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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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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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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857

작성
23.03.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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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 16. 일상

DUMMY

끼이익- 철컥.



투박하고도 구수한 술집 특유의 냄새,


누군가가 인생을 토악질해 깃든 세월의 잔향이,


요란하게 닫히던 술집 현관문에서부터, 내게로 확- 풍겨왔다.


아직 낮이라 자리에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 흔적만이 남아도는 적막한 이곳은,


이미 귀신이라도 들린 듯 늘어짐을 머금고 있어,


나는 이 늘어짐을 삐걱거리게 밟으며 술집 13번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당신이... 텔레우스가 보낸 가드너?"



13번 테이블에 앉아 있던, 푸른 빛 머리칼의 한 여인.


그녀는 칙칙한 술집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빛을 머금고,


새벽 별과도 비슷한 눈동자를 스마트폰에 비춘 채,


소파 같은 의자에 몸을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음...? 설마 네가 박사의 전령?"



그녀는 내가 말을 걸자, 새벽 별이 밤에 눈동자로 반짝이면서,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두며, 늘어트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맞아."

"... 생각보다 아직 어린애인데..."



그녀는 내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다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찰칵- 나를 향해 사진 찍었다.



"실례~ 일단 텔레우스에게 만났다는 증거를 보내야 해서... 뭐, 아무튼 내 이름은 케이나 유라. 그냥 유라라고 부르면 되고... 다른 일행들은?"



그녀는 슬쩍 의자에서 고개를 빼내, 술집 출입구 쪽을 바라봤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

"그래...? 그럼 이런 칙칙한 곳에 있지 말고 어서 밖으로 나가자."



유라는 신난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와 어울리는 환한 빛이 둘러싸인 술집 현관문으로 향했다.


나는 너무 생동감 넘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뒤따라...



"엇! 늑... 늑대?"



가기도 전, 밖에서 들리는 유라의 깜짝 놀라는 목소리?


나는 빛을 향해 인상을 조금 구기면서 밖으로 나갔다.



"늑... 늑대?"



유라는 울란드를 맞닥뜨린 채로 깜짝 놀라고 있다가,


술집에서 내가 나오자, 나를 향해 자욱한 파란색 별빛 눈동자를 다급히 돌렸다.



"이 수인이 일행이야?"



별똥별처럼 그녀의 인상이 조급하게 빛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늑대 수인은 울란드. 그리고 옆에 있는 아이는 아르라고 해."



이 회백 새장에는 수인들이 제법 있을 텐데...


하긴, 울란드는 다른 늑대 수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덩치가 상당히 컸으니까.,


어떻게 보면 마피아 보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기에,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아르...?"



유라는 나를 향하고 있던 눈을 슬그머니 내려, 울란드 옆에 있던 아르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오! 또 귀여운 꼬맹이야!"

"훗~ 재미있으신 분이네요."



유라는 울란드를 보면 언제 놀랬냐는 듯이,


분위기가 또 화사하게 변하면서,


아르의 키 높이에 맞추어 몸을 굽힌 뒤, 눈을 빛냈다.



"... 이 사람이 정말 텔레우스가 보낸 정령이요? 제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군요."



울란드가 나름대로 절제해서 말하긴 했지만,


이 여자, 누군가를 안내하거나 대접하는 정령으론 매우 부적절해 보였다.


화사함에 푸른빛을 머금고 있는 그녀의 생기는,


마치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은 듯 무분별할 정도로 빛내고 있어,


나는 울란드를 바라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약속대로 우리에게 이 새장을 소개해줘. 그러면, 내가 저 천사를 처리해주고, 이 새장을 특정 조건 내에서 독립시켜줄게."



텔레우스와의 교섭.


이 교섭은 내가 처음 제안했다.


그가 내게 이 ‘회백 새장’을 관람시켜준다면,


나는 앞으로 있을 ‘태초의 새장’ 강림에, 이 회백 새장은 포함하지 않을뿐더러,


하늘에 떠 있는 천사도 없애 준다는, 나는 나름의 파격적인 조건을 텔레우스에게 내세웠다.


