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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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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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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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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501,857

작성
22.09.24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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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 - 13. 지켜보는 자

DUMMY

"..."



후유미는 중대장으로서,


그래도 김미현에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살아서 집에 갈 수 있을 거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부르튼 입술에 갈라진 살점을, 이로 잘근거리며 목소리를 목구멍으로 욱여넣었다.



"일단... 살았으니, ‘맹세한 자’라도 기다려 보자."



거짓된 희망은, 그건 희망이 아니리.


희망이란 건 현실적이면서도 직설적이어야 한다고,


자신이 병사들 앞에서 항상 하던 말이라,


후유미는 아주 희박한 것에,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중대장님은 지금 가장 보고 싶은 게 뭔가요...?"



후유미는 뜬금없는 김미현의 질문에, 잘근거리던 입술을 멈췄다.



"... 나는... 그 망할 총사령관 놈 면상이나 보고 싶군. 내 손으로 죽빵을 갈기고 싶어... 큭큭"



후유미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반쯤 넋 놓은 표정으로 말하자,


김미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를 바라봤다.



"왜 그러지?"

"아니... 중대장님이 웃는 거 처음 봐서..."

"... 그... 그러냐?"

"네... 솔직히 우리 간부들 사이에서는 로봇이라 불리 정도로 중대장님은 올곧아서요... 흐흐... 뭐... 그렇다고요."

"그래... 그랬지."



하긴, 지금까지 자신은 쓸모도 없는 ‘고지식한 별종’이었다.


항상 인간의 틀에서 벗어난 초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좀 더 완벽하게, 좀 더 세심하게, 나 자신을 만들자고,


그래서... 나도 초인이라는 말을 들어보겠다고, 노력했었다.


후유미는, 쓰디쓴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결과가, 이 모양이라니... 정말 쓸모없는 리더였다.



"그래도... 중대장님은 초인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괴짜가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이렇게 이곳에서 의지가 되니까요..."



김미현의 떨림이 아까보다 잦아들기 시작했다.



"다행이네. 이런 나라도 쓸모 있다니."



... 그래.


나는 언제부터 초인이라는 말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럼... 다음이다.


다음으로 뭘 해야 하는지,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자신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부하들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어렸을 때부터 갈망하던 초인이었지만, 나이가 들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서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그런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아... 당신, 당신에게서, 좋지 않은 말이 들립니다. 그러니 조용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후유미의 넋 놓은 표정이, 옆에서 말을 건 따사로운 햇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빨간 머리칼을 찰랑거리면서, 미소지는 정태연.


후유미는 쏟아지는 빨간 햇볕에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무언가의 기척을 느끼고선, 다급히 옆에 있던 김미현을 밀쳤다.



'아... 그래도, 좋은 인생이었어.'



쿵!


승천자의 ‘부유 기구’ 옥상으로, 폭음이 울려 퍼졌다.



----------



쿵!


모험가 ‘수’는 ‘제국의 새장’ 포로에게 날아들고 있던 ‘머리 대신 동그란 고리가 떠오른 천사를’,


주먹에 찬 커다란 건틀릿으로 복부를 가격했다.


건틀릿을 맞은 천사는 공중에 몸이 이리저리 뒤틀면서 날아가다가, 멈췄다.



"이건 또 무슨 괴물이야!"



건틀릿에 맞닿은 촉감, 보통의 천사보다 몇 배는 더 단단하다.


수는 바로 자세를 바로 고치면서, 옆에 있던 정태연을 경계했다.



"괴물이라뇨. 천사들은 우리의 미래로 이어진 디딤돌 같은 존재랍니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허리춤까지 오는 소년, 정태연.


새하얀 피부에, 빨간 머리칼이 인상적인 정태연은 겉보기에는 연약해 보였다.


하지만, 수는 건틀릿을 불끈 쥐면서 얼굴까지 올리며, 복싱 자세를 잡았다.



"정태연 교주... 하하하! ‘제국의 새장’ 병사들은 내게서 멀찍이 물러나라! 그리고... 휘말리더라도 내 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위험하다.


위험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무거운 중압감은,


‘천사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이 건틀릿, ‘라델리우’ 조차 부들부들 떨리게 하고 있었다.



