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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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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3,796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2.11.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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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 19. 주인공

DUMMY

'그럼...'



서진수는 부유선 갑판으로 나와, 등에 달린 날개를 활짝- 펼쳤다.



'음?'



서진수는 날개가 제멋대로 펼쳐지자, 조금 당황하면서 급히 날개를 접었다.



'왜 이러지...?'



마치 무릎을 치면 다리가 저절로 올라갈 때 느껴지는 그런 간질거림.


그런 게 지금 두 날개에 의지를 불어넣어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아,


서진수는 부유선 난간에 등을 기대어 날개를 꾹- 짓누르면서,


추락하는 ‘승천자의 부유 기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



서진수 시야에 펼쳐진,


‘구름이란 널따란 바다로 떨어지는 거대한 부유 기구’와 그곳에서부터 곧장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동그란 머리통에 커다란 입’이 머리를 대신하고 있는 기괴한 무언가.



"엇!"



서진수는 그 무언가를 보고 입에서 거친 숨을 내뱉는 동시에, 난간에 짓누르고 있던 날개를 다시 활짝- 펼쳤다.



"나와 있군... 밖은 위험하다고 했을 텐데."



무언가는, 천사의 날개를 사뿐히 접으며 자신 앞에 착지했다.



"호야는 뭐 하고 있지?"



무언가의 얼굴과 동화된 커다란 입은 갑판에 착지하기 무섭게 뒤틀어지면서,


박사의 여전히 기괴한 ‘하얀 가면’의 형태로 바뀌었다.



"박사님...?"



곧이어 박사 뒤로, 아르와 라프가 슬며시 걸어 나와 서진수 앞에 섰다.



"..."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방금 박사의 등 뒤에 달린 건 천사의 날개.


새하얗고, 아름답고, 포근한... 악마 같은 것.


서진수는 간질거리는 날개를 몇 번 펄럭거리다가, 접었다.



"박사님, 저만이라도 좋으니까... 이 세상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실 수 없나요? 제가 우리 세계로 돌아가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서진수는 박사의 ‘천사의 날개’를 보자, 이내 마음 잡았다.


더 이상 작은 새가 되기 싫노라,


원래 세계로 돌아가봤자, 가족들은 그저 좋은 추억으로만 남겨져 있었고,


유일하게 가족만큼이나 친했던 친구들은 천사에게 먹혀버렸다.


이제 자신 곁에 있는 건, 새장과도 비슷한 작은 집 한 채...


서진수는 새장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이 세상에서 날아다니고 싶었다.



"감정에 치우친 결정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제게 있어 우리 세상은 그저 답답한 새장일 뿐이라서..."

"..."



박사의 하얀 가면이 서진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자, 아르가 서진수에게 불쑥 다가가며, 그 보랏빛의 눈동자를 밝혔다.



"아니에요. 서진수씨라면 서진수씨의 세상에서도 일어설 수 있어요."



서진수는 아르의 빠져 들것 같은 보랏빛에, 조금의 희망이라도 품고 싶었다.


자신도, 본인의 힘으로 우리 세상에서 날아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나는 빚진 게 많으니까, 전부 갚으려면 내 인생 전부를 갈아 넣어야 할걸?"



세상은 쓰디쓴 찬물을 끼얹은 한 편의 나락.


그것이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딱히 잘못한 게 없어, 서진수는 억울하긴 했다.



"... 네가 우리 세상에 남아 있으려면, 적어도 3가지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박사의 하얀 가면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첫 번째는 자격, 두 번째는 진실, 마지막 세 번째는 냉정, 이 중 하나라도 받아 드리지 못한다면 넌 차라리 네 세상 속에 있는 것이 편할 거야."



차갑기만 했던 박사의 무감각한 어조가, 서진수는 왠지 오늘따라 포근하게 느껴졌다.



---------



미카엘은 구름이 펼쳐진 ‘서릿바람 새장’의 뻥 뚫린 출입구로 다가가,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를 던졌다.


꽃은 하늘이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대기 사이로 잔잔히 떨어지다가, 새장에 쳐진 얇은 보호막을 통과하자 휘릭- 하늘 저기 멀리 날아갔다.



