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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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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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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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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2.09.04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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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7. 승천자

DUMMY

"꿈틀꿈틀."



아리야의 입에서, 공기 방울이 올라왔다.


공기 방울은 벌레처럼 얼굴을 타고 위로 올라가다가,



"툭"



터져버렸다.


과거의 기억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벌레만이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가와,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지켜보는 듯한 기억으로,


어딘지... 그리운 기억으로,


방울방울, 툭툭 터지면서 오감을 자극...



'있지. 있지. 그러니까... 너마저도 그러지 마. 부탁이야.'



이름 모를 나비 한 마리가 아리야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보이지 않는 컴컴한 날개를 펄럭대면서, 구슬픈 작은 바람결을 일으켰다.


아리야는 아른거리는 나비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쨍그랑!



"하... 하..."



아리야는 실험관의 깨진 유리 조각 위에서 거치게 숨을 몰아쉬었다.


방금, 그 나비는 무엇인가?


왜 자신은 이 실험관 유리를 깨트린 것인가?


아리야는 몰아치는 한기에 입김을 뿜어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



동굴처럼 굵직한 종유석이 매달린 천장에, 밑으로 펼쳐진 콘크리트 바닥.


콘크리트 바닥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실험관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아리야는 손에 붙은 유리 조각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히도 유리가 손에 박히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래서 나 있지... 힘내고 있어. 적어도 내가 도움이 될 곳이 있다 하니 말이야.'



아리야의 눈앞으로 실험관 속에서 보았던 나비 한 마리가 살랑거리며 날아갔다.


이런 기분, 느껴본 적 있었다.


찾아야겠다는 기분.


뒤쫓아야겠다는 기분.


아리야는 나비를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가여운 소년이 아직 때가 아닐 때 부화하셨군요~"



아리야가 시선을 옮긴 그곳엔,


하얀 가운에 로브를 뒤집어쓴 한 여자의 목소리가 아리야를 반기고 있었다.



"제가 다른 실험관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부디, 이쪽으로..."



하얀 가운의 여자는 두 팔을 가지런히 정렬해, 뒤에 있던 텅 빈 실험관을 가리켰다.



"..."



아리야는 여자의 목소리 뒤로 날아가는 작은 나비를 바라봤다.


살갑고 희망차게, 파란 바탕에 검은 무늬가 그려진 나비의 날개.


희미하기만 한 머나먼 암흑 뒤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그것...


아리야의 입에서 입김이 삐져나와 나비를 따라갔다.



"... 저기... 전, 아닌 것 같아요."



아리야는 자신을 가로막은 여자를 향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 그냥 검은 가면 아저씨의 실험을 받지 않을래요. 죄송합니다."

"... 그게 무슨... 갑자기 왜 그러시죠?"

"할 게 생각났거든요."

"옛 기억은 이번 단계에서 사라졌을 텐데, 어떤 기억이..."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비로소,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그런..."



아리야는 여자를 지나쳐 나비를 따라갔다.


여자는 말없이 그런 아리야를 하얀 로브 속에서 바라보다가,


밑으로 쳐진 옷소매에서 투명한 액체가 담긴 주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리야, 당신은 지금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뭔지 모르겠지만, 자꾸 어떤 환영이 보이지요? 자... 이 약물만 주사하면, 그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여자는 주사기에 덮여 있던 뚜껑을 빼낸 뒤, 몇 번 툭툭치며 공기를 털어냈다.



"그러니. 이리로... 암-바야드씨가 슬퍼할 거예요."



아리야는 여자가 쥐고 있던 주사기 바늘에서 흘러나오는 투명한 액체를 바라봤다.


속이 빈 물방울처럼, 입에서 삐져나온 공기 방울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투명하고도 그릇된 방울.



'도망쳐... 아리야.'



누군가가 아리야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리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하얀 가운의 여자 외엔 아무도 없었다.



"자... 이쪽에서 주사를 맞도록 하죠. 살짝 따끔하겠지만..."

"죄송해요..."



아리야는 달렸다.


수많은 실험관 사이로, 내달렸다.



