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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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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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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01.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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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 - 9. 들판

DUMMY

"천사를 보셨나요?"



저기 멀리 광활한 들판 위로 새하얀 날개를 지닌 천사가,


하늘에서 사뿐히 내려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와의 거리와 상관 없이 내 귓속으로 곧장 말하는 것 같았다.



"... 여긴..."



포근하게 나를 감싸 줄 것 같은 향기로운 천사.


눈을 감으면 꿈에 빠져든 것 같고, 눈을 뜨면 꿈을 깬 것만 같은,


여운을 흩날리는 따사로운 들판 위 천사를,


나는 두 눈을 비비적대며 바라봤다.



"당신은 꿈꾸고 있나요?"

"..."



천사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아...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



천사는 두 손을 깍지 끼어 포갰다.



"내게 사랑을 주세요..."



점점 커지는 천사의 새하얀 날개, 창백한 몸.


그것이 광활한 들판을 전부 뒤덮을 만큼,


푸른 하늘에 맞닿을 만큼 높이 솟아올라, 내게로 몸을 숙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기도해주세요. 어린양."



내게 가까이 다가온 창백한 여인의 얼굴.


단발에 하얀 머리칼을 지닌 그녀의 얼굴은,


익숙한 어머니의 향수처럼 내 시야를 진하게 물들이다가,


얼굴 정중앙이 쩌억 갈라져 안에서 뇌수가 쏟아지며 그 속에서 아기 천사들이 날아올랐다.



"엇!"



나는 너무나도 끔찍한 이 풍경에 그만,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신이 내리어준 사자를 우리 인간들이 이해하는 건 힘들겠지. 그런데도 신은 끊임없이 이 세계에 관여하고 있어. 저쪽 세계와는 다르게 말이야."



나는 옆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어쩌면 이쪽 세상에서 신으로 가기 위한 길을 두드리기에, 이런 흉물이 나왔는지도 모르지. 천사의 기술력이란 건, 인간의 마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니까."



얼굴을 뒤덮는 하얀 가면.


아무 무늬도 새겨져 있지 않은 하얀 가면의 남자가,


뜬금없이 내 옆에서 말하고 있었다.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새로운 자아’를 가지질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나 예상외의 일이었어. 하지만 너는 해냈다. 그러니 계획을 바꿔, 네가 날 필요로 하면 도와주는 거로 하지. 우선 지금 이 천사부터 손을 써주겠다."



하얀 가면의 남자가 그리 말하자,


내 눈앞에 있던 커다란 천사와,


하늘로 날아오른 작은 천사들이,


하얀 깃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부터 네게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날 거다. 내가 올 때까지 그 마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나는 눈을 떴다.


방 안이 피투성이였다.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델...?"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



김두원은 밤에도 불침번처럼 침대 주위를 교대로 감시하는 메이드에 결국 잠이 들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대체 어느 정도의 삶을 살아야 이 정도의 지극정성에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김두원은 전이 되기 전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리 S 대기업의 회장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까지는 힘들 거라 생각되었다.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아니야..."



대체 이 저택에는 몇 명의 메이드가 있는 건가?


한 24명까지는 세긴 했는데, 그 후로는 그냥 귀찮아서 세지 않았다.



"... 저기..."



김두원은 메이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덮고 있던 이불을 꼼지락거리며 옆에 있던 메이드를 불렀다.



"왜 그러시죠? 도련님."

"그런데...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인가요?"



이미 메이드장에게 물어보긴 했지만, 그녀는 직접 떠올려 보라는 말만 할 뿐,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뭘 하던 사람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힌트는 좀 주지... 김두원은 이불을 꼼지락거리던 두 손을 펴, 바라보았다.



"그건... 답변해 드리지 못하겠어요. 메이드장님이 이미 말씀을 해두셔서..."

"역시... 후..."



김두원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도련님은 굉장한 분이니깐요... 그래! 도련님은 용사님을 대신에 이 새장을 지켜주신 ‘위대한 분’이었으니깐."



위대한 분... 내가 아니라, 이 몸의 원래 주인.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당연하리만치 듣기 싫은 사실.


