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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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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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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3.07.03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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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 5. 쟁탈전

DUMMY

"내... 내 팔이..."



팔이 잘렸다. 팔이 잘렸다. 팔이 잘렸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온몸에 혈관이 저릿하게 뛰노는 것 같았다.


나는 피가 치솟다가 멈춘 팔을 다른 한 손으로 꽉 거머쥐었다.



"재생력도 내구성도 발군. 지금부터 ‘천사의 기술력’을 사용하겠으니, 허가 바란다."



귀에 손을 얹은 채,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는 붕대 두른 남자.


지금 저 남자는 진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건가?


살인하면 분명 잡혀갈 텐데, 이게 무슨 짓인가?



"알겠다. 생포는 그만두고, 대상을 소거..."

"잠시만요!"



내 앞으로, 내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급하게 뛰어와 양팔을 펼쳐 보였다.



"그만해요. 제발..."



저 소녀는... 나와 사라진 곳에 함께 들어온 여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 말고 이곳에 다른 이들도 함께 왔을 텐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제발 그녀의 목소리가, 저 붕대 두른 남자를 멈추게 했으면 했다.



"엇!"



붕대 두른 남자로부터 순식간에 뻗어 나오는 맞바람.


그것은 가늘게 잔상을 그으며, 내 앞을 막아선 여학생의 목을 통과하는 것처럼 보였다.



"비켜라."

"싫어요."



다행히, 그녀의 머리는 내 팔처럼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그저 붕대 두른 남자가 쥔 검날이,


그녀의 목 바로 앞에서 무감각하게 말하고 있었다.



"저건 이미 네가 알던 학생이 아니다. 봐라. 녀석에 ‘천사의 날개’와, 잘린 팔이 재생하는 것을."



붕대 두른 남자의 말을 들은 그녀는 나를 항해 고개를 흘끔 돌리더니,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외면하듯이, 뻗고 있던 두 팔을 내렸다.



"천사... 천사는, 우리를 잡아먹었죠..."

"이제 감이 오나?"

"..."



그녀는 질끈 감은 눈을 떠, 글썽이는 눈물을 팔로 훔쳤다.



"하지만... 이제 누가 죽는 건 그만두고 싶어.,, 더 이상 잃는 것도 싫다고!"

"고집 강한 소녀로군. 둘을 셀 동안 비키지 않으면, 함께 베겠다."



붕대 두른 남자는, 허리를 조금 더 엉거주춤하게 낮추었다.



"하나,"



잠잠한 그늘에 소리 없는 침묵이 깔렸다.


짤막하고도 길게- 그가 두른 붕대는,


차분히 우리를 무아지경에 빠뜨렸다.



"둘."



저 소녀가 피하면, 곧장 또 정신없는 공격이 이어지겠지.


아니... 웬지 이번 칼바람을 맞으면 분명 몸이 반토막 날 거라고,


나는 등에 돋아난 이 정체 모를 두 날개로 또다시 온몸을 감싸려고 했다.



"..."



침묵이, 나를 막아선 그녀 앞에서 멈춰 섰다.



"... 죽을 각오까지 한 것이냐?"

"아니요."

"그런데 어째서 피하지 않지?"

"더는... 잃기 싫어서요."



잠잠한 바람이. 학교 안으로 불어닥쳤다.



"..."



그는 말없이 앞을 가로막은 소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칼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나는 경계를 푼 그의 모습에도, 일단은 날개로 온몸을 감싼 다음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름이 뭐지?"



붕대 두른 남자가, 내 앞을 막아선 그녀에게 물었다.



"은지... 김은지예요"



"김은지, 그 소년을 책임져라. 그리고 너흰 앞으로 내 밑에서 사력을 익힐 테니, 학생들에게 알려라."

"... 그게 무슨..."

"너흰 원래 ‘제국의 새장’에서 실험체로 전락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네 끈기와 배포가 바꾼 거니, 대단하군."



붕대 두른 남자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뒤돌아서 앞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은지라는 소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 후..."



