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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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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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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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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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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3.05.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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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 2. 심해족

DUMMY

"어... 어. 전.. 전 서진수..."



너무나도 새하얀 피부에다, 동그란 눈을 지닌 그녀의 모습.


사람이라고 하기엔, 그 모습이 노골적으로 가냘파 보이는 그녀는,


서진수가 보기엔 바닷속 진주처럼, 작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잘 부탁해요..."



서진수는 차마 그녀를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울란드를 향해 말했다.



"아... 전 심해에 살아서... 제 모습이 불편하시면..."

"아, 아니에요. 그런게..."

"그럼 왜..."

"아니... 그게,,,"



서진수는 시선을 갈팡질팡 못하다가,


울란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 앞에 서자, 그제야 시선을 바로잡았다.



"일단, 부유선으로 돌아가서 이 새장을 뜨는 게 우선이야."



아직, 크게 부풀린 털과 뾰족한 손톱을 가라앉히지 않은 울란드는,


입가에 묻은 피를 옷소매로 스-윽 문지르며 말했다.



"네... 알겠어요."



서진수는 어느덧 새장 밖 풍경을 한가득 차지한 거대한 나무를 향해, 두 눈을 비비적댔다.



----------



사람들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회백 새장의 출입구.


그곳에서 용사는 이미 구름 속, 한 점이 되어 버린 박사의 부유선을,


눈살 찌푸린 맨눈으로 지그시 바라보다가, 옆에 서 있던 스텔로웬을 향해 고개 돌렸다.



"으... 쥐새끼 같은 새끼들. 저놈들을 잡아서 심문했으면 좋았는데 말이야."



용사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짜증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설마, 박사가 전이자를 데리고 있다니... 알고 있었냐?"



용사의 그늘진 눈매가, 언제라도 잡아먹을 눈빛으로 스텔로웬을 바라보았다.



"아니, 하지만..."



스텔로웬은 얼굴 앞 얇은 천으로 표정을 가린 채,


무엇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손에 든 스마트폰을 눈앞으로 가져다 댔다.



"이것으로 확신이 생겼어..."



스마트폰의 밝은 빛이 스텔로웬의 얇은 천 안쪽에서 빛나며,


그녀의 표정 대신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 제국의 새장에 있는 우리 정보원 소식에 따르면 박사가 ‘맹세한 자’에 소속된다는 조건 아래, 한 이름 없는 새장과 어떤 사람들을 맡겼다는 모양인데, 처음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 정보였지만..."

"그 이름 없는 새장이 전이가 이루어진 장소고, 아이들이 그 장소로 온 전이자다? 그 말인가?"

"맞아."



스텔로웬은 스마트폰을 연신 터치하면서 말했다.



"그래? 그러면 정해졌네? 우선 ‘제국의 새장’부터 친다."



용사의 뜬금없는 선전포고에,


스텔로웬은 깜짝 놀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며 용사를 바라보았다.



"아니, 잠깐! 명분 없는 시비는 이미지만 실추시킨다고!"

"아니. 명분이야 있는데 말이야..."



용사는 새장 속 풍경을 한가득 메운 커다란 나무를 향해 뒤돌았다.



"저 나무, 분명 박사가 심은 거니까 말이지~ 저건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조금 침착해 져봐... 저게 거슬리면 지금 네가 어떻게 하면 되지 않아?"

"..."



스텔로웬은 갑자기 싸늘해져 가는 기온에, 깊은 입김을 내뱉었다.


이 기분... 너무 극단적으로 내려가는 이 분위기.


스텔로웬은 지금 자신의 내뱉은 말이, 실수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큭큭..."



자신을 씹어먹겠다는, 짐승의 웃음.


언제라도 먹어 치울 수 있다는, 확신에 찬 광기.


그것이 곧장 스텔로웬에게 뻗어왔다.



"후..."



가파른 절벽 위에서. 외줄 타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스텔로웬은 얇은 천 뒤로 표정을 가리며,



"... ‘제국의 새장’은 전술 무기까지 보유한 초거대 새장이야... 아무리 용사라도, 새장이 통째로 박살 나버리면, 명예도 뭐고 아무 의미 없지 않겠어?"



침착하게 용사를 타일렀다.


균형을 유지했다.



"... 그래그래... 농담이야. 농담... 큭큭"



용사는 비웃듯이, 웃었다.



----------



박사의 부유선 갑판 위.


회백 새장이 점차 멀어져 가는 풍경 뒤로,



"암-바야드의 천사를 우선으로 막을 생각이었건만, 결국엔 그 녀석 손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됐어."



울란드는 목에 난 복슬복슬한 털을 긁적이며,


커다란 나무가 새장 안에 떡하니 자리 잡은 ‘회백새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제... 저희는 어디로 향하는 거죠? 박사님도 안계신데..."



서진수는 울란드와 나란히 서서, 그 풍경을 향해 말했다.



"답이 이미 정해져 있어."



광활한 새장 속 거대한 나무,


그것을 품은 푸른 하늘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온화한 바람이 되어,


울란드의 털들을 가볍게 훑고 갔다.



"서진수, 네 학교가 전이된 새장으로 향하는 거지... 미안하지만, 그 학생들만이 이번 사태를 막을 유일한 수단이니까."

"네...? 수단이라면..."

"그래. 전이자들은 천사의 기술력을 리스크 없이 사용하는 것을 넘어 신수에 대한 친화력까지 높으니 잘만 훈련하면..."



서진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울란드의 말에,


이젠 날개가 사라지고 없는 등 뒤의 따끔거림을 억누르며,



"아니... 잠시만요."



울란드의 말을 멈춰 세웠다.



"마치 저희를 전쟁에라도 쓸 것처럼 말하시는데... 아니, 그보다 그러면... 저번에 저처럼 폭주라도 한다면... 큰일이잖아요?"



