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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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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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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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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501,857

작성
23.04.0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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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 18. 일상

DUMMY

"괴로워하는 자라..."



새장 속은 그늘져, 평화롭다.


사람들은 그것이 한 편의 낙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귀 기울이면,


챙그랑!


어디선가 유리 깨지는 소리는 일상이었다.



"이년이 유리나 깨 먹고..."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소녀의 따귀를 때렸다.


따귀를 맞은 소녀는 날도 춥지 않은데,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모자까지 눌러쓰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온 거 취업시켜줬더니만, 접시나 깨 먹고 말이야..."



찰싹! 남자는 소녀의 따귀를 한 대 더 때렸다.


무감각하게 당연하다는 듯 소녀의 뺨에서 거친 폭력이,


사람들의 무심함을 타고, 이 거리에 차올랐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죄송하면 다야? 내가 평판까지 떨어뜨리면서 타지역 새끼를 받아줬으면, 일을 실수 없이 처리해야지? 어? 이렇게 은혜를 갚는 거야?"

"죄송합니다...."

"어휴... 이 새끼..."



찰싹!


소녀의 뺨에서 매서운 바람이 또 한 번 휘몰아쳤다.



"깨진 거 주워서,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려. 오늘은 운 좋은 줄 알아? 가게에 손님들이 많아서 이쯤하고 넘어가는 거니."



남자는 가게로 들어가 버렸다.


소녀는 남자가 들어가자, 코를 훌쩍이면서 깨진 유리 조각을 맨손으로 주워 모았다.


나는 그 장면을 잠시 자리에 서서 바라봤다.



"... 저런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걸 보니 역시 박사님이 맞는 것 같군요."



어느 틈에 내게 다가온 울란드가 나와 나란히 서서,


바닥에서 유리 조각을 줍는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장면을 보면 박사님이 저를 구해줬을 때가 기억나네요... 당시에 박사님이 저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전 그 새장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을 거요."



거대한 주둥이로 포악스러운 말을 내뱉는 울란드.



"뭐... 제가 겪었던 건 인종 간, 새장 간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거였지만, 여기는 좀 다른 것 같네요."



나는 왜인지, 옛날처럼 주둥이가 짧아지는 것 같은, 울란드의 얼굴을 바라봤다.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는, 비를 맞은 털이 축 내려앉아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짧은 단도가 쥐어져, 나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 회백 새장에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구들을 장로들이 통제하면서, 외부로부터 얻어오는 자원들을 전부 철저히 관리하고 있으니까..."



나는 울란드의 옛날 모습을, 잠시 뒤로 미뤘다.



"거기에서 얻어지는 부는 장로들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뿌려질뿐더러, 다양한 종족인의 ‘어쩔 수 없는 생리적 거리감’과 ‘가드너들의 영웅화’는, 이런 고립의 문제점을 고착화하는 데 일조했지."

"그... 그렇군요..."



울란드는 ‘박사’의 길고도 어려운 말에,


목에 나 있던 덥수룩한 털을 손톱으로 긁적이면서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이 굳어지면, 결국 구멍이 생겨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지 않을까요?"

"장로들이 가드너들에게 특히나 ‘천사의 기술력’을 찾아오라고 한 건, 이러한 문제점을 대비하기 위해서야."



하늘에 떠 있던 천사의 매서운 빛이, 박사의 얼굴에 하얀 가면을 씌웠다.


마치, ‘박사’가 내가 아닌 것처럼 변한 이 기분.


나는 습관적으로 가면이 쓰이지 않은 이 부드러운 얼굴을, 몇 번 긁적였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저 천사는 무감각하게, 웃고 있어. 거기서 따스함을 느끼는 건 그저, 현재에 안주할 수 있는 가진 자들 뿐이겠지..."



권력의 고착화는, 천사의 기술력에 의해 재탄생했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나름의 권리를 시위할 수 있는 여지조차 앗아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덧없는 빛은, 과거의 나한테 말했었다.


