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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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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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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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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857

작성
23.02.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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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 13. 서막

DUMMY

"... 그... 어..."



아름답다.


옅은 수채화에 그려진 여인이 미소지으면 이런 느낌인가?


김두원은 눈살에 칠해진 눈꺼풀을 한 겹 벗겨내니,


그건 다름 아닌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한 폭의 달콤함.


가라앉는 듯한 차분함 냄새로 풍겨오는 요염함으로,


김두원은 메이드장의 얼굴을 넋 놓은 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이런 메이드를 두고 류안은 죽은 건지...'



그래, 어떻게든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한 뒤 몸에 적응하기만 한다면 앞으로 천국이 펼쳐질 거라고,


자신은 류안과 다르게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김두원은 다소곳한 메이드장의 미소에 잠시 넋 놓았던 정신을 바로잡으며, 의지를 다졌다.



"그럼, 저는 류안님을 ‘사력에 관한 책’들이 보관된 장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텔레우스는 옆에 있는 두 메이드가 만남을 잡아 드릴 텐데, 시간은 언제쯤이 좋을까요?"

"오... 오늘 중으로만 잡아 주시면 좋겠어요."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메이드장이, 김두원 옆에 있던 두 메이드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두 메이드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럼 따라오시죠."



김두원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두 메이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번엔 메이드장을 뒤따라 복도를 걸었다.



'후...'



김두원은 메이드장의 여운과 앞으로의 기대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지금은 하늘에 떠 있는 저 천사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따스하고도 온화해 보였지만서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그것에게서 쏟아지는 빛은,


속이 울렁거리게 눈 속을 파고들어 지독한 악취로 시각을 잡아먹고 있으니까.


김두원은 박사가 의심스럽긴 했지만, 그의 말을 듣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엄청 큰 저택이네.'



김두원은 메이드장을 한참 뒤따라 걸으면서,


마음도 진정시킬 겸 저번에 미처 다하지 못한 ‘저택 구경’을 했다.



'겉으로 보기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류안의 저택.


그의 일기장을 보고서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나 이곳은 굉장히 깔끔하게 잘 지어져 있었다.


이 류안의 저택은 연구실에나 볼법한 하얀 대리석을 소재로 세련되게 지어져,


솔직히 집이라긴보단 주상복합 아파트 내부에 지어진 ‘옥상정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럴 것이 넓은 정원을 중심으로, 그 정원을 ‘복층 구조의 유리로 도배된 복도’가 둘러싸고 있었으니,


복도 사이사이에는 메이드 방들이 있어, 또 어떻게 보면 이 저택 자체가 연구실 같은 느낌도 들기도 했다.


김두원은 이런 느낌의 복도를 걸어, 저택 지하로 이어졌을 거라 예상되는 어느 계단에 다다랐다.



"연구하셨던 사력에 관한 책들은 ‘저택 지하’ 실험실 서적에 보관 중으로, 여기서부터는 보통 류안님 혼자서 가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 음..."



여기서부턴 보통 류안이 혼자서 갔다고?


뭔가, 이유라도 있나?


김두원은 저택 지하로 이어진 계단 속 진한 어둠과 마주하다가,


옆에서 벽에 설치된 스위치를 누르는 메이드장을 바라봤다.


딸깍.


메이드장의 손끝에서 스위치 음이 울리자 지하로 이어진 어둠이 불로 밝혀졌고,


윙-


동시에 어떠한 전자음이 지하 안쪽에서 미세하게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역시 저와 함께..."

"저 혼자서 가볼게요."



지하로 이어진 계단은 으슥하긴 했지만, 류안이 혼자 간 거라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왜인지 꼭 지켜야 할 것 같다고, 김두원은 한 발 계단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면, 저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시면 연락하세요."

"네... 그럼..."



어딘가 불안하기만 한 이 계단 속으로 김두원은 내려갔다.



----------



나는 꿈을 꾸었다.


그게 꿈인지는, 확실히 알아챘다.


