을 비췄다.



"이제... 공식적인 볼일은 끝났으니, 개인적인 일로 넘어가도록 하지. 박사님, 아니... 당신, 정체가 뭐지?"



컴컴한 후드 속 무뚝뚝한 긴의 말투가,


깊게 내려앉으면서 후드 속 어둠과 동화되어 갔다.



"내 정체라... 너는 어떻게 보이지?"



박사는 긴의 어두운 후드 속으로 하얀 가면을 비췄다.



"... 네놈의 몸은 괴물처럼 변한다고 들었다... 하얀 가면도 그렇고, 암-바야드의 검은 가면도 그렇고, 네겐 그 가면이란 것에 숨어 있는 ‘상종 못 할 존재’로 밖엔 보이지 않는군."



긴이 손으로 감싸고 있던 구체가, 마치 밤하늘에 수놓은 별빛처럼, 작은 구슬들로 나누어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니,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혀라. 박사."



부유선 갑판 위, 사방에 흩어진 작은 별들은 기다란 꼬챙이로 변해,


박사의 하얀 가면 위로 혜성처럼 내리꽂혔다.



'... 피했어...?'



혜성이 내리꽂힌 부유선 갑판 위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긴은 반사적으로 적막한 달빛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생각보다 큰 덩치와 키를 가져 둔할 거로 생각했는데, 오산이었군.'



어떠한 원리로 하늘에 떠 있는 박사,


그의 하얀 가면은 달빛을 등진 채로,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부유선이 파손되면, 그쪽에서 책임지는 거겠지? 난 생각보다 바쁜 몸이라서 말이야."



공중에 떠 있던 박사는 긴의 앞으로, 부드럽게 내려왔다.



"얼마 전, 천사의 습격을 받은 새장이 있어서 말이지. 그곳에서 죽다 살아난 학생들을 급히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

"... 천사의 습격을 받은 새장이 더 있다고...?"

"따라와라. 자세한 건 학생들을 치료하고 나서다."



박사는 긴의 경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유선 갑판 밑으로 내려가는 문을 연 뒤, 유유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



달빛에 비추어진 한 이름 없는 새장 속, 곧 무너져도 이상할 리 없는 허름한 주택에 들어간 남자는,


나무 의자에 몸을 축 늘어뜨리며, 큼직한 통신장비가 설치된 테이블 모서리에 두 다리를 올렸다.


치익-


그러자 남자를 기다렸다는 듯, 테이블에 설치된 통신장비에서 주파수 음이 새어 나와 적막한 이 공간 속에 휘몰아쳤다.



"정말, 참을성 없으신 분이네요~"



남자는 새빨간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기며, 무전을 받았다.


치이익-


무전 속에서, 그을리는 소리가 허름한 저택 안으로 길게- 메아리쳤다.


남자는 그 소리에 맞춰, 입맛을 다셨다.



"아아... 암-바야드씨가 날 싫어하면 어쩌나 했는데, 일이 잘 풀렸다니 다행이네요."



팅. 팅.


주황색 형광등에 부딪히는 작은 날벌레들.


삐그덕. 삐그덕.


그 위로, 남자가 앉아 있던 나무 의자의 괴성이 덧씌워져,


밤하늘의 작은 하모니가 되었다.



"네. 명령한 대로, 한가람에게 약물을 주입했는데... 이거, 꽤 보기 힘든데요~?"



남자는 허름한 주택 한쪽 구석에서, 두 손을 포갠 채 기도하는 한 소녀를 바라봤다.


그 소녀는 얼굴 가죽이 치즈처럼 녹아내렸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반복하는,


보기만 해도 끔찍한 ‘수행’이란 이름의 실험대에서,


발음 불분명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기도하며 끝없이 인내하고 있었다.


치이-익


통신장비의 뒤틀린 주파수가 소녀의 기도 소리에 맞추어 점차,



"아... 즈빌씨. 부디 믿음을 가지세요. 그녀는 버텨낼 겁니다. 천사는, 우리 모두에게 가혹한 시련을 내려 주셨으니깐요."



정체를 드러냈다.



"암-바야드씨... 솔직히,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아무튼, 이번 임무를 수행한다고, ‘왕가의 손가락’이 따라붙은 것 같으니 새장을 옮기도록 할게요."



즈빌은 테이블에 놓여 있던 통신장비를 주섬주섬 분해해, 더플백 안에 챙겨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즈빌의 모습을, 반쯤 무너진 창가를 통해,


약 1KM 떨어진 폐허 옥상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



"오...! 이 분이, 소문으로만 듣건 ‘맹세한 자, 긴’이시군요?"



박사의 부유선에 들어간 긴의 앞으로,


아르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 한 잔을 내밀었다.


긴은 아르가 내민 다정한 미소를, 후드 속에서 잠시 바라보다가,



"이 아이는..."



의아한 목소리로 옆에 있던 박사에게 말했다.



"내 자식이다. 이름은 아르라고 하지."

"반가워요."



