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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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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3,807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2.09.0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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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 6. 승천자

DUMMY

'이거 조금 진지해질 필요가 있겠는걸?'



나루는 ‘왕가의 손가락’에게 져서 분하지는 않았다.


다만, ‘칼날’이 목 근처로 오기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좀 많이 충격적이긴 했다...


그녀는 자신이 박사에게 너무 넋이 나가 있었다고,


뾰족한 이들의 미소를 조금 수그려 트리면서,



"저기~ 형씨는 박사님의 자식이라고 했죠?"



옆에서 함께 걷던 커다란 덩치의 늑대 수인, 울란드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이건 박사에게 걸었던 작업과는 다른,


어느 인상이든 좋으니 최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그녀의 전략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러면 박사님에게는 부인이 있다는 말?"

"넌... 언제까지 우리의 정보를 빼돌릴 생각이지? ‘왕가의 손가락’이 이곳에 온 시점에서, 뭔가 일이 틀어진 것 같지 않은가?"

"우와... 박사님 같은 말투... 이게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건가?"



박사처럼 무뚝뚝하면서도 안에 감정이 내포된, 묵직한 울란드의 목소리.


나루는 좀 더 깔끔한? 박사의 지적인 말투가 더 마음에 들긴 했지만, 그건 자신의 취향이 독특해서였고,


울란드의 목소리는 여성 대부분을 홀릴 만큼 상당히 터프했다.



"..."



나루는 울란드의 ‘마음속 경계’를 슬쩍 눈치 보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전~혀요. 우리는 박사님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보를 손에 쥐고 있거든요."

"그게 뭐지?"

"이건... 박사님이 확실히 ‘우리 편’인지 확인되지 않는 이상 말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죠..."



즈빌의 정보를 넘어선, 검은 가면과 곧바로 이어지는 정보.


어지간해서 이 정보만큼은 최대한으로 간직하려 했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까지 정보를 아꼈다가는 오히려 박사님이 ‘제국의 새장’의 적이 될 것 같아,


나루는 다짐했다.



"저희는 이미 검은 가면, 암-바야드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어요~ 물론, 아주 대략적인 위치라 좀 더 정보를 수집해야 하지만... 이건 즈빌을 통해 얻은 정보가 아니라서, 상당히 유용할 거라 봐요."

"... 뜬금없이 그런 정보가 있다는 걸 말해서야 누가..."

"암-바야드는 ‘고아들의 새장’ 중, 어딘가에 있습니다."



울란드가 자신에게 완전히 흥미를 잃기 전,


나루는 그 ‘흥미’를 선수 쳐서 정보를 먼저 털어놓았다.



----------



피로 젖힌 것 같은 새빨간 단발머리에.


지는 노을보다 더 찬란한 황금빛 눈동자를 지닌 한 미소년이,



"흠흠~ 흠~"



하나와 둘.


탄생과 죽음.


이별과 만남.


이것들을 찬가 하는 교향곡, ‘환희의 새장’의 9번 합창 부분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도시 중심에 둥둥 떠 있던, ‘새하얀 날개를 뭉쳐 놓은 것 같은 커다란 구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아... 이것이, ‘장미 새장’에 묻혀 있던 천사의 기술력! 너무 아름다워~!'



달콤하게 무릇 익은 사과처럼, 새하얗게 여문 천사의 날갯짓.


그것이 사랑이라고, 이어지는 고동이라고.


미소년의 심장이, 동그란 사과처럼 두근거렸다.



'사람들은 왜 나처럼 기뻐하지 않는 걸까? 이거야말로, 우리가 하나로 이어지는 진실의 길.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계기인 것을.'



미소년은 지휘자처럼 이리저리 헤집던 손을 활짝 펼치며, 콧노래를 마무리 지었다.



'불쌍한 어린양들. ‘승천자’인 내가 이들을 두루 살펴줘야지.'



텅 빈 거리와 집들.


죽어버린 가게와 놀이터.


‘장미 새장’의 도심 속 시민들은,


이 아름다운 ‘천사의 기술력’이 땅속에서 솟아오르니 모두 기겁하며 도시 외곽으로 달아났다.


정말 무지하고 아련한 자들이다.


사람은 천사의 축복을 받은 종족.


달아날 게 아니라, 천사에게서 날개를 받아 날아가야 할 것을,


새장을 떠나 저기 멀리, ‘태초의 새장’으로 말이다...