"치사한 녀석... 먼저 죽어버리다니."



수... 장길수가 동료로서 처음 소개해줬을 때는 큰 덩치와 압도적인 천사의 기술력으로 인해 무섭게만 느껴졌던 놈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 털털한 성격과 넓은 포부로 모든 걸 빠르게 받아 드리고는 금방 자신과 친해졌다.


당시의, 모든 것을 경멸하는 듯한 감정을 품고 있던 그런 자신마저도, 말이다.



"누님. 정태연이 말했던 ‘박사’라고 불리는 자를 조사해 봤는데. 그... 백은 새장을 도왔다는 정보 외엔 딱히 자세한 건 나와 있지 않네."



바질이 미카엘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그러면... 그쪽에서 이리로 오게 떡밥 좀 뿌릴까?"

"상대는 정태연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놈이야. 이쪽에서 최대한 조심히 접근하는 수밖에 없어."



미카엘은 바질을 향해 뒤로 돌았다.


높은 천장에 뻥 뚫린 구멍,


우람한 기둥에 나 있는 움푹 파인 천사들의 입 자국.


그 사이사이로 피어 있는 사람들의 상흔들이,


바질과 함께 미카엘 앞에 펼쳐졌다.



"그래도 누님, ‘새로운 시대’를 빌미로 ‘과거의 것’을 강제로 청산하고 있는 그런 놈들한테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한들 똑같을 것 같은데요?"



바질은 들고 있던 볼펜의 뒷부분으로 덥수룩한 곱슬머리를 몇 번 긁적였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픈 말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쪽에서 과감하게 나오면, 다른 새장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 것이고, 그쪽에서도 우리에게 접근할 것이다. 이 말이죠."

"그건 앞으로 대장이 결정할 일이겠지. 지금 네가 말 한대로 하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하지만, 우리가 또 미끼 역할이 테니까 제대로 도망치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수 있어."



미카엘은 말하는 도중 들리는 익숙한 발걸음 소리에, 그곳으로 가볍게 고개를 돌렸다.



"또 하나 더, 우리는 천사라는 존재를 망각해서는 안 돼. 어쩌다보니... 일이 이렇게 됐지만, 하나 확실한 건 ‘세난 왕국’의 기술 총장 ‘암-바야드’와 정태연이 말했던 ‘박사’는 서로 연관된 사람이고, 둘 다 천사와도 관련된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하니까, 앞으로 대책을 꾸려봐야겠지."



장길수가 따지 않은 럼주 한 병을 손에 든 채, 미카엘과 바질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말이야."



장길수는 손에 든 럼주 한 병을 잠시 바라보다가, 미카엘이 꽃을 던진 그 자리 그대로,


럼주를 따서 밑으로 흘려보냈다.



----------



서진수는 박사가 찾아오라고 했던, 부유선 조타실 문을 열었다.


그곳엔 박사와 늑대 수인인 울란드가 창가를 바라본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어~ 진수 왔구나."



부유선 조타실 창가 앞으로 광활한 지평선만이 펼쳐진 고요함.


그 틈새로 어색함과 왜소함이 서진수를 집어삼키려고 똬리를 틀고 있을 때,


울란드가 늑대의 날카로운 발톱을 까닥거려, 서진수에게 인사했다.



"거기 의자에 가서 앉도록 하지."



울란드는 서진수의 등을 가볍게 밀면서 조타실 뒤편에 있던 푹신한 의자에 앉힌 뒤,


자신도 대각선 방향에 있던 의자에 몸을 걸쳤다.



"솔직히... 나와 박사님은 네가 이 세상에 남으면 그것대로 좋단 말이지. ‘저쪽 세상’ 사람들의 육체는 인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천사의 기술력’을 부작용 없이 쓸 수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이점을 두고도 너희를 원래 세상으로 돌려보내려고 하고 있어... 왜 그런 줄 아나?"



울란드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박사가 서 있던 조타실 조종석을 바라봤다.



"... 양심, 가책 이런 것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역할은 새장 속 사람들이 곪아서 썩지 않도록 하는 것. 즉, 계속하여 새로운 자원과 기술을 마주치게 해, 그들 스스로가 순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니까. 만약, 너희 세상에 새장 속 사람들이 탐낼 만한 게 숨겨져 있다면... 우리는 태초의 새장이 아니라 너희 세상으로 가는 게이트를 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렇군요..."