"아~ 가만히 보니... 당신은 그 유명하신 모험가 ‘수’로군요. 이런... 당신처럼 ‘축복받으신 분’이 왜 이런 곳에..."

"왜냐니... 나는 ‘모험’ 하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거다."

"흐음... 죄송하지만, 전 ‘축복받은 자’들을 굉장히 아낀답니다. 그들은 ‘천사의 뜻’을 이어받은 자들이니까요. 그러니..."



정태연은 명치 부근에 한 손을 얹으며, 다른 한 손은 수에게 내밀었다.



"부디 제 교단으로 들어오시지요. 그러면, 이 포로들의 목숨은 보장될 거랍니다."



정태연은 수에게 따스하고도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 생각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이로구먼.'



수는 주위를 곁눈질로 훑으면서, ‘제국의 새장’의 포로들을 살폈다.


그들은 하나같이 피폐해진 표정으로,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신과 정태연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젠장..."



설마, 정태연은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포로들을 잡은 것인가?


물론, 타켓은 자신이 아닌, ‘맹세한 자’들이었겠지만,


수는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귀에 꽂고 있던 통신기에 손을 가져다...



"우리는 상관 말고 저놈을 죽여!!!"



이름 모를 ‘제국의 새장’의 한 병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정태연에게 몸을 날렸다.



"기량 있군!"



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국의 새장’의 한 병사가 날리는 몸보다도 빠르게,


그 거성 같은 건틀릿을 정태연의 머리로 곧장 뻗었다.



----------



‘서릿바람 새장’에 도착한 모험가의 ‘부유 기구’를 승천자의 ‘부유 기구’와 ‘부유선’들이 포위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수많은 폭음과 진동이 새하얀 구름 사이를 뚫고, 멀리서 지켜보던 박사의 부유선으로까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시작됐군. 그러니 너는 방에 돌아가 있어라."



부유선 갑판에서 ‘서릿바람 새장’을 지켜보던 박사는,


옆에 있던 서진수에게 하얀 가면을 돌렸다.



"좀 더 지켜보고 싶어요. 천사라는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른 세상에서 온 너는 천사에게 의미를 부여할 필욘 없다. 넌 그저 그들을 ‘생체 병기’라고 만 알고 있으면 돼."

"... 그러긴 한데... 박사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세상에선 ‘천사는 사람을 위하는 고귀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어서... 뭐라고 해야 하나... 어딘가 이상해서 말이죠."



가끔 성당이나 교회를 지나쳐 갈 때 보았던 천사의 동상.


인간을 위하는 그들의 인자한 표정은 이미 여러 매체에서 쓰일 만큼,


보증된 거나 다름없는 ‘자비로움’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천사가 이 세상에서는 좀... 많이 잘못된 것 같다고,


서진수는 ‘서릿바람 새장’을 포위한 하얀 점들을 바라봤다.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거지?"

"그건... 제가 종교인이 아니라서 구체적으로는 모르는데... 뭐,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잘못된 길로 빠진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거나, 악한 사람을 벌하는 거... 아닐까요?"

"추상적이군."

"... 그런가요?"

"불행함, 잘못된 길, 악에 대한 기준은 결국, ‘사람들의 인식’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또, ‘사람들의 인식’은 주로 그 시대의 ‘복합적인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거고."



박사의 ‘하얀 가면’이 서진수에서, ‘서릿바람 새장’으로 옮겨갔다.



"그런 관점에서, 천사란 것을 ‘네 세상’에서는 ‘생체 병기’로만 생각하면 된다. 의미는 우리 세상에서 생각해야 하는..."



박사는 말을 하다 말고, ‘하얀 가면’을 푸른 하늘로 들어 올렸다.



"... 그래. 어쩌면, 천사들은 ‘진짜’ 사람들을 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서진수는 갑자기 하늘로 ‘하얀 가면’을 들어 올리면서 뭐라고 말하는 박사의 모습에,


설마 천사가 우리 부유선으로 날아오고 있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럼, 들어가도록. 이곳은 위험하니까."



딱히 별일 없이, 박사는 다시금 하얀 가면을 내리며 서진수에게 말했다.



"네... 알겠어요."



‘우리 세상’에서는 천사를 생체 병기라고만 생각하고,


‘천사의 의미’는 ‘이쪽 세상’에서 생각하는 거라고?