텔레우스는 처음엔 이 제안을 거절했다가,


약 5분 후 다시 연락이 와, 조건을 수락했다.


그가 5분 동안 무슨 심정 변화를 겪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수락했기에 나는 흉터에 의한 소거는 뒤로 미루고, ‘나’를 보낸 것이다.



"뭐... 텔레우스에게 듣긴 했는데... 천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아직 왜 우리 새장의 독립을 당신에게 허락 맡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거든..."



유라의 별빛이 나를 푸르게 물들이며, 의문을 뱉어냈다.



"건방진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난 이 세계를 관리하고 있어. 그렇게 시스템을 짜두었으니까."

“... 시스템?”



유라는 내 말을 듣고는 뭘 모르겠단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옆에 있던 울란드를 슬쩍 쳐다봤다.



"설, 설마... 뒷세계의 주인 같은 거...?"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나는 하늘에서 지그시 내려다보는 천사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인제 그만 출발해야 않을까...?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기 전에."



어쩌다 보니 인사가 길어져 대화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역시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저 천사를 보니,


저건 여태까지와 ‘다른 천사’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절인 듯한 영혼의 그릇 속에, 간신히 의식을 유지한 순수함.


검은 가면... 그 녀석은 나와 비슷한 걸 만들기 위해, 저런 괴물을 탄생시킨 건가?


어쨌거나 신경 쓰이는 녀석이었다.



"... 나중에 다시 물어보지 뭐..."



유라는 아쉬움을 푸른 화사함에 묻으면서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어,


사람들로 얽힌 거리를 가리켰다.



"일단 시내로 나가자! 거기엔 맛집이 많으니까."



위풍당당 걸음으로 앞장 서가는 유라.


대장부 같은 그녀의 푸른빛이 하늘에 떠 있는 천사의 하얀 빛을 뒤덮어,


아르는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유라를 뒤따랐고,


울란드와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서로를 향해 고개 돌렸다.



"텔레우스가 무슨 함정이라도 파두었을 수 있으니, 그때는 아르를 챙겨 도망치도록 하죠."



울란드는 유라와 조금 거리가 멀어지자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용사를 마주쳐도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박사님이라면, 그 괴물 같은 놈이라도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지 않나요?"

"용사가 마음먹고 너희를 노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 그 정도라는 거군요. 알겠수다..."



나와 울란드도 아르를 이어, 유라를 뒤따랐다.



----------



하나의 모니터만 지펴진 검은 공간.


그곳에서 칙칙한 어둠마저도 집어삼킬 것 같은 검은 가면이,


모니터 너머 늑대 수인과 함께 걷고 있던 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 박사님은 이 ‘회백 새장’의 존재마저 알고 있었군요... 역시~ 박사님이세요. 항상 저보다 앞서 계시잖아요. 정말 빈틈이 없으신 분이지 않나요?"



검은 가면은 기쁜 듯, 어둠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가볍게 박수를 두어 번 쳤다.



"아리야도, 박사님처럼 정말인지 아름답답니다. 박사님은 모든 게 시작된 저 새장 속에서, 마치 감정 없는 사람처럼 이성을 유지하고 있죠. 아리야라도 박사님처럼 과연 어떤 의지를 지닌 것인지, 천사들 사이에서 괴로움을 유지하며 의지를 지니고 있으니 마음 같아선 곧바로 불러들여 대화를 나눠보고 싶지만..."



검은 가면은 모니터의 회색빛을 등지면서,


무성한 초록색 수풀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실험관을 바라봤다.



"마지막 테스트만을 남겨둔 시점에서 그럴 순 없죠."



온전한 칠흑을 유지한 그의 검은색은,


곧이어 모니터의 회색빛마저도 앗아가면서,


작은 실험관 속 뇌를 가만히 바라봤다.



