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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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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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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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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3.03.0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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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 - 15. 일상

DUMMY

"테이야 이노라고 했나? 텔레우스는 어디에 있는 거지?"



진짜 ‘박사’라고 생각만 했는데, 몸의 주도권이 박사에게 넘어가 입이 멋대로 움직이다니...


나는 내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답답함을 억누르면서,


콧잔등이 간지럽지만 긁지 못하는 불편함을 억누르면서,


기분 나쁜 이 감각을, 인내하는 종교인마냥 견뎌냈다.



"에...?"



테이야 이노는 갑자기 바뀐 내 말투에, 이해되지 않는다는 맹한 표정 사이로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직접 텔레우스를 류안에게 안내해주겠다."

"... 방금까지 꼬맹이 네 입으로 불청객이라며?"

"그래서 직접 들어와 찾을 텐가?"

"어... 그건 좀..."



테이야 이노는 안 그래도 덥수룩한 반곱슬 머리를 더욱 헝클어지게 긁적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곤 나를 바라봤다.



"이상한 꼬맹이네... 뭐, 나야 귀찮은 건 질색이니 네가 직접 안내해주면 좋지만 텔 형씨가 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으니... 네가 직접 통화해봐라."



테이야 이노는 내게 휴대폰을 뻗어, 액정에 적힌 ‘텔형’이라는 문구를 내보였다.


나는 그의 휴대폰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받아든 뒤, 곧바로 텔형이라고 적힌 문구를 터치했다.



"왜 그러시죠? 테이야."

"텔레우스 오랜만이군. 나는 박사네만."

"박사...? 설마... 박사님...?"



텔레우스는 그의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당혹함을 드러내며, 한끝의 물음으로 내 귓속을 간지럽혔다.


나는 박사가 누구인지 왜 텔레우스마저 이 자를 알고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주도권이 빼앗긴 이 불편한 몸에 그저 입만 닫고 있었다.



"그래. 네가 준 천사의 기술력은 잘 사용하고 있나?"

"...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한 건 아닐 텐데요? 어서 원하는 걸 말하세요."

"류안과 함께 사력에 관한 책들을 챙겨, 전이문으로 와라. 그곳으로 공주와 완성된 육체를 보내도록 하지."

"결국엔... 그 육체가 완성되었군요..."



텔레우스의 목소리가 주저하듯이 작아졌다가


깊은 한숨으로 변해 수화기 저편에서 가라앉았다.



"제가 박사님에게 말한 적 있었죠. 저는 ‘인간종’ 편이라고... 그게 어떤 세상이든 상관없이, 설령 우리 세계를 조각냈었던 용사라도 이제 더는 상관없습니다..."



포기하는 듯한 목소리의 가라앉음 속에서,


텔레우스의 의지가 차분하게 굳혀졌다.



"... 결심한 건가? 네 결심은 인간 세상에 더욱 큰 혼돈만을 불러올 텐데?"

"천사는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가는 법, 희생 없이는 변화를 얻지 못한다. 당신이 항상 하던 말이죠. 기억나시나요?"

"그래..."



박사와 텔레우스 간의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침묵은 한 치의 망설임이 아닌,


경계심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


내 코앞으로 지독함을 풍겨댔다.



"... 실베스타... 미안하지만. 너는 이곳에서 죽어줘야겠어."



나는 텔레우스의 말에 의문을 채 품기도 전,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묵직한 무언가에,


시야가 땅밑으로 꺼지며 모든 게 깜깜해졌다.



----------



각종 인형의 부속품들이 벽에 진열된 커다란 실험장.


인간불신이 샘솟을 것만 같은 인위적인 육체들 속에서,


팔이 한쪽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머리가 열려 있거나, 뱃속이 훤히 보이는,


‘미완성된 사람 인형’들이 저마다의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김두원에게 다가왔다.


김두원은 그저... 공포 영화에서나 보았던 이 광경에 이를 뿌듯 갈면서,


도망치거나 무기를 찾아야겠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왠지 이 인형들, 자신에게 뭔가 할 거 같지는 않았다.



"... 주인님..."



아니 오히려, 메이드들이 자신을 보았던 것과 비슷한 기분.


인위적임 속에서 피어난 갈망과도 비슷한 기분...


김두원의 호흡이 진정되어져 갔다.



