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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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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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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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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501,857

작성
22.09.05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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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 8. 선택받은 인간

DUMMY

'출입구...'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한 건지 모르겠다.


검은 가면... 자신은 어떠한 이유로 그 남자에게 구원받고, 이곳으로 왔다.


그 밖에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나비 한 마리가, 내 삶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아리야는 마치 ‘남’과도 비슷한 이 두 손을 쥐었다 피면서,


넓은 이 공간에 뻥 뚫려 있던, 출입구처럼 느껴지는 반원형의 큼지막한 구멍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난대 없이 나타난 광활한 들판.


무릎까지 오는 잔디가 발목을 간지럽히고,


중간중간 피어난 들꽃의 향기는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밝고도 환한 이 공간.


아리야는 이런 공간 속에서 살랑이는 나비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건...'



나비는 살랑이는 바람결처럼 아리야의 등을 떠밀었다.


사뿐한 그리움의 작은 손길로, 나비는 아리야를 들판 위에 놓여 있던,


가로세로 1m 크기 정도의 유리관으로 안내했다.



'이건... 날개?'



유리관에 담겨 있던, 자그마한 천사의 날개 한 쌍.


나비는 날개가 담긴 유리관 위에 사뿐히 앉았다가, 바닥에 힘없이 툭 떨어졌다.


아리야는 바닥에 떨어진 나비를 두 손으로 살며시 감싸며, 들어 올렸다.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꾸만 머리끝이 저며오는 기분이었다.


아리야는 뒤를 돌아보았다,



"결국, 이곳까지 오셨군요. 아리야."



따사로운 들판에 떠 있던, 검은 가면.


자신을 구해준, 밝은 인상 속에 어딘가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검은 가면.


아리야는 잔디의 그림자조차 밀어내면서 다가오는 검은 가면을 피해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아리야, 당신은 영혼이란 걸 어떻게 생각하시죠?"



검은 가면은 허리를 굽혀, 유리관을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라... 아. 그게 정답일 수도 있겠네요. 영혼이란 건 애초 관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것, 영혼이란 건 모르겠다가 정답일 수 있겠어요."



검은 가면은, 유리관의 뚜껑 위로 손을 올렸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영혼이란 건, ‘기억’이라 생각한답니다. 생명체에게 깃들어지는 ‘유전자적 정보’와 ‘경험적 정보’가 합쳐져 만들어진 종합적인 기억. 그것이 영혼이라고 생각해요."



검은 가면의 말이 끝나자,


팅!


레버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광활한 들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따사로운 햇볕도 사라졌다.


아리야의 발밑으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과,


하늘 위로는 수놓은 종유석이 다시금 펼쳐졌다.



"아리야, 당신의 기억은 이 유리관 속, 작은 날개에 귀속되었답니다. 자... 이쪽으로 와보세요. 수많은 영혼이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게 느껴지실 겁니다."



검은 가면은 유리관을 두 팔로 가리키며, 뒤로 떨어졌다.


아리야는 죽은 나비를 품에 안았다.


아직, 나비가 살랑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기 멀리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리야는 ‘검은 가면’을 향해, 나비를 품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했다.


부디... 이 모든 것이, ‘그윽한 추억이길.’


아리야는 유리관으로 다가갔다.



"이건... 뇌?"



‘여러 신경과 연결된 뇌와 척수.’


아리야는 처음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유리관에 담긴 이건, 인간의 뇌와 촉수가 분명했다.


아리야는 멍-하니, 통 속의 뇌를 바라봤다.



"아리야, 당신의 몸은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개조된 육체’. 그 유리관 속 뇌에 담긴 ‘수많은 영혼’이 당신의 본모습이랍니다."



검은 가면은 기쁜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아... 이 어쩜, 그 수많은 영혼을 뚫고, 이 신념 있는 소년이 몸의 주인이 되다니. 아리야, 역시 당신은 지성체들의 희망. 흔히, 동화책에서 등장하는 ‘마왕으로부터 세상을 구할 선택받은 인간’이로군요."

"..."



아리야는 뒤로 벌러덩 넘어져, 품에 품고 있던 작은 나비를 바라봤다.


나비는 역시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아리야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벌벌 떨렸다.


그것만이 나비를 요동치게 하고 있었다.



