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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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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3,770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2.11.2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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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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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5 - 2. 주인공

DUMMY

"후... 아가씨께서 도련님은 사력을 꼭 익혀야 한다며 벼르고 있어요. 자자 어서 가시지요."



양복 차림의 그녀는 김두원의 손목을 잡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김두원은 그녀의 이끌림에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엄마를 제외한 여성에게 손목을 잡혀보는 건 처음이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 오늘은 순순히 따라오시는군요. 휴... 정말 다행이에요."



이 몸의 주인이 따로 있었어?


그러면... 나는 이 몸을 뺏은 거야 뭐야?


김두원은 여인의 손에 끌려가면서,


어딘가에서 샘솟는 혐오감으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런 몸에 원래 주인이 있었다니... 이거 나중에 도로 뺏기는 건가?'



기껏 이 세계로 전이했는데,


기껏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김두원은 그 추한 몸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그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패배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어떻게든,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김두원은 빨리 알고 싶었지만...



"자동차 대기 해놔. 도련님께서 복귀하시고 있다."



이 양복 차림 여성의 손을 뿌리치기에는, 자존감도 자신감도 전부 부족했다.



"어디 몸이 안 좋으시나요? 손이 떨리고 있으신데..."

"아... 아니. 괜찮은데..."

"흠...?"



양복 차림의 여성은 주눅 들듯이 말하는 김두원의 모습을 보며,


걷는 걸 멈추고 김두원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 어디 열이라도 나시나...?"



그녀는 김두원의 이마로 손바닥을 펼쳐 올렸다.


김두원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가냘프지만 따스한 여인의 손길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열은 나지 않는데..."



아아... 여자의 손길은 원래 이렇게 따스한 건가?


과거의 자신을, 그 그윽한 부정만이 가득한 자신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것 같은 이 손길...


김두원은 앞에 선 검은 양복 차림의 이 이름 모를 여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안 되겠습니다. 아가씨와의 약속은 취소하시고 오늘은 쉬세요. 제가 아가씨에게 연락해두겠습니다."



아름답다. 마음도, 외모도...


특히나 외모는 이국적인 듯 아닌 듯, 동양인과 서양인을 섞여 둔 것 같은 느낌으로,


우리 세계에 있던 인종과는 또 다른, 어디 동화 속 캐릭터와 비슷한 느낌으로,


마냥 약하기만 한 자신을 잡아 줄 것만 같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 아니. 난 괜찮아. 그... 그런데, 저기에는 어떻게 올라가지?"



김두원은 그녀 덕분에 조금 진정된 마음으로,


하늘 높이 떠 있던 부유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저긴... 저기서 도련님은 아가씨와 함께 사력을 훈련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어... 그... 그런데..."

"... 혹시, 제 이름이 뭔지 기억하시나요?"

"..."

"지금 당장 집으로 가시죠. 의료진을 불러오겠습니다."



양복 차림의 여성은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지면서,


김두원 이마에 얹어진 손이 볼을 타고 밑으로 흘러내렸다.



----------



서진수는 등에 달린 날개를 펄럭대며, 몽롱한 눈꺼풀을 위로 올렸다.



"서진수를 죽이는 게 더 속 편안일 아니겠수?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존재를 떠안고 있어봤자 위험도 할뿐더러, 우리가 암-바야드를 쫓는데 시간만 더 지체될 것 같은데..."



서진수의 몽롱한 눈빛 앞으로 펼쳐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도심 속 사거리 한가운데에서,


울란드가 소년과 같은 몸으로 변한 박사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죽이는 게 더 편안할 수도 있지만, 이제 이 부유 기구에서 남은 학생은 서진수 혼자야. 이 말은 즉, ‘천사의 기술력’이 저쪽 세상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됐다는 거지."



소년처럼 변한 박사의 작은 입에서 새어 나오는, 잔인하고도 포근한 말.


서진수는, 자신을 앞에 두고도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두 괴물이 무서웠다.



