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3,794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3.04.22 11:43
조회
35
추천
0
글자
13쪽

5 - 19. 나무

DUMMY

"아르는 사람을 너무 잘 믿는 것 같아."

"세상에 믿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아르는 정말 강하군."

"네? 제가요?"

"그래. 적어도 나 같은 것 보다... 흠?"



울란드의 커다란 주둥이가 말을 하다가 말고,


킁킁 냄새 맡으며 공원 속 인파들 사이에 후드를 꾹 눌러쓴 한 사람을 향했다.



"저 종족은..."



나도 울란드를 이어,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을 바라봤다.



"낮에 봤던 심해족이군."



꾹 눌러쓰고 있던 후드 속에서 빛나는 심해족의 비늘.


그것이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할 미세한 빛으로, 우리를 향해 곧장 뻗어오고 있었다.



"계속 흘끔거리면서 우리를 쳐다보는 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군요."



울란드는 나를 향해 커다란 주둥이를 돌렸다.



"어쩌실 거요?"

"어쩌긴 뭘 어쩐다는 거야?"



유라가 울란드의 주둥이를 막아서면서, 나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당연히 무시해야지~ 관광객이면, 그냥 바라만 보라고. 어차피 이 새장에서 나가지 못하니까."



입에 음식을 가득 담은 채 오물거리며 말하는 유라.


그녀의 입에 담긴 욕심 가득한 표정이,


한껏 부풀어져 으적, 나를 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광객’이란 말을 곱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 그녀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대요."



나는 어느새, 내 앞으로 후드를 쓴 그녀를 데려온 아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뭣...? 언제... 아니, 왜 데려온 거야? 외부인들과 우리 새장 속 사람들의 접촉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역시 당신들은 외부인들이었군요."

"아니! 새장 사람은 외부인과 말 섞지 마."

"... 그것도 그냥 외부인이 아닌, 소년. 당신은 그... 소년이네요."



유라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면서, 나를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심해족의 여인.


그녀는 후드 속에 손을 집어넣어 무엇을 부러뜨리는가 싶더니, 나를 향해 뻗어 보였다.



"그거 받지 마!"



유라가 심해족 여인이 뻗어 보인 반짝이는 무언가를 덥석 잡아챘다.



"내 말 무시하지 말라고!"



유라의 푸른 빛 머리칼이, 푸른 불꽃처럼 대기에 그을림을 만들며 뜨겁게 이글거렸다.


울란드는 아르를 번쩍 든 뒤 슬며시 뒤로 빼내며, 밴치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유라 앞에 섰다.



"새장에 간섭하지 말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미 그녀가 우리를 알고 있는 시점에서는 도가 지나친 태도인 것 같은데?"



울란드는 주둥이를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알고 있든 알고 있지 않던, 내가 허락해야 하는 거야."

"... 후..."



울란드는 뾰족한 이빨들을 그녀의 얼굴 코앞으로 들이댔다.


유라도 그에 질세라 푸른 빛 머리칼을 더욱 화르륵- 이글대면서, 울란드를 노려보았다.


나는, 다시 은근슬쩍 심해족이 건네는 반짝이는 무언가를 받았다.



"심해족은 목에 있는 반짝이는 비늘 조각에 기억을 품게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품은 기억들은 세대에 걸쳐 유산처럼 자식에게 남기며, 계속해서 쌓아 올릴 수 있죠."



나는 그녀가 건넨 반짝이는 비늘 조각을 바라봤다.


그것은 짙은 푸른 빛에 보석을 박아둔 것처럼 무언가 애태우는 빛으로 반짝이면서,


깊은 심연에 고이 간직한 보물상자와도 같이 어떠한 비밀을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원래라면, 이런 기억들은 우리 심해족 밖에 보지 못하지만, 당신이라면 우리의 기억을 볼 수 있겠죠?"



그녀는 나를 향해, 무엇을 원하는 사람처럼 간절히 말했다.



"심해족이 나를 어떻게 아는 건지 모르겠지만, 뭘 원하는 거지?"

"당신이 오랫동안 사람을 살펴 왔듯이, 우리 심해족도 새장이 분열했을 때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당신의 행방을 살펴왔어요. 부디 이 기억들 보고서라도, ‘태초의 새장’의 강림을 멈춰주세요."

"..."



어떻게 이 종족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어딘가 있는 ‘또 다른 나’에게서 정보가 유출된 것인가?


