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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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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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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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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501,857

작성
23.05.0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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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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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 - 1. 심해족

DUMMY

"지금 내가 죽여버릴 테다."



태초의 새장에서 보았던 거대 나무.


몸속에서 치솟는 이 생리적 불쾌감은 분명,


유일하게 태초의 새장에서 자신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던 그 거대 나무가 맞으리.


오로지 선택받은 자만이 넘나들 수 있는 공주님의 성역이 분명하리.


자신을 이렇게까지 한심하고 비참하게 만든... 내 것이 되지 못한, 아름다운 것.


용사는 창문을 열어 젖이며 창틀에 발을 올렸다.



"잠깐! 내가 충동을 억눌러야지만 사람들에게 용사 대접을 받을 수 있을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스텔로웬이 얼굴 앞에 걸린 얇은 천을 팔랑거리며, 용사의 방으로 들어와 팔짱을 꼈다.



"누굴 호구 X신으로 보냐? 저게 뭔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용사는 스텔로웬의 얼굴을 가린 얇은 천 앞으로 얼굴을 들이대면서, 짤막이 욕설을 뱉어냈다.



"알아. 선택받은 녀석이 우리 회백 새장을 기준으로 ‘태초의 새장’을 강림시키려는 거지?"



스텔로웬은 얇은 천에 비추어진 자신의 작은 얼굴을, 용사에게서 두세 발 떨어뜨렸다.



"뭐? 그걸 어떻게..."

"우리 심해족들은 지금까지 지켜봐 왔어. 기억을 후대에 계승하면서 심연에 숨어, 너희들을 지켜봐 왔지."



스텔로웬은 얼굴을 가린 얇은 천을 옆으로 살며시 걷어냈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자들이 새장을 구하는 이야기는, 가면들의 이야기로 끝맺음을 지었지. 덕분에 모든 새장이 분열되었고, 동화 속 이야기는 신화처럼 변질되어버렸어."



스텔로웬의 작은 목덜미에서 반짝이는 비늘.


진한 청록색에 하얀색을 섞어둔 그녀의 순백이,


걷어진 천 너머 비늘 속에서 깊은 심연을 드러냈다.



"심해족...? 그래, 들어봤어... 들어봤지만, 보는 건 처음이군."



용사는 곧장 달려 나갈 것 같은 분노에 찬 표정을,


스텔로웬의 깊은 심연에 잠식시키면서,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비늘을 바라봤다.



"이제 이야기를 다시 쓸 차례야. 천사가 사람을 잡아먹는 그런 이야기는 분명 잘못되었으니, 지금 이 ‘태초의 새장’의 강림을 발판 삼아, 얽히고 꼬인 이야기를 바로 푸는 거지."



스텔로웬은 얼굴 앞으로, 머리에 얹히듯 쓰여있던 모자와 이어진 얇은 천을 다시금 드리웠다.



"일단은 용사, 너와 같은 ‘이세계 전이자’부터 모으는 거야. 아무래도 혼자보단 여럿이 있는 편이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기 쉽고, 또 전이자들은 천사의 기술력을 리스크 없이 쓸 수 있으니 네가 통제하기만 한다면 좋은 전력이 될 테니까."



용사는 스텔로웬의 말을 듣곤 무언가 음침한 생각을 하듯이 입을 히죽대었다.



"우리 세계 사람들이라... 그래. 이세계에 있는 사람보다야 여러 방면으로 쓸 수 있겠지... 흐흐... 좋아. 그러자고."



용사의 목소리는 입맛을 다시는 사람의 군침으로써 침을 꿀꺽 삼켰고,


스텔로웬은 얇은 천 뒤로 어떠한 표정을 가렸다.



----------



'갑자기 사라진 고등학교와 인근 주거지...'

'현대 기술로는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실종자의 가족들은 오늘도 거리를 서성이며...'

'최고의 인력을 투입하여 이번 사태의 진상 규명을...'



탁-


나는 오늘 오전 내내, 같은 말만 떠벌리던 스마트폰을 껐다.


적막이, 이 대강당에 지어진 피난처 한쪽 구석으로 찾아와 내 귀를 간지럽혔다.


나는 팔로 눈을 가린 뒤 지금 이 꿈같은 상황에서 깨어나길 기도하며,


눈을 가린 팔을 슬그머니 옆으로 치웠지만, 여전히 강당 안이었다.