서진수는 울란드의 늑대처럼 송곳니가 드러난 말투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 생각보다 침착하게 받아들이는군.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그쪽 세상에 미련이 없어서?"

"그게... 아무래도, 박사님이라면 그 정도의 희생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하얀 가면.


박사의 하얀 가면이, 창가에서 비추어진 연한 주황색으로 물들어, 서진수에게 풍겨왔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렇게 몸이 신수처럼 변한 뒤로 꿈을 꾸거든요. 그 꿈 속에서... 박사님이 항상 하던 말이 있어서 말이죠."



서진수는 꿈을 회상하기 위해, 기억을 더듬으려고 할 때.



"천사는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가야 하는 법... 이라고 하셨겠지. 그렇지 않수? 박사님."



울란드가 서진수의 말을 끊으며, 다 안다는 듯이 박사를 향해 말했다.



"내가 항상 자식들에게 교훈처럼 해주던 말이지."



박사는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어, 바닥을 보게 해 펼쳤다.



"나는 수많은 기억의 집합체. 다만, 이 기억의 집합체는 한 소년에 의해 하나의 의식을 지니게 되면서, 나라는 존재는 1인칭적 허용을 이루어냈다."



박사의 바닥을 향한 손바닥에서 꿈틀꿈틀 하얀 찰흙 덩어리 같은 게 떨어져나와,


바닥으로 철석! 추락했다.



"인사 나누도록 이 소년은 너와 같은 나이로, ‘진정한 나’ 중 하나니까."



바닥으로 추락한 찰흙 덩어리는 금세 서진수와 같은 고등학생 소년 정도의 몸으로 변해,


옷까지 입혀지며 피부와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 반가워. 이렇게 밖으로 나오는 것도 오랜만이라서... 말하는 게 좀 어색하네."



그렇게 나는 박사의 몸에 나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던 서진수를 향해 말했다.



----------



천사의 기술력의 진가란.


인간이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는 것을 넘어서,


특별한 잠재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의 기술력으로 간택당한 인물들은 대다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이 초인처럼 변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여기서 초인이란, 몸에 내재된 에너지를 극한으로 다룰 수 있는 자들을 말한다.


몸에 내재된 에너지는 종교에서 말하길 ‘기’나 ‘오라’ 같은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보통의 학자들은 이러한 에너지가 죽음 힘을 다할 때 나온다고 하여 사력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훈련을 통해 사람을 초인으로 만들고, 그다음 천사의 기술력을 건네준다고. 히히히"



들쭉날쭉하게 근육이 부푼 천사의 바윗덩어리 같은 손아귀에 붙들려 있던,


백발의 한 노인이 검은 가면을 향해 히죽거리며 말했다.



"오호... 훈련이라... 설마 일국에서는 천사의 기술력을 훈련하는 방법으로 습득하고 있다니, 새로운 관점에서 천사를 바라보는 것 또한 좋은 실험 거리가 될 것 같아 흥미가 돋네요. 하하하"

"... 히히히... 원하는 걸 말해줬으니, 인제 그만 나를 풀어줘... 집에서 할미가 날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하하하... 그건 힘들겠군요. 당신 같은 종족은 처음이라, 저는 이것저것 알아보고 싶답니다. 이렇게 작은 키에 강인한 육체를 가졌다니... 덥수륙한 수염도 뭔가 기능이 있을 것 같아요."

"... 히히히... 이런..."



검은 가면은 손바닥을 두어 번 짝짝 가볍게 마주치자,


뒤에서 검은색 방진복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노인을 에워쌌다.



"그럼 당분간은 함께 가지요. 하하하."



검은 가면의 밑도 없는 친절한 목소리가, 대기를 잔잔히 짓눌렀다.



----------



나는 이 새장 속 세계에, 또 다른 ‘나’들을 뿌려두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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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6 - 3. 쟁탈전 23.06.05 23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6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9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2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5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7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40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5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2 0 12쪽
» 4 - 19. 주인공 22.11.12 5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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