목구멍에서 삐질 거리며 기어 나오는 그때의 기억.


내 손으로 친구들을 죽였을 때의 희미한 잔상들이, 서진수의 심장을 강하게 움켜쥐었지만...


그래. 지금은 좌절할 때가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며, 다시금 꿀꺽 서진수는 기억을 삼켰다.



"이제 모든 새장이 회백 새장으로 모여들 거다. 이제. 애들 장난은 끝났다는 거지. 너희들은 지금부터 학생이 아니라, 병사로써 자신들의 새장을 지켜야 해. 어른들은 여태껏 그래왔고, 이 세상 속 새장에서는 더더욱, 그래왔지."



울란드는 회백 새장을 뒤로하고 부유선 갑판 밑으로 들어갔다.


서진수는 회백 새장을 슬쩍 곁눈질한 다음, 울란드를 뒤따라갔다.



"다만, 나는 너희들이 그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최대한 손을 쓰려고 한다. 그러니, 너희들이 최대한 협조해주면 좋겠다는 거지. 그러니, 서진수... 내가 전에 시련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 적 있었지? 지금이 그 첫 번째 시련인 것 같군."

"... 제가 뭘 하면 되죠?"

"다시 한번 신수가 되어서, 그들을 설득하는 거지."



울란드는 서진수와 함께 기다란 복도를 지나, 부유선 갑판 맨 밑으로 내려가,


한때 박사님이 전용 방이었던 실험실을 활짝 열어젖혔다.



"...?! 뭐야?"



그곳엔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있는 한 소년이 자리에 앉은 채,


고양이마냥 자기 몸을 비비적대던 라프를 쓰다듬고 있었다.



----------



‘사라진 곳’으로 향하는 약속된 밤.


서로 서로가 회상에 사로잡힌, 우중충한 냄새로 가득한 이 거리를,


나와 일행들은 앞서 걷는 보급 담당 소령인 그녀를 횃불처럼 의지한 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 와서 말하기 그런데... 우리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르러 가는 것 같은데요..."



내 뒤에서 걷던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형이 조금 작은 목소리로, 주눅 들게 말했다.



"에이...! 지금 와서 뭔 소리야... 잘못이라니. 우리는 그냥 가족을 보러 가는 거라고! 그게 뭐가 잘못이야?"



이번엔 주눅 들게 말한 형 뒤에서 걷던 한 중년의 여인이 다그치듯 형을 향해 말했다.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 확실히 오늘이라면, 사라진 곳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중년의 여인과 조금 소심해 보이는 형의 대화 뒤로,


우리를 횃불처럼 밝히며 앞서 걷던 소령인 그녀가,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일을 기점으로 재난 구역에 있는 부대가 대테러 특수부대로 대체될 거예요."



그녀는 걸으면서 우리를 흘끔 바라본 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게다가... 소령인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구역도 훨씬 제약된다고 하네요... 그러니,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 오늘이 마지막...


마지막으로 우리 집을 볼 수 있는 기회.


나는 그녀의 뒤로 질끈 묶은, 어딘가 푸석푸석한 뒷머리를 바라보며,


그녀를 만나면 꼭 물고 보고 싶었던 질문을 할지 말지 주저하다가,



"... 안에서 다른 건... 나온 적 없었나요?"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목소리를 게워 냈다.



"......"



내 말을 들은 그녀는 흠칫 몸을 주춤거렸다가,


계속 앞으로 나아갈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맨 뒤에서 걷던,


마지막 일행인 내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이름 모를 여학생이 답답한 듯 그녀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그저 침묵으로 길게 이 거리를 잇다가,


거리에 세워져 있던 1톤 군용 트럭에 다다라서야,



"천사..."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에서 뭐가 더 나온 건 아닌데... 안에서 천사 같은 무언가가 목격됐다고 하네요."



그녀가 우리를 향해 뒤돌아보며, 아까보다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천사 같은 무언가...? 그게... 뭐죠?"



뜬금없이 웬 천사?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걸 저도 모르겠으니까,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는 거죠. 후... 그것들은 천사처럼 날개가 달린 채로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하던데... 뭐 믿을 수 있어야지..."



그녀는 1톤 군용 트럭의 보조석을 열어, 안에서 전투복 4벌 꺼내 들며 말했다.



"아무튼, 저도 여러분들과 똑같은 심정이에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슬슬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 들어갈 용기는 없고... 후..."



그녀는 내게 전투복을 떠맡기듯이 건넨 다음,


몸을 획- 돌리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전 여러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시체가 나왔다는 말에 포기할 줄 알았거든요..."



... 그녀는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도하는 사람처럼,


한 편의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처럼,


어둑한 밤하늘을 향해 말했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출발하죠. 약속된 보급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깐요..."



그녀가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



전이된 이 새장 속 학교에서,


우리는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학생들끼리 뭉쳐,


그저 그렇게 항상 생성되는 생필품이나 음식을 가져다가 먹던가,


‘제국의 새장’에서 지급한 보급품들을 서로 나눠 가지며,


그래도, 부족함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 지수야. 오늘도 제국의 새장에서 ‘맹세한 자’가 찾아왔는데..."



은지가 운동장에서 보급품을 나눠 주던 내게 다가와 팔짱을 끼며,


운동자 끝에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두 남녀를 바라봤다.


두 남녀 중 남자는 양복을 입고 얼굴과 손을 붕대로 가리고 있어, 어디가 많이 아파 보였고,


여자도 남자처럼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지만, 키가 2m를 훌쩍 넘는 거구에 근육도 상당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은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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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6 - 3. 쟁탈전 23.06.05 23 0 12쪽
» 6 - 2. 심해족 23.05.20 26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6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9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2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5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7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40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5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2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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