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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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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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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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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501,857

작성
22.08.29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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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DUMMY

"저 부유선에는 네 또래 아이들이 타고 있어."



낯선 여자의 한쪽 가슴에 달린 은빛 장미처럼.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는 ‘장미 새장’의 죽은 정박장.


그곳에서 그녀는, 공중에 두둥실- 뜬 채 태양을 막고 서 있던,


어느 커다란 부유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마... 아리야라면, 그 아이들과 금방 어울릴 수 있을 거야."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벌레의 울음소리로 변했다.



"..."



소년은 자신이 꼭 잡고 있던, 낯선 여자의 손을 바라봤다.


그것은 어느새, 마디가 툭툭 나 있는 벌레의 다리로 변해 있었다.


의미도 감정도 메말라. 고약한 냄새도 풍기지 않는,


창가에서 죽은 벌레의 다리처럼 변한 그녀의 손...


그런 그녀의 손이, 소년을 부유선과 정박장 사이를 이은 기다란 다리로 끌고 갔다.



"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엄마, 아빠를 잊으면 돼."



삐그덕.


조용하고도 교묘하게, 소년의 귓속을 헤집는 벌레의 뒤틀린 울음은,


낯선 여자를 따라, 부유선 갑판 위까지 길게 이어지다가,



"하... 이제 왔네."



배가 불룩 튀어나온 거구의 남자에게서 멈춰 섰다.



"그 애가 마지막 애야?"



거구의 남자는 낯선 여자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


묵직한 몸을 플라스틱 의자에서 일으켜 세워,


소년에게 살찐 검지를 뻗었다.



"어. 이 남자애가 마지막이니까, 돈은?"

"... 꼬마를 우리 애들한테 맡기고 따라와라."



낯선 여자의 벌레 마디가, 소년의 작은 손을 뿌리쳤다.


윙--- 파리의 날갯짓이, 소년의 귓가에 맴돌았다.



"너는 일로와. 친구들 곁에 보내주마."



맴돌았다.


나방의 날갯짓 소리가,


맴돌았다.


모기의 날갯짓 소리가,


아아. 머릿속으로,


실거미가 한 마리 들어왔다...



"임마! 멍때리지 말고!"



남자가 소년의 손목을 잡아끌며,


태양과 푸른 하늘이 가려진,


부유선의 뱃속으로 향했다.



"아아..."



소년은 꽉 틀어막혀진 목구멍을 비집으며,


남자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이 새끼가 미쳤나?!"



남자가, 발버둥 치는 소년을 바닥에 팽개쳤다.



"이런 씨X놈이! 어디서 반항이야!"



남자는, 팽개쳐진 소년을 밟았다.


여러 개의 발길질로, 머리와 배와 허벅지를, 마구잡이로 밟았다.


소년은, 자신이 벌레가 된 것 같았다.



"후... 일로와! 새끼야."



남자는 소년의 부실한 몸을 부유선 뱃속으로 질질 끌고 가,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둑한 방 안에 던져 넣었다.



"..."



아프다.


소년의 콧속에서 뜨거운 게 흘러나왔다.



"도망치려고 하면 뒤진다? 딱 박혀 있어!"



쿵!


남자가 문을 닫고 나갔다.



"엄마..."

"흑흑"

"씨X. 씨X."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잠잠한 이 어둠 속에서 벌레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창가에서 보았던 죽은 벌레들처럼 의미 없이,


날개가 으스러져 죽은 벌레들처럼 희망 없이,


아이들은 울었지만... 그래도, 이 벌레들의 애달픔은 꽤 듣기 편하다고,


소년은 생각되었다.



----------



천사.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


신과 인간의 중개자.


따사로운 날개를 펄럭이는 자비로운 존재들.



'부디... 우리 ‘장미 새장’에 이런 희생이 다시는 찾아오질 않기를...'



향기를 잃고 은빛으로 변한 ‘장미 새장’의 정박장에서,


낯선 여자는 두 손을 모아 날아가는 부유선에게 기도했다.


부디, 저 아이들의 희생으로 우리 ‘장미 새장’에 또 다른 부흥이 찾아오길.


부디, 우리 ‘장미 새장’에, 수많은 꿀벌이 모여들길.


‘관광’으로 먹고 사는 ‘장미 새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를.


