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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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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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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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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 - 3. 낙원

DUMMY

"증오를 품는 것도 좋지요. 그러는 게 자아를 더욱 확립할 수 있으니깐요."



검은 가면은 아리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자... 아리야, 이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합시다. 제가 당신을 돌봐줄 경호원도 뽑아두었답니다."



다정다감한 검은 가면의 목소리 뒤로, 로브를 머리에 뒤집어쓴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또 로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머리에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마치, 빛을 잃고 떠도는 영혼들처럼 그들의 표정은 감춰진 자아에 대한 헌신으로써,


무감각한 어조로 연신 알 수 없는 실험을 해대고 있었다.



"나는 안 갈 거야."



아리야는 그들이 이상했다.


아리야는 그들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암-바야드처럼 검은 가면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모두 그림자만을 얼굴에 드리우면서,


죽은 벌레처럼 꿈틀대는 것 같았다.



"... 제가 아리야가 좋아할 만한 사람을 경호원으로 데려왔습니다. 아마, 이 분을 보면 기분이 좀 풀릴 거라 생각되는군요."



검은 가면은 로브를 머리에 뒤집어쓴 사람을 향해 아리야의 몸을 돌려, 가볍게 밀었다.



"자! 이제 로브를 벗어도 된답니다. 아모네양~"



검은 가면의 친절하고도 자상한 말투가, 꿈틀꿈틀 벌레로 변해 아리야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모네...?"



머리에 뒤집어쓴 로브 속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들.


그것들이 아리야의 눈 속까지도 파고들어, 통 속의 뇌를 뒤흔들었다.



----------



우리 새장은 특별하다.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을뿐더러, 새장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마저도 투명이라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우리 새장은 다른 새장과 다르게 부유기구와 부유선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고도에서 한참 아래라, 투명하지만 부유 탈 것들과 부딪힐 걱정 또한 없었다.


그야말로 숨겨진 낙원...


밴딧이나 해적으로부터 안전했고 거대 새장들의 갑질에서도 자유로운,


모든 종족이 한대 어울려 살 수 있는 ‘유일한 새장’이라고 어른들은 찬양하고 있지만...


나는 이 새장에서 벗어나고 싶다.


벗어나서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새장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고,


나는 아마 평생 그 조건을 채우지 못할 것 같았다.



"드워프들은 좋겠다~ 가끔 무역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있잖아."



학교 책상에 걸쳐 앉아 있던 나는 슬쩍 아래로 내려다보며,


아직 16살이란 게 믿기 힘들 정도로 수염이 덥수룩한 ‘테델’이란 소년을 향해 투덜댔다.



"또 그 소리야? 넌 우리 드워프들이 밖에서 얼마나 많은 위험에 맞다 드리는지 모르지? 이번에도 카르리나 할아버지가 어느 괴한에 납치되어 실종돼 버렸잖아? 으... 나는 너처럼 이 새장에만 있고 싶다고."

"카르리나 할아버지라면... 그 이상하게 웃는 할아버지?"



카르리나 할아버지.


희귀한 웃음으로 TV에까지 나온 그 할아버지는 바로 옆 동네에 살던 드워프 종족으로,


웃음만 좀 신기할 뿐인지 마음씨 좋은 동네 할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어... 너 못 들었냐? 이번에 그 할아버지가 실종되는 바람에 가드너까지 출동한다던데? 왜 그 미친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드너까지 출동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예삿일이 아닌가 봐."



가끔 테델은 지나칠 정도로 막말을 일삼았다.


그래도 가끔 얼굴까지 보았던 할아버지인데, ‘미친’ 할아버지라니.


지도 처음에 볼 때 생각보다 괜찮은 할아버지라면서...



"... 그래도... 우리 새장의 주민인데, 가드너가 출동할 수도 있지. 그분들은 용사와도 같은 존재들이잖아?"



가드너.


우리 새장에서 ‘시험’에 합격 된 ‘조율자’로서, ‘천사의 기술력’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을 뜻한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우리 새장을 수호하며, 타 새장에서 천사의 기술력을 가져오던가,


혹시나 우리 새장 주민에게 무슨 큰일이 생겼을 경우 구조대 역할도 수행하고 있었다.



"칫! 가드너? 그 녀석들은 높으신 분들이 자기들 그릇 지키려고 뽑아둔 속물 그득한 녀석들이잖아. 나는 그런 녀석들이 싫다고."



