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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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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3,779
추천수 :
5
글자수 :
501,857

작성
23.01.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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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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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 7. 천사와 악마

DUMMY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날파리가 윙윙대고 있어."



아리야의 목소리가 내 뒤통수 근처로 다가온 것 같다.


잡히면 나도 몸속에서 벌레가 들끓어 오르며 죽겠지?


진짜 엄청 아플 것도 같았지만,


그것보다도 그 징글징글한 벌레들이 내 몸속을 파먹는다니... 상상만해도 싫었다.



"... 너도... 너도 벌레..."



바로 옆에서 아리야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뭐?"



광활한 들판?


따스한 바람이 봄기운을 사뭇 퍼뜨리는, 아름다운 들판.


그곳 중심으로 한 개의 거대한 머리통이, 쿵! 대지를 울리며 하늘에서 떨어졌다.


나는, 갑자기 바뀐 풍경에 잠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가, 다시 거대한 머리통을 바라봤다.



"저건... 뭐야?"



천사에게나 있을 법한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링이 거대한 머리통 위에 떠올랐다.



"뭐... 뭐냐니까..."



나는 너무나 꿈같은 풍경에, 혼잣말로 중얼댔다.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이게 바로 죽어서 보이는 풍경 같은 건가?


무섭다. 두렵다. 경의롭다...


저 링이 떠오른 거대한 머리통...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실베스타! 실베스타!"



나는 누워 있었다.


여전히 밤이었다.


테델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와 씨... 뒤진 줄 알았네. 후..."



테델은 안심하면서 거칠어졌던 호흡을 길게 뱉어냈다.


나는 자리에서 허리만 세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괴... 괴물은?"

"너한테 뭐라고 속삭인 뒤 갑자기 사라졌다... 너는 그 뒤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 사라졌다고?"

"괴물이 너한테 뭐라고 속삭였냐?"

"..."



그 소년이 내게 속삭인 말 따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들판 위 거대한 머리통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분이다.


방금 그건 대체 뭐였는지, 나는 거대한 머리통을 멍-하니 회상했다.



"야. 드디어 맛 갔냐? 그 괴물이 뭐라고 속삭였는데?"

"아! 그... 나도 모르겠는데... 그 괴물이 속삭이는 순간 내가 마치 다른 세계로 이동된 것 같았거든."

"... 그게 뭔 말이냐?"

"그러니까... 나도 모르겠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머리통.


어머니의 얼굴처럼 따스함이 묻어난 것에서, 갑자기 울분을 토하는 것 같은 이 기분.


... 잔혹하지만, 그래도 그때가 그리운 건 무슨 잘못인가?


옛날에, 나를 버리고 간 그녀가 생각났다.



"야야.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보안청부터 가자. 그 괴물이 또 나올까 무섭네..."



테델이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테델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며, 누군가가 바라보는 것 같은 음습함에 뒤로 고개를 돌렸다.



"..."



하지만 내 뒤에는 자욱한 산길에 가로등만이 빛을 발하며 수놓아 있었고,


사람도, 괴물도, 머리통도 아무것도 없었다.



----------



"... 방금... 그 기운은 뭘까요?"



텔레우스는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음~ 지상에 겁나 강한 괴물이 나온 거겠지. 그것 말고는 뭐가 더 있겠냐?"



테이야 이노는 하품을 쩌억- 하면서, 텔레우스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하하하! 이 몸보다는 약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수잔도 생각 없어 보이는 자신감을 뽐내면서, 테이야 이노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 입구를 지키는 가드너분들에게 연락해둘까요?"



민기는 그런 둘을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안경을 바로 고쳐 썼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네요.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지금 여기에 있는 분들을 제외하곤 딱히 상대 되지 않을 테니까요."



텔레우스의 가느다란 눈이 민기를 지나쳐, 뒤따라오고 있던 김하늘을 향했다.



"그렇죠?"

"저... 저요...? 그렇... 겠죠?"

