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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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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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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2.10.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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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 18. 운명

DUMMY

"... 그런..."

"생각해봐. ‘누군가’가 옆에서 감시하고 있지도 않은데, 내가 왜 우리 동료를 죽인 사이비 신도의 말을 들어줘야 하지?"

"... 그, 그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도는 당황한 듯 목소리를 갈팡질팡 못하며 더듬다가,


뒤집어쓰고 있던 금박 무늬의 후드를 뒤로 넘겨 그 모습을 미카엘에게 보였다.



"죄... 죄송하지만, 당신은 이 엘리베이터에서 ‘제대로’ 대답하기 전까지 탈출선으로는 가지 못할 겁니다..."



후드 속에서 얼굴을 내민,


미카엘이 순간 어여쁜 여성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고운 피부와 이목구비를 지닌 소년.


소년은 미카엘을 향해서 날카롭지만, 쌍꺼풀 잦은 눈을 부릅뜬 뒤,


엘리베이터 천장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텅!


그러자 엘리베이터가 소년의 시선에 경직이라도 된 것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멈췄다.



'목소리에 걸맞은 어여쁜 소년... 이지만, ‘천사의 기술력’을 지니고 있네? 흠... 그래도, 생각과는 다르게 아직 너무 꼬마인 것 같은데...'



왜 이런 미소년이 정태연 곁을 보좌하고 있는 건지, 미카엘은 의구심이 들었다.


제아무리 천사의 기술력을 쓸 수 있다 한들, 이 미소년의 전투력은 자신보다 한참 낮았다.


그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훈련을 쌓아온 ‘경험’에서 느낀 확신으로,


승천자들의 교주인 정태연 옆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설마, 승천자들은 정태연과 천사 그리고 몇 명의 괴물 외에는 전부 이 정도... 이지는 않겠지. 얻은 정보에 따르면, ‘맹세한 자’ 정돈되어야 상대할 수 있는 신도들도 있다 했으니...'



정태연은 ‘일부로’ 자신이 경계를 덜 할만한 인물을 선출해서 보낸 걸 것이다.


아니면... 소년의 ‘천사의 기술력’이 자신에게 카운터가 될만한 것이거나 말이다.



'뭐... 인제와 고민해 봤자 이미 지나간 일이니, 좀 더 집중해야겠어.'



미카엘은 지금, 이 소년이 내비친 눈빛 속 광기에 녹아 있는 ‘어색한 분노’를 바라봤다.


어색한 분노는 자신을 품평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갈색빛을 띄우는 동시에,


각오하지 못한 꼬마가 날개를 살랑거리는 ‘하는 척’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이 소년은 다른 광신도와 확실히 다르니까... 잘하면 넘어올 것 같네.'



승천자에 속한 광신도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잘못된 것에도 맹목적으로 따르는, 지금 이렇게 도발한 것에 대해 분노하지도 않는, ‘그릇된 믿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소년의 믿음은 ‘그릇된 것’이라긴보단, 어딘가 은혜를 입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발악하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멈추면 내가 네 교주의 부탁도 들어주지 못하는데 말이지."



미카엘은 차가운 눈길로 소년을 어루만졌다.



"... 제가 어떻게 해야 ‘교주님의 부탁을 들어주실 거죠...?"

"으음~"



역시... 이 소년은 다른 광신도들과는 다르게,


종교보다는 ‘정태연 교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라고,


미카엘은 소년의 대답을 듣고서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 이 소년이 정태연 옆을 보좌하고 있는 것도,


다른 광신도를 두고 왜 이 소년이 자신을 데리고 왔는지도 이해가 됐다.



"네가 우리 ‘부유 기구’에 따라와 준다면 생각해볼 수도 있는 데 말이야."

"네? 그게 무슨..."



미카엘의 대답을 들은 소년의 깊은 믿음이,


미카엘에게 영문을 모르겠다며 의문을 품은 채 말했다.