'태초의 새장으로... 그래. 날아가야 할 터인데...'



미소년은 현기증이 난 것처럼 핑- 도는 머리를 두 팔로 싸맸다.


태초의 새장... 그곳에서 한 소녀가 자신을 보고 웃는 이 기분, 속이 매스꺼웠다.


왜 이런 기억이 자신을 괴롭히는지 당장 나 자신 또한 알지 못했기에,


그는 얼른 주사기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허벅지에 꽂아 넣었다.



'후... 그건 그렇고...'



진정되어져 간다.


차분하게, 기분이 좋아져 가다가,


툭! 책상 모서리에 발가락이 찍히듯, 어떤 기분 나쁜 이야기가 떠올랐다.



'... 박사라고 불리는 자한테 ‘태초의 새장’의 공주가 잡혀있다고 했지?'



암-바야드, 그 녀석이 귀띔해주길 ‘하얀 가면’을 쓴 박사라고 불리는 남자에게,


‘태초의 새장’의 주인이자 천사들의 수호자라고 불리는 ‘4개의 팔 공주’가 잡혀있다고 했다.


어떻게 공주가 ‘태초의 새장’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미소년은 손톱을 입으로 슬며시 가져다 놓고는 이로 잘근잘근 물어뜯으면서,


매끈하고 하얀 피부가 자글자글해지게 인상을 팍! 썼다.



'진정... 진정하자... 기억도 그렇고, 천사님 앞에서 너무 약한 티 내지 말아야지.'



미소년은 도심 속 공중에 떠 있던,


집채만 한 거대한 구체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려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아... 당신을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답니다.'



커다란 구멍 위에 떠 있던, ‘수많은 날개가 뭉쳐진 동그란 구체’.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이브가 따먹었다던,


금단의 과실의 형태로 뭉쳐진 거대한 구체는,


‘죄의 근본인 인간의 육체를, 정화된 순수한 육체로 바꾸어 준다는 과실.’


지금 당장 쓸 정도로 안정화되지 않은 천사의 기술력이지만,


이거만 있다면... 새장에 갇힌 새들은 ‘진정한 미’를 되찾을 것이었고,


자신은 이 지긋지긋한 ‘기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었다.



"정태연 교주님..."



그렇게 미소년이 감상에 빠져들고 있을 때.


전신을 뒤엎는 하얀 가운을 몸에 걸치고,


머리에는 큼지막한 후드를 뒤집어쓴 몇 명의 사람이 미소년 앞으로 걸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방금 들어온 소식으론, 하루 전, ‘서릿바람 새장’에서 제밀리 주교님이 ‘맹세한 자’에게 붙잡혔다고 합니다. 덕분에 암-바야드가 있는 곳이 ‘고아들의 새장’이란 걸 그들이 알게 되었는데, 이거 어떻게 할까요?"



아... 감상에 젖어 있었건만, 천사님들은 역시 우리를 계속 시험 하나 보다.


정태연는 무릎을 꿇고 있던 두 명의 신도에게 방긋 미소지어 보였다.



"악마 같은 그들의 손에 우리 주교님이 잡혀버렸다니... 정말 가슴이 아파지네요."



태연은 눈물이 고인 두 눈가를, 옷소매로 문질렀다.



"이렇게 된 이상 축복받은 자들을 투입해, 우리 주교님을 구출하겠습니다."



태연의 빨간 머리칼 위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구체.


그것에 뭉쳐진 성스러운 깃털로, 노을의 핏빛이 흩날렸다.



----------



"다행이네요. 박사님이 ‘왕가의 손가락’에 넘어가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는데..."



나루는 앞에서 걷던 박사 옆에 나란히 서며, 친한 듯이 말했다.



"그쪽이 좀 더 유리한 정보를 지니고 있으니, 편을 정한 것뿐이다..."

"우리가 박사님 마음에 들어서란 걸 그리 돌려 말씀하시다니. 그것참 다행이네용."

"..."



박사는 나루의 말에 하얀 가면을 긁적이면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런 나루와 박사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울란드는 재밌다는 듯,


커다란 주둥이로 킬킬댔다.



"오늘 임자 만났네요. 박사님. 애들이 보고 좋아 하겠수."

"... 흠..."