"... 아아... 불쌍한 작은 새. 제가, 당신의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드리죠."



여자는 달려가는 아리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을 포갰다.



----------



부유선 지하 5층, 박사의 실험장.


박사는 그곳에서 ‘돔 형태의 뚜껑이 달린, 네모난 장치.’를 열고는 안에다가,


‘새장에 날개가 달린 마크’가 새겨진 동그랗고 작은 메달을 올린 뒤,


장치 앞에 달린 계기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흐음... 신기한 것들이 많네~"



박사를 따라 실험장에 들어온 나루는,


실험 장비 중 거의 망가진 것 같은 회로기판을 슬며시 건드리며 박사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나저나... 암-바야드가 원하는 게 뭐길래, 그런 실험을 하는 거죠? 뭐, 세계 정복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요?"



지나쳐 가는 말로 박사에게 물었다.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암-바야드는 현재, ‘천사 실험’과 ‘전이 실험’을 병행하고 있다. 여기서 천사 쪽은 이미 실험의 마무리 단계인 모양이지만, ‘전이 실험’은 아직 기초 단계인 것 같더군."



생각보다 순순히 설명해 주는 박사의 모습에,


나루는 그의 옆으로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천사는 ‘세난 왕국’ 침공 사실로 누추할 수 있었지. 그만한 거대 새장을 단번에 무너뜨릴 정도의 천사의 수와 위력이라면, 우리 기준으로 충분히 ‘완성’이라 불러도 되겠지. 그리고, 기초 단계라고 말한 ‘전이 실험’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다."



박사는 메달을 장치에 그대로 올려둔 채, 돔 형태의 뚜껑을 닫았다.



"전이 실험에는 첫 번째 단계인, 의식 전이. 두 번째 단계인, 육체 전이. 세 번째 단계인, 공간 전이가 있다. 암-바야드는 여기서 세 번째 단계인 공간 전이를 ‘이름 없는 작은 새장’에서 진행했지만, 그 형태는 너무나도 불안정했지. 게다가, 공간 전이를 했던 사람치곤, 그는 내게서 전이 신호 탐색기를 훔쳐가려고 했었다. 이로 판단했을 때, 암-바야드는 다소 무리를 하면서까지 전이 실험을 성공시키려 하고 있어.”



윙---


메달이 올려진 장치에서, 테이브 감기는 듯한 소음이 울려 펴졌다.


박사는 옆으로 다가온 나루를 향해 하얀 가면을 돌렸다.



"고아들의 새장에 암-바야드가 있다고 했지? 그는 아마 고아들을 데려다가 ‘전이 실험’을 할 생각인 것 같군."

"전이 실험이라면... 학생들이 왔다던 저쪽 세상과 이어주는 실험 말이군요? 그 세상으로 고아들을 보낸다는 건가요?"

"... 아니. 정확히는 아이들이 아닌, 개조된 육체에 빈 껍데기만 보내겠지."

"그게 무슨..."

"‘우리 쪽 생명체’가 ‘저쪽 세상’으로 가려고 하면, 몸과 정신이 변질된다. 반대로, 저쪽 생명체들은 그런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더군... 아무튼, 우리 세계의 생명체가 저쪽 세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부작용을 극복할만한 육체와 정신이 필요하지."



나루를 바라보고 있던 박사의 하얀 가면이 실험실 출입문 쪽을 향하더니,


이내 박사는 그 출입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비틀어 열었다.



"한참 말씀 중인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입문 뒤에서 아르가 쟁반에 몇 개의 컵을 받친 채,


눈썹을 조금 오므리며 부끄러워하듯이 실험실로 들어왔다.



"여기... 차 드세요. 피로가 조금 풀리실 거예요."



아르는 들고 있던 쟁반을 나루에게 내밀었다.



"어. 고마워."



나루는 아르에게서 쟁반에 받친 컵을 받아 들고는,


이 성별 모를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살폈다.



"..."



아이답지 않은 포근함.


꽃과 풀잎이 살랑이는,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어진 들판처럼.


