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3,780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2.12.10 19:05
조회
53
추천
0
글자
12쪽

5 - 4. 낙원

DUMMY

"나중에 점심 사는 거 잊지 마라?"



나는 테델을 시청의 뒷마당, 우거진 수풀 사이로 데려갔다.



"보수는 넉넉하게 해줄 테니 걱정 하지마시고..."



테델은 시청 벽의 갈라진 틈으로 눈을 끼워 넣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 여기서 할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거냐?"

"그건 장비에 대해 회의할 때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들을 수 있겠지."

"뭐...? 아... 하긴..."



여전히 틈 사이로 눈을 딱 붙인 채, 말하는 테델.


어지간히 그 할아버지가 걱정되는 건가?


하긴 드워프들이 서로 깐깐해 보여도 뭉칠 때는 또 잘 뭉치니까.


참고로 나는 용인족에서 인간과 가까운 반용족이라고 아버지가 그러셨지만,


지금은 그냥 인간족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반용족이라지만, 보통은 머리에 뿔이 나 있던가 아니면 적어도 날개나 꼬리가 달려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금은 인간족이라고 학교에서 자기소개 할 때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오실 테니까, 숨죽이고 몰래 보고 있어라. 나는 집에 좀 갔다 올게."

"어."



나는 테델을 뒤로한 채 슬그머니 수풀에서 빠져나와, 시청 앞 거리로 나왔다.



'... 흠...'



새장 속,


공중에 두둥실 떠 있던 ‘부유석’을 플랫폼 삼아 지어진 거대한 성과 그 성 주위로 떠 있는 크고 작은 건축물들.


이 풍경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보아왔던 풍경이지만, 아직도 질리지 않는 멋진 풍경이었다.


다른 새장에도 이렇게 멋진 풍경이 있는지 드워프 아저씨들에게 물어봤지만,


역시 우리 새장처럼 공중에 성이 떠 있는 새장은 이곳뿐이라고 했다.



'그래도 난... 새장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이렇게 멋진 곳이지만...


나는 새장 밖으로 커다란 부유기구 한 대가 유유히 지나가는 걸, 가만히 서서 바라봤다.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밖에는 좀 더 멋진 것들이 펼쳐져 있을 거니까.'



승객 약 1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 부유 기구라든지,


도시들이 커다란 쟁반처럼 생긴 플랫폼 위에 지어진, 철장 없는 새장이라든지,


새장이 사람의 손에 인공적으로 건축되어, 새장 자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근미래적인 새장이라든지,


이 세상에는 너무나 볼 것이 많았다.



'... 나는 그래도 인간처럼 생겼으니...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인간, 드워프, 엘프 외에 종족들은 우리 ‘회백 새장’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그저 우리를 보호하는 있는 거라고 선생님들은 설명하지만... 이건 명백히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우리 새장은 기본적으로 자유를 보장한다. 물론 평민, 귀족, 영주로 계급이 나누어져, 계급마다 하는 일이 다르긴 했지만...


평민이 영주가 될 수도, 영주가 평민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시스템이라 계급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본 채 집으로 향했다. 집에 책가방도 둘 겸, 출출하니까 먹을 걸 가져올 생각이었다.


아직 아버지가 회의하기로 한 시간까지 15분 넘게 남았...


퍽!


내 몸이 무언가와 부딪혀 뒤로 밀려났다.


나는 다급히 하늘에서 눈을 떼며, 정면을 바라봤다.



"어... 엇. 미안..."



나와 또래로 보이는 소년?


이라고 하기에는, 저 생기 없는 눈.


밑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날개 뜯긴 벌레와 같은 저 소년의 눈은,


나와 같은 또래라고 생각하기엔 한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



소년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뒤따라 오고 있던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와 함께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이상한 녀석이네. 이 동네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새장은 크기는 크지만, 앞서 말한 특정 종족 외엔 밖으로 나가지 못해, 사람들은 생각보다 끼리끼리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영주들은 이런 친목이 과도해질 경우를 대비해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섞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 같은 학생들은 유치원이라든지, 학원에서라든지, 보았던 애들은 결국 한 동네 사람들이라 서로 잘 알고 있었다.



