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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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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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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3.02.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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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 - 11. 날개 달린 것들

DUMMY

"어쭈~"



용사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여자의 송곳 같은 손톱을 가볍게 옆으로 흘려넘기면서, 들고 있던 롱소드를 여자 쪽으로 쭉- 뻗었다.


지금 이 각도, 딱히 힘을 주지 않더라도 그녀는 그녀만의 가속도로 풍만한 가슴 사이에 칼날이 꽂힐 것이다. 라 생각하면, 안일함 그 자체.


자신은 그런 어리석은 것들과는 급이 다른 존재로, 용사는 칼날을 여자에게 쭉- 힘을 줘 밀어 넣었다.



"흠?"



어느 틈에 용사가 밀어 넣은 롱소드의 검날에 올라타고 있는 여자.


그녀는 표정 변함없이 용사를 내려다보다가, 이어서 용사에게 달려드는 남자와 합을 맞춰 다시금 손톱을 용사에게 뻗었다.



"건방진 새끼들..."



용사는 두 실험체가 달려드는 ‘찰나’와 같은 시간 속에서, 짤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 이 두 실험체, 자신의 기술을 모방하고 있다.


그것도 모방한 것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섞어 한 층 더 발전시켰다.


감히 실험체 주제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니...


자신의 기술들은 전부 강인한 사력과 육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페인트를 섞은 일격들.


칼을 한 번 휘두를지라도,


공격을 한 번 회피할지라도,


몸동작, 호흡, 눈동자 위치를 전부 미묘히 바꿔,


상대방이 막았다고 생각한 공격이 목을 가르는,


상대방이 베었다고 생각한 공격이 허공을 가르는,


그야말로 천재를 넘어선 괴물들만이 따라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 두 마리의 실험체들은 이런 기술들을 고유의 무기와 접목해 자신을 상대하고 있었으니,


그렇다는 말은 이 두 마리 실험체의 사력과 육체 능력이 자신을 웃돌고 있다는 것.


용사는 가볍게 미소지으면서, 다가오는 남자의 주먹과 여자의 송곳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 끝난 건가?"



새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에서 오묘한 빛이 새 나왔다.



"끝나긴 개뿔. 큭큭"



용사는 재밌다는 듯 웃어대면서, 자신의 가슴과 복부에 팔을 꽂아 놓고 있던 두 실험체와 어깨동무했다.



"오랜만에 먹을 게 생겨서 좋네~"



용사는 입을 벌려, 자신의 복부에 팔이 꽂혀 있던 남자 실험체의 머리를 크게 한 입 베물었다.


우두둑...


남자 실험체의 몸이 축- 처졌다.


우둑... 우둑...


용사는 크게 한 입 베문 실험체의 머리를 음미하듯이 씹어대다가,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목구멍을 넘겼다.



"히~ 생각보다 맛있네."

"..."



여자 실험체는 그 모습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다,


용사의 입이 다가오자 용사의 가슴에 꽂혀 있던 자신의 팔을 억지로 뜯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 이번에 천사들이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하던데... 용사, 너도 똑같군."

"이 몸과 천사 나부랭이를 비교질하다니."



용사는 복부에 꽂혀 있던 실험체들의 팔을 뽑아냈다.



"나도 어지간히 밑 보였나 보네~"



용사의 몸이 요동치면서 남자 실험체의 몸처럼 근육이 부풀어 올라, 입고 있던 상의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나도 오랜만에 진심을 좀 내볼까..."



피로 벌겋게 칠해진 입가로 씨-익 미소짓는 용사.


그의 근육은 창백하게 부풀어 올라 세상의 모든 것을 씹어 삼킬 수 있을 만큼 비대해져, 여자 실험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먹은 것을 본인의 힘으로 바꾼다라... 죄악이 많은 천사의 기술력이군."



덜컥덜컥.


‘새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 주위에 걸려 있던, 사람 크기의 새장 5개가 일제히 열렸다.



"네 저력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도 조심할 필요 없겠지."



쿵! 하는 땅 울림과 함께,


여자 실험체와 마찬가지로 타이즈한 흰색 옷을 입은 5명의 사람이,


새장에서 나와 바닥으로 착지했다.



"작은 새들아, 부디 용사의 날개를 물어뜯어 내게 가져오너라."



‘새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 위로, 원형의 고리가 떠올랐다.



----------



깊은 밤 아직도 환한 조명이 켜진 방 안에서,


김두원은 족히 4명은 누워 잘 수 있는 커다란 침대에 앉아,


메이드장이 준 책 중 가장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책 한 권을 펼쳐 들었다.