나는 후드 속에 얼굴을 감추고 있던 심해족 여인을 바라봤다.


컴컴한 심연에 몸을 맡긴 것만 같은 그녀의 다크서클진 눈동자는,


내 영혼까지 알고 있는 듯이 나를 향해 간절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



서진수는 눈을 뜨며 다급히 침대에서 허리를 세웠다.



"헉... 헉..."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둑한 공간의 숨소리.


마치, 기나긴 악몽을 꾼 것처럼,


오랫동안 무언가 짓눌러진 것처럼.


서진수는 컴컴한 어둠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 속에서,


얼굴을 두 손으로 박박 문지르며 이마에서 비집고 나온 식은땀을 뒤로 쓸어 넘겼다.



"젠장..."



아직, 적응할 수 없었다.


이 악몽보다도 내키지 않는 현실을,


자신의 두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진실을.


서진수는 침대에서 내려와, 서랍장에 올려진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아... 아무 일도 없었던 거지?'



띠릭-


서진수는 리모컨을 빨간 버튼과 함께 꽉 움켜쥐었다.


철컥!


그러자 쇠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자신을 막고 있던 쇠창살 문이 활짝 열렸다.



"하... 하..."



서진수는 어둠에서 뿜어지는 숨소리처럼,


휘청이는 몸을 간신히 몰아세우며 컴컴한 이 방안에서, 빛나는 철장 너머로 나갔다.



"하..."



불이 켜져 있는 부유선의 복도.


서진수는 갑자기 쏟아지는 밝은 빛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복도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부서진 흔적도... 핏자국도 없어... 후......'



무서웠다.


자신이 또 이성을 잃을까 봐.


누군가를 해칠까 봐,


다시 그 악몽을 꿀까 봐,


두려웠다.



"스카일러...? 호야?"



고요한 복도.


그렇기에 어딘지 불안한 복도.


서진수는 벽에 손을 짚으면서 고요하고도 기다란 복도를 걸어, 부유선 갑판 위로 올라갔다.



"... 신수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인형이라."



서진수가 올라간 부유선의 갑판 위에는,


타이즈한 흰색 전신복을 입은 한 여인이 박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지만,


곧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바람에 서진수는 뒤로 벌렁덩 넘어졌다.



"쉿!"



스카일러다.


그는 자신의 입을 푹신한 손으로 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듯이 주둥이에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보아하니, 장로들의 작품인 것 같은데..."

"당신이 박사로군. 소문은 익히 들었다. 본론만 말하도록 하지. 용사를 죽여주면, 당신 연구에 막대한 지원을 약속하겠다."

"내가 어떤 연구를 하는 줄 알고 그런 제안을 하는 거지?"

"그런 건 우리가 알 필요 없다. 다만, 네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검은 가면’에게라도 이걸 제안할 생각이다."

"천사로 사람들을 학살한 학살자에게 그런 제안을 한다니, 나로선 이해되지 않는군... 혹시 나와 그 검은 가면이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



여자의 뚝뚝 내던지는 싸늘한 말투와,


박사의 감정이 섞이지 않는 무감각한 말투가,


밤하늘에 생체기를 내면서, 그 하얀을 더했다.



"공주님은 소년에게 무엇을 바랬던 건지 우리로선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하는 아이야. 부디... 우리에게 사랑을 다오."



그리고 싸늘한 여자의 목소리 위로, 빛바랜 천사가 내려왔다.



----------



회백 새장 속에 두둥실 떠 있던 천사의 눈물샘 밑으로,


검은 눈물이 타고 흘러내려, 바닥으로 유유히, 이윽고 내 앞으로 내려왔다.



"살려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울었다.


그러자 그것의 몸에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천사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만개한 꽃의 심줄에서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벌레들.


그것들은 파리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니.


선지자처럼,


구세주처럼,


위선자처럼 입을 모아,



"아아... 내게 사랑을 다오."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 전 아르를 데리고 피해 있도록 하죠."



울란드는 아르를 번쩍 들어 어깨에 걸쳤다.


아르는 울란드의 어깨에서 바둥거리면서도,


두 손을 모아 조아리는 천사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뭐... 뭐야?! 나는 안 데려가?"



유라는 아르를 어깨에 걸치고 달려가려고 하는 울란드를 향해,


짜증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너는 알아서..."

"저 내려 주세요. 전 혼자서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아니. 아르. 이건 강제적인 거다."