"아리야, 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답니다. 영혼이란 건, 기억의 집합체. 아리야가 생각하는 건 전부, 이 통 속의 뇌일 뿐이니깐요."



기분 좋게 말하는 ‘검은 가면’에게,



"... 아저씨는 왜 저를 이렇게 바꾼거죠...?"



아리야는 나비를 다시 품에 품으면서, 질문했다.



"우리 용자님의 육체는 이런저런 곳에 쓸모가 있답니다. 예를 들어, ‘저쪽 세상’으로 넘어갈 때라던지, 천사의 기술력을 테스트할 때라던지, 정말... 멋진 실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죠."



검은 가면은 아리야에게 다가가, 유리관 앞에 섰다.



"아리야, 당신은 제가 전설 속, 한 소년과 닮았다고 했죠? 그런 거랍니다. 하늘로 날아갈 작은 새. 세상의 도약을 지켜볼 또 다른 선지자. 전, 당신의 육체를 만들기 위해, 꽤 고생했답니다. 제국의 새장에서 하마터면 ‘맹세한 자’에게 잡힐 뻔했을뿐더러, 세난 왕국에서는 아직도 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죠. 하지만, 이렇게 아리야를 보니 뿌듯하군요."



검은 가면은 뇌가 담긴 유리관의 유리 위로 손바닥을 펼쳐 살며시 올렸다.


띠릭-


그러자, 유리관의 유리 위로 몇 가지 버튼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이 사실을 너무 이른 시기에 아셔서 그런지 피곤해 보이는군요. 조금 주무시고 있으세요. 그때까지 제가, 이 고아들의 새장을 지키고 있죠."



검은 가면이 유리관에 떠오른 버튼을 몇 개 터치하자, 아리야는 곧 눈이 감겼다.



----------



불이 켜진 커다란 회의실.


침 꿀꺽이는 소리가 적막함을 나타내고,


이따금 씩 오고 가는 헛기침이 서로의 눈치만을 살피는 그곳에서,


다리를 덜덜 떨고 있던 한 청년이, 끝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암-바야드의 천사가 그 야망 넘치는 ‘제국의 새장’ 황제에게 넘어가기 전, 무슨 조처를 해야 한다니깐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최정후의 고함이 테이블에 놓여 있던 4개의 잔을 흔들었다.



"이럴 때야말로, 중립국인 모험가들이 나설 때라고요."

"그야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우린 ‘제국의 새장’에게 3할이나 달하는 지원을 받고 있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정후는 한쪽 눈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던 남자, 제스의 말을 고함으로 끊었다.



"우리 모험가가 이럴 때 나서야지 아니면..."

"정후. 진정해라. 너무 흥분했다."



모험가들의 대표, 장길수가 정후를 향해 굵직한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니. 형님..."

"진정하고 내 말들어. ‘숲의 여명국’의 개입으로 암-바야드의 천사 사건은 정치적인 것과도 연관되어 졌다. 이래서는 우리 ‘모험가’들이 개입했다가 ‘제국의 새장’뿐만이 아니라, 다른 새장에서도 태클을 걸 수 있어."

"그렇지만... 지금 기회를 놓치면 사태가 진짜 겉잡을 수없이 커져요. 제국의 새장에서는 이미 암-바야드의 위치를 짐작하기 시작했고, 다른 ‘거대 새장’에서도 이를 굉장히 눈여겨보고 있어요. 이러다가 진짜 ‘전쟁’이라도 날 것 같다고요."



정후는 장길수뿐만 아니라, 탁상에 앉아 있던 다른 3명의 사람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흠..."



장길수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모험가, 정치적으로 독립된 중립국과도 같은 곳.


수많은 새장 속 사람들이, 종족을 불문하고 모여 창설된 거대한 세력.


지금 이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최정후도 엘프족 출신인 데가,


이 한쪽 눈에 붕대를 감은 남자, 제스도 수인과 인간의 혼혈인이었다.



"자넨, 어떻게 생각하지?"



장길수는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캡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여인을 향해 물었다.



"저는..."



여인은 장길수의 말에 캡모자를 위로 올리며,


조금 주눅 들 듯이 초록빛의 눈을 두리번거렸다.



"비안 누님은 저처럼 생각하시죠!?"



