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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3,795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3.08.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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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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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 - 6. 쟁탈전

DUMMY

"하지만, 내가 거부했었다. 아무리 천사의 기술력에 대한 친화력이 높다고 한들,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역으로 천사에게 자아를 빼앗기게 되지. 설령, 천사의 기술력을 통제하게 되더라도, 사람의 속내는 모르는 법. 잔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몇 명의 희생으로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는 지그시 감은 눈을 떠, 로젤리나를 바라봤다.



"... 아직도 불신이 가득한 표정이로군. 그럼..."



나는 붕대 두른 남자의 뒤로,


거대한 열기구처럼 생긴 무언가가 한가득 떠오르는 광경에,


깜짝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나도 전이자라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나?"



로젤리나라는 여인도, 열기구에 놀란 듯이 뒤로 주춤 물러나며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새장이 분열되기 전, 용사와 함께 신수에게 반기를 들었던 전이된 자다."

"뭣...? 아니, 잠시..."



로젤리나의 동그래진 눈이 붕대 두른 남자의 얼굴에 고정되더니, 유심히 그를 살펴보는 것 같았다.



"그럼... 넌, 저쪽 세계에서 몇백 년 전에 전이되었단 말이야?"

"... 그건 아닌 것 같더군. 학생들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시간을 보아하니, 내가 전이된 지는 ‘저쪽 세상’을 기준으로 5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



붕대 두른 남자를 바라보고 있던 로젤리나의 커다란 눈망울이,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허공을 두리번거렸다.



"자. 그러면, 질문은 여기까지 하고, 인제 그만 부유 기구에 올라타도록 하겠다."



내가 보았던 그 어떤 건물보다도 훨씬 커다란, 하늘에 떠 오른 부유기구란 것.


나는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하나도 파악되지 않은 채, 이 거대한 부유기구에 몸을 실었다.



----------



구름을 발판 삼아, 태양 대신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모험가의 부유기구,


그 속에서 하나의 부유선이 유유히 빠져나와,


울란드가 타고 있던 박사의 부유선 앞에 멈춰 섰다.



"... 흠..."



박사의 부유선 갑판 위에 있던 울란드는,


다가온 모험가의 부유선을 잠시 바라보다가,



"모험가가 우리한테 무슨 볼일이지?"



갑판 위 한쪽 구석, 나무 상자들이 잔뜩 쌓여 음습하게 그늘진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서 죄송하게 됐네요."



울란드가 바라보고 있던 그늘진 나무 상자 사이로,


한 여인이 물결처럼 녹아 들어와, 울란드의 베어갈 듯한 눈썰미를 곧바로 응시했다.



"바쁘니까. 원하는 거나 말해라."



울란드는 겁먹지 않은 채로 당당하게, 자신이 보기엔 조금 뻔뻔하게 다가오는 여인의 모습에,


입속에 드러난 송곳니를 조금 감췄다.



"본론을 말하기 전에, 전 인간족인 미카엘이고, 모험가죠. 이렇게 만나 뵈어서 반갑네요."



마카엘이 성큼성큼 울란드에게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당신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 두시면 좋겠어요."

"... 그랬으면 좋겠군."



울란드는 미카엘이 내민 손을 슬쩍 한 번 쳐다보았다가,


입속에 드러난 송곳니를 완전히 감추면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럼, 찾아온 목적은?"



울란드의 날카로운 눈썰미가 여인의 주변을 한 번 맴돌았다가,


요염한 입술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내밀고 있던 손을 얼른 치우는 이 미카엘이란 모험가를 바라봤다.



"사도... 신수인 당신은 사도라는 말을 들어보셨을지요?"



달콤한 목소리에 적의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톤으로, 은근슬쩍 자신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오며 말하는 미카엘.


울란드는 신수의 본능으로 이 여인을 느껴보길, 주변에 무슨 장난을 쳐 놓은 놓은 것도 아니었다.


