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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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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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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2.08.2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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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 - 8. 날개 잃은 제국

DUMMY

"... 저... 로젤리나씨는 새장에서 나갈 때 무슨 기분을 들었죠...?"

"나...? 나는... ‘제국의 새장’이 나를 죽일까 봐, 허겁지겁 새장을 벗어나느라 딱히 무슨 기분이 들지는 않았네..."

"... 제국의 새장이 로젤리나씨를 죽이려 한다고요?"

"어. 나는 그래도 ‘제국의 새장’에서 극비로 ‘천사의 기술력’을 연구하던 연구원이었으니까, 당연히 암살 목록에 올라가 있겠지."



꽤... 무서운 사항을 아무렇지 않게 태연히 말하는 로젤리나.


최지환은 그런 그녀에게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태연한 그녀의 태도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 그건 그렇고, 내 말 이해했지? 네가 남은 학생들을 잘 설득해봐."

"아... 네."



새장을 벗어난다라... 과연 그게 옳은 일일까?


학생들은 과연 그런 ‘상태’로 새장을 벗어나려고 할까?


그래도... 로젤리나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위험한 건 분명한 사실.


일단, 지수와 좋은 방법이 있는지 대화해봐야겠다고, 최지환은 생각했다.



----------



갈가노의 검이 살짝 들렸다가, 다시 바위로 들어갔다.



"조금은 움직이는 것 같지만, 역시 뽑히지 않네."



안드레이는 쥐고 있던 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그러니 마치 오랜 여인의 손에서 멀어지는 듯한 아쉬움이 검 손잡이에 남아,


안드레이에게 깊은 여운으로 맴돌았다.



"... 조금... 움직이다니..."



태웅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지며, 검을 주시했다.



"안... 안드레이 황자님. 다시... 검을 쥐어 보시겠어요?"

"흠...? 왜 그러지?"

"지금까지 저 검을 움직여 보려고 별별 시도를 다 해봤지만, 단 몇 밀리도 꿈쩍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조금은 움직여지는 게 아니었나?


안드레이는 여운이 남은 그 손잡이를 바라보며,


다시금 두 손을 포갰다.



"그래도, 뽑히다 말았으니 기대는..."



덜컥.


안드레이의 예상과 다르게,


손에서 부드럽게 올라오는 거룩한 십자가.


십자가는 그 날카로운 눈매로,


안드레이의 모든 것을 밝게 비추었다.



"오... 드디어..."



태웅은 입가에 미소가 잔뜩 번지며 기뻐했다.


안드레이는 뜬금없이 뽑히는 검에 잠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갈가노의 검'처럼 안정화된 ‘천사의 기술력’을 개발할 수 있다면,


이런 끔찍한 ‘인체 실험’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 '희망'이라는 기쁨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주 날이 날카롭네."



안드레이는 검을 치켜세워,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좋아요. 그럼 지금 당장 그 검을..."



태웅이 씰룩거리는 입가를 주체못하며 기쁜 듯이 말하고 있을 때,



"하..."



안드레이 곁으로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숨소리는 작지만 명확하게.


함께 침대에 누운 연인의 달콤한 숨소리처럼,


안드레이의 귓가를 달콤히 맛보았다.



"부디, 우리를 도와주세요."



안드레이 귓가에 속삭이는 검.


마음을 베는 듯한 달짝지근한 이 목소리는, 분명 검의 목소리.


안드레이는 양손에 쥔 검을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이 ‘천사의 기술력’은 아무래도 나를 선택한 것 같군.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검을 직접 살펴보도록 하지."

"넷? 그... 그건 좀..."

"어차피 나를 제외한, 다른 왕족들은 이 검을 필요 없게 생각하니 상관없겠지?"

"이... 이런... 알, 알겠습니다. 하하하"



태웅의 홀린 듯한 눈이 다시 돌아오며, 마지못해 웃었다.



"그럼... 다음으로는 ‘천사의 기술력’을 사람에게 접목한 걸 보도록 할게."



안드레이는 얼른 대화 주제를 돌렸다.



----------



서진수는 박사를 따라 중후한 느낌의 새장 속, 중개 사무소에 들어갔다.