"씨X... 전부 다른 세계라도 가버린 거냐고..."



정말 꿈같은 이야기...


판타지 소설책에서나 보았던 이야기...


하루아침에 학교가 사라졌다.


친구도, 가족도 전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니고 하늘로 솟구친 것도 아닌, 마치 다른 세계로 간 것 마냥, 그냥 사라져 버렸다.


확실히 그렇게 보였다...



'X새끼들... 한 번 더 봐야지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믿을 수 없기에, 나는 내 집이 있었던 그곳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확실히 그냥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분명 착시 같은 걸 것이다.


아니면 이런 괴기한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곳’으로 가보려고 했지만,


정부가 발 빠르게 ‘사라진 곳’을 중심으로 200m 떨어진 지점까지 재난 구역이라 선포하고,


재난 구역 사람들을 전부 인근 피난처로 대피시킨 뒤, 봉쇄하였다.



'후...'



이제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방법으론 불가능하다.


법을 위반하며, 아무도 모르게 잠입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감시하는 그들 모르게...


윙---


나는 진동 소리에 재빠르게 배 위에 올려두었던 폰을 켜며 얼굴 가까이 댔다.



'오늘 밤 피해자 가족 3명과 함께...'



드디어... 약속이 잡혔다.


‘사라진 곳’으로 향하기 위한 계획된 약속.


어차피 이제 잃을 거라곤 스마트폰 한 개뿐이기에,


정부가 들어가면 엄벌이라고 하던 이 ‘사라진 곳’에,


발을 들이는 것쯤이야 별로 무섭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 들어갈지 그것만 모색하면 됐기에,


나는 나와 뜻을 함께한 피해자들을 모아,


사라진 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럼, 약속된 장소로...'



‘사라진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재난 구역이라 하기에는 다소 삼엄한 보안을 뚫어야 했다.


나 같은 평범한 고등학생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진짜 영화 속 한 장면을 찍어야만 뚫을 수 있는 그런 보안 수준이라,


처음엔 그냥 혀를 내두르며 바로 포기하려고 했지만...


천운이 내게 따랐던 건지, 이 재난 구역에 보급 담당 소령이 ‘사라진 곳’ 피해자 중 한 명으로, 내게 협력하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그녀는 우리를 사라진 곳으로 안내해줄 테니, 그곳의 실상을 부디 나중에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건 그렇고... 진짜 안에서 무슨 일어나고 있는 거야?'



소령이 내게 말했다.


철저히 통제된 ‘사라진 곳’에서, 이따금 사람의 시체가 나온다고...


시체는 비늘로 포장되어,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죽은 건지 볼 수 없었지만,


분명 그것은 사람의 시체였다고 했다.



"뭐... 들어가보면 알겠지? 안 그래?"



나는 스마트폰 속, 배경 화면에 있던 가족사진을 향해 말했다.



----------



서진수는 ‘회백 새장의 출입구’에 지어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신전과도 비슷한 건축물에서 홀로 멍-하니,


하늘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나무는 단단한 껍질을 꿈틀대면서 땅에 뿌리 내리며,


조금씩 커지며 더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너 혼자만 이곳에 남았군."



울란드가 아르와 로브를 뒤집어쓴 한 여자와 함께 서진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서진수는 떠나간 박사에게서 들었다.


이 회백 새장으로 ‘태초의 새장’이 강림한다고,


그것이 강림하면 모든 새장이 하나로 뭉쳐져,


우리 세상에 있는 대륙처럼 대부분 하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글쌔... 나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죄 없는 사람이 희생되기 전에 손을 쓰긴 해야겠지."



울란드는 입에 불을 지피지 않은 시가를 물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전에 말했던 시련 말인데, 조금 앞당겨야 할 것..."



울란드는 물고 있던 시가에 불을 붙기도 전,


새장 출입구의 널찍한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이된 자. 역시, 용사님의 말대로 이곳에 있었군요?"



울란드가 고개를 돌린 그곳엔 솟아오르는 나무와,


새장의 출입구를 받친 거대한 기둥들과 함께,


실눈의 한 남자가 온화한 표정으로 서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 텔레우스?"

"오랜만에 뵙네요. 울란드."



