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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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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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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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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501,857

작성
22.08.23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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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 9. 날개 잃은 제국

DUMMY

"이름이 뭐지?"



안드레이는 옆에 서 있던 태웅에게 물었다.



"이름은 실험체..."

"여기 왔을 때 이름 말이야."

"아! 직원에게 연락해 보죠."



이름을 모르고 있어? 그렇단 말은 지금까지 실험체 몇 호 이렇게 부르고 있던 거야?


안드레이는 이해되지 않았다. 애초 태웅은 이들을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 그래... 저 녀석은, 원래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그래도 실험체들을 인간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해서,


태웅의 인간성을 조금 기대한 안드레이었지만, 역시 그는 실험에 미친 과학자일 뿐이었다.



"... 이 소녀의 이름은 ‘엠마’라고 합니다."

"엠마..."



안드레이는 엠마라는 소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지만,


그녀는 안드레이가 걸어오든 말든,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눈에 빛을 비추면 동공이 축소된다든지, 무릎을 가격하면 발이 올라간다든지, 이런 무조건 반사는 활동 중입니다."



태웅은 안드레이로부터 뒤로 슬며시 몇 발짝 물러났다.



"엠마. 내 말 들려?"



안드레이는 엠마 바로 앞까지 다가가 눈앞으로 손을 흔들었다.



"묘한 느낌이야."



분명, 살아 있는 것 같은데 눈 깜빡임은커녕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엠마.


안드레이는, 다소곳하게 모으고 있던 엠마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어...



"...?"



그 순간, 엠마는 고개를 삐걱대며 안드레이를 바라봤다.



----------



중개 사무소에서 나온 목에 흉터가 진 남자는,


인적이 드문 한 외진 골목으로 서진수와 박사를 안내했다.



'저 남자... 진짜 박사님만큼이나, 이질적인 존재야.'



박사님처럼 알 수 없는 기괴함에, 위험함을 섞어 둔 것 같은 남자의 오라.


서진수는 이 남자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는 건 아닌지,


돈과 물자를 제공하지 않고 부유석만 강탈하는 건 아닌지,


마음 한편이 계속 불안해, 앞서 걷던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이곳에서 기다리면, 우리 아이가 돈과 요구한 물자를 가져다줄 거야."



남자는 간신히 두 사람 정도 나란히 걸을 수 있는, 폭이 좁은 골목에서 멈춰섰다.


서진수는 그런 골목을 두리번거리며, 주변 지리를 확인했다.



'이거...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 박사님은 정말 이 남자를 신용 하는 거야?'



서진수가 둘러본 골목에는 가게란 곳을 찾아볼 수 없었을뿐더러,


주택에서는 사람의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야말로 누구 하나 죽어도 모를, 그런 골목 속이었다.



'하... 그나저나, 저 남자는 태평하기만 하군...'



박사님은... 늘 그랬듯이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고,


남자는 서진수의 경계를 아랑곳하지 않고,


한 주택가 담장에 등을 기대어, 들고 있던 두꺼운 책을 펼쳤다.



"..."



조용하다.


박사도, 남자도, 어색할 정도로 조용했다.


물론, 둘이 진짜 어색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았지만,


이 분위기 자체가, 서진수에게 어색함 그 자체였다.



'후... 그래, 내가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걸 거야.'



서진수는 마음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불안함을 겨우 잠재웠다.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저 남자는 박사님과 친분이 있는 것 같으니, 괜찮게 넘어갈 것이다.


라고 서진수는 생각하며, 긴장을 풀고 있을 때.



"앗...! 제가 늦었군요!!!"



메마른 몸에 골목을 꽉 채울 것 같은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한 여인이 부랴부랴 골목 저기 멀리에서 뛰어왔다.



----------



태웅은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어떠한 구멍 하나 뚫려 있지 않은 ‘검은 가면’을 얼굴에 썼다.



"하하하, 안드레이 황자님. 정말 천사라는 존재는 아름답지 않나요?"

"너는... 암-바야드."



이번 천사 사태의 원흉, 세난왕국 개발 총장 암-바야드.


속칭은 검은 가면으로, 현재 ‘특별’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올라와 있는, ‘악마’.