그곳은 마치 자신이 알던 은행과도 같이, 여러 카운터들이 칸막이가 쳐진 채 줄지어 있었고,


천장에는 빨간 번호까지 깜빡이며, 다음 사람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거... 우리 세계에 있는 은행과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



다만 그곳은 자신이 알던 은행과는 다르게,


뒤쪽 한 공간에는 거대한 간판과도 비슷한 모니터가 벽에 걸려,


수많은 ‘글’처럼 보이는 단어들이 짧거나 길게 여기저기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처리하는 일은, 의뢰 완수에 대한 증거를 확인하고 보상금을 지급하거나, 특정 품목에 대한 거래를 알선해주지. 그야말로 각종 거래를 ‘중개’하는 거라 보면 돼. 그리고 그런 의뢰들은 이 뒤편에 있는 모니터 통해 확인하거나, 급하면 돈을 지급하고 컴퓨터를 쓰면 된다. 다만, 컴퓨터를 쓰면 ‘조건이 까다로운 의뢰’들만 확인할 수 있지."



눈이 휘둥그레져 있던 서진수에게, 박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 네? 왜 그리 비효율적이게 하는 거죠? 그냥, 전부 컴퓨터로..."

"의뢰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다. 모험가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고 값비싼 의뢰만을 받기 원하기에, 이곳에다가 어느 정도의 ‘운’을 넣어두는 거야."



박사는 중개 사무소 로비에 오와 열을 맞춰 나란히 줄지어진 장의자에 앉으며, 부유석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서진수는 박사의 하얀 가면을 흘끔, 눈치 살피다가 옆에 나란히 앉았다.



"때론 카운터에서 ‘유명한 모험가’에게 의뢰를 직접 제시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특별한 경우고, 중개 사무소는 기본적으로 의뢰의 ‘형평성’을 중요시한다. 그래야지, 시민들에게서 의뢰가 많이 들어올뿐더러, 모험가에게도 신용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렇군요..."



서진수는 중개 사무소를 두리번거렸다.


상당히 넓은 홀과 많은 카운터들.


벽에 걸어 둔 다양한 그림들과 진열장에 장식된 조각상들은,


중세 박물관 같은 분위기와 어울리게, 꽤 신경 써서 꾸며둔 것 같았지만.



'너무... 휑하네. 원래 이 시간대에는 사람이 없나?'



중개 사무소 안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썰렁했다.



"... 아마, 천사들 때문이겠지. 모험가들은 천사 때문에 의뢰받기를 꺼리고 있을 거라 예측되는군."



한 카운터에 가면이 고정되어 있던 박사는, 서진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그러면... 이 부유석을 거래하기 힘든 거 아닌가요?"

"아니. 내가 거래할 녀석은 정해져... 때마침 왔군."



박사의 하얀 가면이 향하고 있던 카운터에서,


입술부터 시작해 목까지, 세로로 긴 일자 흉터가 새겨진 남자가,


두꺼운 책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흠...?'



분명, 박사의 하얀 가면이 향하고 있던 카운터에는 그 누구도 없었는데...


서진수는 카운터를 빙- 둘러, 박사에게 느긋이 걸어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뭔가... 기분 나쁜 놈이야...'



깃털 때문에 조금 덥다 느껴지는 이 공간이, 서늘하게 바뀌었다.


아무도 없어 조금은 편안하게 느껴졌던 이 공간이, 끔뻑이는 악몽처럼 불편하게 바뀌었다.


모든 게 저 남자라는 존재로 인해서, 일이 틀어진 것처럼 바뀌었다.



"오랜만이야. 박사."



검게 덧칠된 눈과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입.


그 밑으로 길게 그어진 흉터.


그리고 그 흉터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목에 걸린 십자가가, 서진수를 지나쳐 박사의 하얀 가면 앞에서 흔들렸다.



"그래. 오랜만이군... 요즘 일은 어떤가?"



박사의 하얀 가면이, 남자에게 물었다.



"천사 때문에 엉망이야."



박사의 하얀 가면처럼, 기괴한 이물감을 풍기는 이 남자...


서진수는 박사와 어딘가 비슷한, 그래서 더욱 반발하는 듯한 ‘두 무언가’의 만남에, 깃털들을 곤두세우며 긴장했다.



"의뢰하는 모험가가 없으니 우리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어. 이거 잘하면 의미 없는 희생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희생을 막기 위한 게 네가 만들어진 목적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라."

"박사도 참 냉정하게 말하네. 아무리 ‘또 다른 자신’한테 말하는 거라도, 너무 냉혈인 같은걸?"



박사의 하얀 가면과 남자의 표정은 서로를 바라본 채, 어떠한 감정도 풍기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그 밑에 있는 부유석이 나한테 팔 물건인가?"

"반은 현금으로, 반은 물건 교환으로 하지."

"꽤 순도가 높은 부유석이네... 좋아. 그 부유석을 들고 따라와 줄래? 거래 장소로 안내해줄게."