'박사, 그가 내게 ‘가짜 영혼’에 대해 알려줬다...'



고급스러운 가죽과 맞물리게 책을 펼쳐지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페이지 속 심상치 않은 첫 구절.


뭔가 이 책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김두원은, 류안이라는 이 몸의 ‘원래 주인’에 대해 나름의 각오를 다지고,


이 토막글 형태로 된 메모장 같은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박사의 말로는 영혼이 아닌 ‘만들어진 기억’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어쨌거나 영혼은 영혼, 만들어진 기억이라도 ‘유전자적 정보’와 ‘경험적 정보’를 토대로 ‘모든 정보’를 구현한다면, 그녀의 영혼은 되살아나리.'



아침에 만났던 에이미라는 아가씨와 똑같은 생긴 여인의 사진이 첫 문단 글 밑에 붙어 있었다.


역시 이 몸의 원래 주인이 그리워하던 여인은 에이미라는 아가씨였다고 김두원은 생각하며 책장을 한 장 넘겼다.



'실패했다. 아니 정확히, 절반만 성공했다. 인형에 깃든 영혼은 그녀에 대한 기억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삼자로서 그녀의 존재를 인식할 뿐, 결론적으로 그녀와 성격, 습관, 생각, 형태도 전부 달랐다. 박사의 말대로, 그녀는 그저 만들어진 기억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글과는 다른 글자인데...


김두원은 뒤늦게야 왜 글이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의문을 품었지만, 일단은 책의 내용에 집중했다.



'또 실패했다. 인형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해, 인격이 분열되었다. 인형은, 인형 고유의 성격을 지닌 건가? 그렇다는 말은 인형에다 사람의 장기를 달아 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유전자적 정보를 지닌 신체를 배양해, 조립해야겠다. 그러긴 위해선 일단 오염을 대비한 멸균 실험실을 준비해야 한다.'



멸균 실험실...? 이 저택 어딘가에 있는 건가?


저택이 좀 많이 커서 실험실 하나는 충분히 있을 법한데...


이 저택에 사람의 신체를 배양할 수 있는 그런 실험실이 존재한다니.


김두원은 뭔가 굉장히 으쓱한 저택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또 한 장 넘겼다.



'실패했다. 인형의 기억 각인 제대로 되지 않았다. 뇌세포 배양을 통한 알고리즘을... (중략)'

'실패했다. 인형의 육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신체를 배양할 때 신경세포 자극을 통한 근육량을... (중략)'



책의 내용은 이런 식으로 계속 실패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실패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점차 전문적인 내용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김두원은 이런 의학적이면서도 어딘가 판타지적인 내용에,


어쩔 수 없이 지금 당장 이해되는 내용을 찾아 빠르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열 번째 인형, 유전자적 결핍에 대한 실패...'

'스무 번째 인형, 면역력 손실에 대한 실패...'

'서른 번째 인형, 경험적 기억 손실로 인한 실패...'



어느덧, 인형에 순번까지 매겨 계속해서 이어지는 실험.


그녀에 대한 집착과 광기로 얼룩진 일기장 속 류안의 모습은, 김두원에겐 이 실험 속 전문지식만큼이나 이해되지 않는 것으로,


그의 손끝에서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이 어느덧 얕은 지식 향하며, 깊은 밤에 미련을 더하고 있을 때,



'답은 ‘사력’이다. 사력은 인간의 몸에 깃든 순수한 에너지. 이것은 사람마다 고유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니, 이 형태만 인형에 구현한다면 나는 비로소 그녀를 만날 수 있으리.'



김두원의 손이 익숙한 향기에 그만, 멈춰 섰다.



'사력...?'



김두원은 왠지 게임 속 ‘마나’라던가 ‘기’와 비슷하고 생각하면서,


‘드디어 뭔가 알아들을 법한 내용이 나와’ 이번 내용을 조심스럽게 읽어가기 시작했다.



'사력의 근본은 새장만큼이나 아직도 미지에 싸여 있지만, 그것에 ‘성질’이나 ‘패턴’만큼은 천사의 기술력으로도 구현할 수 있다. 애초 ‘천사의 기술력’이 인간이 지닌 ‘사력’에 반응하고 있다는 건, 실험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니까... 어쩌면, 그녀의 ‘영혼’은 ‘기억의 집합체’가 아닌, ‘사력’이 아닐까? 지각에 대한 자각. 스스로가 본인이라는 걸 인식하게 되는 그것... 그것이 사력 아닐까...? 아니, 아니면... 혹시 이 모든 것들은 그저 내 욕심으로 인한 망상일까?'



