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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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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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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6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2.09.0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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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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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4 - 5. 전설

DUMMY

"잘 알아듣는군. 만약, 내가 말한 전설이 의심스럽거든, ‘부유석’이 발견된 새장에서 ‘태초의 새장’의 흔적을 찾아보면 될 거다."

"뭐, 박사님이 말한 ‘전설’은 신용하고 있어요. 박사님은 그 전설과 직접 적으로 연관되는 사람이잖아요?"

"이것도 떠보는 건가?"

"아니요. 이 사실은 황제님께 들어서 알고 있는 거예요. 박사님, 당신은 ‘태초의 새장’에 갔던 연구원 중 한 명이었죠?"

"... 그래. 나는 ‘제국의 새장’의 2대 황제와 함께, 태초의 새장에 갔던 연구원 중 한 명이었다."



나루의 뾰족한 이가 박사의 ‘하얀 가면’을 향해 미소지었다.



"드디어..."



나루는 슬며시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어,


요염하게 날이 선 것 같은 눈으로 박사의 하얀 가면을 부드럽게 훑었다.



"황제님께서 염원하던 사람을 찾은 것 같군요..."



평범한 남자라면 단번에 베였을 정도의 요염한 나루의 눈빛.


그녀의 뾰족한 이와 어우러진 날카로운 색은,


위험할 정도로 짙은 음(陰)색을 띠었지만,



"자, 그러면 ‘조건’은 만족한 것 같으니, ‘제국의 새장’에서 학생들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지 안전하게 보호해줬으면 하는군."



박사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색을 흘려넘기며, 하얀 가면을 긁적였다.



"... 알겠어요. 황제님의 권한 아래, 그들은 확실히 보호받을 거예요. 이상한 실험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루의 아쉬운 눈초리가 소파에 앉아 수첩에 무엇을 열심히 적고 있던,


단정한 제복 차림의 남자를 향했다.



"리차드씨~ 이제 거래는 끝났으니, 박사님을 ‘맹세한 자’로 임명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아...! 실례... 박사의 전설을 기록하느라 잠시 한눈을 팔았군."



나루의 부름을 들은 리차드는,


들고 있던 수첩을 소파 앞 테이블에 올려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것도 ‘형식상의 절차’를 다해버리면 황제님의 뜻에 맞지 않을 것 같으니 중요한 이야기만 간단히 하고 끝내겠네."



주섬주섬, 리차드는 제복 안주머니에서,


푹신해 보이는 자그마한 반지 케이스를 꺼내 들었다.



"이 반지 케이스 안에는 ‘맹세한 자’의 증표가 새겨진 특수 합금 반지가 들어있다. 우리 ‘제국의 새장’의 관할 새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 상식’이 있는 새장에서도 이 반지만 있다면 상당 부분 대접받을 수 있을 거다."



리차드는 반지 케이스를 오른손 위에 올린 뒤,


왼손으로는 반지 케이스를 올려둔 오른손을 받치며, 박사 앞으로 뻗었다.



"이건 ‘맹세한 자’의 반지를 건넬 때 취하는 관행 같은 행동이니 딱히 신경 쓸 필요 없다... 이제, 박사는 이 반지 케이스를 받으면 된다."



박사는 리차드가 내민 반지 케이스를 한 손으로 덥썩 집어,


잠시 ‘하얀 가면’으로 바라보다가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럼... 박사가 ‘맹세한 자’의 반지를 받았으니, 그대는 지금부터 ‘맹세한 자’의 일원이다. 그러니, 앞으로 그는 ‘제국의 새장’의 충실한 사람으로서 황제님께 충성을 받혀야 할 뿐 아니라, 맹세한 자의 일원으로서 우리 ‘제국의 새장’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하지만, 황제님께서 ‘특별히’ 박사에게는 ‘충성’이라는 말을 생략하라 하셨기에 그 점은 없던 거로 하고... 부디 ‘검은 가면’을 잡아 주길 원한다고 하셨다. 이상!"



리차드는 부랴부랴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수첩을 챙겨 들고,


제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특실을 나갔다.



"... 하긴, 죽을 뻔했으니..."



나루는 리차드가 특실에서 다급하게 나가는 모습을 안쓰러운 듯이 지켜보다가,


박사 옆으로 다가가 몸을 찰싹 붙였다.



"박사님도 사과 한마디 없고, 너무 한데요? 제 유혹~에도 넘어오시지 않고... 혹시, 그쪽에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죠?"

"황제는 참 여러모로 부하에게 무언가를 시키는군."