"게다가, 서진수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어. 아... 공격은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학생들을 죽이는 걸 방해했을 때 호야를 공격했지. 이런 행동으로 보았을 때, 서진수는 아무래도 ‘신수의 본능’에 몸을 맡긴 것 같더라고..."

"신수의 본능이라면 박사님이 세웠던 가설 중 하나 아니요?"

"그래. 내가 시간이 남았을 때 세웠던 이론이지. 작은 새가 둥지에서 날아가기 위해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면서 ‘함께 있는 형제’ 들과 경쟁하는 생존본능. 서진수의 몸은 천사의 기술력을 부작용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니까, 이런 신수의 기억... 본능을 너무나도 잘 흡수해서 생긴 부작용 같은 거겠지."

"... 그렇게 된 거라면, 박사님의 말처럼 서진수의 몸을 연구할 가치가 있을 것 같은데..."



울란드는 날카로운 손톱을 치켜세워 안주머니에서 커다란 시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저희가 굳이 죽이지 않아도 진실은 알아버린 이 소년은 과연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딸깍.


울란드는 손톱을 튕겨 거기서 일렁이는 불똥으로, 시가에 불을 지폈다.



"다만, 시련을 극복했을 때, 서진수는 비로소 사력을 익힐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는 진정한 신수로 거듭날 수 있을 테지."



서진수는 이들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다.


시련이니,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느니.


이게 무슨 말인지, 서진수는 궁금했다.


하지만... 왜인지 입이 무거운 집게에 짓눌린 것처럼 벌려지지 않았다,


서진수는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그것도 그저 가설 아니요? 천사의 기술력을 부작용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쉽사리 초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닐텐데..."

"극소수 종족이지만, 드워프라는 종족과 다크 엘프라는 종족들은 ‘천사의 기술력’을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어. 그들은 ‘육체가 한계를 뛰어넘어 사력을 익혔을 때, 천사의 기술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은발에 아르처럼 보라색 눈동자를 지닌 박사.


그는 반곱슬처럼 엉켜진 머리카락에 눈을 반쯤 가린 채로,


가냘픈 턱선만을 아래위로 까닥거리며 울란드의 말에 대답했다.



"현재 초거대 새장들은 ‘천사의 기술력’에만 연구를 몰두하고 있지만, 대게 ‘천사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어떠한 것들은 나름의 의지를 품고 있지. 이로 파악했을 때, 그들의 접근 방법도 결코 잘못된 게 아닌 것 같아."

"흠... 박사님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울란드의 늑대와도 같은 매서운 눈동자와,


박사의 모든 걸 집어삼킬 것 같은 보랏빛의 눈동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진수를 동시에 바라봤다.



"서진수, 네 날개는 과연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나는 박사님처럼 그리 다정하지 않아서 말이야. 한번 이겨내 보라고."



울란드는 불붙인 시가를 한 모금 길게 당겨, 서진수에게 내뱉었다.


그러자 서진수의 몽롱한 도심 속 사거리 풍경이, 흐물흐물한 눈물에 고여 밑으로 가라앉았다.



"꿈...?"



서진수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



"음... 머리에 문제는 없고... 다른 부분도 정상인데..."



이런 판타지 같은 세상에도 의사가 있다니...


하긴, 겉보기엔 이 세계의 생활이나 의식 수준은 원래 있던 세계와 별 차이 없어 보였으니까.


조금... 다르게 존재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힐러라던가, 수도승이라던가, 조금 특별한 것들이 없어 실망이긴 했지만,


김두원은 의사에게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며 아쉬움을 뒤로 미뤘다.



"도련님의 상태는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머릿속도 괜찮고, 무엇보다도 머리에 외상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으니까요. 흠... 그럼 일단 오늘 검진은 여기서 마치고, 내일 다른 전문의들과 다시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당연히 괜찮겠지. 나는 전이된 거니까...