‘엠마’의 녹아내린 살덩어리에 몸이 구속돼버린 안드레이는 암-바야드의 검은 가면을 노려봤다.



"설마, 우리 ‘제국의 새장’에 잠입해 있다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세난 왕국의 ‘그 사람’에게 전해 들었을 땐, 굉장히 분위기가 어두울 거로 생각했는데,


설마, 항상 밝은 표정을 짓고 있던 태웅이 암-바야드였다니...


안드레이는 그가 천사의 기술력에 미친 과학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의심해야 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의식 전이자’를 만나는 건, 박사님에게서 ‘전이 신호 탐색기’를 뺏은 뒤일 줄 알았지만,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군요."

"... 그게 무슨 말이지?"

"그 말 그대로랍니다. 당신, 저쪽 세상에서 넘어오신 분이죠?"



검은 가면이, 안드레이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니. 난..."

"하하하, 안드레이 황자님. 역시 정신이 성숙하신 분이라, 거짓말도 능숙하시군요. 제게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이미, 분석은 끝났으니깐요."



암-바야드는 몸을 숙인 뒤, 안드레이의 눈앞으로 검은 가면을 들이댔다.



"... 그건 그렇고, 천사의 축복을 받은 몸이라... 이거 정말로 굉장하네요. 정말이지, 정말로 훌륭한 몸이에요!"



검은 가면이 안드레이의 미성숙한 몸을 훑으며, 황홀경에 빠진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아아... 저한테도 이런 축복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천사의 뜻은 너무나 깊어, 저로서도 도무지 헤아릴 수 없군요."



암-바야드의 검은 가면이 굽혔던 허리를 펴며 두 팔로 안드레이를 가리켰다.



"... 미쳤군..."



노래하는 악마처럼, 감상에 젖어 말하는 암-바야드.


그에게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저 뒤틀린 가치관은, 순백보다도 더 새하얗게 타오르고 있으니.


안드레이는 꿈틀대며 자신을 집어삼키는 이 살덩어리 속에서,


갈가노의 검을 뽑아 들었다.



"... 아... 안드레이 황자님. 이제 이 세상엔 그런 ‘존재’ 따윈 없답니다. 용사도, 영웅도... 그 어떤 구원자도... 그 날, 전부 삼켜졌으니깐요."



안드레이는 암-바야드의 말을 무시하며, 갈가노의 검을 그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마음 같아선 그의 목을 치고 싶었지만, 이 꿈틀대는 살덩어리가 자신의 몸을 잡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빠르게 결판내야 했다.



"그러니, 안드레이 황자님... 저와 하나가 되시죠."



암-바야드는 복부에 검이 꽂힌 채로 안드레이에게 다가와, 그를 껴안았다.



"젠장..."



그리고 점차 부풀어 오르는 이 정체 모를 살덩어리 속으로, 함께 빠져들었다.



----------



"주문하신 약들을 구매하느라 늦었네요. 헤헤"



가냘픈 몸.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듯싶은 나뭇가지 같은 몸에.


기다란 귀.


흔히 ‘우리 세상’에서 엘프의 특징이라 말하던 길쭉한 귀가 쫑긋 서 있었으니.



"어... 엇...."



서진수는 그녀의 첫인상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약품, 주문하신 거 맞죠!?"



여인은 매고 있던 커다란 배낭을 바닥에 내려두고, 안에서 몇 종류의 약통을 꺼내 서진수에게 들이밀었다.



"아... 아니. 난 박사가 아닌데."



심장이 쿵쾅댔다.


입술이 푸석거릴 정도로 메말랐다.


서진수는 어딘가 이상한 몸의 변화에,


넋 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 넷? 그, 그럼... 박사님은... 이분?"



여인은 서진수 옆에 서 있던 하얀 가면 향해 시선을 옮겼다.



"실례했습니다! 박사님. 대... 대장님이 말하길, 박사님의 인상은 친근하고도 따뜻할 거라 하셔서... 앗! 그, 그게, 지금 박사님의 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고..."



조마조마, 안절부절, 손가락을 맞부딪히며 부끄러운 듯이 말하는 여인.