사력, 천사의 기술력? 역시나 이해하기 힘든 말이긴 했지만,


정리하면 이것들은 우리 세상에 없는 신기한 힘이라는 것.


류안은 이 신기한 힘에, 마지막 모든 것을 바칠 생각인 것 같았다.



'... 그녀의 형태와 사력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유전자적 기억과 경험적 기억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인형이... 그녀와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드디어 나는 그녀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절실히 믿었다...'



또 한 장 넘긴 책장은, 유독 다른 책장과 다르게 구깃구깃 짓이겨져 있었다.


김두원은 겨우 글자의 형태를 알아보며 밑으로 읽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유채꽃과 데이지가 잔뜩 핀 들판 속에 누군가가 우두커니 서 있었고, 그런 누군가에게로 달려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 박사의 말이 옳은 걸까? 그녀는 그저 만들어진 인형일 뿐이란 말인가? 신은 진정 내게 그녀를 보내주지 않는 걸까?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다시 박사를 찾아가야 하나?'



책은 이 내용을 끝으로, 뒷장에는 아무 글도 적혀 있지 않았다.


김두원은 책에서 눈을 떼,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엇!"



어느 틈에 방 안에 들어와 다소곳이 두 손을 아랫배에 포개고 있는 메이드 장.


그 모습을 본 김두원은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다 읽으셨나요?"



어딘가 분위기가 사뭇 다른 메이드장.


엄숙하게 무엇을 꾹 참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자신을 혼낼 것 같은 표정이라서,


김두원은 슬며시 책을 덮으며, 그녀를 눈치 봤다.



"그게... 실베스타는 잘... 있나요?"



김두원은 실베스타가 걱정되었다.


왜인지 자신을 끔찍할 정도로 위해주는 이 메이드 장이라면, 그 소년을 쫓아낼 것 같았으니까...



"... 새장에 비상령이 내려졌습니다. 지금 경호원들을 저택에 출동시켜 놓았으니, 도련님은 부디 이 저택에서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상령이라고...?"

"네. 그 소년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우리 새장이 누군가에게 침략당한 것 같지만 확실치 않습니다."



김두원은 새장이라는 단어가 좀 의아하긴 했지만, 그보다도 침략이라니...


이 세계로 전이되자마자 참으로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



‘비석’들이 모셔진 대강당,


6마리의 실험체들은 타이즈한 흰색 전신복을 입은 채 용사를 감정 없이 응시했다.


용사는 자신의 가슴에서 뽑아낸 여자 실험체의 팔을 슬그머니 바닥에서 주워 한 입 크게 뜯어 먹었다.



"은혜를 참 X 같이도 갚는다. 그치? 클클"



6마리의 하얀 새에게 빨간 입속을 내 빛이며 웃어대는 용사.


그의 손가락이 뾰족한 송곳처럼 길어졌다가, 다시 짧아졌다.



"은혜? 웃기지도 않는군. 오만과 질투심에 찌들어 원래 ‘우리의 것’이 돼야 했을 ‘태초의 새장’을 쪼개 먹은 놈이..."



새하얀 ‘동그란 링’이 밝히고 있던 ‘새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이 용사를 향해,


천장에 매달려 있던 새장들을 덜컥댔다.



"용사. 그래, 이 단어도 그 아이처럼 천사에게 선택받고 싶어 네가 불러달라 한 것이었지. 정말... 자넨 아직 덜 자란 어린애 같군."

"..."



새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의 말에,


용사의 웃어대던 입꼬리가 어둑한 바다의 심연처럼 깊숙이 가라앉으면서, 부르르 떨렸다.



"... 이 새끼가..."



용사 주위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용사 주위에 있던 작은 돌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깊은 밤이 이 널찍한 대강당에 찾아온 것처럼,


용사의 감정이 이 공간 속에 ‘사력’을 불어넣어 으쓱함을 더 했다.



"뒤지고 싶어서..."



용사는 허공에 나타난 롱소드를 손으로 가볍게 받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6마리의 실험체들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곧 달려나갈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끼익- 뜬금없이 출입구를 막아서고 있던 커다란 쌍여닫이 문이 열렸다.



"거기까지 하시죠!"



쌍여닫이 문 너머로, 텔레우스가 외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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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6 - 4. 쟁탈전 23.06.24 19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2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5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40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5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2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63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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