"괜... 괜찮으신가요?"



불편한 몸에도, 자신을 향해 걱정해주는 인형들.


위로되는 것 같다.


사랑받는 것 같다.


고작 인형일 뿐인데...



"류안. 아니, 저쪽 세계의 사람. 당신은 우리 세계에 있어 아주 큰 위험이 되는 존재. 당신들은 신수도 아닌데 우리 세계의 힘을 부작용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죠."



여자의 목소리가 먼저,


그 뒤로 그녀의 꾀죄죄한 모습이,


김두원 정면에 있던 실험장 문 너머에서 모습을 보였다.



"당신이 앞으로 누구 편을 들지 모르겠지만, 부디 이 새장에서 벗어나..."



쿵!


여자가 서 있던 곳으로, 실험장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김두원은 무너지는 천장으로부터 휘몰아치는 먼지에, 팔로 얼굴을 막았다.



'뭐... 뭐야?'



먼지 구덩이가 되어버린 실험장.


가뜩이나 지하 실험장이라 먼지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이곳에 머물다가,


한 사람의 형상이 드리워지자, 그제야 먼지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후... 이제 좀 분이 풀리네..."



형태가 갖추어진 사람은,


손에 들고 있던 롱소드를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면서,


황금빛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네가 류안... 은 아니구먼."



그는 곧 김두원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너도 다른 세상에서 온 녀석이군. 큭큭. 좋아. 좋아."



그는 김두원을 바라보며, 소름 끼치게 웃었다.



"나도 ‘저쪽 세계’에서 온 전이자다. 이 세계에선 용사로 통하고 있지."



전이자...? 게다가 용사라고?


이렇게 빨리 자신과도 같은 전이자를 만나다니,


김두원은 그 사이코패스 같던 여자를 죽이고,


자신을 구해 준 저 용사라는 남자 뒤에서,


왠지 휘광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



부유선 갑판 위,


하얀색 구름이 평화로운 하늘에 펼쳐져,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잔잔히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박사는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얀 가면을 긁적였다.



"모든 연결점이 끊어졌다."



박사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울란드가 뾰족한 손톱을 다듬다 말고,


늑대의 주둥이를 일그러뜨렸다.



"그래서 이제 어쩌실거요? ‘회백 새장’을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꽤 있잖아요?"

"... 그것들은 ‘아까운 것’을 넘어서 다른 새장에 넘어갈 경우, ‘전쟁’ 그 이상의 혼동을 일으킬 것들이지..."

"그러니까 날개치고는 과분하다 이 말이죠?"

"변화에도 순서란 것이 있다. 무턱 된 변화는 희생이 아닌, 소멸만을 부를 뿐... 흉터를 불러 소거법으로 지우는 게 좋겠어."

"... 흉터까지 부른다고요? 뭔가 다른 대책은 없는 건가요?"

"암-바야드까지 회백 새장의 정체를 알아챈 이상,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겠지."



박사의 하얀 가면이 새하얀 구름처럼 잔잔하게 울란드를 지나쳐,


저기 멀리 떠 있던 ‘회백 새장’을 바라봤다.



"... 박사님. 박사님은 지금보다 인간적인 삶을 꿈 꾼 적 없으신거요?"



울란드는 박사의 구름과 비슷한 하얀 가면을 바라보다가,


넓은 하늘을 지나쳐, 부유선 난간에 몸을 기댄 뒤,


안주머니에서 네모난 모양의 시가통을 꺼내 들고는 그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인간처럼 보이나?"



회백 새장을 바라보던 박사의 기이한 하얀색이,


그 뜻을 발하며 울란드를 향해 되물었다.



"...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박사님의 ‘본인’도 이곳으로 나온 마당에, 조금씩 쉬면서 친한 사람이라던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란 걸 말한 겁니다."



울란드는 시가통에서 시가 한 개비를 꺼내,


날카로운 손톱으로 시가의 머리 부분을 깔끔하게 절단했다.



"뭐...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요... 그 무수한 분신들이 쉴새 없이 일하는데도, 텔레우스와 류안이 그 지경에 이른 건 결국 박사님이 너무 부지런해서 아닐까요?"



라이터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울란드가 문 시가에서 타올라,


빗물을 잔뜩 머금은 구름처럼 회백 새장으로 날아들었다.