'빨리 집에나 갔다 와야지.'



나는 부랴부랴 발에 속도를 붙였다.



----------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벽에 걸린 인형 그림들에게 영혼을 불어넣고 있는 이 널찍한 방안으로,


김두원은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했다.



'뭐야... 공포 영화에서 볼 법한 곳이잖아? 이 몸의 원래 주인은 취미가 참... 요상하네.'



갖은 자세의 인형 그림들.


기도하는 인형과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인형, 얼굴 절반이 부서져 있는 인형의 모습들...


김두원은 살아 있지도 않은 그림 속 인형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눈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동그란 테이블에 누군가가 앉혀 둔 이쁘장한 인형 하나로 눈이 고정됐다.



"..."



인위적일 정도의 단정한 흑색 단발머리에,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검고 짙은 눈동자 색.


피부는 살짝 빛을 머금고 있는 것 같은 창백함을 띄고 있어,


김두원은 분명 그것이 인형일 거로 생각했지만...



"헤르비아... 이제야 오는구나?"



인형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것은 인형이 아니라,


메이드가 말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던 그 아가씨임을 김두원은 알 수 있었다.



"아... 안녕... 하세요?"



메이드가 말하길 이 아가씨, ‘에이미’는 상당히 나한테 집착한다고 한다.


왜 내게 집착하냐고 물으니,


그건 앞으로 차차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메이드가 말했다.



"안녕하세요라니... 너 나에 대해 아무 기억도 안 나는 거야?"



인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두원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김두원을 둘러싸고 있던 경호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인형에게서 길을 비켜서며, 뒤돌아 자연스레 방을 나갔다.



"어... 어."

"... 나와 훈련했던 기억도 안 나?"

"그... 그런데..."



옷마저도 롤리타 계열의 검은 드레스를 입어 더욱 인형처럼 보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녀로 인해 김두원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



인형의 짙은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삼킬 것 같은 이 기분.


인형에게서 풍겨오는 달콤한 향수 냄새 뒤로, 오묘하고도 짙게 새겨지는 눈여김이,


김두원을 뚫어지라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획 뒤로 돌려,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와서 앉아. 함께 이야기 나누자."

"어... 어."



이상한 기분이다.


분명 나는 여자와 이야기하는 것도 무서워하는 놈인데,


이 인형 같은 아가씨는 왠지 어딘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김두원은 테이블로 다가가 슬며시 에이미의 눈치를 살피며 의자를 꺼내 앉았다.



"이 방. 네가 날 위해 만들어 준 장소야."

"그... 그렇구나."

"이 몸도 네가 날 위해 만들어 준 거지."

"그... 그렇... 뭐라고...?"



에이미는 자신의 한쪽 눈에 슬며시 손을 올렸다.



"자... 봐봐."



그대로 눈 안쪽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는 에이미.


김두원은 그런 에이미의 모습에 깜짝 놀라, 그저 멍한 표정으로 에이미를 지켜봤다.



"네가 만들어 준 눈알이야."



피는 묻어 있지 않았다.


그저 말랑하고 동그랗게 생긴 것이, 소녀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김두원은 에이미의 눈알과 에이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 눈알뿐만이 아니야. 넌 나의 모든 걸 만들었어. 천사의 기술력으로 말이야."



무미건조한 인형의 말투.


그것이 에이미였다.


불편하고도 아름다운,


편안하고도 괴리감이 생기는,


어쩌면... 그렇기에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인형.



"자. 그러니 어서 날..."

"여기까지 하시죠. 아가씨."



어느 틈에 나타난, 내게 아가씨를 만나보라고 말했던 고지식해 보이는 여자 메이드가,


에이미 손바닥에 얹어진 눈알을 가져가 도로 그녀의 눈에 집어넣었다.



"도련님이 기억을 잃으신 틈을 타서 벌써 수를 쓰시는군요."