나도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은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며 멍-하니 있다가,


이윽고 잘렸던 팔이 생각나, 두 손을 펼쳐 보았다.



"뭐야... 이거..."



내 팔이... 자라나 있다?


묘한 이 감각.


한결 가벼워진 것 같은 육체와,


등에 달린 이 커다란 천사의 날개.



"고... 고마워."



나는 일단, 은지라는 소녀에게 인사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나를 외면하는 것 같았다.



----------



부유선에 있는 조종실 한 편에서,


울란드는 수화기에 입을 댄 채 짤막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아르는 그런 그의 모습을 걱정 어리게 바라보며, 작은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끌어안았다.



"... 그러하여, 제국의 새장에서 학생들을 데려가겠네."

"굳이 통보까지 해주다니... 떠보는 것도 요령이 없군."



울란드는 통신기에 대고 있던 커다란 입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러면 이 몸이 박사와 대화 나누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일 아닌가?"

"아까도 말했지만, 박사님은 현재 바쁘시다. 그러니 너흰 우리가 상대하라더군"

"... 그쪽이야말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네만... 우리는 단지 대화가 필요할 뿐인데, 박사님이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후... 말이 통하지 않는군."



울란드의 일그러진 커다란 입이,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 그래. 이렇게 됐으니, 내가 곧 찾아가도록 하지. 직접 만나서 대화해보면 이야기가 통하겠지."

"이쪽도 바라던 바라네. 언제든 우리 제국의 새장으로 찾아오도록. 허허허."



울란드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몸에 난 털을 크게 부풀렸다.



"학생들이 제국에 새장으로 끌려갔다. 그들의 말로는 ‘세난 왕국’의 손가락으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 했지만 속내는 다르겠지."



울란드는 턱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긁적이며, 아르를 향해 말했다.



"그... 그래도, 진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연락까지 해주는 걸 보면..."

"... 그 천하에 ‘제국의 새장’이 단순히 보호 목적으로 계약까지 위반하면서 학생들을 데려갈 거라고 나는 보지 않아."

"그런가요...?"



울란드는 풀이 죽은 아르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그래도 괜찮을 거다. 학생들에게 아직 내가..."



울란드는 부유선 창가로 펼쳐진 새하얀 구름 위로,


소리 없이 떠오르는 ‘부유 기구’를 보며 말을 하다 멈췄다.



----------



나는 붕대 두른 남자를 따라 학교에서 나와,


마침내 내가 그리워하던 ‘사라진 곳’에 도착했지만,


나는 그저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이게 대체..."



사라진 곳...


그래, 이곳은 내가 살았던 그 동네가 확실하다.


확실할 것이다...


내 집이 있던 아파트 단지며, 자주 갔었던 편의점이며, 내 모교인 희망고등학교까지...


아니, 잠시만... 내가 있었던 곳이 희망고등학교이었다니.


희망고등학교가 이렇게 못 알아볼 정도로 망가져 있다니...


희망고등학교뿐만 아니다.


모든 것들이 다 망가져 있었다.


건물마다 깨진 창문들.


정체 모를 검붉은색으로 칠해진 도로들.


이곳저곳에 움푹 파인 구덩이들.


전쟁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풍경이, 내 시야에 펼쳐지니,


나는 믿으려야 믿을 수 없었다.



"저... 저기..."



나는 전쟁터로 변해 버린 이 풍경에,


내 뒤에서 따라오던 붕대 두른 남자나,


학생들에게 뭐라도 묻고 싶어 흘끔 뒤돌아봤지만,



"말하는 것도, 뒤돌아보는 것도, 걸음을 늦추는 것도, 내가 명령하기 전까지 통제다. 특히, 천사로 변한 너는 더더욱."



나는 붕대 두른 남자의 말에, 그저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 그나저나... 학생들도 나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붕대 두른 남자는 처음부터 나를 경계하는 놈이었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문제는 그를 따라오고 있던 희망고등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눈치로, 나와 시선조차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변한 내 몸 때문인가? 아니면, 지금 이렇게 변한 장소와 상관있는 건가?'