김두원은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억지로 분을 삼켰다.



"저... 목이 말라서 그런데 물 좀 떠와 주실 수 있나요?"

"본부대로"



메이드가 김두원에게 고개를 숙인 뒤, 방에서 나갔다.


김두원은 메이드가 나간 문에 얼른 귀를 바짝 붙여 그녀의 발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그때야 슬그머니 문을 열며 밖으로 나갔다.



'뭔가... 여기에 있으면 짜증이 솟구칠 것 같아.'



김두원은 사뿐하지만 빠른 발걸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저택 복도를 걸었다.



'나보다 모든 게 나은 이 몸뚱이... 왜 자꾸 거부감이 드는 거지?'



누가 이 세계로 보내달라고 했나?


뭐, 남부럽지 않은 삶을 바라긴 했지만, 이렇게 비교되는 삶은 아니었다.


김두원은 저택을 빠져나와, 기나긴 정원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장 같네."



선명한 별과 달이 오늘따라 유독 하늘을 밟게 비추었다.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성도,


하늘을 감싸고 있던 뭔지 모를 기둥 같은 것들도,


김두원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기나긴 정원을 지나, 철장 같던 문을 열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답답함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속에 똬리 튼 질투심도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았다.



"후..."



김두원은 몰래 오느라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저택 밖을 둘러보았다.



'거리 풍경은 그냥 우리 세계랑 같은데...'



도심 속 뻗어 있는 길목들.


그것들이 이어져, 집들과 연결된 풍경.


물론, 자동차 대신에 흔히 ‘부유 탈것’이라 불리는 것들이 큼직한 차로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틀은, 우리 세계와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나?'



김두원은 길목을 걸어, 어느 사거리에 다다랐다.


사거리의 차도로 ‘부유 탈것’들을 탄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김두원을 바라봤다.


김두원은 사람들의 시선에, 뭔가 이상함을 느껴 지금 입고 있던 옷을 내려다보았다.



'잠옷 바람...! 젠장.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슬리퍼에 검은색 잠옷... 김두원은 꽤 비싸 보이는 푹신푹신한 잠옷 바람이라 사람들의 눈에 더 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 일단 골목으로 들어가야지.'



여기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김두원은 지금 사람들의 시선이 더 중요했다.


계속해서 흘끔거리며 보는 듯한 그들의 시선은,


과거 뚱뚱하고 못났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같았기에,


얼른 골목 사이로 들어가,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나아갔...



"엇!"



골목 사이에서 튀어나온 누군가가, 김두원의 몸과 부딪혔다.



"괜찮아?"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


김두원은 가볍게 잠옷을 털며, 소년을 향해 말했다.



"흠...? 피?!"



어두워서 단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소년이 뒤집어쓴 저 붉은 액체는 피.


알아차린 순간에는 물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비릿한 냄새는 분명 입술이 터졌을 때 느꼈던 피의 냄새였다.



"나... 나 때문인가?"



아니 그냥 부딪힌 것뿐인데, 이렇게 피가 날 일이 없었다.


무슨 사고라도 당한 걸 것이다.


김두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 당신은... 우리 새장에 영웅...?"



소년이 죽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와주세요... 제가 사람을 죽인 것 같아요."



이미 지칠 때로 지쳤는지 소년의 눈이 김두원을 향해, 의미 없이 끔뻑거렸다.



"그런..."



사람을 죽였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김두원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뒤죽박죽 꼬였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아니면 119?


그나저나 이 세계에 경찰이나 119란 게 있을까?


진짜 이 이 소년이 사람을 죽였을까?


사람을 죽여놓고 남에게 부탁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김두원의 머릿속에 차올랐다.



"저... 저기 저 좀..."



소년이 주뼛거리면서 김두원 앞으로 다가갔다.



"도련님께 더 접근하면 죽는다. 소년"



그 순간, 혜성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메이드복 차림의 한 여성.


그녀가 소년을 가로막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메이드 중 유일하게 안경을 쓴 메이드장의 매서운 눈초리가 소년을 경계하다가, 김두원을 향했다.