"아니요~ 전 그저 당신의 속살을 보고 싶은 거뿐인걸요? 그 기묘한 몸... 저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

"... 아무튼, 황제는 내가 ‘검은 가면’을 잡아 주길 원한다면서 즈빌에 관련된 건 언급하지 않는 걸 보니, 이번 ‘제국의 새장’의 황제는 생각보다 유능한 자이거나 아니면 너무 겁쟁이거나, 둘 중 하나겠군."



박사는 찰싹 붙어 있던 나루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며,


특실의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좀 더 지켜보는 건 좋은 자세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천사가 사람들을 잡아먹은 그 시점에서, 우린 이미 모든 것이 뒤처진 거니까."



박사는 뾰족한 이들로 여전히 음흉하게 미소짓고 있던 나루를 뒤로 한 채, 특실을 나갔다.



"어... 나오셨수?"



특실 밖 황금빛 복도에서,


울란드가 박사를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



'설마 특실 현관문에도 방음장치를 설치할 줄이야.'



나루는 현관문에다가 귀를 바짝 붙여,


박사가 울란드라는 늑대 수인과 대화하는 것을 엿들으려고 했지만,


역시나 현관문 방음장치에 음이 뭉개져, 목소리를 거의 분간할 수 없었다.



'박사가 부유선 어쩌고 한 것 같은데... 이렇게 된 이상 즈빌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박사의 부유선에 타야 하나?'



황제님의 명.


그건 바로, 박사에 대한 정보를 무슨 수를 써서든 최대한으로 알아내라는 것.


나루는 이 명령을 처음 하달받았을 때 아주 손쉬울 거라고,


금방 알아내고 오랜만에 친가로 놀러 가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결코 박사를 무시해서가 아닌,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가 아니라,


자신은 ‘천사의 기술력’으로 대상의 ‘생각이나 감정’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평상시 수행하던,


‘적진 한가운데서 정체를 숨긴 채 정보를 몰래 빼 오는 그런 위험한 임무’


에 비해 확실히 난도가 낮다고,


이번 임무는 그냥 듣고, 들은 내용을 책에 기록하면 끝이라고,


오늘만큼은 늘 챙기던 긴장감을 조금 풀면서 목표인 박사를 만났던 것이었다.



'... 역시 그 수밖에는 없을 것 같은데~'



나루는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에 뾰족한 이들을 뿌드득- 갈며,


저릿할 정도의 짜릿한 쾌감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그건 그렇고... 그 고요함은 정말 오랜만이었어.'



진짜 사람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나루에게 있어 ‘하얀 가면’의 이질적인 기운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천사의 기술력’이 반강제로 이식된 이후 처음 느껴보는 그 고요함...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박사에게서는 감정이나 생각을 들을 수 없었기에,


그런 점이 자신에게는 ‘살아 있다는 쾌감’으로 다가와 너무 좋았다.



'그래. 즈빌에 ‘관련된 정보’까지는 딱히 상관없겠지... 황제님도 박사에 대해 빨리 알아내라 하셨으니.'



마음에 안 드는 ‘그 녀석’은 어지간하면 ‘그 정보’뿐만이 아니라, 즈빌에 대한 정보까지도 박사에게 넘기지 말라고 했지만...


이건 황제님의 명, 제아무리 ‘맹세한 자’의 리더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박사님의 믿음을 사볼까?'



나루는 먹잇감을 뒤쫓는 여우처럼,


여운이 남아도는 그의 새하얀 기억을 슬쩍 혀로 맛보면서,


특실을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쉿- 움직이면 죽는다."



누군가가 나루의 목에 칼날을 겨누며,


작고 차분하게 속삭였다.



----------



부유선들이 정박 되어있던 ‘금빛 새장’의 출입구.


그곳에 설치된 장식물들은 찬란한 붉은 노을에 뒤덮여,


과연 금빛이라는 이름과 어울리도록 변해가는 이 ‘사람 없는 정박장’에,


가면을 쓴 3명의 사람이 어둠 속에서부터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며, 박사 앞으로 걸어갔다.



"너희들은 ‘왕가의 손가락’ 중에서 ‘중지(中指)’에 속하는 놈들인가?"



박사의 ‘하얀 가면’과는 다르게,


눈코입이 뚫려 얼굴만 가리고 있던 ‘날개 달린 새장’이 그려진 가면을 쓴 3명의 사람.


그들은 박사가 바라본 기준으로 왼쪽부터,


거구의 근육질 여성으로 보이는 자.


평범한 키와 다부진 몸을 지닌 남자로 보이는 자.


마지막으로 근육조차 겨우 보일 정도의 마른 몸을 지닌 남자로 보이는 자.


