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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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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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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501,857

작성
22.08.3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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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 - 2. 고아들의 새장

DUMMY

사각사각.


정체 모를 벌레가 소년의 살갗을 파먹었다.


꿈틀꿈틀.


정체 모를 벌레가 소년의 피부밑에 꽈리를 틀었다.


소년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은 끝없는 공허함만이 감도는 기분이었다.


창가에서 죽은 벌레가 이런 기분인가?


자신이 죽어있는지도, 살아 있는지도 모르는 건가?


소년은 이제 나라는 존재마저도 유지할 힘이...



"얘! 너는 다른 애들처럼 울지 않는구나! 헤헤"



컴컴한 이 공간 속에서 한 소녀의 목소리가 소년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여기 있는 애들한테 전부 말 걸어 봤는데, 울기만 하고 나를 피하는 거 있지?"



소녀의 목소리는, 공 벌레처럼 몸을 돌돌 말아 바닥에 누워 있던 소년의 몸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있지. 있지. 그러니까... 네가 마지막 애인데... 너마저도 그러지 마. 부탁이야..."

"..."



나... ‘마저도’?


처음 보는 애가, 왜 내 탓을 하는 거지?


소년은 울먹이는 소녀의 말에,


돌돌 말고 있던 몸을 슬며시 풀었다.



"나... 나 있잖아. 엄마가 날 이곳에 팔았다? 나 같은 거 끈질기게 태어나서, 새장에 도움이나 되라 하더라고. 그래서 나 있지... 힘내고 있어. 적어도 내가 도움이 될 곳이 있다 하니 말이야."



왜 이 소녀는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건가?


내가 대화나 들어주는 좀벌레처럼 보이나?


소년은 자리에 앉아, 두 다리를 품에 끌어안았다.



"너는? 너는 왜 이곳에 온 거야?"



소년의 주위로 메아리치던 벌레 울음이 멈추고,


누군지 모를 한 여자애의 목소리만이 남았다.



"..."



... 소년은 대답 없이, 컴컴한 이 공간 속에 녹아 있는 소녀의 실루엣을 바라봤다.


그녀는 옆에서, 마치 자신처럼 두 다리를 품에 껴안은 채 앉아 있었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있지. 나... 무서웠거든. 또, 모두에게서 버려지는 줄 알고..."



버려진다...


창가에 죽은 벌레처럼, 무가치 무자비하게 버려지는 그 기분...


소년은, 낯선 여자가 잡았던 자신의 손을 펼쳤다.


아직도 까끌까끌하게, 손바닥 위에 벌레 독침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아! 내 이름은 아모네야. 헤헤."



아모네.


이 소녀도 자신처럼 창가에서 죽은 벌레...


소년는 펼치고 있던 까끌까끌한 손으로,


아모네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아리야."



아모네의 검은 실루엣이 아리야의 손길에 깜짝 놀라 들썩였다.



"나... 난 너를 버리지 않아..."



이따금, 아리야는 창가에 죽어있던 벌레가 날개를 펄럭거려 하늘로 날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건 힘든 일이라고 자신을 타일러도, 상상은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와서는, 그건 더욱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라야는 아모네의 손을 놓치지 않았다.



"고마워..."



아모네는 아리야를 손을 꼭- 쥔 채 훌쩍이면서,


점점 의식을 잃어 갔다.



----------



이름 없는 새장 속,


나무 사이를 지나쳐, 빗방울 하나가 최지환의 콧등으로 떨어졌다.


지환은 빗방울이 떨어진 새장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희미해져 가는 새장의 철장이 유독 가슴을 옥죄는 것 같다고,


지환은 앞에 서 있던 윤지수를 바라봤다.



"... 너... 좀 달라진 것 같다?"



지환은 모든 게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지수가 자신에게 한마디로 하지 않은 채,


다른 학생들과 함께 이 새장에 남아 있겠다는 결정을 ‘미리’ 한 것도.


또, 미리 한 결정을 자신보다 서진수 선배에게 먼저 말한 것도.


전부, 답답했다.



"... 지환... 네가 이상하고 생각 안 해 봤어? 그... 박사의 ‘하얀 가면’처럼 말이야... 너도 우리가 보기에... ‘무서운 녀석’일 거라고 생각 안 해 봤어?"



박사의 ‘하얀 가면’이라고?


무엇이, 어떤 점이... 그 굉장히 이질적인 박사님의 ‘하얀 가면’과 자신을 비교하는 건지...


지환은 예상치도 못한 지수의 말에 당황했다.



"뭐가..."

"이상하잖아! 눈...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었어. 네 절친한 친구인 박현필도... 천사에게 뜯어 먹혔다고...! 하지만 너는... 너무 ‘정상적’이야. 달라진 게 없어... 아니. 오히려, 학생들을 위해 더 힘쓴다고...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수는 지환이 두려운 듯,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고마워... 고맙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힘써준 거 잊지 않을게... 그러니, 이제 서로 갈 길 가자."



지수는 지환에게서 뒤돌아 어디론가 뛰어갔다.