----------



"흠흠~ 역시 여행하면 먹는 것! 뭐... 나는 이 새장 밖을 벗어난 적 없지만, 우리 새장은 지역마다 음식들의 특징이 다르니까~"



유라는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콧노래로 이 시내 거리를 걸으면서,


반은 혼잣말, 반은 우리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지금 있는 이 지역은 라티구에서 세 번째 외곽지역이야. 외곽지역은 노동자가 주로 상주하는 곳이라 간단하게 요기를 때울 수 있는 식당이나, 회식할 수 있는 대형 음식점이 발달해 있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음식들이 아주 가성비가 좋아."



유라의 말대로,


회백 새장은 크게 4개의 구역 (라티, 티푼, 푼디움, 티움)으로 나누어져 공작 계급의 영주가 통치하고 있었다.


이중 ‘라티 구역’은 다른 3개의 구역과 다르게, 중앙에 있는 중심가를 기준으로 총 3개의 둥근 장벽이 중심가를 겹겹이 감싸,


중심가는 중심가, 그리고 한 개의 장벽을 통과하면 첫 번째 외곽지역, 또 한 개의 장벽을 통과하면 두 번째 외곽지역, 마지막 장벽을 통과하면 세 번째 외곽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회백 새장은 각각의 구역(라티, 티푼, 푼디움, 티움)마다 전부 다른 구조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구역마다 상주하는 종족 인들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났다.



"여기! 이 음식점이 티브이에도 나온 갈비탕집이야! 여기서 간단하게 늦은 점심이나 먹자고!"



유라는 맛나갈비탕이라고 간판이 걸린, 한 허름한 갈비탕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냅다 들어갔다.



"갈비탕이라... 원래 우리 세계에 없던 음식이었죠?"

"그래.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자들이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들어 이 새장에 정착한 음식이야. 처음 이 새장에 넘어왔을 당시, ‘저편의 음식’이라고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 이세계인들이 꽤 쏠쏠히 돈을 벌었다고 문헌에 기록돼 있지."



갈비탕처럼 먹는 것뿐만이 아니다.


입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이런 소소한 문화는 빠르게 이 회백 새장,


당시에는 신수가 통치하던 이 회백 새장 구역에 퍼져 갔다.


그도 당연하게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한 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니,


호기심이라도 사람들은 한 번씩 찾아보기 시작해 그런 것이었다.



"뭐... 한 번 맛이나 보죠. 그러고 보니, 이세계인들은 많이 만나봤지만, 그들이 먹는 음식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군요."

"저도 먹어보고 싶긴한데... 박사님은 음식을 못 드시지 않나요...?"



아르가 내 앞으로 다가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아르의 짙은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빛의 천사를 올려보았다.



"너희들은 들어가서 먹고 와. 나는 저 천사를 보고 있을게."

"그렇다고 하시니 괜찮겠지. 어서 들어와라, 아르."

"그럼... 먹고 올게요."



아르는 내게 방긋 미소지은 뒤, 울란드를 따라서 가게로 들어갔다.


나는 저 죄악이 많은 천사를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실베스타와 서진수. 이 둘은 자아를 잃고 저 천사처럼 변해 사람을 공격했다.


모두 신수로 변한 부작용 같은 것인가?


본래 신수는 공주님이 천사의 육체를 빚어 만든 존재들이니,


이론상 높은 계급의 천사라면 신수를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높은 계급의 천사는 아직 그 정체를 보인 적이 없었고,


그저 ‘천사의 기술력’이 발굴된 유적에서 그 형태만을 흐릿하게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 그렇다면, 설마 저 천사가 그것인가?'



꽤 높이 하늘에 떠 있어 보통의 사람이라면 형태를 뚜렷하게 볼 수 없지만,


나의 몸은 보통의 것과 달랐기에, 천사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얼굴에 작은 날개들이 돋아나 있었고,


날개도 다른 천사와 달리 여러 쌍이 붙어 있었다.


하늘에 미련을 품은 작은 새처럼, 그것은 수많은 날개를 지니고 있었지만,


땅에 미련을 남긴 사람처럼, 그것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자신의 날개에 잠식된 저 천사를 올려다보며,


곧바로 내게 떨어지는 혜성과도 같은 사람을, 한 발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이 새끼... 텔레우스가 허락했다고, 기어코 우리 왕국에 발을 들였군. 큭큭"



용사. 그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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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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