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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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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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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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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2.08.2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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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 - 14. 맹세한 자

DUMMY

"저 아이가... 박사가 말한 학생인가?"



분명, 저 남자는 자신을 보고 말을 하는 거다.


박슬혁의 불안함이 더욱 증폭되었다.


아직 자신은 생전 처음 보는 데다가, 어딘가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힘들었다.


왠지, 저 남자가 자신을 끌고 가서 억지로 인육을 먹일 것만 같았다.



"학생이요...?"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의 방향에서 들려오는, 슬혁에게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


슬혁은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본인은, 본인 탓에 새장 속 사람들이 죽어버렸다고,’


내 등을 토닥여 주었던 은발의 여인, 에샤드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 하하하..."



겨우, 두려움을 꿀꺽 삼키며, 그 목소리를 향해 돌아설 수 있었다.



"슬혁이구나! 난 또 누군가 했네."

"안... 안녕하세요."



에샤드는 커다란 솜뭉치를 품에 껴안은 채, 박슬혁에게 다가가,


후드를 쓴 남자를 바라봤다.



"이 소년... 박슬혁은 박사가 말한 학생은 아니에요. 하지만 박사님의 자식 중 한 명인, 울란드씨가 해적에게서 구출해준 아이죠."



에샤드는 박사와 미리 약속된 ‘거짓말’을 긴에게 했다.


어차피 ‘또 다른 세계’에 대해 남에게 말해봤자 믿지 못할뿐더러,


자칫 일이 귀찮아질 수 있기에, 그냥 그렇게 말하기로 약속되어있었다.



"박사는 참 여러모로 사람들을 구출해주는군. 그 ‘하얀 가면’의 불길한 느낌과는 다르게 말이야."

"하얀 가면이 좀 기괴하긴 하지만, 믿을 만한 분인 건 틀림 없어요."

"... 알겠다. 그 말, 참고하지."



뭔가, 박사는 시험받고 있었나?


박슬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에샤드가 품에 껴안고 있던 커다란 솜뭉치를 유심히 살펴봤다.



"그... 그건 설마, 라프 인가요?"

"어. 긴과 함께 객실에 있던 걸 내가 데리고 왔는데... 왜?"

"아... 아르가, 라프를 찾아 달라고 해서..."

"어! 그래그래. 자!"



에샤드는 안고 있던 둥근 솜뭉치를 박슬혁에게 내밀었다.


슬혁은 이 정체 모를 생명체를 만져보는 건 처음이라 조금 주저했지만,


그래도 푹신하고 말랑할 것 같은 이 솜사탕을 한 번쯤은 건드려보고 싶었기에,


에샤드에게서 라프를 조심히 받아 들었다.



"라프...?"



하얀 솜뭉치가 귀를 쫑긋 세우면서 박슬혁을 멀뚱히 바라봤다.


박슬혁은 라프의 작은 머리에 나타난 비현실적인 커다란 눈망울에 당황한 나머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벽에 머리를 쿵! 찍었다.



"으..."



부끄럽다. 아프다.


이 두 가지의 감정이, 슬혁의 머릿속에 핑- 돌았다.



"머... 머리. 아퍼? 라프..."



동그란 솜뭉치가 슬그머니 몸을 풀더니,


4개의 팔로 능숙하게 슬혁의 몸을 타고 머리 위로 올라갔다.



"이, 이러면 안 아프다. 라프"



다정한 연인처럼, 라프의 따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솜털이,


슬혁의 뒤통수를 다소곳이 감쌌다.



"... 어... 어."



라프는 나와 대화해본 적 없을 텐데...


슬혁은 머리 위에 올라타고 있던 라프의 푸근한 솜털을 조심히 쓰다듬었다.



"고마워."



박사의 말대로, 이 세상에는 무서운 것투성이는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을 구해주었던 올란드씨와,


타인의 상처를 감싸준 아르 그리고 라프도...


결국, 이 세상의 일부분이었으니.


슬혁의 바짝 여윈 입술이, 처음으로 미소지었다.



----------



새장 속, 작고 허름한 주택.


그곳에서 소년은 벌레들이 잔뜩 죽어있는 창가를 통해,


새장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이 여자가 미쳤나?"

"뭐? 뭐?! 어쩌라고? 언제까지 내가 네 수발들어야 해? 나도 이제 지쳤다고!"

"그래서 애는 팽개치고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다가 이제 기어들어 온 거야!?"

"그러면 네가 애 보면 되겠네?! 내가 맨날 혼자서 애 봐야 하냐고! 넌 항상 밤늦게까지 술 처먹고 오는데!"