김두원은 원목 가구의 침침한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오는,


이 중후한 느낌의 커다란 방에서 나가는 의료진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예상은 했지만... 이 몸의 원래 주인은 엄청 부자인가 보네.'



널찍한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에 은은한 원목 벽면에다 금색으로 치장된 이 방안은,


현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무게감만큼은 확실히 대기를 짓누르고 있어,


김두원은 이런 분위기에 완전히 위축되어 자신이 작은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곳이 내 집이라고 했으니까, 슬쩍 둘러나 볼까?'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냥... 남의 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왠지, 다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라,


원래의 주인이 와서 여기가 내 집이라고 주장할 것 같은 느낌이라, 더욱이 그랬다.


김두원은 앉아 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의료진들이 나갔던 방문을 열어젖혔다.



"주인님. 아가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모셔올까요? 아니면 그곳으로 직접 가시겠습니까?"



메이드 복을 입은 여인.


자신이 알고 있던 짧은 스커트에 그런 야시시한 메이드 복이 아니라,


긴 치마에다 정장을 연상케 하는 단정한 메이드복 차림의 한 여성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어젖히는 자신에게 말했다.



"아... 아가씨...? 그러고 보니 아까도 아가씨가 걱정하고 있다 하던데..."



김두원은 메이드 복을 입은 여성의 어딘가 고지식한 시선이 부담스러워,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말했다.



"평상시라면 아가씨와 만나는 걸 반대하겠으나, 도련님의 상태를 보니 아가씨를 만나 뵙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그... 그런가요...?"

"네. 아가씨를 만나 뵈면 뭔가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러면 일단 옷부터 갈아입겠습니다."



메이드 복을 입은 여성이 흘끔 뒤로 고개를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3명의 또 다른 메이드 복 차림의 여성들이 내가 있던 방으로 들어왔다.



"하하하..."



김두원은 진짜 뭔가 귀족이라도 된 것 같은 이 풍경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광활한 들판 위,


천사의 품처럼 따스한 태양 빛이 하늘에서 내리쬐고,


살랑이는 바람이 무릇 이야기를 퍼뜨리는,


그윽한 대지의 숨결이 펼쳐진 다정한 이 들판에서,


아리야는 원기둥 모양의 실험관에 담긴 뇌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리야, 최근 드워프라는 희귀한 종족을 잡았답니다. 그들은 여태 숨겨진 새장에서 살며 우리와는 다른 관점에서 ‘천사의 기술력’을 바라보고 있더군요."



아리야의 뒤로, 들판 위에서 새겨지는 검은 가면.



"제가 그들의 지식과 기억을 넣어드릴 테니, 당신은 숨겨진 새장으로 가서 천사의 기술력과 사력을 익히고 오세요."



검은 가면은 아리야 머리에 사뿐히 손을 올렸다.



"... 내가 왜 그래야 해?"

"전 진심으로 당신을 위하고 있으니깐요. 하하하"

"거짓말..."

"거짓말이라뇨. 당신은 제 걸작 중 하나이니 싫어할 수가 없겠죠. 이건 마치 부모의 마음 같은 거랄까요?"



아리야는 고개를 슬쩍 돌려, 암-바야드의 검은 가면을 바라봤다.



"..."



따스한 햇볕에 감추어진 저 일식과도 같은 검은 가면.


살랑이는 바람이 저 검은 가면에게서 뿜어져 나와,


자꾸만 심장을 옮아 매는 것 같은 이 기분.


꿈틀꿈틀.


들판에 놓여 있던 뇌가 감긴 통의 투명한 유리 위로 애벌레 한 마리가 기어갔다.


부모란 건 원래 이런 존재인가?


아니, 아닐 것이다.


저건 자신을 실험체로써 좋아하고 있는 것뿐인 말 만 번지르르한 악마.


단지 그뿐인 존재일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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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5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4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0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4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4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6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7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3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7 0 13쪽
»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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