정후는 그런 비안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 일을 ‘비공식’으로 처리하면 어떨까... 생각하는데. 그 있잖아, 우리는 모험가니까, 이번 일은 늘 그랬듯 ‘정치적인 일과 전혀 관련 없는 모함가’가..."



비안의 목소리가 집중된 시선에 점점 기어들어 가며,


그녀는 다시금 캡모자를 꾹- 눌러 썼다.



"오! 그거 좋은데요! 우연으로 가장해서 제3의 모험가가 암-바야드를 뒤통수 치는 거예요. 그러면, 제국의 새장도 별말을..."

"또 생각 없이 말하는군."

"왜죠! 괜찮은 방법이잖아요?"

"... 하..."



장길수는 깊은 한숨이, 이 적막한 회의실의 밤공기를 젖혔다.



"... 이유 총 3가지. 첫째로, 암-바야드는 모험가 단위가 처리하기엔 그 세력이 너무 크다. 둘째로, 암-바야드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면 ‘제국의 새장’의 ‘맹세한 자’들에게서 정보를 빼 와야 한다. 셋째로, 만약 정보를 어찌 얻어 ‘맹세한 자’들보다 빠르게 암-바야드를 처리하더라도, ‘제국의 새장’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나? 아무리 우리가 모른 척 시치미 떼더라도 상대는 거대 새장 중에서도 가장 막강하다는 ‘제국의 새장’, 지원을 끊는 건 당연지사, 여기에 있는 4명의 목만 날아가면 다행인 줄 알아라!"



장길수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턱! 치며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정후는 장길수의 다그침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의자에 몸을 주저앉혔다.


그러곤 찡그린 인상에 두 손을 가져다 대고 비비적대다가,


윤이 나는 긴 생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다.



"있죠... 제가 모험가의 길을 택한 건 이런 지긋지긋한 답답함 때문이었어요... 새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이 세상을 탐험하고 즐기자... 그리고 즐기기 위해, 좀 더 세상을 평화롭게 하자고 하셨죠..."



정후는 엘프 특유의 가냘픈 이목구비를 천장으로 치켜들며,


길쭉한 귀에 박힌 검은 보석을 빙글빙글 몇 번 돌렸다.



"흐음..."



장길수는 다시금, 팔짱을 끼며 눈을 감았다.


방금 정후가 한 대사는, 자신이 모험가 대표가 되기 전 공략으로 내걸었던 플래카드였다.


모험가, 이 세력은 원래 단합이 잘되지 않던 부랑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전(前) 대표는 이들을 통합하고자, 각종 새장에서 자금을 끌어모아 모험가의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지원을 해주었다.


이는 초기엔 잘 실행되다가, 점차 모험가에게 지원해준 새장들의 갑질이 시작되었다.


더불어 모험가 중, 몇 명의 공금 횡령이 이슈화되면서, 다시금 모험가들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전(前) 대표는 이러한 사실에 결국 자진해서 사표를 썼고, 다음으로는 자신이 모험가 대표 후보자로 올라섰다.


분열되어 가는 모험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는 동료들.


그래, 이들에게는 하나의 목적이 필요하다고, 장길수는 생각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이제는 점차 사라져가는 모험가의 본질... 그걸 넘어서는 무언가.


그래서 그는 플래카드에 ‘평화’라고 써 붙이며, 연설했다.


상식과 질서에 사로잡히지 않은 평화를 만들자고,


평화라는 이상향을 위해 우리는 모험하자고,


새장의 지원을 최소한으로 받고, 중개 사무소의 수수료는 높이되,


그 무엇보다 다급한 일이 있으면 무상으로 일을 처리해주자고,


이런 식으로 모험가들의 돌아서는 믿음을 겨우 잡아낸 결과,


현재는 일이 잘 풀리고 있어 ‘거대 새장들의 모임’, 통칭 C6 회담에 참여할 정도로 모험가 세력이 확장되었다.



"그래, 알겠다..."



장길수는 팔짱을 풀며,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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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4 - 13. 지켜보는 자 22.09.24 49 0 13쪽
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4 0 12쪽
56 4 - 11. 두려워하지 말라. 22.09.10 49 0 13쪽
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4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8 0 13쪽
»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2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1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0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6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3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29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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