새장의 하늘이 요동쳤다.


소년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이런 미친X이..."



하늘이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씨X! 나 미쳤다! 어쩔래!"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으!!! 이 씨발X, 너 뒤질래?"

"그래! 같이 죽자!"



나 때문인가?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건가?


새장 속 소년은 기우는 밤하늘로부터 고개를 내려,


창가 틈 사이에 죽어있는 벌레들을 바라봤다.



"그래! 죽자!!! 씨X!"



머리가 매달려 죽어있는 벌레.


손목이 그어져 죽어있는 벌레.


벌레들은 각기 다른 포즈로, 각기 다른 모양새로, 죽어있었다.


마치 나처럼, 푸석푸석 메마른 자신처럼, 죽어있었다.


소년은 손가락으로 툭툭 죽은 벌레들을 건드렸다.


쨍그랑!


투두둑!


그러자, 죽은 벌레들의 몸뚱이들이 부서지며 방안을 진동시켰다.



"에이씨X"



쿵!


소란한 요동이 한 남자의 욕설 함께 땅 밑으로 퍼지며, 멈췄다.



"후... 개같은X..."



덜컥!


이윽고, 불같이 화를 낸 남자는 현관문을 열며 밖으로 나갔다.



"흑흑..."



조용해진 방안으로,


여자의 흐느낌이 벌레 울음소리처럼 잔잔히 퍼져 갔다.


창가에서 죽은 소년을 애도하듯,


가냘프고 목마르게 구슬피 노래하다가,


곧 현관문을 타고 밖으로 사라졌다.


작은 소년은 다시금 고개를 들어, 새장 속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리저리 기울었던 밤하늘은,


어느 세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소년은 동이 틀 때까지, 새장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번지수가... 이 집이 맞네. 애는?"



열려 있던 현관문 너머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소년에게 들렸다.



"크씨... 집안 꼴이 말이 아니... 아! 꼬마애 여기 있네."



소년은 눈을 비비적대며, 낯선 남자의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숨도 자지 못한, 늘 상 있는 밤의 깊이였지만,


낯선 남자의 목소리는, 소년에게 있어 처음 들어보는 일이었다.



"꼬마야, 이름이 아리야 맞지?"



낯선 남자.


그는, 한쪽 가슴에 달린 ‘장미처럼 보이는 은색 뱃지’를 소년의 눈가로 비췄다.



"..."



소년은 대답 없이 낯선 남자의 장미 뱃지를 바라봤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 같은, 저 화려한 장미 뱃지는,


벌레들이 모여들지 않는 향기 없는 꽃으로써,


소년이 앞으로 느낄 운명을 진하게 자극했다.



"... 애가 대답이 없는데?"



낯선 남자는, 뒤로 걸어오는 낯선 여자에게 말했다.



"흠..."



낯선 여자는 대답 없는 소년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소년의 초췌한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꼬마. 누나 따라오면, 엄마 아빠 만나지 않게 해줄게."



여자는 한 손을 소년에게 내보였다.



"..."



작은 소년은, 여자가 내민 손을 바라봤다.


벌레처럼 마디가 툭툭 나 있지 않은,


처음 보는 사람의 손길이라 소년은 익숙지 않았지만,


지금 그녀의 손을 잡아야 할 것 같았기에.


그래야만, 자신도 벌레가 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슬며시 낯선 여자의 손길로, 소년은 손을 뻗었다.



"옳지! 그러면... 네 이름이 아리야 맞아?"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이 누나만 따라와."



소년은 향기 없는 은색 장미를 따라, 집 밖으로 날아갔다.



----------



‘하울링 새장’의 정박장을 꾸미고 있던 다양한 크기의 조각상과,


벽에 걸린 화려하고도 크디큰 그림이,


떠오르는 태양에 부딪혀 그 형태를 갖추었다.


‘변하는 자, 긴’과 에샤드는 이런 찬란한 정박장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점차 태양으로 빠져드는 ‘박사의 부유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은 새장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박사의 부유선이 이내 태양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자, 긴이 입을 열었다.



"당연하죠. ‘백은 새장’은 제가 태어난 고향. 지금, 그곳은 그 어떤 때보다도 인력이 필요할 거예요."



에샤드는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말했다.



"아담은 네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솔직히 백은 새장은 현재로선 가망이 없어. 지금 떠나는 것도 현명한 판단이다."



긴은,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던 ‘회색빛의 구체, 에리아’를 두 손으로 감싸 눈앞으로 가져갔다.