긴은, 박사의 하얀 가면으로 슬쩍 후드를 돌렸다가, 아르가 내민 찻잔을 받았다.



"정 내가 못 미더우면 들고만 있어도 된다."



박사는 아르를 지나쳐, 부유선의 기다란 복도를 걸어갔다.


긴은 아르에게 꾸벅 후드를 숙여 목인사를 하곤, 박사를 뒤따라갔다.



"... 가족이 있었나?"



긴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 속에 손을 집어넣어 어딘가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자식이라면 아르 말고도, 더 있다."

"..."



왠지, 상쾌한 꽃향기가 나는 이 부유선의 기다란 복도.



"그렇군..."



딱딱하고도 친근한 황갈색의 무늬가 덧칠된,


언뜻 보면 목재 같기도 한, 이 소재 모를 부유선의 포근함은.


이질적인 박사의 하얀 가면과는 다르게,


푸근하고 정다운 옛 고향과도 비슷하다고, 긴이 감상에 젖으려던 찰나.



"현재 이 부유선에는 천사에게 피해당한 학생들 말고도, ‘백은 새장’의 인사팀인 에샤드와 ‘세난 왕국’의 왕의 천리안인 서진은이 타고 있다."



박사의 하얀 가면이, 긴의 감상을 무너뜨리며 말을 걸었다.



"세난 왕국의 왕의 천리안이라면, ‘암-바야드’와 관련돼있다고 알고 있는데, 왜 그런 녀석이 이곳에 있는 거지?"

"자세한 건, 내가 학생들을 치료할 동안 이 방에 있는 왕의 천리안에게 물어보도록."



박사는 기다란 복도에 배겨 있던 여러 개의 문 중에서,


‘객실’이라고 팻말이 걸린, 제일 안쪽에 있는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럼..."



박사는 그 말을 끝으로,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긴은 박사가 안내한 문 앞에 선 채, 그가 어디로 가나 후드 속에서 지켜보다가,


복도 끝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박사를 보고서야, ‘객실’ 문을 두들겼다.



"... 누구시죠?"



문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긴은 뒤따라오던 구체, 에리아를 앞장세우고 객실 문을 열었다.



----------



'세난 왕국'의 '왕가의 손가락'.


그들은 역시, 암-바야드씨가 만든 인조 영혼이라,


기계를 연상케 하는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고 딱딱하며,


칠리처럼 매섭고 망설임이 없는,


어울리지 않는 향신료가 진하게 뒤섞인, 부자연스러운 요리.


아... 암-바야드씨는 대체 왜 이런 요리를 만든 건지,


즈빌은 검은 머릿결이 축- 늘어진 핏기없는 동그란 머리통을,


농구공처럼 손가락으로 빙그르르 돌리며 입맛을 다셨다.



"..."



그리고 그런 즈빌를 바라보고 서 있던, 검은 바탕에 눈코입 구멍이 뚫린 한 개의 가면은,


자세를 낮추면서 허리춤에 슬며시 손을 올렸다.



"오호라~ 제대로 해보자는 건가?"



여기저기 죽어버린 건물의 잔상만이 흐느적대는, 어둑한 공간 속.


빛이라곤 달만이 두둥실, 두 사람을 비추면서 흔들리는 고요한 공간 속.


빨갛고 진한 미래를 맛보고 싶은 즈빌은,


혓바닥으로 날름 입술을 훑으면서 가면을 쓴 사람에게 들고 있던 머리를 날렸다.



"?!"



가면을 쓴 사람은 곧장 자신 앞으로 날아오는 머리를,


허리춤에서 뽑아 든 단검을 던져 땅에 떨어뜨렸다.



"암-바야드씨가 불량 식품은 먹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그리고 떨어지는 머리통과 함께, 가면을 쓴 사람 뒤에서 스르륵- 올라오는 즈빌.



"그래도, 가끔 이런 기묘한 맛도 나쁘지 않겠지~?"



즈빌이 가면을 쓴 사람의 머리를 부여잡고 입을 벌리려고 할 때.


탕!


하나의 총알이 어둠을 뚫고 날아와, 즈빌과 가면을 쓴 사람을 관통했다.



"적색은 완료했다. 우리는 세 명으로 만족."



새장 속,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한 여인.


그녀는 바닥에 쓰러지는 두 사람을 큼직한 총에 장착된 스코프로 지그시 응시하다가,


무전기에 대고 암구호로 통신했다.



"승인함. 현 시간부로 암구호는 해제하겠다. ‘제국의 새장’의 ‘맹세한 자’들이 즈빌을 뒤쫓고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이 새장에서 약속된 즈빌의 심문은 생략한 뒤, 곧장 다른 새장으로..."



치익-


그녀에게 말하던 무전기 속 목소리가 불분명하게 뒤틀리며, 통신이 끊어졌다.


여인은 무전기를, 들고 있던 큼직한 대물 저격총에 툭툭 몇 번 쳐보다가,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무언가의 시선에, 그곳으로 곧장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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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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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4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7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4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2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1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0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6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3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29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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