이렇게 개성이 뚜렷한 3명의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박사님"



가면을 쓴 3명의 사람 중,


중간에 있던 ‘평범한 키와 다부진 몸을 지닌 남자로 보이는 자’가,


박사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럼, 박사님의 성향대로 본론만 빠르게 말하죠. 우리에게 협력을 해주신다면, ‘즈빌’을 만나게 해주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지켜 드리죠. 물론, 학교에 있는 학생들까지도요."



가면에 그려져 있던 ‘날개 달린 새장’이,


그의 목소리에 따라 조금씩 흔들거렸다.



"흠... 꽤 군침이 도는 제안이다만, 그 ‘정보’는 누구에게서 들은 거지? 나를 계속 스토킹하던 너희들이 인제 와서 이런 제안을 한다는 건, 분명 그 정보를 누군가에게 들어서일 텐데?"

"그건..."



박사의 의심스러운 말투에 남자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등 뒤로 손을 집어넣고는 피 묻은 수첩 하나 꺼내 들었다.



"박사님과 특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제국의 새장’의 리차드라는 자에게서 빼앗은 겁니다. 수첩에 적힌 정보들은 꽤 정성 들인 암구호로 기록돼 있었지만, 그런 건 저희 ‘왕가의 손가락’에게는 별로 문제 될 게 아니었죠."



그는 머뭇거리던 모습과는 다르게, 마치 ‘왕가의 손가락’이 이 정도라는 걸 강조하듯,


박사에게 피 묻은 수첩을 팔랑거려 보였다.



"그러면, 박사님, 이제 슬슬 대답을 들려주시겠습니까?"



남자는 피 묻은 수첩을 도로 등 뒤에 꽂아 넣었다.



----------



나루는 황금빛 복도를 걸으며,


자신을 습격한 ‘왕가의 손가락’이 쓰고 있던 가면을 떠올렸다.



'... 가면에 ’날개 달린 새장‘이 그려져 있는 거로 보아선, ‘중지(中指)’ 놈들인가?'



‘제국의 새장’에 ‘맹세한 자’들이 있다면, ‘세난 왕국’에는 ‘왕가의 손가락’들이 있었다.


이들은 ‘맹세한 자’만큼 다른 새장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만큼은 ‘맹세한 자’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나루는 알고 있었다.



'저번 ‘즈빌’을 두고 싸운 녀석들의 특징을 봤을 때는 ‘정보 수집 담당인 약지’ 인 것 같던데...'



왕가의 손가락.


그들은 자유분방한 ‘맹세한 자’와 다르게, 손가락 부위 별로 각각의 역할이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정보는 나루가 ‘세난 왕국’에 잠입했을 때 얻은 극비 정보로,


암살의 뒤처리를 담당하는 소지.


암살할 대상의 추격을 담당하는 약지.


암살과 살육전을 담당하는 중지.


암살할 대상의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검지.


그리고 이 모든 손가락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엄지.


‘왕가의 손가락’은 이런 체계적인 구성 아래, 극한으로 효율적이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괴물 같던 자리후가 조금 애를 먹었다고 했지? 흠~ 이거 울란드씨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자신은 ‘맹세한 자’들 중에서도, 전투와는 거리가 가장 멀었다.


물론, 반사 신경만큼은 ‘맹세한 자’ 가운데서도 으뜸이었지만,


흔히 ‘초인’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는 민첩함만으로 목숨을 부지 하기 힘들었다.


그건 조금 전, 자신이 ‘왕가의 손가락’한테 칼날이 겨누어졌을 때도 드러난 부분으로,


칼날이 자신에게 닿기 전 반사신경만으로 ‘왕가의 손가락’, 그녀의 팔을 단숨에 꺾어 버렸지만,


그녀는 그저 ‘순수한 힘’만으로 팔 꺾이는 걸 버텨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민첩함을 파악했는지 이내 마음속으로 ‘안심’하더니,


단검 하나를 더 꺼내 들며 자세를 낮춰,


자신의 신체, 습관적 특징을 상당 부분 정확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왼손잡인지 오른손잡인지,


행동을 취할 때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지,


신체적인 약점은 어디고 또 그 공략법은 무엇인지 등등


그녀는 불과 한 번의 다툼으로 순식간에 자신을 분석하면서,


위험할 정도로 자신에 대해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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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4 - 14. 사도 22.10.01 57 0 12쪽
58 4 - 13. 지켜보는 자 22.09.24 49 0 13쪽
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4 0 12쪽
56 4 - 11. 두려워하지 말라. 22.09.10 49 0 13쪽
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4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8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2 0 12쪽
»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0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6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3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29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30 0 12쪽
35 3 - 4. 천사의 기술력 22.08.18 24 0 12쪽
34 3 - 3. 제국의 새장 22.08.17 24 0 13쪽
33 3 - 2. 제국의 새장 22.08.16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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