‘너라도 이 천사의 힘으로 사람들을 구해줘라.’


분열되고 있는 태초의 새장을 방문했을 때 들었었던 그의 말.


그가 내게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무슨 의도로 말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면 새장 속 근본적인 문제점인 지역 간의 차별을 없애는 건..."

"불만을 덮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당장 살아가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문제라면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이지... 결국, 이 회백 새장은 장로들의 손아귀 속 장난감일 뿐이라는 말이야."

"이러나저러나 새장은 새장일 뿐이군요..."



울란드는 유리 조각을 바닥에서 주워 모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소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양손 가득 유리를 들고는 안절부절못하면서 쓰레기통을 찾다가 그만, 휘릭-


이런 어디선가 불어닥친 강한 바람에, 스카프가 풀어지며 꾹 눌러 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졌다.



"... 음? 잠시만... 저 종족은...?"



울란드가 바람에 스카프와 모자가 날아 가버려 화들짝 놀래 하는 그녀의 모습을, 신기한 듯이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지느러미처럼 팔랑이는 귀, 턱선에 드문드문 올라온 반짝이는 비늘과 목에 그어진 갸름한 아가미,


내가 보기엔, 그녀는 다른 새장에서 존재 자체를 의심받을 정도로 매우 희귀하다던, 심해족처럼 보였다.



"심해족 같은데... 맞나요?"



울란드는 나를 보며, 말했다.



"반짝이는 비늘을 보아하니, 심해족이 맞을 거야."



심해족, 수(水)인들은 얼마 있지 않은 종족인들 중에서도, 가장 베일에 가려진 종족이었다.


그들은 보통 바다에 붙어 있는 새장이나, 물이 가득 담겨 있는 새장에서 살았기에,


인구수나 문화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수(水)인들마저 경계심이 아주 강해,


여태까지 그들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나’들은 종합된 기억으로 이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눈에 띄는 거로 유추하기에는 어인족이 새장 불문하며 8개의 새장 중 한 군대에서 가끔 보였고,


바닷물이나, 민물이나 어떤 종류의 물이 절반 정도 차 있는 새장에선 인어족, 인족, 어인족들을 찾으려면 그래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심해족들은 오래 산 나마저도, 오늘을 포함해 직접 눈으로 보는 건 2번밖에 되지 않았다.



"?!"



소녀는 쥐고 있던 유리 조각을 땅에 떨어뜨리면서,


다급히 날아가는 모자와 스카프를 주워 들려고 할 때,


다시 밖으로 나오는 식당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까지 밖에... 엇! 그... 비늘은..."



소녀는 식당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스카프로 목을 두르면서 어디론가 뛰어갔다.



"... 심해족도 이 회잭 새장에서 살고 있었다니... 정말 다양한 종족인들이 거주하는 새장이로군요."

"시간만 있다면, 심해족인과 대화를 나눠볼 텐데 말이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푸른 하늘 위에 떠 있는 천사의 하얀 빛.


그 밑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두 개의 그림자는,


아르와 유라가 되어, 두 손 가득 먹을 걸 들곤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유라씨를 말릴 수가 없었어요. 하하하..."

"너희들도 동료가 있을 거 아니야? 함께 나눠 먹으라고! 그런 의미에서 나도 좀 나눠주고..."



유라는 신나하며 두 손 가득 들고 있던 봉투 사이로 삐져나온 닭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르는 그런 유라의 모습을 다소곳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저... 유라씨 덕분에 이번 달 용돈..."

"에이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하하하..."



결국,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



"그래서 박사새끼는 언제 천사를 없애준 다냐?"



두 여성이 잠든 침대에서 내려온 용사는 바지를 주섬주섬 입으면서 목을 좌우로 까닥거렸다.



"계약은 이틀이었으니, 아직 하루가 남았죠."