"넌 정태연이 내게 말했던 것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 아마, 전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야기하기 쉽겠어. 정태연이 왜 너를 내게 붙어 줬을 것 같아?"

"설마... 아니, 그런 거라면, 정태연 교주님께서 제게 직접 명령하셨겠죠."

"다른 신도들은 전부 자살기도나 하는 마당에... 그것도 정태연의 명령 같은 거였나?"

"그건 아니지만..."

"그럼 결정이나 해. 나를 따라올지, 아니면 ‘불안’ 속에서 ‘너’ 또한 정태연과 함께 이곳에서 죽을지."



미카엘의 말을 들은 소년의 믿음은,


엘리베이터의 차디찬 바닥을 향해 말없이 흔들리다가,



"... 천사는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간다. 하지만, 왜인지 너만큼은 살리고 싶다... 교주님께서 저를 구해주시며 하신 말씀이었죠..."



윙---


미카엘이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다시금 작동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따라가지요."



다시금 묘한 진동이, 전보다 가까워진 미카엘과 소년 사이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정태연은 두 마리의 괴물과 함께,


빨갛게 물든 기나긴 복도를 타고 박사 앞으로 걸어갔다.



"박사님께서 제게 ‘천사의 기술력’을 알려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다시 뵙게... 라프...?"



박사의 커다란 몸 뒤에서 슬그머니 얼굴을 보이는 한 마리의 소녀, 라프.


정태연은 라프를 보자 말을 하다말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 너... 넌 꿈속에 나왔던 소년...? 라프"



라프는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두 팔로 땅을 짚으며,


정태연에게 얼굴을 뻗어 코를 킁킁댔다.



"이, 이상... 냄새가 났는데... 너, 너도 아닌 것 같다. 라프..."



한 포기의 진실,


아름답고도 소중한 가짜 추억에 새겨진 진실 된 아름다움.


그것이 미카엘의 얼어붙은 몸을 바닥에 흩트리니,


정태연의 두 눈에서 새하얗고 투명한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졌다.



"... 박사님은 정말 잔인하시군요. 제 숙명을 정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라프에게 제 최후를 보여줄 생각인 건가요?"

"최후라... 암-바야드에게서 받은 그 약물을 투약한 지 얼마나 지났지?"



박사는 하얀 가면을 까닥- 옆으로 틀었다.



"설마, 이 모든 것을 암-바야드 탓으로 돌리려는 건 아니겠죠?"

"당연하지."

"그럼 왜..."

"그거 아나? 네게 이식된 건, ‘소년의 기억’ 전부였다."

"그게... 뭐가 중요하나요? 어쨌거나 저는 조작된 인생일 뿐인데."



정태연의 투명한 눈물이 검게 칠해지면서, 박사를 향해 분노했다.



"소년은 공주를 새장 밖으로 나가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걸 받칠 수 있다 했지. 하지만, 넌 그 기억을 결국 잊은 모양이로군. 암-바야드의 약물로 말이야."



정태연에게 코를 킁킁대던 라프는 박사의 몸을 타고 ‘하얀 가면’ 위로 올라갔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말 그대로다. 천사는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간다고, 내가 네게 말한 적 있었지. 이 신화 같은 어구는, 전설 속 부정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의 끝에서 시작됐다."



하얀 가면은 두어 발, 정태연에게 다가갔다.


정태연은 하얀 가면이 다가오자 겁먹은 아이처럼,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넌 잊은 모양이로군. 넌 확실히 그때 그 소년의 영혼이 맞는데 말이야."

"... 거짓말! 난 복제된..."

"뇌 속에 각인된 기억. 그래, 그것은 관점에 따라 복제된 거로 생각해도 되겠어.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하지만, 네 지금의 행동을 보아하니, 그런 건 같지 않군."