생긴 대로, 나이에 걸맞지 않은 꽉꽉 막힌 말이나 해대는 테델.


저 수염 덥수룩한 드워프 종족들은 죄다 저 모양인 건가?



"네가 그러니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지. 그래도 막 천사의 기술력 가지고 돌아오는 거 보면 멋지지 않냐?"



우리 새장에서 가드너들은 영웅으로 통하며, 남녀노소 어른, 아이 가릴 거 없이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그들이 복귀할 때는 거리가 항상 사람들로 붐볐고, 그들의 모습으로 만든 카드나 장난감들은 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다.



"멋지긴. 나는 오글거려서 그런 거 못 봐주겠더라."



테델은 내가 앉아 있던 책상 밑 의자에 털석- 앉으며 말했다.



"... 안전한 이 우리 새장이 좋다는 식으로 말해놓고, 그렇게 만들어주는 가드너가 싫다는 건 모순인 건 알고 있지?"

"모순 같은 소릴,,.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그들이 막 우리 새장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건 아니거든."

"그래. 뭐... 취향 차이니까 그렇다 치고... 그런데 우리 무슨 이야기 하다가 이렇게까지 말이 샜냐?"



나는 테델의 책상에서 내려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었다.



"네가 우리 새장에 있기 싫다며?"

"아... 맞다. 그런데, 그 카르리나 할아버지 무사할까?"

"가드너가 출동했으니 괴한이 죽이지만 않았더라면 괜찮겠지. 그래도 명색이 조율자들인데... 문제라도 있겠냐?"



테델은 학교 창밖을 통해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런 테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역시 이 녀석, 그 할아버지가 걱정되긴 하나 보다.


녀석은 턱수염을 긁적이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행동을 하는 건,


보통은 뭔가 침울해져 있을 때였으니까,



"...그 뭐시냐... 이번에 우리 아버지가 가인더들과 회의한다고 하더라고. 뭐... 몰래 볼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한번 가볼까?"



내 말에, 테델은 나를 향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



컴컴한 공간 속으로 유일하게 빛을 발하고 있던 흰색 롱코트를 입은 청년이,


당당한 발걸음으로 기나긴 다리를 건너와 산처럼 우뚝 솟아 있는 연단에 올라섰다.


철컥.


그러자 청년을 기다렸다는 듯 연단 오른편에 불이 밝혀지며,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새장들과 그 새장들 중심에 세워져 있던 ‘한 마리의 새의 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비석’이 연단에 올라선 청년을 맞이했다.



"검은 가면에 대한 건은 들었다. 천사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 정말 ‘검은 가면’이 천사를 부릴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전대미문의 사태야."



‘새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흠흠... 뭐... 제가 보고한 사태도 심각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다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연단에 올라선 청년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는,


꾹 다문 것 같은 가느다란 눈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비석을 바라봤다.



"이번에 카르리나 할아버지의 실종 사건 있잖아요. 그것도 아마 ‘검은 가면’과 관련 있을 것 같아요."



청년의 말에, 청년과 비석 사이에 침묵이 잠시 이어지다가,



"...근거는?"



비석에 새겨진 새가 파란빛을 발하며 말했다.



"백귀의 ‘회상’을 통해 카르리나 할아버지가 납치당한 장소를 되돌려 본 결과, 그곳에 있던 납치범 중에는 ‘천사의 날개’가 달린 녀석도 있었어요."



철컥!


청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 왼편에 불이 밝혀지며,


이번엔 ‘꽃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이 여러 종류의 꽃들로 둘러싸여 청년을 맞이했다.



"백귀의 회상을 사용했다고? 그 아이는 아직 천사의 기술력이 미숙할 텐데, 그러다가 폭주라도 해서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면 어찌했겠나?"



꽃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청년을 나무랐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잘됐지 않나요? ‘검은 가면’이 나타난 이 시점에서 그 아이를 언제까지 우리가 돌봐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참에 마지막 테스트를 시험한 거라 하죠."



청년은 가느다란 눈을 슬며시 뜨면서, 꽃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보고 정도는 하고 가도 되지 않았겠나? 이거 참... 능청스러운 건 여전하군. 네 능청스러움을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어영부영 넘어가고는 있지만, 후에 비수가 되어 네 심장을 찢어발길 수도 있다. 명심하도록."