지환은 저기 멀리 사라져 가는 윤지수의 뒷모습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보았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지환의 콧등으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 하... 씨..."



아프다. 그저, 빗방울일 텐데, 더럽게도 아프다.


지환은 빗방울이 떨어진 콧등을 쓱쓱 옷소매로 문질렀다.



"흠흠... 지환..."



서진수가 날개를 펄럭대며, 최지환 옆으로 내려왔다.



"뭔가,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 박사님이 출발해야 한다니 어서..."

"제가 잘못한 걸까요?"



지환은 지수의 뒷모습이 향했던 나무 사이를 바라보며, 서진수의 말을 끊었다.


서진수는 찌뿌둥한 지금 날씨보다 더 서늘해진 지환의 표정을 보고는,


곧 날아갈 것 같은 날개를 접었다.



"... 아니. 네가 잘못한 건 없어."

"그러면 왜..."

"받아 드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뿐이야. 너는 유독... 뭐랄까, 적응력이 비현실적으로 좋다고 해야 하나? 뭐, 그렇다고 박사님을 따라갈 거라 말한 우리의 선택이 정답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너는 힘내주었으니까, 고맙다."



서진수는 최지환의 등을 한 번, 턱! 쳤다.



"..."



지환은, 새장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만약, 현필이었다면, 지금 살아 있는 게 그 녀석이었다면,


모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을 텐데...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회색빛의 하늘이,


너무나도 숨 막히는 것 같다고 지환은 생각했다.



----------



아리야는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회색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정신을 차렸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시야가 흐릿했지만 그것보다도,


아리야는 아모네의 손을 찾아, 차갑고 미끈한 바닥을 더듬거렸다.



"너희들은 곧, 이 ‘고아들의 새장’에 방생된다. 이곳에서 너희가 나갈 방법은 단 하나, 고객에게 ‘선택’받는 거다."



아리야는 시끄러운 남자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흐릿한 시야를 바로잡고는 주위를 훑었다.



"배식은 하루에 한 번. 용변은 지정한 위치에서 해결하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교육대에 들어갈 거니, 알아서 판단하도록."



단단한 쇠창살로 사방이 둘러쳐진, 커다란 동물 우리 같은 곳.


이곳엔 아모네가 아닌 몇몇 남자애들이 자신과 함께 갇혀 있었다.



"또한, 서로 불손한 일을 저지를 시에도, 교육대에 들어가니 그 점 기억하기 바란다."



아리야는 부들대는 다리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모네를 찾아 쇠창살 밖을 두리번거렸지만.



"이상! 알아서 생존하여, 부디 고객의 눈에 띄기 바란다."



쇠창살 밖에는 플라스틱 의자에 놓인 시끄러운 라디오 한 대와,


듬성듬성 심어진 나무 그리고 그 밑에 어설프게 쌓여 있는 다양한 크기의 널빤지들이 전부였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이 ‘고아들의 새장’에..." 철컥.



그렇게, 라디오가 4번 정도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 때.


배가 풍선처럼 튀어나온 남자가 라디오 앞으로 뒤뚱뒤뚱 걸어와,


또 똑같은 말을 반복하려고 하는 라디오를 껐다.



"난 참 친절한 것 같단 말이야. 애들이 라디오를 다 들을 때까지 기다려 주니까. 클클클"



남자는 허리춤 뱃살을 들썩여 열쇠 하나를 둔한 손놀림으로 꾸역꾸역 꺼내 들었다.



"라디오를 통해 들었겠지만, 너희들이 온 이곳은 ‘고아들의 새장’. 만 16세까지 있을 수 있는, 아늑한~ 새장이지. 클클클"



남자는 느긋한 몸짓으로 손에 든 열쇠를 쇠창살에 걸린 자물쇠에 꽂아 넣었다.



"내 장담컨대, 고객에게 잘 보여서 이곳을 나가면 너희들은 ‘이전’ 인생보다 훨씬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그야 너희를 사랑해줄 가족이 생기는 거니까. 클클... 하지만! 고객에게 선택받지 못한다면 ‘폐기처분’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건 좀 불행해질 수 있겠네. 클클클"



철컥,


쇠창살 문이 열렸다.


남자는 턱살을 출렁대며 플라스틱 의자와 라디오를 챙겨 든 채,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아리야는 열린 쇠창살 문으로, 다른 남자아이들보다도 제일 먼저 뛰쳐나갔다.



'아모네...'



아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아모네......'



아직 머리에 두통이 가시지 않았지만,



'아모네.'



아모네를 찾아야 했다.


그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벌레들은 우리를 갈라놓았다.


끈질긴 날갯짓과 수많은 낱눈을 굴리며,


벌레들은 유일한 내 빛을 향하여 있는 힘껏 달려들면서,


모든 것을 갈라서게 했다.



"헉헉..."



아리야는 드문드문 나무가 배긴 이 ‘되다만 숲’ 속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되다만 숲’ 중간중간에 설치된 ‘화장실로 보이는 곳’과 ‘식수대’를 확인하며,


달리고. 또... 달려나가려고 할 때.