낯선 여자는 소년이 꼭 쥐었던, 자신의 손바닥을 펼쳤다.



'젠장...'



희망으로 붙잡았던 소년에 손의 온기가, 낯선 여자는 아직도 느껴졌다.



'... 그래... 우리는 앞만 보는 거야...'



미안했다.


아이들을 ‘고아들의 새장’으로 팔아치운 우리는 천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신은 우리를 외면했고, 천사는 사람을 잡아먹었다.


그래... 모든 건 그게 시발점이었다.


천사 사태 후, ‘장미 새장’으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뚝 끊겼다.


관광객들이 줄어들자, 시민들은 굶주리기 시작했다.


굶주린 시민들은 이내 서로를 헐뜯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사랑이 줄어들고, 가정이 파탄 났다.


결국, ‘장미 새장’의 대표는 결단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쓸모없는 것’들을 처분하자고.


그리고, 처분한 돈으로 새로운 산업을 건설하자고.


모두가, 찬성했다.



'미안.'



낯선 여자는 얼굴을 두 손으로 포갰다.


손바닥에 남아 있던 소년의 포근함이, 낯선 여자의 두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구원은 거저 얻는 게 아니죠."



누군가가, 낯선 여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낯선 여자는 깜짝 놀라, 얼굴에 포개고 있던 두 손을 얼른 치웠다.



"희생은 아름다운 겁니다."



정박장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낯선 여자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낯선 여자의 가슴에 달린 빛바랜 장미 뱃지가 살랑거렸다.



"천사는 날개를 먹어, 하늘을 날아가는 법이니깐요."



다정하고도 잘못된 꽃이. ‘장미 새장’에 피어났다.



----------



한 이름 없는 새장 속,


작은 숲에 덩그러니 놓인 학교 운동장.



"이곳에 남을 건지, 아니면 이곳을 벗어나 좀 더 안전한 새장으로 갈 건지. 선택해라."



박사의 ‘하얀 가면’에 반사된 태양이 차갑게 빛나며,


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에게 쏟아졌다.



"... 아직, 이 세상에 대해 모르는 애들한테 ‘선택’하라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로젤리나가 불쑥 튀어나와,


박사의 ‘차가운 가면’을 향해 따졌다.



"위험성이라면, ‘울란드’가 설명해줬을 텐데? 이 새장에 남아 있으면, 해적이나 밴딧으로부터 무방비로 노출되지만, 아직 ‘저쪽 세상’과 연결된 학교에 희망을 품을 수 있지. 희망을 품는 건 좋은 거다만, 이건 너무 불확실하군. ‘검은 가면’은 너희를 이쪽 세상으로 옮기기 위해 고도로 발전된 기술과 많은 에너지를 썼을 거다. 그런데 갑자기 저쪽 세상으로 아무런 기술과 에너지를 쓰지 않은 채 돌아간다는 건 힘들어 보여.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니 너무 신용하지는 말도록."



박사는 새하얀 가면을 긁적이면서, 학교 옥상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앤지가 난간에 몸을 걸친 채, 박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럼... 충분히 내 시간은 지체된 것 같으니, 이제 너희의 운명을 너희 스스로가 정해라."



새하얀 가면처럼 냉정하면서, 현실에 지그시 와닿는 박사의 말에,


학생들은, 날아갈 건지 머물 건지 첫 비행을 머뭇거리는 새끼 새처럼.


희망이라는 날개를 펄럭대며 불안하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 떠날 채비는 다 했수. 이제 학생들의 결정만이 남은 것 같은데..."



커다란 더플백을 어깨에 짊어진 울란드가,


그 늑대처럼 뾰족한 송곳니 사이에 끼어 있던 시가를 바짝 태우며 박사에게 다가왔다.



"후...... 결정하기 힘들면, 로젤리나, 네 부유선으로 ‘원하는 학생’들만 데려가면 되잖아?"



울란드가 내뱉은 시가의 검은 연기가 푸른 하늘 위로 뭉게뭉게 피어나,


로젤리나와 학생들 사이로 퍼졌다.



"그것도 그런데..."



현실적으로 울란드가 말한 방법이 최선이긴 했다.