"공주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참 슬퍼하실거요. 어쨌거나 공주님은 박사님을 무척 생각하는데 말이죠."

"..."



박사는 울란드의 길쭉한 주둥이에서 뿜어지는 회색 연기를 따라,


‘회백 새장’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청명한 하늘 속으로 두둥실 떠 있던 회백 새장은,


박사의 가면에 비추어지면서 하얀 구름처럼 빛났다.



"나는 그녀와 약속했으니까..."



‘나’는 갑판 위로 올라와, 하얀 가면을 쓴 내 몸과 울란드를 향해 말했다.



"... 좀 더 확실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하지만, 그녀가 슬퍼한다면, 이곳에서 서막을 울리는 것도 좋을 거 같아..."



긴 언약이 있었다.


맹세와 각오로 다져져, 마주한 현실로 빚어진 언약.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분열로 이루어진 맹세.


‘태초의 새장’이 용사로 인해 첫 번째 분열 이후,


공주님은 여전히 분열된 새장에 미련을 품고 있었고,


‘태초의 새장’이 나로 인해 두 번째 분열 이후,


그 속에서 이루어진 공주와 나와의 약속은,


실수에 대한 만담과 그녀의 미소만을 간직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라프에 대한 그리운 추억을...


길고 긴 언약을.



----------



입술로부터 시작돼, 턱을 넘어, 목 밑까지 길쭉하게 이어진 흉터.


그것을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 본 사람은 결코 잊지 못한다는 그의 흉터는,


단순히 ‘흉터’ 때문에 그가 흉터로 불린 건 아니다.



"안녕?"



이질적인 것.


세상의 모든 상처를 짊어지고 태어난, 업보 그 자체가 형상화되어 걸어 다니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감정이라고,


구태연은 흉터라고 불리우는 남자의 인사에,


얼굴에서 떠오르려고 하던 두려움이란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일정대로 ‘회백 새장’으로 향할 거야. 거기서 용사라는 자와 대화를 나눠보려고."



목 밑으로 이어진 흉터가, 구태연을 향하여 길게 그어졌다.


구태연은 그의 흉 진 명령에, 부유기구 조종간을 떨리는 손으로 잡았다.



"대... 대장. 오늘은... 또 누굴 죽이러 가는 건가요?"



무섭다. 두렵다.


항상 이 남자가 가는 길에는 무수한 시체가 쌓여 있었으니까.


전쟁이란 명분으로 죽인 사람들의 시체.


그래... 흉터에게 있어 전쟁이란 그저 명분일 뿐이었다.


그는 학살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악마였으니.



"이번에는 ‘순수한 대화’만이 목적이야. 딱히 누굴 죽일 생각으로 가는 건 아니니, 안심해."

"엇... 아... 아니, 전 뭐... 그런 게 아니라..."



구태연은 자신을 보며 마치 다 안다는 듯 무감각하게 지나치는 그의 말투에,


식은땀을 쏟아내며 목소리를 떨었다.



"난 괜찮으니 운전에 집중하자."

"네... 넵"



괴물 자식.


이놈은 인간의 감정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아는 데, 모른 척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다니...



"그... 그나저나. 순수한 대화가 목적이시라면, 굳이 만나서 말고 통화로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구태연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용기를 쥐어짜 그에게 물었다.



"인간의 마음은 물과 비슷해. 경사에 따라 물에 흐름이 변하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처한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지."



흉터는 구태연 뒤에 놓여 있던, 허름한 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 흐름은 직접 보고 느끼지 않는 이상, 완벽히 파악하기 힘들어. 그래서 나는 굳이 용사를 만나러 가는 거지."



허름한 나무 의자에 앉은 흉터는 팔에 끼고 있던 책을 펼쳐, 눈앞에 가져다 댔다.



"그... 그렇군요."



이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우리를 내려다보듯이 말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흉터의 용병집단에 들어왔을까?


구태연은 앞으로 하루 정도면 도착할,


‘회백 새장’이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새장의 미래에,


불길한 미래를 되새겨 보았다.



----------



회백 새장.


천사가 떠오른 그곳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기도하는 사람.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는 사람.


아무 생각 없는 사람.


사람들은, 그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 사이를 지나쳐, 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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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0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4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4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6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3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7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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