박사는 정태연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내가 보기에 너는 소년의 ‘잘못된 선택’으로 빚어진 결과물.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것도, 사람들을 의미도 없이 학살하는 것도, 신도들을 더욱 광폭하게 만든 것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 결과물. 물론, 암-바야드가 그걸 거들긴 했다만... 안타깝군."



정태연 양옆에 서 있던 ‘머리 대신 할로’가 떠 있는 두 마리의 괴물이,


박사의 지령을 받은 것처럼, 정태연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하하하. 그래, 그런거군요. 결국, 제 마지막 운명도, 소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라니..."



정태연은 품속에서 손바닥 크기의 책 한 권을 꺼내, 바닥에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애초 숙명 따윈 없었다. 넌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으면, 내게 말했으면 됐어. 만약 그랬으면..."



박사의 뒤로, 걸어 나오는 또 한 명의 아이.


정태연은 그 아이를 보자 빨간 머리칼이 찰랑거릴 정도로,


뒤로 움찔 물러나며 몸을 떨었다.



"넌 아르... 하하하... 이런..."



텅!


그대로 터져버리는 정태연의 머리는,


새빨간 이 복도에 깊은 잔상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



하늘에 떠 있는 승천자의 부유 기구에서,


삐- 이익 하는 확성기 소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해,


구름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아아... 교주님께서 날아오르셨습니다!"



확성기의 귀를 찢을 것 같은 음정은 곧 한 사람의 목소리를 변모하여,


그득한 자신감을 나타내니.



"드디어 그분이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신도 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희도 사명을 다했으니 이만..."



쿵!


승천자의 자신감 넘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폭음이 승천자의 부유 기구에서 퍼져 나와 ‘서릿바람 새장’과 ‘박사의 부유선’을 뒤흔들었다.


쿵! 쿵!


폭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쿵! 쿵! 쿵!


새장과 부유선과 푸르고 환한 이 하늘에 검은 눈물을 흩날리며 가파르게 사무치자,


새장을 포위하던 천사들은 날개를 펄럭거려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승천자의 부유 기구는 땅으로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와 씨..."



떨어지는 거대한 새.


그것은 다름 아닌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하늘의 그림자.


그것은 길게도- 이어지면서,


닿을 듯 말 듯 한 전율로 창가 속 서진수를 향해 곧장 뻗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서진수는 마음 같아선 추락하는 승천자의 거대한 부유 기구를


부유선 갑판으로 나가 지켜보고 싶었지만,


호야가 복도를 지키고 서 있었기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나더러 이 세상에 대한 건, 그저 신경 쓰지 말란 듯이 말해놓고는...'



서진수는 전보다 작아진 두 날개를 펄럭거렸다.



'이러면... 알고 싶잖아?'



이번 일은 천사와 관련 있다.


지금 날아가는 천사의 무리를 보니, 확실했다.


하지만 박사님은 ‘우리 세상’에선 천사를 그저 생체 병기라고만 알고 있으면 된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지금 이 모든 것들이 천사 때문인데...


어딘가 ‘진실’을 감추는 것 같은 이 기분.


서진수는 마치 새장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한 기분이 들었기에,


몰래 방문을 열어 얼굴을 내밀었다.



'호야가... 없네?'



조금 전까지 호야가 팔짱을 낀 채 부유선 갑판으로 가는 계단을 가로 막고 서 있었는데...


그 사이에 어디로 갔지?


서진수는 신수가 감각이 무척 예민한 것을 고려하면서, 아주 천천히 복도로 발을 내밀었다.



'... 근처에 없는 건가?'



조용하다.


승천자의 부유 기구에서 울려 퍼지는 폭음이 모든 것을 뒤덮어,


조용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활기차고도 평화로운 이 음색은 죽어가는 승천자의 부유 기구를 위로하듯,


박사의 부유선 안을 단조로운 음색으로 물들이고 있어, 서진수는 어딘지 조용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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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5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4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0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4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4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6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7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3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7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4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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