이 장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나는 예측조차 가지 않았으니,


일단 나는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등에서 돋아난 날개.


순식간에 재생된 팔.


신나게 두들겨 맞았는데도, 멍하나 들지 않은 몸.


물론, 이 장소와 마찬가지로,


내 몸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나는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내가 두들겨 맞은 것을 생각해봤을 때 학생들이 나를 두려운 듯이 바라보고 있는 건,


아무래도 이 변해 버린 몸 때문인 것 같았다.



"하..."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덧 우리는 ‘사라진 곳’을 지나쳐,


무성한 수풀 사이에 나 있던 미약하게 보이는 길목을 걷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이 정도로 나무와 풀이 우거진 곳은 없었는데...


나는 그래도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정부가 쳐놓은 장벽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면서,


걷고,


또 걷고,


슬쩍 뒤돌아보려다가 또 한 번 제지당한 채,


저기 멀리 쏟아지는 빛줄기에, 우리는 마침내 다다랐다.



"뭐... 뭐야? 여기는..."



나도 모르게, 나는 중얼거렸다.



"보다시피 새장 속이다. 앞으로 알아둬라."



새장 속...?


... 뭔가 잘못됐다.


나는 정부가 쳐놓은 장벽을 넘어, 사라진 곳에 들어왔을 뿐인데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눈앞에 펼쳐진, 하늘에 떠 있는 이 거대한 새장 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구름이라는 지평선에 그저 넋 놓아버렸다.



"손가락 애들은 우리 ‘부유 기구’가 도착할 때쯤에 튀어 버렸어. 겁쟁이 새끼들..."



아까 학교 창밖에서 내게로 날아왔던 거구의 여인이 풀숲에서 걸어 나오며, 투덜댔다.



"숨어 있는 학생들은 더 없는지 확인은 끝났나?"

"어. 이 출입구에 모인 애들이 전부야."

"알겠다. 그러면,"



붕대 두른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와,


증오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잔잔한 눈빛을 보내며 허리춤에 찬 검집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학교에서 내게 칼을 휘두를 때도, 이런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 넌 특별히 지금부터 우리와 함께 다닌다. 허튼짓하면, 벨 테니 알고 있어라."



분명, 이건 살해 협박인데...


왜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단, 지금부터 대화 정도는 받아주도록 하지. 너도, 다른 학생들도."



그는 내게서 떨어져, 우리를 바라보고 섰다.



"... 학생들은 정말 실험체가 되지 않는 거지?"



그러자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던,


이국적인 여인이 불쑥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은지라는 학생이 내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니, 앞으로 너흰 내 제자가 되어, 내 밑에서 훈련받는다. 만약 그게 싫으면 나도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알고 있어라."

"... 갑자기... 왜 그런 마음이 든 거지?"

"죽음을 각오한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단지 그뿐이다. 로젤리나... 그래. 로젤리나, 너도 황제가 보고 싶어 하더군."

"... 뭣?'

"도망친 죄는 무겁다만, 돌아와서 학생들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준다면, 모든 것을 용서하실 거라더군."

"방금, 연구는..."

"관찰 기록 같은 거다. 그 이상은 내가 있는 한 안전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로젤리나라는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무언가 고민에 잠긴 것 같았다.



"애초, 황제 또한 너희를 내 제자로 두고 싶어 하셨다."



그런 그녀의 석연찮은 모습을 본 붕대 두른 남자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내가 거부했었다. 아무리 천사의 기술력에 대한 친화력이 높다고 한들,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역으로 천사에게 자아를 빼앗기게 되지. 설령, 천사의 기술력을 다루게 될 수 있다고 한들, 사람의 속내는 모르는 법. 잔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몇 명의 희생으로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법이지."



그는 지그시 감은 눈을 떠, 로젤리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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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6 - 3. 쟁탈전 23.06.05 23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9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2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5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7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40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5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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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2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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