인원을 배치한 것도, 천사의 기술력을 기동시킨 것도 아닌, 이 여인은 맨몸 그 자체로,


모험가는 혹시 이 여인을 버리는 카드로 이곳에 오게 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봄직 했지만,


울란드는 ‘모험가 미카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나름의 그녀에 대한 응대로 팔짱을 낀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사도... 그때 그, 광신도들에게서 들었나 보군."

"맞아요... 그들은 당신들을 사도라고 부르며, 구시대에 종말을 논하더군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면 다소의 희생을 양분 삼아야 한다고, 그것이 사도가 있는 이유라고."



미카엘의 말이 끝나는 순간, 울란드는 적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당신은, 정말 종말을 맞이하러 온 사도인가요?"



어디서 많이 느껴본 위화감.


어디서 많이 느껴본 이 기분...


과거의 그리움이 뭉쳐 스치는 이미지의 열상.


그것이 울란드의 길쭉한 콧등을 지나쳐 가자,


그는 미간을 좁히면서, 미카엘을 매섭게 바라봤다.



"우리를 벌할 과거의 천사들... 박사님은, 정말 그것을 쫓은 소년이었는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답니다."



미카엘의 위화감 섞인 말···


울란드는 송곳니를 드러냈다.



"... 정태연. 그 부유기구에서 죽은 거 아니었나?"



정태연...


박사님의 분신.


아니, 정확히는 박사님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만들어 두었던 여분의 몸.


그의 종합적인 기억은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인형일텐데···


울란드는 한 때 미카엘이었었던 그녀의 생기 없는 눈에, 날카로운 손톱을 비추었다.



"오랜만이로군요. 울란드."

"미안하지만, 박사님은 이곳에 없다."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저는 그저, 태초의 새장이 강림하기 전에 옛 친구를 만나 뵙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거니깐요."

"..."



옛 친구···


그래, 이 녀석은 과거에 꽤 붙임성 좋던 녀석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는 자신과 함께 만들어졌던 박사의 산물로,


어릴 적 모험을 함께 했었다.


이미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긴 했지만, 그 기억만큼은 진짜이긴 했다.



"너나 나나, 우리는 그저 박사님의 도구였을 뿐이었지."

"네... 그렇기에, 박사다운 거겠죠. 그는 우리를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 없어요."

"그래... 그랬었지."



울란드는 팔짱을 풀며,


새하얀 구름보다 더 높이 떠 있던, 저 거만한 모험가의 부유기구를 바라봤다.


그것은 어느덧 눈 부신 햇살마저 가린 채, 자신을 서늘한 그림자로 뒤덮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지금부터 뭘 할 생각이지?"

"저는 지금부터 박사님에게 불필요한 인자들을 전부 정리할 셈이랍니다. 이미 그 일환으로 모험가의 간부들을 전부 제 수중에 넣었죠."

"... 내가 알기론, 너에겐 이런 힘은 없었을 텐데, 설마 이것도 검은 가면의 짓인 거냐?"



물론, 정태연은 어느 순간부터 박사님의 통제에서 벗어나, 광신도들의 교주가 되어 있었다...


과거에 빛을 발하던 소년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이건 분명, 외부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고 밖엔 울란드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검은가면... 암-바야드라면 제게 찾아온 적 있지만, 저는 함께 하자는 그의 제안을 거부했었답니다. 그러니, 이건 순수한 제 의지라고 봐도 되겠죠...?"

"그렇다면 왜..."

"자, 인제 만남의 시간도 다 되어 가는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제가 한 가지 충고를 해주겠습니다."



울란드는 두 팔을 활짝- 펼치면서 즐거워하는 듯한 미카엘의 죽은 미소에,


이빨을 까닥- 깨물면서, 츠읏. 혀를 한 번 튕겼다.



"용사가 학생들의 존재를 알아챘어요."

"... 용사가? 아니... 그건 그렇고 너는 어떻게..."

"당신들이 ‘제국의 새장’으로 학생들의 정보를 흘린 건 큰 실수였어요. 저도, 용사도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알았으니깐요."

"칫... 뭐, 애초, ‘제국의 새장’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이 정도의 경우는 예상했던 거니깐."