"어... 어, 난 괜찮은데..."

"다행입니다. 이 소년은 제가 보안팀을 불러 처리하겠습니다."

"... 어...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한데... 일, 일단 좀 대화를 나눠보면 안 될까? 무슨 일인지 궁금도 하고..."

"..."



메이드장은 여전히 경계하듯이 피투성이의 소년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김두원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이 소년을 저택에 데려가도록 하죠. 대신! 다음부터는 밖에 혼자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호원이나 적어도 저희 메이드를 꼭 한 명씩은 데려가 주세요."

"알겠어...요."



진짜 이 몸의 원래 주인은 덕을 많이 쌓은 모양이다.


이 정도로 아리따운 메이드들에게 걱정 받고 있다니.


아무튼, 지금은 이런 답답함 따위는 일단 뒤로 미루고, 이 소년...


김두원은 이 소년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



어둑한 밤하늘 아래에 쓰러져 있는 가드너들과 공중에 두둥실 떠 있던 천사 한 마리.


천사의 검은 눈물로 얼룩진 눈에는 눈알과 눈썹 대신 ‘작은 크기의 하얀 날개’들이 들쭉날쭉 삐져나와 꿈틀대고 있었고,


그의 등에는 수많은 새하얀 날개들이 자라나 하늘에서 펄럭대고 있었으니,


지상으로 올라온 용사는 그런 그의 모습을 팔짱 껴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천사. 오랜만이네~ 저 천사의 육체를 만든 이유가, 저쪽 세상을 ‘부작용’ 없이 가기 위해서였지. 덕분에 진짜 천사 녀석들을 연구원들에게 잡아다가 받쳤는데... 그때가 참 엊그제 같네."



용사는 뒤에 서 있던 텔레우스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연구가 실패한 것 같군요..."



텔레우스는 아쉬운 듯 천사를 향해 말했다.



"천사 나부랭이가 그렇지 뭐, 순수하고도 본질적인 생체물질이라 모든 생명체와 결합 가능하다고 하지만, 저 녀석들은 늘 그랬듯 마지막에는 항상 배신하니까..."



용사의 회상에 잠긴 표정이 일그러지며 이를 질끈 깨물었다.



"내가 죽여주지."



용사는 하늘로 뛰어올라, 두 손을 포개고 있던 천사의 머리로 롱소드을 뻗었다.



"흠?"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그대로 천사의 머리를 통과해버리는 용사의 롱소드.


용사는 사뿐히 바닥에 착지해, 다시금 천사를 올려다보았다.



"벌레가... 이 벌레가 아니야."



천사는 용사를 보며 그렇게 속삭인 뒤,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저... 저 마법은..."



용사는 하늘로 솟구치는 천사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가만히 바라봤다.



"설마 또 내가 아니라 다른 놈을... 내가... 내가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린다..."



용사의 주위로 롱소드의 칼날들이 솟아올랐다.


텔레우스는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재빠른 발걸음으로 뒷걸음질 치며,


쓰러져 있던 가드너들을 발로 차 안전지대로 옮기면서 칼날들을 피했고,



"엇! 뭐야?"

"나, 이거 안다! 마술. 마술이다!"



테이야 이노와 수잔은 부랴부랴 어설프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칼날들을 피했고,



"어이쿠..."



민기는 김하늘을 엎은 채, 저기 멀리 건물 옥상으로 단번에 뛰어 올라갔다.



"지금 당장 늙은이들을 모아! 저 녀석을 만든 X발 X끼를 찾도록 하지."



용사는 이마에 핏발을 곤두세우며, 멀찌감치 뒤로 떨어져 있던 텔레우스를 향해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



나는 변기통에 머리를 박고 헛구역질해댔다.


더는 내용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게 나의 약간의 속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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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6 - 7. 쟁탈전 23.09.08 11 0 13쪽
89 6 - 6. 쟁탈전 23.08.23 17 0 12쪽
88 6 - 5. 쟁탈전 23.07.03 21 0 12쪽
87 6 - 4. 쟁탈전 23.06.24 19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4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3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63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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