엄마... 떠나버린 그녀가 나왔기에, 알 수 있었다.



"미안... 미안해."



엄마가 날 떠나고 날아가는 풍경 뒤로 펼쳐진 수많은 새장.


새장 주위에서는 새하얀 날개를 살랑이던 천사들이 나를 따스하게 내려다보고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엄마가 좀 더 생각을 정리하면...... 아니, 그러지 못하겠어. 미안해. 넌 내 아들이 아니야."



무엇보다도 다소곳하게 나를 껴안으면서 우는 여인.


무엇보다도 상냥하게 나를 거부하는 여인.


천사처럼 다정하고도 무자비하게, 그녀는 나를 먹었다.


나는 눈을 떴다.


눈가에 고인 방울이 어둑한 이곳을 흐물거리게 했다.



"... 그때 그게 그 뜻이었어..."



아주 잠시지만,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어 개운했다.


나를 버리고 간 그녀인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진정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천사가 사람을 먹으면 이런 기분인가...?


나는 커튼 사이로 삐져나오는 하얀 빛줄기를 바라봤다.



"... 테델. 젠장..."



이상한 기분 사이로, 나는 비로소 시야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나는 왜 그때 테델과 그의 사촌 형을 공격한 것인가?


박사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꿈만 꾸면서,


나는 사람을 잡아먹은 것인가...?



"이유를 알고 싶나? 실베스타."



내 머릿속에서 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뇌를 저미는 것 같은 그의 목소리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이번엔 깜짝 놀라거나 그러지 않았다.



"제 몸이 버티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듣는 거라면, 몇 분이고 상관없다."

"... 그거 참... 지옥 같은데..."



나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솔직히... 당신도 의심스러워요. 아까처럼 내 몸의 주도권을 뺏을 수 있잖아요?"

"당연한 의심이다만, 그저 나를 믿어 달라고밖에 할 수 없겠군."



... 인제 와서 믿어달라고 하다니...


정말 뻔뻔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를 의심하기엔 나는 너무 무기력했다.



"... 그래서, 누가 저를 그렇게 만든건가요...?"



예상은 간다.


하얀 날개를 지니고, 우리를 조롱하듯이 내려다보는 천사.


나는 다 알면서도, 내가 그러지 않았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 일부로 물어보았다.



"천사. 저 하늘에 떠 있는 천사처럼 보이는 소년, 아리야다."



천사... 천사처럼 보이는 아리야?


나는 어젯밤 나를 찾아 왔었던,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 소년이 떠올랐다.


그 소년은 새하얀 날개가 달려 하늘로 날아오르긴 했지만,


저 하늘에 떠 있는 천사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생겼었다.


아리야는 천사와 비교해서 크기도 훨씬 작았을뿐더러,


눈에는 저런 작은 날개들이 나 있지 않았다.



"빌어먹을 새끼..."



그런데, 나는 사실 여부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아리야, 그래... 저 녀석이 그런 것이다.


그 벌레 기어가는 목소리.


그것이 내 귀를 좀먹자,


나는 비로소 이성을 잃고, 날개가 달렸다.



"실베스타. 너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고 싶지?"

"천사를 죽이고 싶어요."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죽이고 싶지?"

"... 저야 모르죠... 모르지만, 어떻게든 죽이고 싶네요."



나는 무력하다.


나는 그저, 이 새장 속에 수많은 종족인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아니, 다른 반용족처럼 피부가 튼튼하다거나 작은 날개 따위도 없어,


더더욱 아무것도 못 하는 종족인일 뿐이었다.



"실베스타, 넌 신수라는 종족에 대해 알고 있나?"

"... 제가 알 리가 있나요?"

"그것은 공주에게서 새장의 권능과 강인한 육체를 부여받아 새장의 수호자가 되었다."



박사가 알 수 없는 말을, 뜬금없이 시작했다.


아니... 이번에는 어디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뜬금없이 시작하였다.


식상하고 부질없는 이야기인데, 왜 이런 상황에서...