서진수는 그런 여인의 불안함에 어쩔 줄 몰라, 덩달아 그녀를 보며 식은땀은 흘렸다.



"그녀의 이름은 ‘르-엘리아’. 보다시피 엘프족이지. 게다가 꽤 실력 있는 전사라고."



불길한 남자는 펼쳐 들고 있던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서진수는 그의 말을 듣고는, 엘리아의 가냘픈 육체를 다시 한번...



"..."



바라보지 못했다.


서진수는 이 더운 골목 속으로 얼굴을 돌려, 엘리아로부터 시선을 감추었다.



"... 흠, 약품과 현금 확인했으니, 이만 가도록 하지."



박사는, 엘리아가 바닥에 내려둔 큼직한 배낭 속을 뒤적거리다가.


몇 개의 돈다발을 꺼내어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휴... 다행이다. 제가 전부 잘 챙겨 왔군요!"



엘리아는 새하얀 피부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문지르며,


시선을 돌리고 있던 서진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그 부유석 내게 줄래?"

"음...?"

"그... 껴안고 있는 빨단 돌 말이야.."

"엇... 네."



서진수는 껴안고 있던 빨간 부유석을, 엘리아에게 내보였다.


생각보다 무거운 돌이라 이 가냘픈 여인이 어떻게 들 수 있을까, 서진수는 걱정되었지만,



"흐음... 이게 신수 냄새구나..."



그녀는 서진수의 목덜미에 난 깃털로 가벼운 바람을 스치며, 부유석을 손쉽게 받아 들었다.



"고마웡~"

"어... 어."



서진수는 그녀의 가볍지만, 깊이 남아도는 목덜미 속 여운을, 손으로 긁적였다.



"천만에..."



그녀의 바람이 스쳐 간 목덜미의 깃털이, 아직도 살랑이는 듯한 이 기분.


붕 뜬 것 같으면서도, 무겁게 내려앉는 이 기분을 간직한 서진수는,


불길한 남자를 따라 골목 저기 멀리 사라져 가는 그녀를 반쯤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삐걱대는 나무 바닥에서는, 건조하면서도 투박한 목제의 구수한 향이 지펴지고 있었고,


조금 오래된 것 같은 진열장 위 먼지 쌓인 장식품들은, 이 ‘위천마루’라는 술집의 지샌 수염이 되어 추억을 묻어 두고 있었으니.



"여기는 항상 그대로라서 좋아."



중년의 한 남자가, 위천마루의 오래된 취기를 머금으며 옆에 있던 한 여인에게 말했다.



"... 이 위천마루는 하울링 새장에서 가장 오래된 술집이라고 했죠?"

"맞아."



남자는 맥주가 든 커다란 잔을 입에 대어 꿀꺽꿀꺽, 소리 나게 넘겼다.



"크으~ 게다가 맥주 맛도 아주 좋다고."

"헤에... 뭐, 여자와 데이트 장소로는 꽝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유명한 곳이기는 한가 보네요."



여인은 자신의 머리만 한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구석진 한 테이블로 흘끔 곁눈질했다.


그곳에는 평범하고도 단정한 옷차림의, 머리에 뒤집어쓴 후드가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일 만큼,


분위기나 행동거지 하나가 ‘평범함’을 방불케 하는 젊은 남자 한 명이 맥주를 안주와 함께 곁들이고 있었다.



"... 저 젊은이가 이 ‘하울링 새장’으로 파견 온, ‘변하는 자, 긴’인 건가?"



중년의 남자는 안주로 나온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입속에 넣다 말고,


여인이 곁눈질하던 곳을 바라봤다.



"그런 것 같은데요? 겉보기엔 빈틈이 많지만, 저 머리 위에 구체가 있으니, 확실한 것 같아요."



평범하게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의 머리 위로, 붕- 떠 있는 볼링공 크기 정도의 하얀 구체.


그것은 형태를 일그러뜨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백은 새장’의 천사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저런 귀하신 분이 이런 외진 곳까지 행차하다니... ‘제국의 새장’도 어지간히 천사를 경계하고 있네."

"... 그러게요..."



중년의 남자 입에서, ‘백은 새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여인은 안색은 급격히 굳어지며, 들고 있던 맥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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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0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6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4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2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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