"오... 이것도 박사님의 큰 그림이었던 건가요?"

"큰 그림이라... 그건 모르겠군."



울란드는 정태연에게서 뒤돌았다.



"그나저나 너는 왜 그런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냐?"

"순수함이 묻어난, 천사의 날개들~ 그것들이 비로소 우리를 하늘로 날아가게 해줄 테니깐요."



----------



"... 생존자가 여기에 있는 학생들뿐이라니..."



그 말을 믿을쏘냐?


이 세상이 판타지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런 세상인 건 둘째치고,


생존자가 희망고 학생들이 전부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나는 믿지 못해 이곳까지 왔다.


내가 직접 내 고향을 보기 위해서,


내가 직접 내 가족을 찾기 위해서,


그런데 또 무엇하나 마주하지 못한 채 말로만 전해 들었다.


마치, 뉴스에서 들었을 때처럼. 나는 그저 무기력한 존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로젤리나를 향해 다가가려 했다,



"앉아라. 아니면 베겠다."



나는 내 목 밑으로 뻗어오는 기다란 칼날에,


정신을 겨우 차리면서 자리에 멈춰 섰다.



"... 아니, 잠시만요... 제 가족이 실종되었다고요.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나요?"

"그럼, 지금부터 뭐를 할 거지? 나와 싸울 텐가?"

"아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지금 이런 상황에서 너무 침착해 보이는 붕대 두른 남자.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한 여유로운 그의 말투에, 나는 짜증이 치솟았다.



"그런 뜻이 아니면?"

"찾으러 가야겠죠... 제 가족들을."

"... 로젤리나. 이 녀석의 가족이 살아 있을 확률은 있는가?"



내 목에 거의 닿을 것 같았던 붕대 두른 남자의 칼이 느슨해지며,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로 로젤리나에게 말했다.



"... 전이는 딱 2번 일어났어요... 그리고 그 2번의 전이 끝에는 천사의 침공이 있었고요. 저는 생존자를 찾으려고 전이된 지역을 뒤졌지만, 생명체는 남아 있지 않더군요..."



로젤리나의 말을 들은 붕대 두른 남자는 내 목 밑으로 칼을 좀 더 가까이 대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미안하지만, 네 바람과는 다르게 가족들은 죽었다. 그러니, 너는 그저 겸허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좋겠어."

"그게 무슨!!!"



턱!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시야가 흐물흐물해지며, 몸이 앞으로 곤두박질쳐졌다.


나는 몽롱해진 정신 속에서 간신히 의식을 붙잡으며,



"으..."



신음을 한 번 뱉어냈다.



"뭐... 뭐야...?"



무언가 날아와 내 머리를 강타한 건가?


아니... 이 사방이 막힌 방 같은 곳에서 그럴 리는 없었다.


나는 옆에서 칼집에 손을 올리고 있던 붕대 두른 남자를 바라봤다.



"망할... 새끼."

"아직 의식이 있다니. 대단하군."

"... 어쩌자는 거야... 나는 그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거라고... 그게 잘 못된 건 아니잖아?"



나는 고꾸라진 몸을 바로 세웠다.



"상식인처럼 말하는군. 마치,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말해."



붕대 두른 남자의 수면 위 물결과도 같은 눈매가,


지그시 떠지면서 나를 마치 음미하듯 훑고 갔다.



"네 그런 모습,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천사의 육신을 지닌 사람이 그런 말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야."



그의 잔잔한 물결은, 추억에 잠긴 사람처럼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네 모습에 신경을 더 쓰는 편이...”



붕대 두른 남자의 시선이 곧장 이 꽉 막힌 방의 유일한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군."



나도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에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세한 진동은 처음엔 사람의 숨소리처럼 별거 아닌 것 같았다가,


점차 출입문 쪽으로 다가오는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로 변하여,


곧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제복 차림의 여인이 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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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6 - 5. 쟁탈전 23.07.03 22 0 12쪽
87 6 - 4. 쟁탈전 23.06.24 20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3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6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9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2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5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7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40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5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2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63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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