울란드의 킬킬댐에 박사는 ‘금빛 새장’의 정박장, 뻥 뚫린 지평선 너머로,


이제 거의 모습이 희미해져 가는 태양을 향해 하얀 가면을 돌리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박사님."



그렇게 내리깔린 박사의 작은 한숨 사이로,


스카일러가 다리와 팔에 나 있던 복슬복슬한 털이 휘날릴 정도로 달려왔다.



"... 여기 계셨네요."



스카일러는 여우 같은 귀를 쫑긋 세워, 박사 옆에 있던 나루를 경계했다.



"지금 막 복귀하려던 참이었는데, 무슨 일이 난 모양이로군."

"어... 네! 그게..."

"이 여자는 ‘맹세한 자’의 나루라고 한다. 싫든 좋든 당분간은 함께 부유선에 타야 할 동료이니, 신경 쓰지 마."

"... 그렇군요..."



스카일러는 쫑긋 세운 귀를 내리며,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루를 잠시 보다가.



"... 서지인이 타린과 함께 ‘왕가의 손가락’을 따라갔어요. 자신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부유선을 태워 준 보답은 후에 꼭 하겠다고 하네요..."

"그렇군...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게... 서지은이 이걸 주고 가더라고요."



스카일러는 ‘새장에 날개가 달린 마크’가 새겨진,


동그랗고 작은 메달을 박사 앞으로 내밀었다.



"암-바야드의 말론 이 메달을 쥔 사람은 천사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고, 실제로도 ‘백은 새장’에서 천사들이 피해갔다고 하던데, 아직도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뒤늦게 이 사실을 말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어요."

"흐음... 이 메달에 그려진 그림은 ‘세난 왕국’의 상징 마크로군."



박사는 스카일러가 내민 ‘겉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은 동그란 메달’을 덥썩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이건..."



그러자 별거 아닌 것 같은 동그란 메달이,


자다 깨어난 아기가 기지개를 켜듯 좌우로 바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부유선에서 몇 가지의 테스트를 진행하겠다. 스카일러, 넌 부유선으로 먼저 가 아르에게 그것들을 준비하라고 해."



잔잔한 박사의 목소리 속으로,


다 진 노을의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퍼져 갔다.



----------



실험관에 담긴 아리야는 기나긴 꿈을 꾸었다.


용사가 되어 악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꿈.


과학자가 되어 죽어가는 이를 살리는 꿈,


예술가가 되어 지친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꿈.


모험가가 되어 미지의 길을 개척하는 꿈...


그래. 아리야의 기나긴 꿈은,


어느 이름 모를 모험가가 되어 ‘거대한 새장’ 속으로 들어갔다.



"라프... 그런데 라프는 이 새장에서 뭘 하고 있던 거야?"



초록빛 잔디밭에 누워 있던 한 소년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나무의 굵은 가지에 몸을 축- 늘어뜨린 네 팔 달린 생명체를 향해 말했다.



"나는 공주니까 이 새장을 지키고 있었다. 라프."

"공주...?"

"이곳에 들어온 불청객들이 그렇게 말했다. 내가 이 새장에서 가장 강한 녀석이니까, 공주라고."

"불청객이라면, 우리를 말하는 거야?"

"당연하지. 라프."



누워 있던 소년은 허리를 세워, 자리에 앉았다.



"미안... 괜히 우리가 라프를 힘들게 만들었어."



라프를 향하고 있던 소년의 고개가 축-쳐지면서,


기울어진 잔디처럼 힘없이 말했다.



"네가 왜 사과하냐? 라프..."



그런 소년에게, 라프는 나무에서 툭 떨어지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넌 불청객이지만, 친구니까... 그게... 너만큼은 특별한 거다. 라프..."



소년은 라프가 얼굴을 들이밀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 고마워! 그래도... 친구라고 해줘서."



햇볕에 그을려 조금 더 진해진 소년의 연갈색 피부가,


꽃처럼 활짝 피어나며, 라프를 향해 미소지었다.



"당, 당연한 거... 라프."



라프의 하얀 솜뭉치는 소년의 미소를 보자,


나무에 뻗어 있는 굵은 가지에 매달려 꽃봉오리처럼 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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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4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8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0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6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3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29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30 0 12쪽
35 3 - 4. 천사의 기술력 22.08.18 24 0 12쪽
34 3 - 3. 제국의 새장 22.08.17 2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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