남자는 그 칠흑 같은 동공으로 서진수를 지나쳐 가듯이 보고는,


중개 사무소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저... 분은 누구시죠?"



서진수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본 채, 박사에게 말했다.



"저 남자는 돈을 받고 전쟁을 치러 주는 용병이란 단체의 대장이다."

"... 전쟁을 치러준다고요...?"

"로젤리나가 소속된 ‘제국의 새장’처럼 거대한 새장이라면 군사조직이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새장 대다수는 한정된 인원수와 물자를 지니고 있어 타 새장과 전쟁을 치를 땐, 용병이란 걸 많이 고용하지."

"그런..."

"너흰 세계에는 이런 게 없는가?"



... 그래, 우리 세계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


돈을 받는 대신, 전쟁을 뛰어주는 사람들.


그게 현대 와서는 국가적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었고,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자유 부대라고, 기사들이 용병으로 활약할 때도 있었다.



"아니... 저희도 있긴 한데..."



서진수는, 바닥에 놓여 있던 부유석을 박사보다 얼른 먼저 들었다.



"현대에 와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거라서..."



남자가 풍겼던 기묘한 분위기.


그건, 죽음과 삶을 일체화시킨, 광기에서 나온 게 분명하다고,


서진수는 품에 든 부유석의 빨간빛을 향해, 생각했다.



----------



동물원처럼 유리 벽이 줄줄이 이어진 복도.


으득으득,


끼이-익,


샤악-


유리 벽 너머로 발음 불분명한 사람들의 신음이 뻗어 나와,


안드레이의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다.



"이것들이... 하... 끔찍하군."



유리 벽에 갇힌 불쌍한 자들.


그들은 천사의 기술력으로 형태가 변질된 사람들로,


몸이 찰흙 덩어리처럼 마구잡이로 뒤틀린 채,


모든 기능이 망가져 있었다.



"보통의 왕족분들은 이 부분을 건너뛰시던데, 역시 안드레이 황자님은 ‘저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시군요."



방금... 태웅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나...?


안드레이는, 태웅에게 한 마디... 아니, 주먹이 나가려고 했지만.


이렇게 변한 그들을, 차기 황제인 자신도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어쩌면... 공범자일 뿐이라.


참고 견뎌낼 수밖엔 없었다.



"대부분 천사의 기술력을 사람에게 접목하면 이렇게 변하죠."

"이 사람들이 무슨 수를 쓰더라고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가?"

"아쉽지만, 아직까진 그렇습니다. 천사의 기술력으로 어찌어찌 형태를 복구해도, 그건 살아 있다고 보기 힘든 인형일 뿐이었어요."



태웅은 그 수많은 유리 벽 중에서,


유일하게 형태가 온전한 여인이 있는 곳으로 안드레이를 안내했다.



"바로 이게 최근에야 겨우 형태를 인간처럼 바꾼 실험체입니다. 나이는 17세고 보다시피 소녀죠. 비록, 생전의 모습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해서, 최대한 아름답게 모습을 바꾸긴 했지만... 반응이 없어요. 뇌나 장기들은 분명 활동 중인데... 먹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있죠."

"먹지 않으면 결국 죽는 거 아니야?"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녀의 육체는 단순한 인간의 육체가 아닌, 천사의 기술력이 접목된 거니깐요~"



태웅은 유리 벽을 노크하듯이 툭, 툭, 쳤다.



"아! 그러면, 한 번 직접 대면해 보시겠어요? 그 검을 뽑은 안드레이 황자님이라면, 혹시... 또 모르잖아요?"



태웅은 안드레이의 대답을 듣기도 전,


유리 벽에 손을 얹은 채로, 특정 패턴을 그려 넣었다.


윙---


그러자 유리 벽이 바닥으로 매끄럽게 쏙- 들어가며, 작은 인형이 안드레이 앞에 놓였다.


안드레이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갈가노의 검’을 한 손으로 움켜쥐면서, 인형의 그 감정 없는 눈앞으로 다가갔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인형.


인형은 환자복을 입은 채로 방 한가운데에 놓인 의자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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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4 - 13. 지켜보는 자 22.09.24 49 0 13쪽
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4 0 12쪽
56 4 - 11. 두려워하지 말라. 22.09.10 50 0 13쪽
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5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8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4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1 0 14쪽
47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2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7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4 0 12쪽
»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30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30 0 12쪽
35 3 - 4. 천사의 기술력 22.08.18 25 0 12쪽
34 3 - 3. 제국의 새장 22.08.17 24 0 13쪽
33 3 - 2. 제국의 새장 22.08.16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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