텔레우스와 울란드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각자의 시선으로, 고개 돌렸다.



"또 나한테 얻어터지고 싶어 찾아온 거로군."

"... 뭐... 이번엔 전 당신 같은 더러운 늑대를 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게 아닙니다. 저는... 저 소년. ‘전이된 자’를 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거죠."



텔레우스는 눈매를 가늘 게 떠, 서진수를 향해 기분 좋은 미소를 내 비췄다.



"전이된 자. 이미 저희에게는 당신과도 같은 사람이 용사를 제외한 한 분 더 계시 답니다. 저와 함께 가시면 그분들을 소개해 드릴 수 있는데, 어떠신가요?"



텔레우스가 기분 좋게 서진수에게 다가오자,


울란드는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뱉어내며, 송곳처럼 뾰족한 손톱을 드러냈다.



"우리한테 아쉬운 게 많은 건 알겠지만, 저놈을 쫓아가면 곧장 나를 적으로 돌리는 거라 보면 될 거다."



울란드는 털을 곤두세우며, 가뜩이나 큰 몸집을 더 크게 부풀렸다.



"예나 지금이나 포악스러운 짐승 새끼이건 변함이 없군요."



텔레우스는 가느다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나온다면, 저도 무력을 사용할 수밖엔 없겠죠."



텔레우스의 말이 끝나는 순간,


서진수는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정확히는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알아차리기까지의 시간이 너무나도 길어,


서진수는 울란드가 입에 부러진 칼날을 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지금의 사태를 겨우 예측할 수 있었다.



"저 여자는... 갑판에서 보았던 그 여자...?"



울란드가 입에 문 칼날은 분명,


지금 텔레우스 곁에 서 있는 여인의 손에 쥐어진 검의 일부분이었다.


서진수는 급격히 말라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괜... 괜찮아요?"



서진수는 울란드의 입가에 고인 피를 보며 말했다.



"나는 괜찮아. 그보다... 그 인형, 생각보다 꽤 쓸만하군. 겁쟁이인 네게 딱 어울리는 물건이야."

"... 짐승 주제에 말은 많아서... 꽤 쓸만하다니... 이건, 신수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인형인 거 알고 계시나요?"

"당연하지. 신수는 영혼의 냄새까지 맡는 거 알고 있나?"



울란드는 입에서 퉤! 칼날을 뱉어내며,


텔레우스를 비아냥대듯이 커다란 주둥이로 가볍게 미소 지었다.



"칫..."



텔레우스의 감은 듯한 눈매가 혀를 튕기는 동시에 일그러졌다가 금방 돌아오며,


옆에 있던 타이즈한 흰색 전신복을 입은 여인을 향해 고개 돌렸다.



"그래도 박사님 곁에서 놀고먹지는 않았네요..."

"넌 안 덤비냐?"

"가뜩이나 우리 새장에 나무도 뿌린 내린 마당에, 당신 같은 짐승에게 인재를 낭비할 순 없는 노릇이겠죠."

"핑계 대는 건 여전하군."

"그 전이된 자는 당신이 알아서 하시죠. 우리 곁으로 오면, 호의호식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게 됐네요."



텔레우스의 감은 눈이 서진수를 향해 가볍게 미소 지은 뒤,


뒤돌아 흰색 타이즈 복 여인과 함께 새장 출입구 밖으로 걸어갔다.


울란드는 그 모습을 가만히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다가,



"크... 다행이군. 저 인형이 만전이었다면, 아마 난 죽었을 거니까."



입에서 피를 뱉어내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울란드씨..."



아르가 두 손을 포개며, 울란드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함께 온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도 어안이 벙벙한 듯이, 울란드를 보며 갈팡질팡 못했다.



"그나저나, 서진수에게 소개하는 게 늦었군. 그녀는, 심해족인 위저나 벨리. 우리와 뜻을 함께할 사람이다."



그녀는 울란드가 소개하자,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 인사할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잘 부탁해요."



서진수는 그녀의 깊은 심연에 잠길 것 같은 푸르스름한 청색의 머리칼에,


그만 할 말을 잃은 채 바닷속에 빠진 사람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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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6 - 4. 쟁탈전 23.06.24 19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 6 - 1. 심해족 23.05.06 25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4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0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4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4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6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3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7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63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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