"내려 주세요. 어서..."



아르는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며, 몸을 비틀어댔다.



"박... 박사님 어떻게 좀... 해보시죠?"

"..."



나는 심해족이 건넨 반짝이는 비늘 조각과 심해족 여인을 번갈아 보다가,


우리를 향해 덮쳐 오는 천사의 온화한 미소를 바라보았다.



"... 라프. 여기 정리가 좀 필요한 것 같아... 부탁할게."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태초의 새장에서 공주님을 만났을 때를,


커다란 나무 위에서 그녀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공격당해 복부가 찢어져 죽어가고 있었다.



'너는 뭐냐? 라프...'



그녀가 죽어가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는 지금까지 이 새장에 침범한 녀석들과는 다른 놈이다. 마치 ‘검은 가면’처럼 내게선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라프.'



그녀는 내 몸에 올라타, 내 얼굴에 작은 코를 들이밀었다.



'킁킁... 확실히 피 냄새밖에 나지 않는데... 욕망 녀석들은 내 새장을 앗아갔다. 그래서 나는 손수 그들을 죽이고 있다. 너도 죽을 테냐?'



한없이 자비롭게 말하는 그녀.


나의 수많은 기억 속에 스며든 그녀의 또 다른 모습.


공주님은 나의 꿈속에서의 모습처럼 신비롭고도 아득하게,


땅속에서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와 함께 하늘로 치솟아 올랐고,


우리에게 두 손을 모았던 천사들은 꿈틀대는 대지에 잡아 먹히듯이 가라앉았다.



"이것이 태초의 새장에서 자라던 거대 월계수 나무... 공주님의 집. 금단의 성역..."



어느 건물보다도 높이 솟아오른 월계수 나무는 수많은 가지를 뻗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종족인들을 자신의 몸속에서 데리고 나와 거리에 내려두기 시작했다.



"... 자라나면서 휩쓸렸던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다니... 박사님, 저 나무 스스로 움직이기까지 하는 거요?"

"공주님의 의지야. 그녀는 새장 속 식물들을 마음대로 주물럭댈 수 있어."

"굉장하군요."



울란드는 슬그머니 어깨에서 아르를 내려두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시작된 거죠? ‘태초의 새장’의 강림이..."

"계획과는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씨앗은 뿌리를 내렸어. 그것이, 우리 ‘부유선’과 ‘새장’을 협공한 천사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 그러면..."



울란드는 날카로운 손톱을 내게 가까이 댔다.



"우리는 이제 다른 목적으로 나아가겠군요. 박사님은 ‘태초의 새장’의 완전한 강림을. 나와 아르는 희생이 없는 불안정한 강림을."

"그래. 우리의 계약은 여기까지였지."

"박사님의 날개론은, 현실적이지만 너무 잔혹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는 없는 거요? 당신은 우리를 만든 아버지잖소?"



신수... 솔직히, 이들을 만든 건 내 목적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대가 발전한 이 새장 속에서, 공주님을 경호할 병사로선 그들이 제격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이들을 만들고 보니 어딘가의 기억 속에서 샘솟는 이 부성애란 감정은,


나를 갈등하게 했다.



"... 이제 이 ‘회백 새장’으로 새장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세력이 몰려들 거야. 그러면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 많은 사람이 죽겠지... 하지만, 새는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가는 법. 지금부터 주인공은 너희들이다. 부디 그 혼돈 속에서 살아남아라."



내 얼굴 위로, 하얀 가면이 쓰였다.


모든 것을 단절시키는 육체와 영혼의 언약처럼.


얼마 남지 않은 검은 가면과의 조우를 위해서,


나는,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가는 작은 새가 되었다.



----------



"씨X... 박사 그 새끼가 기어코 내 성지에..."



용사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거대한 월계수 나무에 이를 질끈 깨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2 6 - 9. 개전과 내전 23.11.09 6 0 12쪽
91 6 - 8. 개전과 내전 23.11.02 5 0 13쪽
90 6 - 7. 쟁탈전 23.09.08 12 0 13쪽
89 6 - 6. 쟁탈전 23.08.23 17 0 12쪽
88 6 - 5. 쟁탈전 23.07.03 22 0 12쪽
87 6 - 4. 쟁탈전 23.06.24 20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3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 5 - 19. 나무 23.04.22 36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9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2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5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7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40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5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2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63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