"떠난다고 뭐라 할 사람 없다. 떠난다고 잡을 사람 없다. 네 죄책감은 충분히 이해한다만, 극복했다고 하니 말하는 거다. 떠나라."



긴이 손으로 감싸고 있던 에리아의 은빛에, 태양의 붉은 빛이 부딪혀 활활 타올랐다.



"... 아니요. 저는 백은 새장으로 가고 싶어요. 그곳에서 전 사람들을 도와 ‘백은 새장’을 원래의 모습으로 바꿀 겁니다."



에리아의 은빛처럼 에샤드의 은발이, 태양에 부딪혀 아침보다 눈부시게 변했다.


긴은 그녀의 은빛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손으로 감싸고 있던 에리아를 슬그머니 놓아주었다.



"... 각오가 된 표정이군..."



긴은 에샤드를 보고 있으니 ‘고아들의 새장’에서 만났던, 아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알겠다. 더는 말리지 않겠다."



고아들의 새장...


그곳은 식량도, 식수도, 생필품도 ‘모든 게’ 부족한 곳,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해야 하는,


그야말로 ‘아이들의 쓰레기장’ 같은 곳으로,


나는 이런 ‘고아들의 새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싸우고, 또 싸우고, 또... 싸웠다.


처음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의 보급품을 싸워서 강탈하고,


이어서는 또래 아이들의 보급품을.


마지막으로는 나이 차이가 무려 8살이 나는 형들의 보급품까지.


나는 7살의 나이로, ‘혼자서’ 고아들의 새장을 휘어잡았다.



"자... 이거 먹어."



그곳에서 나는 또 하나의 생필품을 강탈하기 위해,


밥 달라고 아우성인 배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어디선가 나타난 처음 보는 꼬마가 자신에게 빵 쪼가리를 건넸다.



"너도..."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처음 보는 녀석일 수밖에 없었다.


C 지점에서 내가 아이들의 보급품을 전부 강탈하고 다니니,


어른들은 나를 B 지점으로 옮겼다.


그런데, 그게 뭐 대수인가?


이제 이곳도 C 지점처럼 전부 강탈하면 될 것이다.



"이거 먹어."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보다 작고 메마른 아이... 아담이, 빵을 나누어 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가... 내 심장을 움켜잡고 비트는 것 같았다.



"그럼... 긴씨는 이제부터 어디로 가실 거죠?"



에샤드의 목소리가, 긴을 기억에서 꺼냈다.


긴은, 에샤드에게서 고개를 돌려, 태양과 함께 빛나고 있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지금부터 ‘백은 새장’을 ‘제국의 새장’의 휘하 새장으로 편입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오해는 하지 마라. 그러는 편이, ‘제국의 새장’의 흉흉한 민심을 사로잡기 좋다고 황제님께서 판단하신 거니까."



거짓말이 아니다.


현재, ‘제국의 새장’의 내부 분위기는 매우 좋지 않다.


초 강대 새장이었던 ‘세난 왕국’의 몰락.


차기 황제로 유력하던 세기의 천제 ‘안드레이 황자’의 죽음.


여러 휘하 새장을 두고 있는 ‘제국의 새장’은,


이 두 가지의 거대 사건이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 이유는, 다른 것도 많았지만, 주는 ‘제국의 새장’의 이미지 실추.


대부분 새장에서는 ‘제국의 새장’이 뿔났으니 건드리지 말자는 태도이긴 했지만,


몇몇 ‘자신의 처지도 모르는 새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국의 새장’을 별거 아닌 새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제국의 새장’의 황제는 이러한 분위기를 벌써 눈치채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말하길, 마음 같아선 이런 분위기에 ‘강경한 대응’을 하고 싶었지만,


암-바야드의 ‘천사’라는 존재는 분명한 위험이니,


현재로선 ‘충성심이 애매한 새장’들의 의리를 사로잡는 데 초점을 두고 싶다 하셨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은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긴은 생각되었다.



"..."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긴에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은 그 훌쩍이는 소리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게, 에샤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거리.


여기저기 방범 셔터가 내려간 가게.


소년은 낯선 여자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이런 낯선 거리를 지나쳐,


‘장미 새장의 정박장’이라고 적힌,


불이 꺼진 반원 형태의 간판 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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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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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5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8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0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 3 - 14. 맹세한 자 22.08.28 37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4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29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30 0 12쪽
35 3 - 4. 천사의 기술력 22.08.18 24 0 12쪽
34 3 - 3. 제국의 새장 22.08.17 24 0 13쪽
33 3 - 2. 제국의 새장 22.08.16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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