텔레우스는 창가의 깊은 밤하늘에서, 하얀 점처럼 빛나는 천사를 향해 말했다.



"그러냐?"



창백한 피부에 상처나 점하나 없는 근육질의 몸 위로. 용사는 옷을 걸치면서 씨-잇 웃었다.



"네놈은 천사를 어떻게 생각하지?"

"... 그저 걸림돌로밖엔 보이지 않네요. 앞으로 할 것들이 많은데, 박사가 이 새장에 들어올 수 있는 빌미나 제공해주는 걸림돌이요."



텔레우스는 감은 듯한 눈매가 일그러지면서, 용사를 향해 고개 돌렸다.



"그래, 녀석들은 감히 날 선택하지 않은 눈이 옹기 구멍만 한 녀석들이지."



용사의 웃음이 텔레우스에게 곧장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천사들이 새장을 습격했다고 했지? 그 배후엔 암-바야드라는 자가 있고?"

"네.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암-바야드를 조사하려고 보낸 인원들이 ‘천사의 날개’가 달린 무언가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칙칙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용사의 모습에,


텔레우스는 곤란하다는 듯 일자로 그어진 눈을 찌푸리면서,



"혹시 그 이야기는 스텔로웬에게 들으신 건가요~?"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다.



"맞아. 로웬은 너와 다르게 숨기는 것들이 없더군."

"그래서, 제가 어떤 걸 해주면 되죠?"

"암-바야드, 그 녀석의 위치를 찾아내."

"... 암-바야드의 위치를 찾아내기엔 ‘새장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인원’들의 상당수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지금 당장은..."

"내 말귀를 못 알아들었냐?"



용사의 그을린 미소가 텔레우스의 등줄기를 타고 소름 끼치게 흘러내렸다.



"망할 인력이 없으면, 장로들이 날 죽이려고 만든 그 인형들을 쓰면 되잖아? 안 그래?"



압박감.


텔레우스는 대기에 가득 차오르는 무언가의 압박감에, 감은 눈을 슬며시 떴다.


과연 이게 용사가 내뿜는 사력이라는 건가?


마치 눈앞에 총을 겨눈 것만 같은 이 위압감.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그 자리에 얼어붙어 말조차 더듬었을 정도의,


가늠하기 힘든 악의가 자신을 향해 곧장 적의라는 이빨을 드리우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용사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야겠죠."

"아... 그리고 하는 김에 말이지. 그 인형 중 한 녀석을 박사에게 보내봐."

"네...?"

"너도 궁금하잖아? 박사가 그 모조품들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용사의 말에.


텔레우스는 이마의 눈썹을 능구렁이처럼 갸우뚱거렸다.



"... 뭐, 그렇게 해보죠..."



텔레우스는 본인도 박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매우 궁금했다.


그가 이 ‘신수의 DNA’로 만들어진 인형들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괴로워할까? 그 무감각한 표정에, 감정이 묻어 나올까?


자신을 이 새장에 버리고 떠나갈 때의 그 표정이 다시 나올까?


텔레우스는 창가 너머, 천사를 바라봤다.



----------



밤이 깊은 공원,


여러 종족인들이 하늘 위, 하얀 점을 보기 위해 시간에 늦었음에도,


이 공원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저 여자 정말 하루종일 먹어대는군..."



공원 벤치를 혼자서 몸으로 대부분을 채워 넣은 울란드는,


수레 카트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유라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는 너무 먹어서 속이 안 좋아요. 저 유라라는 분은 음식이 대체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요?"



아르는 울란드로 인해 얼마 남지 않은 벤치 속에 몸을 쏙- 가뿐히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 저것도 천사의 기술력이 아닐까 싶은데...?"

"정말요?"

"아니. 그냥 해본 말이야..."

"헤헤... 그런가요?"



울란드는 헤실거리는 아르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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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 5 - 18. 일상 23.04.08 29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2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5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7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40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5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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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2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63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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