"하하하. 그럼 이제 슬슬 용사를 깨울 준비를 하죠. 이제..."



텔레우스는 계단 옆에 나 있던 가파른 언덕 아래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용사가 봉인된 곳에 다 왔으니."



손전등에 비추어진, 옛날 그 형상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용사의 신전.


아름다운 자태로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는 가구들과 각종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은 신전의 품격을 알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그에 반해 용사는 품위라곤 찾아볼 수 없게 손에 맥주잔을 든 채로 테이블에 엎드려 침을 흘리며 자고 있었다.



"와! 이것 봐라! 투명한 벽이다."



수잔이 용사의 신전 주위에서 허공을 주먹으로 쿵쿵 내려치며 신기한 듯이 이리저리 훑어봤다.



"텔 형씨! 어서 이 장벽 좀 풀어요. 이제 나 좀 쉬고 싶어."



테이야 이노는 그런 수잔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바닥에 쪼그려 앉아 큰소리로 투덜댔다.



"그럼 하늘씨. 이제 신수를 불러주세요."

"네? 지, 지금 당장요?"

"넵. 방금 그 기운 느끼셨잖아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돈 버셔야죠."

"..."



김하늘은 흘끔흘끔 텔레우스의 눈치를 보며 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그럼 불러야죠..."



김하늘은 단정하게 핀셋으로 고정한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그 한 가닥을 떼어내 양손에 포개자,


스르륵.


이마 정중앙에서 뇌수가 흘러나오는 것과 함께, 거대한 두 팔이 비집고 올라와 땅에 손을 짚었다.



"오랜만에 날 부르는구나. 실눈의 남자여. 이 소녀가 불쌍하지도 않으냐?"



두 팔은 이윽고 김하늘의 이마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서로 서로의 양 끝을 부여잡고는 동그란 링이 되어 김하늘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오랜만이군요. 루-테레사. 한... 5년 만에 보는 건가요?"

"5년이 지나도 네 의미 모를 실눈은 여전하군. 그래서, 왜 날 부른 거지?"



김하늘의 머리 위에 두둥실 떠 있던 동그란 링에서 무수한 눈과 입이 생겨 일제히 텔레우스를 향했다.



"지금 새장 밖이 난리 난 거 아시죠? 암-바야드라는 ‘세난 왕국’ 소속 과학자가 천사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데, 한때 ‘천사의 기술력’을 수호하던 신수로서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 천사들은 순수하지. 거기에 의미를 더한 건 너희 인간들의 욕심이야."

"인간들은 욕심난다고 누군가를 잡아먹지는 않는데 말이죠."

"여전히 입만 살았군. 그래서, 말다툼이나 하려고 나를 부른 건가?"



동그란 링에 박혀 있던 입들이, 언짢은 것처럼 입꼬리가 쳐지며 명백히 적의를 드러냈다.



"당연히 아니죠. 당신은 지금부터 저기... 용사를 봉인하고 있는 천사의 기술력을 해제해 주셔야겠어요."



텔레우스는 언덕 아래에 시간이 멈춰 있던 용사의 신전을 바라봤다.



"대가는?"

"김하늘의 심장을 가져가시죠."

"저 용사 때문에 죄 없는 소녀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

"그래서, 받지 않으실 건가요?"

"... 흠..."



김하늘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서로의 양 끝을 잡고 있던 동그란 팔이 슬그머니 풀어지며 두 손바닥을 마주했다.



"대가는 잘 받았다. 실눈의 남자. 언젠간 네 심장도 이 손으로 받아내고 말지."



손바닥을 포갠 두 개의 팔이 수많은 하얀 깃털로 변해 사르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김하늘은 팔이 사라지자, 몸을 흐느적거리다가 앞으로 몸이 고꾸라지려고 했지만,


그전에 텔레우스가 그녀를 받아냈다.



“민기씨 그녀에게 심장을 달아주시죠.”