"그래. 마치 동화에서 나올 법한 신화 같은 이야기지. 하지만, 이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난 일. 이 세계에 ‘태초의 새장’이라는 ‘지금의 그 어떤 새장보다도 거대한 새장’ 단 하나가 존재했을 때, 그 새장 속 공주님은 자신의 넓은 새장을 관리하기 위해 ‘신수’라는 것을 만들어 새장 전역에 뿌렸지. 새장 전역에 뿌려진 신수는 자신의 강인한 힘을 바탕으로 서로 평등이 구역을 나눠 여러 종족인들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뭔가 길어질 것 같은 박사의 말에, 나는 현기증이 올라와 침대에 누웠다.



"여러 종족인들은 강인한 힘을 지닌 신수를 처음엔 두려워했지만, 그들의 온화하고도 배려심 넘치는 통치는 곧 그들이 ‘신수’라는 이름을 지니게 하였고, 신수로부터 얻어진 평화는 몇백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만, 한 무리의 여행자가 이 세계에 도착하자, 모든 게 끝나가기 시작했지."



한 무리의 여행자?


방금까지, 세계에 단 하나뿐인 새장이며?



"그 여행자 무리는 다름 아닌,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존재들. 그들은 신수를 못마땅히 생각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크게 부풀린 다음, 자기들만의 왕국을 건설했다... 이게 네가 지금 사는 이 ‘회백 새장’의 기원이야."



...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다.


학교 교과서에서 나오지도 않은 말이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 진짜... 모르겠는데요."



천장을 향해 말했다.



"실베스타, 그리고 넌, 그 세력이 있던 구역을 담당하던 신수, 너는 네 구역을 끝까지 평화롭게 수호하려고 하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자들의 함정에 빠져 살해당했다. 다행히, 네 시체는 ‘너를 지지했던 세력’이 회수해 커다란 무덤에 안치시켜, 나는 너에 대한 정보들을 회수할 수 있었지."

"그러면... 제 엄마가 떠난 게 당신 때문인가요? 진짜 자기 자식을 안 만들어서...?"

"신수의 영혼, 즉 사력은 간혹 종족인들에게 깃들어 태어날 때가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기의 육체는 신수의 사력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이지. 안타깝지만, 네 어머니도 너를 출산했을 당시 너는 바로 죽었다."



... 나는 천장을 향해 손을 쥐었다가 폈다가 하며, 나 자신의 움직임을 되새겨 보았다.


믿으려야 믿을 수 없는 박사의 말을 믿어보겠다고,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신물을 되새겨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말에서 영혼이 떠나간 뒤, 이제 내게 남은 건 어떤 식으로 천사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뿐이었다.



"... 그 말을 저더러 믿으라고 한 건 아니겠지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제가, 저 천사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 이 말이죠?"



나는 펴고 있던 손바닥을 꽉- 움켜쥐었다.



----------



윙---


소리가 크지 않지만, 고막이 아플 정도로 진동하는 전자음이,


은색의 쌍여닫이 철문 너머에서, 지하로 내려간 김두원에게 뻗어 나왔다.


김두원은 진동하듯이 울려대는 전자음에, 귀를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실험실치고는 꽤 시끄러운데... 뭔가 이유라도 있는 건가?'



김두원은 철문 안에서 어떠한 것이 나오더라도,


놀라지 말자고 각오를 다지며, 안으로 들어갔다.



"신원 조회 중..."



그러자 또 하나의 철문이 김두원을 가로막은 채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고,


이내 한 여성의 목소리가 천장에서 울렸다.



"... 조회 결과... 류... 류안...? 치익--- 검사 실패. 대상 감금하겠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김두원이 열고 들어온 철문이 닫혔다.


김두원은 귀에서 손을 떼며 닫힌 철문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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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6 - 3. 쟁탈전 23.06.05 23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2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5 0 12쪽
» 5 - 13. 서막 23.02.18 37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40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5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2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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