턱! 하는 소리와 함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크..."



아리야는 피가 나오는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얼른 일어섰다.



"저기 봐봐. 새로운 놈이네?"

"어... 그렇네."



어느덧, 아리야가 도착한 ‘되다만 숲’의 끝자락.


그곳에는 여러 판자로 지어진 ‘집 같은 것’들이 모여 판자촌이 형성돼 있었고,


그곳에는 오로지 남자아이들만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 하..."



아리야의 목구멍에서 숨이 개어 나왔다.


동시에 파리 한 마리가 그의 목구멍에서 빠져나와 왱- 귓가로 스쳐 갔다.


판자촌에 있는 아이들은 전부 자신과도 같은 남자애들...


그렇다는 건, 여자애인 아모네는 이곳에 있지 않다는 말.


아리야는 아직 어리지만,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성숙해서가 아닌, 지금까지 부모님의 싸움을 많이 보아왔기에,


본능적으로 ‘성별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하... 우웩!"



아리야의 거친 숨을 타고 토산물들이 벌레와 함께 쏟아졌다.


자신도 ‘낯선 여자’와 별다를 게 없다고,


나 같은 건 결국 손을 놓치고 만다고,


아리야의 위 속에서 벌레처럼 꿈틀대는 감정들이,


결국은 입 밖으로 쏟아지고야 말았다.



----------



울란드는 ‘조타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 팻말이 걸린,


부유선의 기다란 복도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박사님. ‘제국의 새장’의 ‘맹세한 자’ 중 한 명이 암-바야드의 최측근 부하, 즈빌이란 자를 생포했다고 하네요."



울란드는 자리에 일어선 채 핸들을 조작하고 있던 박사의 뒤로 걸어가,


A4 종이들이 껴 있던 얇은 파일철 하나를 내밀었다.



"더불어, 한가람이라는 ‘정체 모를 여수인’도 함께 생포했다는군요."



박사는 울란드가 내민 파일철을 향해 슬쩍 ‘하얀 가면’을 돌린 뒤,


핸들 양옆에 펼쳐진 여러 버튼을 누르며 복잡한 조종간을 능숙히 조작했다.



"자동 조종 모드 on"



이라는 음성이 부유선 조종간에서 울리자,


박사는 그제야 울란드가 내밀고 있던 파일철을 받았다.



"그럼, 이것으로 내가 ‘맹세한 자’에 들어갈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 같군."



박사는 파일철을 펼쳐 안에 내용물을 읽어보며 하얀 가면을 긁적였다.



"흠...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군요. ‘맹세한 자’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들이 암-바야드에 대한 정보를 바로 제공해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울란드는 조타실 부사수 자리에 앉아,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그 ‘맹세한 자’ 중, ‘변하는 자, 긴’이 박사님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봐도 딱 답이 나오잖수. 그 녀석들은 그저 박사님을 이용하려는 것 같은데 말이죠."



울란드에 말에, 박사는 파일 넘기는 걸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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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4 - 14. 사도 22.10.01 58 0 12쪽
58 4 - 13. 지켜보는 자 22.09.24 49 0 13쪽
57 4 - 12. 지켜보는 자 22.09.17 54 0 12쪽
56 4 - 11. 두려워하지 말라. 22.09.10 50 0 13쪽
55 4 - 10. 두려워하지 말라 22.09.07 55 0 12쪽
54 4 - 9. 선택받은 인간 22.09.06 48 0 13쪽
53 4 - 8. 선택받은 인간 22.09.05 45 0 12쪽
52 4 - 7. 승천자 22.09.04 45 0 12쪽
51 4 - 6. 승천자 22.09.03 43 0 12쪽
50 4 - 5. 전설 22.09.02 42 0 13쪽
49 4 - 4. 전설 22.09.01 40 0 12쪽
48 4 - 3. 선지자 22.08.31 41 0 14쪽
» 4 - 2. 고아들의 새장 22.08.30 43 0 13쪽
46 제 4장. 고아들의 새장 22.08.29 44 0 12쪽
45 3 - 14. 맹세한 자 22.08.28 37 0 13쪽
44 3 - 13. 맹세한 자 22.08.27 40 0 12쪽
43 3 - 12. 맹세한 자 22.08.26 36 0 12쪽
42 3 - 11. 세력 22.08.25 35 0 12쪽
41 3 - 10. 세력 22.08.24 34 0 12쪽
40 3 - 9. 날개 잃은 제국 22.08.23 24 0 12쪽
39 3 - 8. 날개 잃은 제국 22.08.22 30 0 13쪽
38 3 - 7. 작은 날개 22.08.21 24 0 11쪽
37 3 - 6. 작은 날개 22.08.20 29 0 11쪽
36 3 - 5. 천사의 기술력 22.08.19 30 0 12쪽
35 3 - 4. 천사의 기술력 22.08.18 25 0 12쪽
34 3 - 3. 제국의 새장 22.08.17 24 0 13쪽
33 3 - 2. 제국의 새장 22.08.16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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