“아. 네”



그러자 민기는 텔레우스의 지시를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가슴팍으로 손을 꽂아 넣어 빨갛게 무릇 익은 사과 하나를 꺼내 들고는,


김하늘의 등 뒤로 아무렇지 않게 집어넣었다.


두근두근.


김하늘의 심장이 고동쳤다.


하음-


더불어, 언덕 밑 용사의 신전에서 커다란 하품 소리가 울려 펴졌다.


텔레우스는 안고 있던 김하늘을 민기한테 옮기고,


천천히 계단 옆면에 나 있던 언덕 밑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용사..."



인류의 구원자이며, ‘태초의 새장’의 종식을 알린 사람.


이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지금쯤이면 인류는 새장에 갇혀 죽어가는 ‘날개 잘린 새’일 뿐이었겠지.



"하음...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거지?"



텔레우스는 뒤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인기척에,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



회백 새장의 보안청.


그곳은 ‘출입구 보안팀’과는 별개의 부서로써, 우리 새장의 전반적인 치한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다른 새장은 모르겠지만 범죄율이 거의 전무 하다시피 한 우리 새장에선 이들은 보통 주민 간의 사소한 갈등이나 문제를 처리해주는,


‘주민 센터’의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에... 그러니까 산 위에 비밀 기지가 있어서 거기로 가고 있었는데 어떤 소년이 나왔고, 그 소년을 출입구 보안팀이 제압했는데... 소년의 등에서 천사의 날개가 생기며 출입구 보안팀 남자를 살해했다고?"

"... 안 믿기죠?"

"흐음..."

"안 믿기면 출입구 보안팀에게 연락해 보시던가요?"

"..."



테델은 그 까탈스러운 어조로, 카운터 담당 보안청 직원을 나무랐다.



"어휴... 알겠다. 알겠어. 너희 꼴을 보니 장난은 아닌 것 같은데... 연락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보안청 직원은 귀찮은 것처럼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를 엘프 특유의 길쭉한 귀에 가져다 대어 번호를 눌렀다.



"아... 예. 고생하십니다. 여기 C동 동부에 위치한 보안청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 네... 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보안청 직원의 엘프라서 항상 맨들맨들한 피부에 주름이 생기며,


전화를 받은 채로 나와 테델을 번갈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렇게 처리하고... 경계 발령하면 되나요?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보안청 직원은 잠시 무엇을 고민하다가,



"너희 둘은 잠시 보안청에 있어야겠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출입구 보안팀이 너희 둘을 쫓고 있는 모양이야."



분위기가 오묘하게 변하며, 나와 테델에게 말했다.



"네? 왜요?"

"아무래도 너희들이 말한 그 소년과 관련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슬그머니 나와 테델 앞으로 다가왔다.



"그럼 함께 가줘야..."

"야! 뛰어!"



테델이 뒤로 돌아 달렸다.


나는 왠지 이러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친구 놈이 뭐라고 일단은 테델을 따라 나도 뛰었다.



"얘들아!"



다행히 엘프는 달리기가 빠르거나 날 수 있는 종족이 아니었기에,


나와 테델은 쉽게 보안청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헉... 헉... 이제 못 달려..."

"아니... 왜... 후... 도망치는 거야? 우리가 뭐라도 잘못 한 것 같네..."

"아까 엘프 얼굴... 뭔가 이상하지 않았냐?"

"뭐가...?"

"엘프들은 표정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 않는 녀석들인데 인상이 썩어들어갈 정도면 뭔가 진짜 큰일이 생겼다는 거야.,, 괜히 우리 잘못 아닌데, 잘못이 될 정도라는 거지."

"아주 그냥 소설을 써라. 후..."



테델의 말을 납득하긴 힘들긴 했지만, 확실히 그 보안청 직원은 전화를 받고 난 뒤 어딘가 우리를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큰일에 휘말린 것인가?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몸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이 흥분감... 마냥 기분 나쁘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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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6 - 4. 쟁탈전 23.06.24 19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3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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