아르에게서는 순수하지만 고된 애틋함이,


한 줌의 바람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아! 제 이름은 아르에요. 반가워요."

"어... 어! 난 나루. ‘제국의 새장’의 맹세한 자 중, 한 명이야."



나루는 방긋 눈웃음 짓는 아르의 표정에,


잠시 넋 놓고는 그 나부끼는 포근함을 조금 더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래서 지금 암-바야드는, 고아들을 이용해 그런 무자비한 실험을... 하겠다는 거군요."



정신을 가다듬으며, 본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그리 놀랄 거도 없지 않나? 그런 ‘인체 실험’은 ‘제국의 새장’도, 다른 ‘거대 세력’들도 하고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지만..."

"아... 딱히 나무라는 건 아니야. 그냥, 자네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 보여서 하는 말이네. 암-바야드는 어쨌거나, 새장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실험을 하는 건 사실이니까."

"네... 그렇죠."



나루는 ‘제국의 새장’뿐만 아니라,


‘세난 왕국’도 ‘우르드니아 공화국’도, 최근 들어서는 ‘개벽의 날개들’마저도, ‘인체 실험’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표면상 암-바야드의 천사 사태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이런 인체 실험을 정당화하고 있었지만,


조금 이야기를 들춰 보면 결국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나루는 느껴졌다.


그 증거로 얼마 전, ‘숲의 여명국’이 암-바야드를 잡자고,


새장마다 소수 정예 인원을 선출하여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은 ‘군사 시설’ 개설하자고 C6 인원들에게 제안했지만,


‘세난 왕국’을 제외한, C6에 소속된 ‘거대 새장’ 및 ‘세력’은 이 제안을 그저, 서로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럴듯하게 돌려 말했지만) 거절했다.


나루는 이런 정치적 싸움이, 솔직히 영 못마땅했다.


우리 제국의 황제님도 그렇고, 다른 ‘거대 새장’ 및 ‘세력’의 대표들도 그렇고,


서로 힘을 조금씩만 합친다면, 아무리 암-바야드라도 쉽사리 잡을 텐데...



"그건 그렇고, 암-바야드가 고아들의 새장에 있다는 걸 무슨 경위로 알게 되었지?"



박사는 점점 소리가 작아져 가는 ‘메달이 들어간 장치’를 바라본 채 말했다.



"‘서릿바람 새장’에서 ‘승천자’라는 사이비 집단의 교주를 단순 테러리스트로 생포했었는데, 그 교주가 암-바야드에 대해서도 알고 있더군요."

"흠... 그 정보는 믿을 만한 건가?"

"네. 이건 지극히 ‘우연의 일치’로 알아낸 거라, 아마 거의 확실할 거에요~"

"우연... 그것도 검은 가면 그 녀석이 노린 거라면?"

"에이~ 설마요."



나루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실험실 용 철제 테이블에서 회로기판을 납땜질하고 있던 아르를 흘끔 쳐다보았다가,


다시 박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맹세한 자’가 그 정도도 파악하지 못하겠어요? 백 퍼센트까지 아니어도, 거의 확실해요. 다만, 문제는 너무 ‘우연’이다 보니, 교주가 잡혔다는 정보가 누설된 게 문제이긴 하죠."

"그런 거라면, 이미 암-바야드는 ‘고아들의 새장’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겠군."

"흠~ 아무리 그래도 ‘고아들의 새장’이 몇 개인데 벌써부터..."

"암-바야드, 녀석은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무모할 정도로 그 작은 가능성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녀석은 이런 무모한 정신과 어울리지 않게, ‘작은 불안 요소’를 회피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처절히 배제하고 들어가지. 그가 ‘세난 왕국’에서 ‘개발 총장’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건, 이런 투철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야."



치이익-


메달이 들어간 장치가 소리를 멈추며, 안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을 가로질러,


메마른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힌 차갑고 오싹한 바람은,


마침내 아리야의 몸과 맞닿으며 흐트러지게 속삭였다.


아리야는 달리는 걸 멈춰 서서 바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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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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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 4 - 7. 승천자 22.09.04 45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1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7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4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30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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