"네. 명심하겠습니다."



꽃이 새겨진 비석의 다그침에, 청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었다.



"그건 그렇고, ‘검은 가면’이 카르리나 할아버지를 납치한 거라면... 이거 가드너만으로 이 일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하겠어."



‘꽃이 새겨진 비석’을 둘러싼 다량각색의 꽃들이,


옆에 있던 ‘새가 새겨진 비석’을 향해 기울었다.



"... 그래. 용사를 깨울 때인 것 같군..."



새가 새겨진 비석의 목소리가 조금 갈등하다시피 주저하며 말했다.



"텔레우스, 자넨 용사를 어디까지 알고 있지?"



‘새가 새겨진 비석’의 말에 연단에 서 있던 청년, 텔레우스는 기분 좋게 미소지었다.



"저희 ‘가드너’들은 애초 용사를 통제하기 위해 창설된 단체. 용사에 관한 거라면 대부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죠..."



용사.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남자.


‘천사의 기술력’을 부작용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존재.


그는 이곳 ‘회백 새장’의 최초의 왕이자 최후의 왕으로,


호걸하고도 야성미가 넘쳤던 그는 이 일대 새장들을 평정해 영웅으로,


후에는 ‘태초의 새장’을 점령하러 간 ‘제국의 새장’의 막강한 군사들을 물리치고,


‘태초의 새장’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여 혼란스럽던 세상을 평정한 용사로서,


‘좋은 면’으로 문서에 기록되어있었지만,


이면엔 그는 색을 밝히고, 야성미가 넘치다 못해 무엇을 부수기 일쑤였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이든 동물이든 닥치는 대로 죽이는 그야말로 야만인에 가까워,


결국엔 장로들은 용사가 술에 취해 잠이 든 틈을 타 그를 새장 깊숙한 곳에 봉인시켜버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어언 몇백 년 만인가... 용사를 ‘천사의 기술력’으로 봉인한다고 이 몸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던 시기가..."



꽃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이 은은한 향수에 잠긴 것처럼 말했다.



"말씀 중 실례지만... 혹시 용사님이 깨어나 오히려 이쪽을 적이라고 판단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요?"



텔레우스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 특유의 능청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아... 그 일은 걱정하지 말게. 용사... 그 녀석을 봉인한 방법은 시간을 멈추는 ‘천사의 기술력’이었으니까. 아마 녀석은 그때 그대로일 테지..."



꽃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 주위에 있던 꽃들이, 이번엔 텔레우스를 향해 기울었다.



"그나저나 텔레우스, 아무리 가드너의 힘이 강해졌다고는 한들 용사의 힘에 미치지는 못해. 그러니, 지금 네가 생각하는 그걸 절대 행하지 말아라."

"어... 네? 그거라뇨."

"너는 용사와 싸워보고 싶은 게로지? 핑계는 방금 말한 ‘우리를 적으로 돌렸다는 거’로... 아서라. 너도 용사를 직접 보면 알겠지만, 그건 이미 초인이라는 경지를 아늑히 넘어 섰다. 아마 부활한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천사나 그 검은 가면일 테지."

"하하하..."



텔레우스는 꽃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에게 대답 없이 머쓱히 웃어 보였다.



"텔레우스, 우리가 널 가드너에 넣은 이유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리더의 자질이 있어 그런 거다. 그러니, 이번에 용사가 부활하면 다른 가드너와 함께 그를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



‘새의 문양이 새겨진 비석’ 주위에 매달려 있던 새장들이 작은 종처럼 좌우로 흔들리자,


텔레우스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넵. 그러면 팀원들에게 이번 회의 건에 대해 말해주겠습니다."



텔레우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비석을 비추고 있던 불빛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꺼졌다.



----------



아버지는 우리 ‘회백 새장’에서 알아주는 기술자라고 한다.


덕분에 아버지는 시청의 허름한 지하실에서 가드너들과 여러 무기에 관해 토론을 많이 하셨고,


나는 그 토론을 시청 뒷마당 우거진 수풀 사이 나 있는, 갈라진 벽 틈으로 지켜보는 게 일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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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6 - 5. 쟁탈전 23.07.03 21 0 12쪽
87 6 - 4. 쟁탈전 23.06.24 19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0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4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6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3 0 12쪽
»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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