"나는 헤르비아 손에 만들어진 인형인데 당연한 거야."

"도련님은 아가씨가 ‘독립성’을 지니기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게 아가씨를 진정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그를 위해 춤추는 인형일 뿐인데, 그럴 필요 없지 않을까?"

"... 도련님은 이제 쉬셔야 하니, 오늘의 만남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김두원은 반강제로, 메이드 손에 일으켜 세워졌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아가씨."



메이드 손에 이끌려 점점 멀어져 가는 에이미.


김두원은 저 인형 같은 소녀에게 많은 걸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눈도 깜짝이지 않은 채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도련님 이제 저녁입니다. 식사하시고 쉬시지요. 아가씨는 그녀의 부모님이 오셔서 데려갈 겁니다."



메이드는 에이미가 있던 섬뜩한 방에서 나오자,


그제야 김두원의 팔을 놓으며, 앞장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그런데... 에이미를 제가 만들었다는 건 무슨 말이죠?"

"저도 자세한 원리는 모르지만, 도련님은 아가씨를 병에서 낫게 하려고 뇌를 제외한 모든 육체를 천사의 기술력으로 재창조하셨습니다."

"그... 그런 게 가능한 건가요?"

"네. 도련님이라면 가능하시죠."

"그러면 저렇게 몸이 인형처럼 된 게 혹시..."

"... 도련님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거예요. 마음에 담아 두실 필요 없습니다."



게임이나 만화책에서나 보던 마법 같은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기술력이라고 했으니까, 뭔가 수술 같은 걸 것이다.


아무리 다른 세계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 사리 구분은 할 수 있다고,


김두원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앞서 걷던 메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런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두원은 어색하고도 쑥스러운 듯한 목소리 톤으로,


그나마 조금 대화해봐서 익숙해진 이 메이드에게 말했다.



"아... 제 소개를 깜빡했군요. 저는 도련님의 메이드장인 트알로입니다. 원래는 이 시간에 도련님의 저택을 관리해야 하지만, 도련님이 기억을 잃어 현재는 제 인위적으로 일정을 변경했어요. 괜찮으신가요?"

"아... 네! 괜,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메이드장은 가볍게 고개를 돌려 김두원에게 눈웃음 짓고는 계속 걸었다.



"... 저녁 식사하시고, 제가 도련님이 공부하시던 책 몇 권과 도련님이 평소 귀중품을 보관하시던 상자를 드릴게요. 그거라도 보시면 혹시 뭔가 떠오를 수 있잖아요?"

"아... 네..."



어색하다.


김두원은 최대한 편안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여자와 복도를 걸으니,


물론 저 멀찍이 경호원들이 붙어 있긴 했지만,


너무 낯설었다.



----------



'테델은 어디 간 거야?'



나는 편의점까지 들렀다가 오느라 예상보다 조금 늦게 테델우스가 숨어 있던 시청 뒤편으로 왔지만,


무성한 수풀만이 나를 반겨주고 있을 뿐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회의는 시작했나?'



나는 고개를 숙이며, 시청의 반지하에 나 있던 벽틈새로 슬그머니 눈을 가져다 댔다.



'아버지가 설계도를 펼치고 있는데... 가드너들은 안 보이네?'



가드너들은 안보이지만 회의가 시작되었는데 테델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벽틈새에서 눈을 때 몸을 일으켜 세웠다.



"... 꼬마 녀석. 우리가 몇 번 못 본 척해줬더니, 이제 친구까지 데려왔네?"



나는 뒤에서 들리는 여자 목소리에, 얼른 고개를 그곳으로 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2 6 - 9. 개전과 내전 23.11.09 6 0 12쪽
91 6 - 8. 개전과 내전 23.11.02 4 0 13쪽
90 6 - 7. 쟁탈전 23.09.08 11 0 13쪽
89 6 - 6. 쟁탈전 23.08.23 17 0 12쪽
88 6 - 5. 쟁탈전 23.07.03 21 0 12쪽
87 6 - 4. 쟁탈전 23.06.24 19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63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