어딘가 찜찜한 것 같은 박사의 설명에,


서진수는 전보다 작아진 ‘등에 달린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부유선 갑판 밑으로 내려갔다.



'그 ‘의미’가 뭔지 알고 싶은데 말이야...'



별거 아닐 수도 있다.


박사님은 ‘박사’이니, 그렇게 설명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그저 감이었지만, 좀 더 큰 게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을 나는 천사, 그 등에 달린 따스한 날개와 표정...



"야야. 너 여기서 뭐 해?"



서진수의 고민 사이로, 앤지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끼어들었다.



"... 엇!"

"하하하하. 놀라는 표정 웃기네!"

"..."



망할... 앤지에게 벌써 3번째 놀라다니...


신수의 힘이 전보다도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미세한 움직임은 감지할 수 있는데.


이 앤지라는 ‘미워할 수 없는 말괄량이 소녀’는 어떻게 한 건지 몰라도 참... 다루기 힘든 어린아이 같다고,


서진수는 덥수룩한 머리칼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그런데 왜 나와 있는 거야? 박사님이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



앤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서진수에게 말했다.



"난 지금까지 박사님과 대화하다가 막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인데... 그럼 넌 이곳에 왜 나와 있는 거냐?"



서진수는 얼굴만으로도 남자를 사로잡을 것 같은 앤지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바로 옆에 있던 ‘부엌’의 문을 바라봤다.



"... 아니야! 난... 한 참 먹을 때라고!"

"뭐... 뭐? 난 아무 말도... 아..! 너 몰래 뭘 먹으러 왔구나~?"



처음에 봤을 때는 엄청 까탈스러워 보였는데, 하는 짓은 뭘 모르는 소녀.


호야, 스카일러, 아르는 ‘오히려’ 너무 어른스러워서 조금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앤지는 이런 박사의 가족 중에서도 그나마 인간미가 넘치는 것 같아,


마음 어딘가가 편해지는 것 같다고, 서진수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에게는 말하지 마. 나 또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해서..."

"말하지 않아도 아르는 알 것 같은데?"

"... 왜? 나만 음식 몰래 먹는 거 아니잖아?"

"뒤에..."



앤지는 서진수의 말에 고개를 슬그머니 뒤로 돌리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 앤지..."



앤지를 가만히 바라보며 눈웃음을 짓고 있는 아르.


서진수는 얼른 앤지와 아르를 지나쳐, 방으로 향했다.



----------



쿵!


수는, 승천자의 ‘부유 기구’ 옥상 난간에 몸을 부딪치며,


빨갛게 물든 시야를 몇 번 깜빡였다.



'이봐... 수, 나와 함께 새장을 벗어나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지 않을래?'



옥상 난간에 부딪혀 공명하는 장길수의 환청과 같은 목소리를 들은 수는,


피가 흥건히 묻은 입꼬리를 치켜세워 미소지었다.



'세상이 부유석과 인터넷으로 좁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새장’들은 서로를 경계하면서 두려워하고 있어... 이걸 우리가 ‘하나’로 만드는 거지!'



공명은 수의 옛 과거를 토해지게 만들어,


미소 지은 입가의 피를 옷소매로 스-윽 문지르게 했다.



'그러니까, 함께 가자. 수'



녀석은 그 말을 이루기 위해, 인생 전부를 바쳤다.


그저 자신은 그런 ‘멋진 녀석’의 옆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물론, 가끔 녀석의 이상향을 가로막는 적들을 때려주곤 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건 아닌지,


수는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장길수의 뒷모습에,


줄곧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곱씹고 있었다.



"하하하! 드디어 내가 쓸모 있게 되어 기쁘군!"



입가에 튀는 피는 대지를 적혔고,


한쪽 눈에 흐르는 피는 과거를 적시니,


수는 이게 바로 만족감이라고,


주먹 쥐고 있던 라델리우를 서로 맞부딪히면서, 복싱 자세를 바로 고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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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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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5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8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5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1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3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7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7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5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4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30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5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30 0 12쪽
35 3 - 4. 천사의 기술력 22.08.18 25 0 12쪽
34 3 - 3. 제국의 새장 22.08.17 2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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