하지만, 로젤리나는 학생들을 ‘전부’ 안전한 새장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현재 자신의 ‘소형 부유선’으론 턱도 없었고,


박사의 ‘대형 부유선’ 정도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물론, 학생들을 몇 번에 걸쳐 옮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학생들을 받아줄 새장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찾더라도 이곳은 새장이 드문드문 있는 외진 곳.


운이 안 좋으면 아주 먼 곳에 가야 할 수도 있었다.



"얘들아..."



로젤리나는 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 박사와 나란히 그들 앞에 섰다.



"너희들의 불안도 이해하지만, 제발 박사님을 따라가자. 사회가 정립되지 않은 새장은 정말 위험해... 비록, 이 새장은 ‘외진 곳’에 있으니 아직 밴딧이나 해적이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것들은 많은 새장이 1순위로 경계할 정도로 흔하고 위험한 녀석들이야."



밴딧이나 해적.


대표적인 새장 밖의 악마들.


밴딧은 주로 작은 새장을 약탈하는 존재들이었고,


해적은 주로 부유선이나 부유기구를 약탈하는 존재들이었다.


이 둘은, 분명한 차이점을 두고 사람들은 분류하고 있었으며, 서로 이용하는 탈것이나 전술 또한 매우 달랐다.


밴딧은 ‘새장’을 약탈하기 위해 커다란 부유선이나 부유기구를 타고, 무리 지어 이동하는 경우가 잦았고,


해적은 ‘부유선’이나 ‘부유기구’를 약탈하기 위해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부유선을 타고, 무리 짓기보다는 띄엄띄엄 진을 펼쳐 이동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러한 차이점을 두고 있는 두 악마의 유일한 공통점이라 한다면,


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뿐더러,


이런 ‘이름 없는 새장’이란 노다지를 반드시 들린다는 것이었다.



"나도 로젤리나씨의 말처럼, 박사님을 따라 좀 더 안전한 새장으로 갔으면 좋겠어... 내가 어제 말했잖아.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이 이렇게 신경 써주시는 데, 그걸 따르지 않으면 좀... 그렇지 않냐?"



최지환이 학생들 사이에서 나와, 로젤리나 옆에 섰다.


그러자 학생들은 수군거림을 멈추면서 일제히 최지환를 바라봤다.



"... 진수야. 설득은 그쯤 해두는 게 좋지 않겠어? 지금 애들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결단은 한 것 같은데?"



하늘을 꽉 메울 것 같은 날개를 펄럭대며,


서진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최지환 앞을 가로막았다.



"밴딧이나 해적들은 ‘잠재력’으로 처리하면 되고, ‘우리 세상’과 이어진 이 ‘희망 고등학교’는 확실히 희망적인 장소니까,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으면 돼."



땅에 착지한 서진수는 커다란 날개를 소리 없이 접으면서,


학생들 사이에 끼어 있던 윤지수를 바라봤다.



"... 그 길이 잘못되었든, 잘 되었든 말이야. 그러니, 로젤리나씨도 그만 미련을 버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건..."

"우리가 로젤리나씨의 말에 따라 이 새장에서 벗어나 다른 새장에 갔을 때, 만약 지금보다 더 불행해져 버린다면... 분명 우리 중 누군가는 로젤리나씨를 탓하게 되겠죠. 그러면, 우리한테도 로젤리나한테도 정말 안타까운 일이 될 것 같아요."

"..."



알고 있었다.


안전할 거라는 새장에서 뭔가 사소한 뒤틀림이라도 생긴다면,


그 분노가 곧장 자신을 향하게 될 거라고, 로젤리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아직 날개를 갖지 못한 새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참... 자신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오만한 이야기를 한다고, 로젤리나는 생각했다.



"그럼, 슬슬 결정 난 것 같으니, 박사님을 따라 안전한 새장으로 갈 애들은 내 앞에 서줄래?"



운동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 몇몇이 슬그머니 서진수 앞에 섰다.


그리고, 윤지수를 필두로 김은지와 몇몇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박사의 하얀 가면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소년은 몸을 콩 벌레처럼 돌돌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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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4 - 13. 지켜보는 자 22.09.24 49 0 13쪽
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4 0 12쪽
56 4 - 11. 두려워하지 말라. 22.09.10 49 0 13쪽
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4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7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4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2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1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39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0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6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4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3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29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8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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